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6

골목의 이야기가 흘러드는 곳, 토트

이야기가 모이는 아지트
토크 오브 더 타운(talk of the town), 지난봄 문을 연 바 토트(tott)의 이름은 이 말로부터 탄생했다. 토크 오브 더 타운은 ‘장안의 화제’라는 의미지만, 전대현 오너 바텐더·대표는 다만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 이름을 지었다. 이야기가 자유로이 흘러들도록 이 바는 문턱을 없애는 한편 보통 벽이 있어야 할 위치에 유리로 된 문을 달았다. 덕분에 길을 걷던 이는 가볍게 들어와 앉을 수 있고, 안에 머무는 이는 달라지는 계절과 날씨를 맘껏 누리게 됐다.
따뜻한 낮의 토트. 사진 제공: 토트

토트는 서울 합정역 근처, 대도시의 오래된 번화가에 자리 잡았다. 2011년 오픈한 서점 ‘땡스북스’와 같은 해 문을 연 카페 ‘안녕, 낯선 사람’을 잇는 길, 소란스러워서 오히려 정다운 길에 토트가 있다.

합정

서울 마포구는 전대현 바텐더에게 익숙한 동네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인 데다 바텐더로서 주요한 커리어를 모두 이 근처에서 쌓았기 때문이다. 그는 2007년부터 2020년까지 홍대 앞을 지켰던 바 로빈스 스퀘어의 마지막 매니저였고, 그 후 서대문구 연희동의 코블러 연희에서 헤드 바텐더로 일했다. “바를 열게 된다면 제 시간이 고스란히 묻은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어요.” 바를 열 자리를 알아보면서 무수히 오갔던 길과 골목을 다시 보려 노력했다고. 그러다 당시 디퓨저 상점이었던 현재의 공간을 만났을 때, 바텐더의 머릿속엔 탁 트인 바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 yuyoung kim

바깥이 보이는 바, 바깥에서 보이는 바

토트의 가장 큰 특징은 길과 공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 길과 닿은 면 전체를 유리 폴딩 도어(folding door)로 시공했고 문턱마저 없앴다. 맑고 다사로운 날이면 폴딩 도어를 완전히 접은 채 운영한다. 손님들이 바깥 날씨를 만끽하며 술을 마시는 동안 거리의 소음이 언뜻언뜻 섞여 들기도 한다. “바(bar)라는 공간을 편하게 느끼는 분이 더 많아지길 바랐어요. 바, 하면 뭔가 준비를 하고 가야 할 듯한 부담을 느낄 때도 있지요. 그 부담을 조금이나마 없애 드리고 싶어요. 가뿐하게 들어설 수 있는 곳으로 가꾸고 싶었죠.”

비 내리는 날 토트의 풍경. 영상 제공: 토트

전대현 바텐더는 수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 여러 바를 찾아갔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카페 겸 바에 앉아 시간을 보내던 그는 문득, 사람들이 두오모 성당을 바라보며 먹고 마시는 모습이 참 좋았다. “탁 트인 공간 구조가 이 나라의 바와 카페 문화를 일상적으로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문의 위치, 야외와 실내의 연결, 통로 등을 유심히 봤죠. 열린 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어요.”

사진 오른쪽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바텐더가 바로 맞을 수 있도록 바 위치를 조정했다. 문-통로-바가 직선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전대현 바텐더가 이탈리아에서 경험한 바에서 영향을 받았다. ⓒ yuyoung kim

글자

로고에서도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라는 상호의 의미가 드러나기를 바랐다. 김현진 디자이너가 이를 정확히 구현했다. 디자이너가 토트와 소통하며 완성한 로고에서는 운율이 느껴진다.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힘이 있으면서도 매끈한 획과 철자를 오르락내리락하게 배치한 점이 큰 역할을 했다. “클래식과 편안함 사이 균형을 잡은 글씨체이길 바랐는데 디자이너님께서 정말 멋지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로고가 근사하니 간판이나 코스터(컵 받침) 등 로고가 들어가는 모든 요소가 덩달아 멋스러워졌어요.”

