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참여한 국가는 캐나다, 중국, 프랑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스위스, 우크라이나이며, 이들의 국가관은 광주 지역의 협력 기관인 이강하미술관, 은암미술관, 양림미술관,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동곡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10년후그라운드, 양림쌀롱, 갤러리 포도나무, 이이남스튜디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다.
이번 파빌리온은 역대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광주 지역 곳곳에서 열리고 있어 다양한 볼거리,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진 만큼 단번에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첫 발걸음을 떼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그리하여, 파빌리온 아홉 곳을 돌아본 에디터가 이목을 사로잡는 국가관 네 곳을 꼽아 봤다. 선정 기준은 네 가지다. ‘국가관과 어울리는 전시인가?’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주제와 공명하는가?’ ‘현 사회와 시대를 잘 드러내 보이고 있는가?’ ‘전시가 열리는 장소와 공간을 잘 활용했는가?’
캐나다 파빌리온
<신화, 현실이 되다>
23.04.07 ~ 07.09, 이강하미술관
캐나다 파빌리온은 한국-캐나다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32명의 신진, 기성 작가들이 2022년에 작업한 90개 이상의 드로잉과 조각을 선보인다. 이 프로젝트는 캐나다 이누이트 예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전시이자 국내 최초, 최대 규모로 열리는 이누이트 미술 전시회다.
이누이트 예술은 말 그대로 이누이트 소수 민족에 의해 제작된 예술을 칭한다. 이누이트의 조상인 툴레족이 동물 뼈와 상아, 돌 같은 재료를 통해 기능적이며 장식적인 도구를 만든 것이 기원이다. 이후 문화가 발전하면서 이누이트 예술도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적용하며 진화하게 됐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이들의 예술은 자연과 동물, 인간의 민속 신화에 대한 전통과 믿음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누이트 예술의 창시자인 케노주악 아셰바크(Kenojuak Ashevak)의 <해초 먹는 토끼>(1958)가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자들을 맞이한다. 아셰바크를 포함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캐나다 이누이트 예술의 시각적 특징과 더불어 자연과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캐나다 파빌리온이 아닌 곳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운 특수한 전시다. 자연과 가까운 종족인 이누이트가 바라보는 자연을 통해 세계관과 더불어 이누이트 예술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조망할 수 있다. 이누이트 예술의 전반적인 형태는 아동이 그린 그림과 유사하다. 이들이 이러한 기법을 고집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보길 권한다. 지속가능성, 환경에 대한 담론이 화두인 시대에 자연과 밀접하게 살아온 이들이 바라보는 자연과 동물은 어떤 모습인지 경유하며 미래의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이탈리아 파빌리온
<잠이 든 물은 무엇을 꿈꾸는가?>
23.04.07 ~ 07.09, 동곡미술관
이탈리아 파빌리온은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주제인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주제를 이어받아 ‘잠이 든 물은 무엇을 꿈꾸는가?’라는 주제로 전시를 꾸렸다. 여기서 ‘잠든 물’은 새로운 가능 세계인 꿈으로 이어지며 인간 중심의 관점의 전환을 내포한다.
이탈리아관은 총 5명의 작가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들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지만 물이라는 은유적 주제 안에서 서로 호응한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인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파비오 론카토(Fabio Roncato)와 한국 해안가에 버려진 폐기물 등을 주워 작품을 제작한 카밀라 알베르티(Camilla Alberti)는 한국과 이탈리아의 연결지점과 맥락에 특히 주목했다. 이외에도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술의 관계에 있어 재정의와 재탐색을 요구하고 있는 마르코 바코티(Marco Barotti)와 유발 아비탈(Yuval Avital), 아그네스 퀘스천마크(Agnes Questionmark)의 작업들이 전시장을 다양한 형태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주제인 ‘물’에 가장 인접한 작업들이 소개된다.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독립 큐레이터 발렌티나 부치(Valentina Buzzi)가 한국과 이탈리아를 연결해 비엔날레 주제 안에서 공명하도록 유도한 점이 엿보인다. 퍼포먼스와 영상, 사운드, 조각, 설치 그리고 전시 연계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업 스펙트럼에 눈과 귀가 즐겁다.
