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는 관광객이 방문하고 싶은 곳의 순위권으로 꼽히며 서울의 매력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에디터도 종종 전시를 보러 자주 들리는데, 얼마 전부터 DDP 마켓(구 살림터)에 새로운 공간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알아보니 서울 뷰티 패션 라운지 ‘비더비(B the B)’라고 한다. 이곳은 상설 및 기획 전시를 통해 서울의 뷰티와 패션, 디자인, 문화 등 다채로운 콘텐츠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공간이다. 거대한 숲을 모티브로 조성된 브랜드 쇼룸으로, 서울을 대표하는 브랜드의 철학과 문화 콘텐츠가 결합된 브랜드 초대전이 열리는 ‘브랜드 라운지’, 서울의 미래를 선도하는 다양한 테크 기업의 상설 전시를 통해 최신 테크 기술과 서울의 미래 라이프스타일 경험을 제공하는 ‘테크 라운지’, 브랜드와 문화예술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서울의 라이프스타일을 조명하는 기획전시가 열리는 ‘커뮤니케이션 라운지’로 구성되어 있다.
비더비가 에디터의 눈길을 끈 이유는 정원처럼 꾸며진 내부 인테리어 때문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자고로 휴식과 안정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왜 푸른 식물들이 가득한지 이해된다.
지난 7월 14일부터 비더비 커뮤니케이션 라운지에서는 권오상 작가의 초대전 <서울의 멋: 반짝이는 좌대와 사물의 조각들>이 열리고 있다. 라운지에 들어서면, 권오상 작가의 사진조각 작품들이 거울에 비춰 착시를 일으키고,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전경이 압도적이다.
전시는 사진과 조각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혼합한 ‘사진조각’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권오상 작가가 서울을 기점으로 활동하는 10개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협업한 작품을 선보인다. 브랜드마다 작품 1점씩, 총 10개의 사진조각이 거울로 반짝이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매대 위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작가의 연작 ‘매스패턴스(Masspatterns)’ 형식을 따른다. 매스패턴스 연작은 권오상 작가의 대표 연작인 ‘데오도란트 타입(Deodorant Type)’과 연결된다. 단,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에서 영향받아 형태가 추상적이다. 기괴할 수도 있는 형상 위에 협업한 브랜드의 이미지와 작가가 선택한 서울의 이미지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작품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이번 전시는 숲이 아닌 나무를 봐야 진가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멀리서 사진조각의 신기한 형태와 이미지를 즐겨도 좋지만,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가 조각에 붙어있는 이미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협업한 10개 브랜드의 이미지와 권오상 작가가 픽(pick)한 서울의 이미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생각보다 제품 이미지는 빨리 찾을 수 있다. 작품 바로 옆에 브랜드 설명과 해당 제품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구 브랜드의 사진조각은 진짜 가구가 작품에 녹아 있어서 더 빠르게 찾을 수 있다.
더 재미있는 건 권오상 작가가 선택한 서울의 이미지다. 우리가 서울에서 흔히 보는 풍경들, 예를 들면 동작대교와 남산타워, 불이 켜진 밤의 주택가가 조각 곳곳에 숨어있다. 이와 함께 이제 서울에서 흔히 보이는 킥보드와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떡볶이, 박물관의 반가사유상 등 서울의 일상과 아름다움이 예술작품이 되어 전시장에서 반짝이고 있다. 이 반짝임은 공간을 가득 메꾼 거울의 반사이기도 하지만, 작품 자체의 재질에서 드러나는 효과이기도 하다. 매스패턴스 연작은 사진을 붙인 후, 에폭시로 마감한다. 덕분에 사진조각은 가벼운 소재(아이소핑크, 인화지)로 만들어졌어도 매끄러운 재질감과 함께 단단하고 무게감이 느껴진다.
반짝임은 이번 전시의 두 번째 주제다. 제목에 ‘반짝이는 좌대’라고 명시되었듯이 거울로 뒤덮은 벽면과 좌대는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하며 서울의 화려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10점의 사진조각은 약간 휘어진 일자형의 매대 위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처음에는 공간이 협소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매대의 형태는 서울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한강 줄기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좌대 하단에 붙어있는 거울에도 의미가 있다. 거울에 비치는 관람객의 발은 서울 안에서 분주하게 때로는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나타낸다. 이처럼 전시는 서울의 멋을 찾아볼 수 있는 작은 장치들을 사이, 사이에 숨겨 두고 있었다.
