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01

계절을 감각하게 하는 공간, 참 제철 ①

낯선 경험도 편안하게 안내하는 곳
서울 종로구 서촌, 좁은 골목길에 선 건물 4층에 작고 단정한 바가 있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참 제철(Cham in Season)이다. 이 자리에서 손님을 맞은 지는 반년 남짓 되었지만, 임병진 대표·오너 바텐더와 서촌의 연은 훨씬 더 오래되고 깊다. 2018년 오픈해 국내 대표 바 중 한 곳으로 우뚝 선 바 참(bar Cham)을 시작으로, 2020년 문을 연 바 뽐(bar Pomme), 마침내 참 제철까지 서촌에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
ⓒ heyPOP

임병진 바텐더는 한국인에게 더욱 편안한 바(참)나, 과일을 모티프로 한 술을 중심으로 다루는 바(뽐)를 꾸리는 등 ‘바’라는 공간을 두고 끊임없이 새롭게 시도해 왔다. ‘참’에 ‘제철’을 붙여 이름을 지은 이곳에선 또 어떤 시도가 피어나고 있을까? 오가는 사람의 시선이 바로 닿는 참이나 뽐과 비교하면 조금은 비밀스러운 공간, 참 제철의 문을 두드렸다.

서촌

왜 서촌이었을까? 이유는 명료했다. 참을 준비할 당시 임병진 바텐더는 한국에서 바 문화가 좀 더 널리 사랑받길 바라며 기존에 바 상권이 없던 동네를 찾았다. 그러다 서촌 골목 한편에 선 한옥을 발견했다. 한옥을 손봐 참을 열었고, 2년 후 참에서 걸어서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뽐을 열었다. “가게 두 곳을 서촌에 열고 나니 자연스레 참 제철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열자 싶더군요. 가게들이 가까우면 관리하기가 비교적 수월한 데다 이 동네와 5년을 함께하면서 정도 많이 들었거든요.” 임병진 바텐더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인 ‘한국’과 서촌이라는 지역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우러지기도 했다. 지난해 1월부터 ‘좀 더 비밀스러운 참’을 위한 자리를 찾기 위해 서촌 곳곳을 둘러보다 지금의 장소를 만났다.

참 제철의 출입문에 달린 참 로고. 강형신 디자이너가 작업했다. ⓒ heyPOP

4층

이전에 오픈한 두 바와 비교하면 넓지 않은 규모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바텐더가 꿈꾸던 작업을 다양하게 실행하기엔 알맞은 규모였다. 좁은 골목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야 도착하는 4층이라는 위치도 나쁘지 않았다. “참과 뽐은 거리와 닿아 있어요.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저기 뭐 하는 데야?’ 하고 쳐다볼 수도 있는 곳이죠. 그곳과 비교하면 살짝 문턱을 만들었다고 할까요?” 임병진 바텐더는 제철 재료와 발효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고, 그 바람을 참 제철에서 풀어놓으려 한다고. 비교적 과감하고 실험적인 메뉴를 내놓기 때문에 부러 찾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리 잡았다. “숨어 있는 곳이라서인지 여기가 무얼 하는 덴지 정말 궁금한 분들이 찾아오시는 듯해요. 한 분 한 분이 각별합니다.”

입구 ⓒ heyPOP

바텐더를 둘러싸는 바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밖으로 환하게 열린 창이 먼저 보인다. 바텐더가 창을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바를 배치했다. 바는 타원을 세로로 자른 듯한 C자 모양인데,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다. “콘셉트를 기획한 보다 아키텍츠(BO.DAA Architecture)의 아이디어였어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가면 셰프가 준비한 메뉴가 차례로 나오잖아요. 바에서도 그런 시도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요. 손님들의 주량에 한계가 있으니까, 바에선 보통 두세 잔 정도 드시는 경우가 많죠. 계절별로 우리 팀이 준비하는 메뉴 6~8가지를 전부 마셔볼 수 있도록 하는 ‘맡김차림*’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시도하는 공간을 기획한 거죠.” 보다 아키텍츠는 이 아이디어를 바의 모양으로도 구현했다. 바텐더가 중심에 서고, 손님들이 그를 자연스레 감싸는 형태의 바를 만든 것이다.