네덜란드 파빌리온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CICC: 멸종 전쟁>
23.04.07 ~ 07.30, 광주시립미술관 제1전시실 & 제2전시실
국가와 기업이 공모해 과거, 현재, 미래에 저지르는 기후 범죄를 기소하는 대안 법정인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이하, CICC)는 작가, 학자, 법률가이자 활동가인 라다 드수자(Radha D’Souza)와 프로파간다 연구자이자 아티스트인 요나스 스탈(Jonas Staal)이 공동 설립했다. 드수자는 자신의 저서 <권리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2018)를 기반으로 국가와 기업이 저지른 환경범죄를 기소할 목적으로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를 설립했다. 설립 이후 CICC는 지속적으로 환경범죄자의 책임을 추궁해왔다.
이번 네덜란드 파빌리온에서 드수자와 스탈은 CICC의 새로운 챕터인 ‘멸종 전쟁’을 선보인다. 본 전시는 한반도와 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전쟁과 군수산업체의 존재 자체를 기후 범죄로 규정한다. 그리고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증거 재판 퍼포먼스도 진행한다.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CICC가 과연 유효한 것인지 예술의 한계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광주시립미술관이라는 공공적 성격을 지닌 공간에서 CICC가 펼쳐진다는 점은 흥미롭다. 비록, 이들의 작업이 법의 재검토와 실현으로 직결되지는 않더라도 미술관이라는 공적 장소에서 논의의 장을 생성할 수 있기 때문. 실제로 작업 목표를 묻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현대의 법에 대한 많은 질문을 이끌어내는 것”
프랑스 파빌리온
<꿈은 제목이 없다>
23.04.07 ~ 07.07, 양림미술관
프랑스 파빌리온은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 심사위원 특별 언급상을 받은 알제리계 프랑스 작가 지네브 세디라(Zineb Sedira)의 작업을 선보인다. 세디라는 자신의 상상력에 영향을 준 1960-70년대 사회참여 영화에 주목해 왔다. 이 시기에는 알제리와 프랑스, 이탈리아의 아방가르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사유를 실험했다.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은 작가는 공동체와 정치적, 지적, 예술적 연대를 통해 망명과 기억, 식민 지배에 대항, 투쟁하는 것을 고민했다. 인본주의적 메시지를 담은 작가의 작품 <꿈은 제목이 없다>는 공동체와 정치적, 지적, 예술적 연대의 개념을 강조함으로써 주제를 부각시킨다.
전시는 양림미술관 2개의 층에서 열리며, 1층은 세디라의 작업실을 재현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소개된 <꿈은 제목이 없다> 전시의 창작 과정을 소개한다. 영화관으로 변신한 지하공간은 영상 작품을 상영한다. 작품 구상부터 실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작가가 작품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글쓰기, 아카이브 및 연구 작업을 소개하고 있다.
프랑스 파빌리온은 다른 국가관과 다르게 단 한 명의 작가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들의 선택과 집중은 국가관의 주제와 성격을 더 명확하게 드러내 보였다. 68혁명 등 변혁의 물결이 거셌던 60-70년대 프랑스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사회참여 영화들은 어쩌면 현대의 우리에게 대안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프랑스 국가관은 알제리계 프랑스 작가인 세디라에 집중함으로써 작품뿐만 아니라 창작과정과 글쓰기, 아카이브 작업 등 ‘맥락’을 함께 제시했다. 그리고 이를 광주 시민의 문화 사랑방으로 불리던 작은 공간인 양림미술관에서 전시해 세디라와 프랑스 그리고 한국의 연결 지점을 명확하게 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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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광주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