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낙서에서 시작된 ‘하찮은 공룡들(The Insignificant Dinosaurs)’ 시리즈는 ‘UBHC (Unforgiving Brutal Herbivore Club, 자비 없고 잔인한 초식동물 클럽)’ 세계관으로 확장되어 현재까지 조구만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캐릭터 시리즈로 자리 잡고 있다. 조구만 스튜디오의 ‘조구만’은 ‘조그맣다’를 귀엽게 표현한 말로 다양한 제품의 스토리텔링에서 ‘조구만·조구맣다’를 활용하고 있다.
기다란 목에 둥글둥글한 팔다리.. 하찮아보이는 눈코입까지. 다이어리 꾸미기를 좋아하고 소품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어디선가 한번은 이 하찮은 공룡을 본 적 있을 것이다. UBHC(Unforgiving Brutal Herbivore Club)의 회장 브라키오는 약하고 선한 존재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하지만 불의와 부당은 절대 참지 않는 ‘강강약약’ 스타일의 초식공룡이다. 브라키오가 초대회장으로 있는 UBHC가 신규 회원 모집을 공고하며 동아리방에 얽힌 클럽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여 에디터가 직접 방문해보았다.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포악하고 위험한 공룡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잠깐 흠칫하지만 고개를 돌려보면 사과 뒤에 숨어있는 조그맣고 하찮은 공룡 브라키오가 바보 같은 미소로 맞이해 준다.
계단을 오르면 UBHC 글자가 박힌 브로콜리 포스터가 줄지어 붙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초식동물이라서 브로콜리를 즐겨 먹나?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던 찰나 안쪽으로 리듬감 있는 음악이 흐르는 팝업스토어가 보인다.
입장하자 보이는 알록달록한 동아리방의 모습. 동아리방은 기존 원모어백 스토어와 분리되어 있어 UBHC 멤버들의 공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커다란 브라키오 동상의 손짓에 홀려 따라가 보니 흔히들 학교에서 사용하는 사물함이 있다. 우리가 냉장고에 일상을 담은 사진을 마그넷으로 하나씩 붙여놓는 것처럼 브라키오와 멤버들도 이 공간을 그렇게 쓰는 것 같다.
집에 보내달라는 무언의 메세지를 보내는 브라키오부터 그 앞으로 보이는 우디(브라키오의 반려견)의 초상화, 요리를 좋아하는 안킬로(노란 공룡)의 모습과 햄버거 소품까지. 사물함 옆에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힘껏 믿는 스테고(파란 공룡)의 농구 유니폼도 전시되어 있다.
사물함의 앞으로는 브라키오를 찍고 있는 오래된 캠코더와 TV 위로 쌓여있는 비디오 테이프가 보인다. 비디오의 제목을 보니 <창립식 연설>, <UBHC 운동회>, <스테고의 햄버거 많이 먹기 대회>가 기록되어 있는 것 같다. 음.. 추억을 쌓는 것을 귀하게 생각하는 트리케라(주황 공룡)가 기록해 두었으려나?
옆으로 돌아보면 UBHC 동아리 멤버들이 즐겨하는 고전 보드게임 ‘Snakes & Ladders’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비치타올, 브라키오와 그 반려견이 그려진 스케이트보드, 미니 포스터와 엽서, 스티커, 유리컵, 키링 등 동아리방 오픈을 기념하는 다양한 굿즈들과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제품 사이사이 배치된 거울에 비춰지는 동아리방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는 것은 필수 코스.
이건 내가 생각하는 그 비속어가 맞나? 아까 사물함에서부터 보이던 이 ‘빠큐’를 애써 무시하려 했는데 이렇게나 크게 전시 해두다니. 외면하려 해도 외면할 수가 없다. 화가 많은 브라키오가 때때로 거대한 세상을 향해 불만을 표출하고 싶을 때 사용하려고 만든 크고 멋진(?) 장갑이라고 한다. 험악하지 않게 빅엿을 날려주고 싶을 땐 크지만 하찮은 이 장갑을 이용해 보도록 하자.
반대편 공간에는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컴퓨터 게임과 멤버들의 추억이 담긴 액자, UBHC의 모토를 담은 휘장과 깃발이 걸려있다. 액자 속 멤버들의 이야기와 미니게임을 즐기고 나니 앞서 보았던 신규 회원 모집 공고가 떠올랐다. 자비없고 잔인한 초식동물클럽 UBHC 가입 신청서를 간단하게 작성하고 제출하면 그 증표인 브로콜리 핀뱃지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으니 방문에 참고할 것.
UBHC 클럽 멤버들이 가진 생각을 공감하고 귀여운 친구들의 추억을 둘러보는 시간은 팍팍한 마음에 몽글몽글한 감정을 더해준다. 가까이 다가오는 여유로운 날, UBHC 동아리방에 방문하여 곳곳에 적힌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끝으로, UBHC의 회장 브라키오를 탄생시킨 조구만 스튜디오의 영감은 어디로부터 오는지, 알차게 메꿔진 팝업스토어를 어떻게 기획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Interview with 조구만 스튜디오
– 공룡 브라키오사우르스(Brachiosaurus)를 모티브로 한 UBHC의 회장 브라키오! 브라키오 캐릭터의 탄생 일화를 간단하게 들려주실 수 있나요?
한 때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였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단숨에 사라져 버렸고, 우리가 새롭게 상상력을 더해서 표현할 만한 요소가 많은 공룡들이 신비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대부분 거대하고 무시무시하게 표현되는 공룡들을 조구만의 스타일로 아주 단순하고 하찮게 그렸는데 마음에 들었어요. 브라키오도 그 중 하나였는데, 처음부터 모든 설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 나 자신을 지키고 스스로를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는 다짐 등 다양한 이야기가 덧붙여져서 지금 우리가 아는 브라키오가 되었습니다.
– UBHC: OPEN CLUB DAY 팝업스토어를 기획하신 의도가 궁금해요.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팝업스토어가 아닌,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을 기획하고 싶었어요. 마냥 귀여운 캐릭터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공간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롭고 재밌는 경험을 주고 싶었어요. 팝업스토어를 방문해 주신 분들이 나가면서 “귀엽다”가 아니라 “재밌다”, “더 알고 싶다”라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 조구만 스튜디오만의 영감을 얻는 방법이 있다면?
주변의 일을 많이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일상의 조각들을 여기저기에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두는 편이에요. 재미있었거나 인상적이었던 일화나 대화, 우연히 나온 말장난, 말실수 같은 건데요, 나중에 보면 재밌기도 하고, 이야기로 발전될 수 있을 만한 좋은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에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자세히 관찰하는 것, 그리고 좋은 대화를 하는 것, 그게 저희가 영감을 얻는 방법인 것 같아요.
– 혹시 새롭게 구상 중인 멤버나, 공룡이 아닌 캐릭터 중 특별히 알려주고 싶은 친구가 있나요?
캐릭터들의 일상을 담은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캐릭터들도 등장하게 될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공룡들뿐만 아니라 ‘프란시스 리가토니’라는 기니피그와 같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있어요. (팝업 공간 어딘가에도 숨어 있답니다!)
– 마지막으로 조구만 스튜디오를 사랑하는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요.
조구만 스튜디오의 캐릭터들과 이야기를 좋아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우리 모두 ‘조구만’ 존재들이지만, 각자에게 의미 있는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 보아요!
글 이신영 콘텐츠 매니저
자료 제공 원모어백, 조구만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