김현진 디자이너에게 의뢰한 로고타입. 메인(좌), 다양한 베리에이션(우) 이미지 출처: 토트 인스타그램 @tottseoul

간판은 주물로 제작했다. 로고를 돋보이게 하는 소재이면서 실내 컬러와도 잘 어우러졌기 때문. “간판은 을지로에서 오랜 세월 일하신 선생님께서 만들어 주셨어요. 가게를 준비하는 동안 을지로에 수없이 오갔습니다.”

을지로의 장인에게 의뢰해 제작한 주물 간판. 간판을 비추는 조명과 어울린다. ⓒ yuyoung kim

나무와 페인트

넓지 않은 실내는 대문자 L 모양의 바 테이블 하나로 채워졌다. 테이블 석을 따로 두지 않고 오로지 바만으로 구성한 것. “아담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손님이 바텐더의 서비스나 호스피탤리티를 편하게 누릴 수 있는 구조를 궁리했습니다. 이 형태가 가장 알맞겠다고 판단했어요.” 전반적으로 목재를 사용하되 벽의 상단은 페인트로 마감했다. “바 탑(bar top)과 바닥, 벽 하단은 모두 목재 느낌을 살렸어요. 나무가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이 좋아요. 다만 공간에 질감을 더하고 싶어서 벽 상단엔 특수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전문가들이 다섯 번이나 칠해 완성했어요. 동(銅)이라는 금속의 차가운 성질은 없이 그 색감과 분위기를 가진 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바 탑 소재는 멀바우를 선택했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바 로빈스 스퀘어의 바 탑과 같은 재질. 바텐더는 그 느낌을 좋아했다. ⓒ yuyoung kim
페인트로 칠한 벽 상단. 실제로 보면 그 질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 yuyoung kim

자원과 시간이 한정적이었으므로 많은 일을 스스로, 아껴가며 해야 했다고. 그렇지만 페인트만은 꼭 바라던 것으로 선택했다. 눈여겨봤던 이탈리아 브랜드의 페인트였는데, 작업을 위해 공간을 찾은 브랜드 소속 전문가가 모두 미술 전공자였다. 그들이 작품을 빚듯 섬세하게 칠한 벽면은 이 바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목재의 직선과 페인트의 비정형이 어우러진 인테리어는 ‘정석을 중심에 두되 자유로운 공간’에 대한 지향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벽 상단 페인트의 비정형성, 하단 직선 목재의 반듯함이 어우러진다. ⓒ yuyoung kim

대문자 L

토트의 바가 대문자 L 형태라고 했을 때, 기다란 I 형태에 좌석 열 개가 있다. 바텐더의 퍼포먼스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고, 거리 풍경과 날씨를 고스란히 즐길 수 있는 좌석이다. 가로 ㅡ 형태에는 좌석 세 개가 있다. 거리와 등진 이 자리는 보다 고요한 시간을 보내기에 알맞다. 이 자리에 앉아 구석에 놓인 책이나 잡지를 읽는 이들도 많다고. 바와 술 관련 책부터 소설이나 잡지 등 바텐더가 수시로 들춰보는 책이 몇 권 놓여 있는데, 손님 누구나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어디 앉느냐에 따라 시야가 달라져요. 손님마다 선호하는 좌석이 있다는 점도 재미있죠?” 한편 의자로는 하이체어(highchair)를 갖춰 손님과 바텐더가 애쓰지 않고도 시선을 주고받도록 했다.