전시의 또 다른 주인공은 권오상 작가와 협업한 10개의 브랜드다. 리빙, 패션, 뷰티 등 다양한 분야로 구성된 참여 브랜드의 공통점은 모두 서울에서 탄생했고,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들의 제품과 디자인은 서울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감각적인 디자인의 홈웨어와 리빙 제품을 선보이는 오끼뜨(OGGITT)와 핀카(FINCA), 이포크(EÉPOCH)를 통해서는 집에서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코로나 이후의 트렌드를, 가구 브랜드 세컨드룸(SECOND ROOM), 스탠다드에이(STANDARD.A), 카레클린트(KAARE KLINT)는 철제, 플라스틱, 목재 등 점점 다양한 소재의 가구를 원하는 사람들의 니즈를 짐작할 수 있었다. 스니커즈 브랜드 마더그라운드(MOTHER GROUND), 모자 브랜드 카리스 몬타포네(KARIS MONTAPPONE), 아이웨어 브랜드 프로젝트 프로덕트(PROJEKT PRODUKT)는 의류를 넘어 액세서리 분야까지 성장하는 서울의 패션 파워를 엿볼 수 있는 브랜드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자연의 향기를 담은 플르부아(PLEUVOIR)는 외면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마음의 안정까지 생각하는 국내 뷰티 브랜드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작품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전시장 한편에서 스티커로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다양한 경험을 위해 스티커들을 부채에 붙여 나만의 도시를 콜라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는 권오상 작가의 또 다른 연작 ‘릴리프(Relief)’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이리저리 붙여가며 나만의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마침, 이 장마가 끝나면 날씨가 더워질 것이기 때문에 부채가 필요하다 싶어 열심히 만들었다.
서울과 브랜드 이미지가 섞여 예술 작품으로 탄생한 권오상 작가의 사진조각을 보면서 과연 내가, 혹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서울의 멋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서울은 역동적인 도시라고 하지만, 평범한 일상이 유유히 흘러가는 도시이기도 하다. 전통과 문화유산이 곳곳에 있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현재 트렌드를 흡수하고 그에 맞는 브랜드가 탄생하는 도시다. 어쩌면 서울의 멋은 여러 이미지를 중첩해서 만드는 권오상 작가의 사진조각처럼 도시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모습이 더해지고 겹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Interview with 권오상 작가
매스패턴스 연작으로 이번 협업을 진행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뉴 스트럭처(New Structure)와 릴리프(Relief) 연작도 고려했지만, 서울의 풍경과 브랜드 이미지를 덩어리감이 있는 입체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매스패턴스 연작으로 작업했어요. 최근에 열린 두 번의 개인전에서도 매스패턴스 연작을 선보였지만, 거대 풍선을 활용해서 작품 크기가 컸거든요.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작은 크기의 매스패턴스 연작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왜 브랜드마다 작품을 제작하셨나요? 각 브랜드에 맞는 형태를 구상하고, 이미지를 찾아서 제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셨을 것 같아요.
그동안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해 보니 역사가 깊고 브랜드 파워가 있는 브랜드는 오히려 자신들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기를 원해요. 하지만 제 작업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활용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미지가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특히 이번 전시에서 협업한 10개의 브랜드 중에는 신생 브랜드도 있고,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브랜드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더욱 브랜드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어요. 이런 생각은 작업하면서 더 강해졌어요.
동작대교, 남산타워, 킥보드, 떡볶이 등 일상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풍경과 사물을 작품에 담으셨는데요. 작가님께서 생각한 서울의 멋은 무엇이었나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지금은 서울 외곽에서 살고 있어요. 오히려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니까 서울의 멋과 매력이 보이더라고요. 작품에 담긴 서울의 풍경과 사물들은 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에요. 전시 준비를 위해 DDP를 오고 가면서 봤던 한강의 대교들과 터널들, 남산 타워. 이전에 다른 전시를 준비하면서 자주 지나쳤던 떡볶이 골목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반가사유상 등. 하지만 제일 크게 다가왔던 건 한강이었어요.
이번 전시를 더 즐겁고 알차게 즐길 수 있는 팁을 주신다면요?
전시 공간을 즐겨주세요. 전시가 열리는 커뮤니케이션 라운지는 DDP의 다른 전시 공간에 비해 협소하고 형태도 독특해서 이를 어떻게 꾸며야 할까 고민이 많았거든요. 이 공간을 작품에 어울리는 공기로 만들고 싶어서 전시장 벽면과 좌대를 거울로 제작했어요. 거울을 활용한 또 다른 이유는 작품 사진을 찍을 때마다 거울에 비친 관람객 본인도 함께 찍혔으면 했거든요. 동시에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관람객이 자신도 현재 서울을 이루고 있는 구성 요소임을 알았으면 해요.
주최·주관 서울특별시, 서울경제진흥원
전시 기획 서울경제진흥원, 어반플레이
전시 디자인 아워레이보
영상 김준서
참여 작가 권오상
참여 브랜드 마더그라운드, 세컨드룸, 스탠다드에이, 오끼뜨, 이포크, 카레클린트, 카리스 몬타포네, 핀카, 프로젝트 프로덕트, 플르부아
글 허영은 객원 필자
사진 권오상
취재 협조 어반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