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5

검은 선에서 배어 나오는 안온한 시간들

이나영 작가의 따뜻한 세계 〈Lui et son chien〉
검은 선묘에서 배어 나오는 따사로움의 비결은 무엇일까? 종이의 보드라운 질감을 벗 삼아 선과 획으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에토프(étoffe)의 이나영 작가 작품이 문화복합공간 파티클에서 전시되고 있다. 전시 제목은 그와 그의 개(Lui et son chien). 작가는 약 10년 동안 반려견과 함께 해온 이야기들을 연작으로 그려왔다. 드로잉과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은 선명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풍긴다.
© étoffe

작가와 반려견과의 이야기는 2014년부터 시작됐다. 첫 번째 연작에 등장하는 ‘개’는 가장 어린 시절의 모습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이들이거나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단번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시선이 담겼다. 전시는 따뜻함이 담긴 10년의 시리즈 중 일부를 펼쳐 보인다.

© étoffe

이나영 작가는 오로지 검은색 잉크만을 사용해 선과 획으로 형태를 만든다얇거나 굵은길거나 짧은 선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적인 장면으로 탄생한다단일한 색으로 이미지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방식은 작가가 동양화를 전공하면서 체득한 기술 중 하나다.

© étoffe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작업들은 병풍에 기반을 둔 산수화를 모던하게 해석한 듯 보인다늘어선 나무들 사이를 유유히 산책하는 ‘와 그의 개’ 모습은 나무에 비해 작게 표현돼 있다나무들은 검은 색면으로 구성돼 있어 화면에 깊이감을 부여하고 있다작품은 마치 거대한 자연에 파묻혀 유유자적하는 선비들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듯 보인다이들의 세상은 평화 그 자체다걷기 혹은 풍경을 감상하는데 온전히 몰두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시간까지 정지시킨다.

전시장 전경 사진 | 사진: 후지필름 코리아 제공

작가의 작업은 검은색의 강약 조절을 통해 공간감을 부여하는 작품도 있지만이외의 작업들은 완전한 평면화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거리감을 조성하는 구도를 배제했다이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그의 개의 모습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했다배경에 풍경이 가미된 장면과 풍경을 온전히 지우고 객체를 응시하게 하는 화면을 마주하는 느낌 역시 사뭇 다르다대상이 화면을 많이 차지할수록 작품은 더욱 대담해진다그렇게 풍경이 완전히 지워지고 와 그의 개만 남은 작품은 마치 이들의 내면 공간을 상기시킨다직접적인 동작과 시선만이 떠오르며 크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 étoffe
© étoffe

단순한 선묘만으로 특정 형태를 단번에 유추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테다색을 완전히 지우고 오롯이 검정 잉크만으로 구현한 세계는 꾸밈이 없고 솔직하다잉크의 농도와 붓을 통해 남긴 흔적들까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이는 단색화가 주는 묘미이자 힘이기도 하다각각의 작품들을 자세히 보면 작품들 사이의 10년이라는 시간 간극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같은 주제의 그림일지라도 도구의 변화나 외적인 요소들로 인해 생긴 자연스러운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장 전경 사진 | 사진: 후지필름 코리아 제공

작가의 손에 의해 그려지고찍힌 장면들은 멈춰 있지만 생동한다역동적인 움직임과 다채로운 색감이 주는 시각적 자극과는 다른 몰입감이다화면을 마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시선을 좇게 되고이야기를 보고 또 듣는다그들의 시선 끝에서 우리는 공감하고 또 저마다의 기억과 추억을 상기해 볼 수 있다화면을 가득 메운 서정적인 분위기 사이를 가로지르는 특유의 유머는 와 그의 개를 더욱 특별하고 소중하게 만들어 준다전시는 오는 4월 30일까지(예약 필수).

이나영 작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2010년에 브랜드 에토프를 만들었다다채로운 색과 화려한 효과에 자칫 묻힐 수도 있는 먹색과 붓 선의 묘미를 단조롭지 않게 보여주고 있다. 『행복의 지도』『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모든 요일의 기록』『저녁 7나의 집밥』을 비롯해 다수의 도서 표지 그림을 그렸으며 서울식물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시드니의 놈코어 커피NORMCORE COFFEE도쿄의 수미 베이크 숍SUMI BAKE SHOP 등 여러 나라의 기관 및 브랜드와 드로잉을 기반으로 협업 중이다.

발행 heyPOP 편집부

자료 제공 후지필름 코리아

프로젝트
〈Lui et son chien〉
장소
파티클
주소
서울 강남구 선릉로 838 페코빌딩
일자
2023.03.24 - 2023.04.30
링크
홈페이지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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