대문자 L 모양의 바 ⓒ yuyoung kim
거리를 등진 세 개의 좌석. 이쪽 자리에 앉으면 바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 yuyoung kim
구석에 놓인 읽을 거리들 ⓒ yuyoung kim

빛과 소리

토트의 조명 갓은 동(銅)의 색을 품은 벽면 페인트와 비슷한 느낌으로 골랐다. 조도는 매우 섬세하게 조정하고 있는데, 벽면 한쪽을 유리 폴딩 도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폴딩 도어를 열었을 때와 닫았을 때 조도를 달리 조정해야 해요. 한 면 전체가 유리이기 때문에 이웃 가게와 가로등은 물론이고 계절과 날씨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가게 입구와 깊숙한 곳 조명을 각각 조정할 수 있도록 했어요. 달라지는 외부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컨트롤합니다.”

모든 조명 갓의 재질은 같지만, 형태는 조금씩 다르게 변주를 주었다. ⓒ yuyoung kim

기다란 사각형 형태의 공간을 좋은 음향으로 채우기 위해 사운드 컨트롤러에게 자문을 구했다. 스피커를 백 바(backbar) 위에 설치해 소리가 천장을 지나 뒷벽을 치고 손님에게 들리는 구조다.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풍성한 사운드를 들려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음악은 다양하게 틀어요. 쿠바 재즈나 보사노바, 디스코, 알앤비, 로큰롤, 한국의 옛 가요까지 두루두루. 다만 한 곡이 끝난 후 다음 곡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플레이리스트를 테스트하고 매만집니다.”

사진 오른쪽 상단 공간에 음향기기가 숨어 있다. ⓒ yuyoung kim

백바의 제일 아래 칸은 높이도 모양도 다른 잔들로 채워졌다. “잔은 음료의 맛을 느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잔에 따라 향과 맛이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지요. 웬만하면 가장자리 림(rim)이 얇은 잔을 사용합니다. 일본의 소키치(Sokichi) 제품이 많아요. 깨질 위험을 줄이고 편안하게 즐기시도록 좀 더 단단한 쇼트즈위젤(Schott Zwiesel) 제품도 골고루 준비해 두었어요. 경도가 높은 데 비해 곡면이 유려해서 술의 풍미를 가리지 않습니다.”

ⓒ yuyoung kim

Ι 각별한 잔

1. 손님이 선물한 바카라(Baccarat) 글라스

ⓒ yuyoung kim

전대현 바텐더를 오래도록 찾아 준 손님이 선물한 잔. 한 쌍으로 구성된 제품이다. 바텐더가 바 로빈스 스퀘어의 매니저로 일할 때 한 쌍 중 하나를 선물한 손님은 “당신이 바를 열게 되면, 그때 나머지 하나를 선물하겠다”라고 말했다. 토트를 연 뒤 찾아온 손님은 나머지 하나를 정말로 선물해 주었고, 토트는 바카라 글라스 한 쌍을 온전히 보유하게 됐다. ‘손님과 함께 만든 공간’이라는 의미를 떠오르게 해서 더 각별한 잔이라고.

2. 아르데코 양식의 문양이 각인된 잔

ⓒ yuyoung kim

일본 소키치 사의 핸드메이드 잔.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문양에 바텐더는 마음을 빼앗겼다. 펀치(punch)나 롱드링크 타입의 칵테일을 담아 내놓는다. 얼마 전 선보인 시즌 한정 오리지널 칵테일 ‘올레아’를 이 잔에 서브한다.

백바 위로 상패가 하나 붙어 있었다. 전대현 바텐더는 아이리시 위스키 브랜드 제임슨(Jameson)이 주최하는 바텐더 대회 ‘제임슨 배럴맨 홈커밍 2019’ 한국 우승자다. 그는 스승에게 칵테일 하나를 두고서도 다각도로 살피고 연구하는 법을 배우고 익혀 왔다. 이를테면 럼, 라임, 설탕으로 만드는 칵테일 다이키리 한 잔으로도 멀리까지 나아갔다. 설탕의 기원, 사탕수수의 시작, 시트러스의 기원과 파생종간 차이, 럼이 탄생한 배경과 세계로 퍼진 역사까지 공부했다. 물과 얼음에 관해 이해하는 것도 물론 필요했다.

