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심광섭
Operations Director
어두운 벽면과 원목 가구를 활용한 중후한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후기를 보니 ‘마치 토끼굴에 들어온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토끼’라는 이름 때문에 자연스레 토끼굴에 매칭하시는 것 같은데,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 재미있었습니다. 처음에 들어오실 때 느끼셨겠지만 여긴 물음표 가득한 공간이에요. 반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죠. 홍대나 라이즈호텔은 트렌디한 분위기인데, 벽을 넘어 안으로 들어오면 오래되고 중후한 분위기가 펼쳐져요. 그러나 화장실에 가면 독특하고 화려한 분위기로 또 한 번 반전을 주지요.
낮과 밤에 천장의 조명을 다르게 설정하고 있어요.
낮과 밤에 신체가 느끼는 바이브가 다른데 그 생체 리듬에 맞추고 싶었습니다. 낮에는 오후 1-2시쯤의 태양광의 색 온도로 맞추어 천장을 통해 하늘에서 자연광이 들어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밤에는 심리적으로 차분해질 수 있도록 어둡게 조성해요.
굉장히 편안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어요.
전반적인 톤앤매너는 편안하고 캐주얼한 공간입니다. 비싼 대리석, 하얀 테이블보, 모던한 조명이나 화려한 샹들리에를 생각하면 위압감이 들잖아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아 중립적인 회색 톤을 활용했어요. 그리고 조명이 주는 편안함도 있습니다. 외부의 빛을 100퍼센트 차단하고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따뜻한 색의 조명으로 전부 맞췄어요. 소프트조명이라 눈이 덜 피로합니다. CEO가 포토그래퍼 출신이라 조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그런 부분이 반영되었어요.
브루클린의 동네 바를 오마주한 공간이에요. 어떤 식으로 녹여냈는지 궁금해요.
토끼소주의 뿌리가 브루클린이에요. 멤버 모두 그곳에서 인연이 시작되었죠. 멤버들의 뿌리와 좋은 추억들을 공간으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브루클린의 많은 업장에서 콘크리트와 우드톤의 인테리어를 섞어 자연스러운 느낌을 부각하는 인테리어를 활용해요. 또한 재개발되면서 남은 나무들을 재사용하는 경향도 있죠. 토끼바의 나무로 된 천장도 충주에 있는 증류소에서 나무 팔레트를 사용한 후 버려진 것들을 모아 직접 가공해 붙인 것입니다. 브루클린의 문화를 모르더라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공원에 있는 벤치 느낌의 의자나 조명 스타일도 전반적으로 브루클린을 오마주한 것입니다.
정원준 디자이너가 가구와 인테리어를 담당했다고 들었어요.
정원준 디자이너도 뉴욕에서부터 친하게 알고 지내던 분입니다. 전공은 가구와 가죽이고 인테리어 업계에도 계셨죠. 브루클린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선 경험해 본 사람이 뉘앙스를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 믿고 맡겼습니다. 가구들도 직접 만들고 섬세하게 다듬어 주어 편안하고 거슬리지 않는 공간이 되었어요.
편안함은 ‘디테일’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토끼바도 그런 공간이고요.
바에 앉으면 발을 어디에 둘지 모르는 경우가 있잖아요. 다리의 길이에 따라 발을 의자에 둘 수도 있고, 바에 둘 수도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바에 앉았을 때 무릎이 바에 닿는 불편도 고려했고, 의자에 앉거나 서서 팔을 걸쳤을 때 둘 다 편안할 수 있도록 높이도 신경 썼어요. 규모가 작은 화장실에는 사면에 거울을 붙여 훨씬 넓어 보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좋은 디테일들은 경험하는 당시엔 모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요. 토끼바도 그런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바는 부담스럽던 저에게도 여기는 편안한 아지트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저희는 100퍼센트 성공한 거예요. 바가 부담스러운 공간이라는 인식을 깨고 싶어서 만든 게 바로 토끼바니까요. 칵테일에 쓰이는 주류들은 높은 주세법 때문에 저렴하게 판매되기 어려워요. 비싼 가격에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수준의 퍼포먼스, 비주얼, 팬시함을 유지해야 하죠. 그러나 토끼바가 이렇게 캐주얼하게 즐기는 바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제조업도 같이 하기 때문이에요. 자체적으로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칵테일바보다 훨씬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입니다.
가격에서의 편안함도 갖추는 셈이네요.