* 오마카세의 우리말 순화어
바텐더를 감싸는 c자형으로 만든 바 ⓒ heyPOP

나무와 구리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처음 만나게 되는 출입문부터 둥그런 바 테이블, 바 체어는 모두 밝은 빛깔의 목재로 제작했다. 출입문과 바 탑은 참나무, 바 체어는 단풍나무로 만들었다. 밝은 빛의 목재가 아늑하고 고즈넉한 참, 세련되고 우아한 뽐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바 테이블과 바 체어에서 모두 유연한 곡선이 도드라진다. 이 의자는 목공방 기브앤테이크가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시간이 흐르며 의자에 사람이 앉았다 가고 이들의 온기가 머물렀다 사라지길 반복하면서, 의자는 자연스레 색을 달리할 것이다.

ⓒ heyPOP

목제 의자를 단단하게 받치는 소재가 의자의 흥미로운 포인트가 된다. “받침 부분은 구리 소재예요. 바 하단과 의자 하단, 백 바, 조명 등 곳곳에 구리가 포인트로 쓰였습니다.” 나무와 구리는 따뜻한 기운이 닮았지만, 두 소재가 품은 인상과 결은 분명히 다르다. 이러한 소재를 더불어 사용한 덕분에 자연스러우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 됐다.

견고하고 아름다운 의자 ⓒ heyPOP
바닥과 가까운 바 하단에도 구리가 쓰였다. 조명이 숨어 있다. ⓒ heyPOP
바 하단 가방 고리 ⓒ heyPOP
백바 중심에 자리한 꽃병 ⓒ heyPOP

에나멜

바의 중심에 자리하는 백바(backbar)는 오묘한 색깔을 바라보는 재미를 준다. 밀어서 여닫을 수 있는 장을 컬러 에나멜 소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보다 아키텍츠가 기획과 설계·디자인을 맡은 것으로, 에나멜과 금속을 사용해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워크샵와이(workshop y) 김윤진 작가에게 제작을 의뢰해 빚어냈다. 그의 작업은 참 제철 곳곳에 색감을 불어넣었다. “워크샵와이 작업이 여기저기 쓰였어요. 백바는 물론이고 조명, 칵테일용 잔까지 다양하게요. 백바는 출입문과 가까운 바깥쪽 색감이 제일 밝고 안으로 가면서 어두워져요.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에 이르는 계절을 표현하려던 것이라고 하는데, 주로 밤에 영업을 하니까 어두울 땐 그 차이가 잘 보이지 않더군요.” (웃음)

사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갈수록 백바 에나멜의 색이 진해진다. 계절의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 heyPOP
에나멜 질감 ⓒ heyPOP

모스코 뮬(moscow mule)은 차가운 온도가 오래 유지되는 구리 잔에 주로 서브하는 칵테일이다. 참 제철에서 만드는 뮬 타입 칵테일은 워크샵와이의 잔을 사용하여 낸다. 구리에 에나멜을 덧발라 만든 김윤진 작가의 잔은 일반적인 구리 잔과 같은 기능을 하는 동시에 보는 즐거움마저 만족한다.

오른쪽 기다란 잔이 김윤진 작가의 잔. 구리를 에나멜로 감싼 잔이라 음료의 차가운 온도가 오래 유지된다. ⓒ heyPOP

소리

“여기선 어떤 음악을 틀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참과 뽐에서 나오는 음악의 중간쯤에 있는 곡들을 틀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바는 외국인이 더 편하게 즐기는 문화’라는 인식을 뒤집어 만든 곳이 바 참이었으므로, 참에서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노래들이 많이 흐른다고. “참에서는 80년대 우리나라 가요도 나와요. 제가 좋아하고 즐겨 듣던 노래를 틀기도 하죠. 뽐은 비교적 이른 시간부터 즐기는 가벼운 분위기인 만큼 하우스 등 에너지가 좋은 음악을 주로 틀고요.” 공간 콘셉트에 맞춰 플레이리스트를 운영하는 셈인데, 참 제철에서는 펑키하면서도 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음악을 재생하려 한다.