상패 ⓒ yuyoung kim

다방면에서 생각하고 접근하는 방식은 전대현 바텐더 바텐딩의 뿌리가 됐다. “맛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스승과 선배가 늘 강조하셨지요. 기주의 향이나 맛이 자연스레 배어나면서도 특정한 맛 하나로 치우치지 않는, 중심 잡힌 한 잔을 내어드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클래식한 칵테일을 탄탄히 준비하되, 제철 재료를 사용하거나 계절에 어울리는 맛을 떠올리며 개발한 시즌 한정 칵테일을 꾸준히 선보인다.

Ι 토트의 칵테일

1. 애피타이트(Appetite)

ⓒ yuyoung kim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처럼 상큼하고 개운한 한 잔. 너무 달지도 시지도 않고 산뜻하다. 무거운 요리를 먹은 후나 기분을 리프레시하고 싶을 때 알맞은 칵테일이다.

재료 셀러리를 재운 진, 브로콜리 주스, 라임 주스, 레몬그라스

2. 올레아(Olea)

ⓒ yuyoung kim

올리브의 학명 ‘올레아 유로피아(Olea Europaea)’에서 이름을 따온 칵테일. 바에서 자주 사용하는 재료 올리브를 색다르게 풀어냈다. 으깬 올리브와 올리브 주스가 여러 술을 만나 콤부차나 발효차 같은 풍미를 낸다. 새싹이 떠오르는 화사한 감칠맛이 기분 좋은 한 잔.

재료 조니워커 블랙, 드라이 베르무트, 마라스키노, 레몬주스, 홍차 시럽, 올리브, 스파클링 와인, 앙고스투라 비터
 
손님이 선물한 화병. 디자이너 도시유키 기타가 디자인한 것이라고. 사진 제공: 토트

“손님과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토트는 탄생하지 못했을 거예요.” 전대현 바텐더가 말했다. 음향을 손질해 준 사운드 컨트롤러, 멋진 이탈리안 페인트 이야기를 들려준 이, 조도를 섬세히 봐준 영화 연출자 등이 모두 바텐더의 바텐딩을 아끼던 사람들이다. 사람은 그에게 중요하다. 신기하게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열심히 대하다 보니 더 많은 사람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바가 되었다. “8년을 뵌 손님이 계세요. 오랫동안 술을 진심으로 즐기신 분이었죠. 그분이 지난해부터 1년간 금주에 도전하셨는데, 그걸 계기로 논알코올 메뉴를 더 다양하게 개발하고 선보이게 됐어요. 알코올을 즐기지 않는 분도 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왼쪽부터 정예림 바텐더, 김윤종 바텐더, 전대현 오너 바텐더. 전대현 바텐더의 말에 따르면, 기분 좋은 에너지를 품은 정예림 바텐더와 차분한 김윤종 바텐더의 서비스 스타일은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루며 토트의 개성을 만든다. ⓒ yuyoung kim

“단지 술이 좋아서 바텐더라는 직업에 뛰어든 건 아니었어요. 사회초년생 때는 모든 게 어설프고 어려웠습니다. 일을 마치고 뭔가에 홀린 듯이 ‘bar’라는 글자가 쓰인 간판을 보고 들어갔는데, 그때 만난 바텐더분의 말 한마디와 그가 내어준 한 잔에 큰 위로를 받았거든요.” 그가 바텐더라는 직업과 바라는 공간에 저도 모르게 눈을 뜬 순간이었다. “결국 저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같아요. 누군가 와서 쉬다 갈 수 있는 곳, 더 욕심을 낸다면… 들어올 때보단 마음이 좀 더 가벼워진 채로 나설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요.”

벽에 걸린 인물화는 화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단골의 작품이다. ⓒ yuyoung kim

글·사진 김유영 기자

장소
토트
주소
서울 마포구 양화로6길 57-21 1층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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