공간은 편안한데 가격이 너무 비싼 것도 부담스러우니까요. 문화가 발전하면서 전통주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와인 품종도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맥주 외에는 가격적인 부담이 있어요. 토끼바를 통해서 소주를 다양한 칵테일로 풀어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 칵테일의 뿌리는 양주예요. 그런 의미에서 ‘선비’라는 양주 브랜드를 25일에 새로 론칭합니다. 앞으로 더욱 저렴하고 좋은 조건으로 여러 칵테일 바들에 양주를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양주는 서양, 소주는 한국. 양쪽의 문화적 뿌리를 술로도 결합했다고 볼 수 있네요.
서양과 동양의 술 마시는 문화가 달라요. 특히 미국은 술은 술, 음식은 음식이라는 구분이 강하죠. 하지만 한국에선 술과 음식이 항상 함께해요. 그래서 23도 저도수의 토끼소주 화이트를 만들고 한편으로는 서양의 주류 문화를 겨냥한 40도의 토끼소주 블랙도 마련했죠. 항상 다른 문화를 존중하면서 어떻게 양쪽을 만족시킬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그러한 고민이 녹아난 결과, 서울과 미국의 식문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에요.
토끼소주가 시작할 당시 브루클린에서는 한국 문화가 막 떠오르는 시점이라 고급 한식을 시도하는 식당이 많아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거기에 페어링할 만한 한국 술은 참이슬뿐이었죠. 그 조합이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해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다 시작하게 된 게 토끼소주예요. 현재 수준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없는 것,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것들을 언제나 모색합니다. 미국식 이탈리안 음식도 그런 의미에서 다루게 된 거예요. 한국에선 아직 미국식 이탈리안을 제대로 다루는 곳이 많이 없다고 생각해요. 한국에 새로운 장르의 음식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토끼소주는 미국에서 출발한 만큼, 미국식 이탈리안 음식과 잘 페어링 될 것 같아요.
술과 음식의 조합은 국적의 조합보다는 술과 음식 각각 개별적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꼭 유럽산 와인이 아닌 아프리카산 와인이라도 유럽식 음식에 페어링 가능한 것처럼요. 마찬가지로 빠올로가 지금은 이탈리안 음식을 하고 있지만 태국 음식이나 멕시칸 음식을 할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다문화의 나라이기에, 미국이라는 지붕 아래 표현할 수 있는 게 굉장히 자유로워요.
토끼소주가 만든 공간이라 해서 토끼소주만 있을 줄 알았는데 다른 양주도 있고 미국식 이탈리안 음식도 선보이죠.
토끼소주만 사용하는 바는 너무 뻔하잖아요. 처음엔 토끼바라고 이름 지을 생각도 없었습니다. 굳이 토끼라는 이름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에서 소주를 만드는 회사로 시작했지만 한국에 와서는 소주 회사를 넘어 증류주 회사로 키워가고 싶거든요. 다양한 증류주를 취급하는 브랜드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선비라는 양주도 만든 것이고요. 그렇기에 토끼가 하이라이트 되지 않아도 됩니다.
토끼바의 원스리스트
추천하는 페어링 3.
뉴욕을 상징하는 음식 중 하나인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그리고 스테이크에는 위스키를 빼놓을 수 없다. 저번 주에 공식 론칭한 토끼소주 골드는 오크에서 숙성한 술로, 아직 물량이 부족해 토끼바에서만 판매 중이다.
미국식 이탈리안 음식을 대표하는 치킨 팜 스파게티는 치킨까스에 모짜렐라치즈로 덮인 토마토 스파게티이다. 여기엔 편하고 연한 느낌의 하이볼이 어울릴 것.
어느 정도 식사가 마무리 되면 칵테일로 마무리한다. 칵테일은 한 잔만으로 완성된 느낌을 준다. 서양에서는 식사 단계별로 페어링하여 마시는 술이 다른데, 식전에는 입맛을 도구는 가볍거나 쌉싸름한 술, 중간엔 맛이 풍부한 칵테일, 마지막엔 디저트와 함께 달달하거나 도수 높은 샷.
마지막으로 충주는 ‘찹쌀’이라는 재료에 집중하기 위해 선택했던 도시라면, 서울은 토끼바의 어떤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인가요?
토끼바와 같은 캐주얼한 바를 오픈한다는 건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서울을 찾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홍대는 도전적이고 젊은 곳이고요. 앞으로 서울에도 한 두 곳 더 자리 잡고 싶고, 점차 지방에도 관심을 두고 싶어요.
글 소원
자료 협조 토끼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