ⓒ heyPOP

나무와 꽃

날이 다사로워지면 참 제철을 또 다르게 즐길 수 있다. 야외 공간이 있어 바깥 공기를 느끼며 술을 마실 수 있는 것. “면적이 좁은 편이라 실내 공간만 있었다면 답답했을 거예요. 다행히 야외 공간이 바로 연결돼서 그런 느낌이 덜하죠.” 원래는 야외 공간의 한가운데 화단이 있었다.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주변 건물을 가리기 위해 화단의 위치를 가장자리로 옮겼다. “가장자리로 옮기니 손님 자리가 꽃과 나무에 둘러싸이게 됐어요. 손님들도 그 아늑한 느낌을 좋아하세요. 조경은 양재꽃삼남매라는 팀과 함께했는데, 저는 보통 전문가를 믿는 편이거든요. 이쪽 면을 가리고 싶다, 잘 살아남는 식물이면 좋겠다, 대나무는 안 쓰고 싶다, 정도의 조건만 말씀드렸는데 무척 마음에 들게 조성해 주셨어요. 수국도 있고 남천도 있고요. 남천은 오뉴월이 되면 꽃을 피운다더군요.” 지난겨울이 혹독하게 추워 바깥의 식물이 걱정이었다. 나무에 밀짚을 둘러 주면서도 새봄에 다시 싹을 틔울지 확신이 없었다고. “따뜻해지니까 싹이 트더라고요. 너무 신기하고, 얘네가 귀엽고….”

봄이 되어 푸르러지는 나무 ⓒ heyPOP

“작가가 하나하나 빚은 잔들이 정말 멋지지만, 업장에서 쉽게 쓰기엔 다소 가격대가 높다고 느껴져 마음껏 사용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계절별로 메뉴를 단장하는 만큼 해당 메뉴에 꼭 어울리는 잔을 고르려고 노력합니다.” ‘제철 재료’를 키워드로 하는 바인 만큼, 막연히 도기 잔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한국적인 요소를 품은 음료라고 해서 반드시 전통적인 느낌의 잔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참 제철의 백바에는 계절마다 새로워지는 메뉴를 담아낼 다채로운 잔이 자리를 잡고 있으나, 바에서 자주 사용하는 클래식한 유리잔 역시 한편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 heyPOP
ⓒ heyPOP

Ι 각별한 잔

1. 신현민 작가가 빚은 잔

ⓒ heyPOP

바 참 팀은 올해 3월 미국 뉴욕에서 바텐딩 관련 팝업 및 세미나를 진행했다. 당시 행사를 위해서 특별한 잔을 준비했다. 도예가 신현민이 빚은 잔이 그것이다. (신현민은 도예가 신경균의 아들이기도 하다.) 투박해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오묘한 빛과 형태를 품은 잔이다. 현재 참 제철에서 사용하고 있다.

2. 친구가 선물한 메즈칼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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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즈칼(mezcal)은 용설란으로 만든 증류주이다. 보통 기다란 형태의 잔에 마시지만, 이 잔은 좀 특별하다. 임병진 바텐더가 미국 LA에 머물 때 메즈칼에 대해 교육을 해준 친구가 선물한 잔이다. 멕시코 현지에서는 이런 잔에 메즈칼을 마시기도 한다고. 바텐더는 이 잔에서 풍기는 솔직한 느낌을 좋아한다. 한국의 술잔과 형태가 비슷하다는 에디터의 말에, 바텐더는 멕시코와 한국은 비슷한 점이 꽤 많다고 덧붙였다.

▼ 2편에서 이어집니다.

이미지를 누르면 2편으로 연결됩니다.

글·사진 김유영 기자

장소
참 제철
주소
서울 종로구 사직로 133-10 4층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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