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4

다시 세우는, 기준

모티프는 서울의 80~90년대.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2016년 트위터와 온라인을 휩쓸고 TV광고에도 등장했던 이 말. 1994년 MBC 뉴스데스크 속 짧은 인터뷰인데 이 영상이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이의 당찬 태도 때문은 아닐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개인의 개성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던 90년대의 청춘. 일명 X세대는 86아시안 게임, 88올림픽 등 국제 대회를 거치며 물질적 부흥 속에서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패션으로 표출했다. 튀지 않는 것이 미덕이요, 개성은 감추는 것이 정답일지어다. "불순하다", "흉하다"라는 말로 고개를 내저은 기성세대와 경직된 사회상에 대한 반발이자, 청년 세대의 자아실현 수단은 패션이었다.

기준KIJUN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여성복 브랜드이다. 특히 80~90년대 서울의 분위기, 청년들의 주체적인 태도를 존중하고 그 시대의 인물을 뮤즈로 삼는다. "당시의 여성상을 떠올리면, 솔직하고 대담한 느낌이거든요. 그 모습이 멋스럽게 느껴집니다." 2018년 브랜드를 런칭한 김현우 디자이너의 이야기다.

특유의 간결함으로 각인되는 브랜드명 '기준'이 내포한 의미도 그러하다. 틀에 갇힌 기존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준을 세우자. 기준은 고루하고 강압적인 '미'의 기준을 더는 따르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매 시즌 솔직하고 당당했던 그 시대의 인물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영화와 접목해 컬렉션을 전개한다.

김현우 디자이너는 사디(SADI ,Samsung art and design institute) 졸업패션쇼를 위한 컬렉션으로 '대한민국 패션대전' 대통령상을 받고 연달아 프랑스 '이에르 페스티벌' 최종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됐다. 아울러 스튜디오 콘크리트 Studio Concrete에서 크루로 활동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코스메틱 브랜드 논픽션 NONFICTION과 협업으로 기준의 시그니처 아이템 '미니백'의 인기를 입증했다. 런칭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패션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활약 중인 브랜드 '기준'. 풍부한 콘텐츠로 차별화된 스토리를 풀어내는 기준은 지금, 서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브랜드임이 분명하다.
KIJUN 20SS

’80~90년대 서울의 분위기를 좋아한다’는 브랜드 소개를 봤어요. 구체적인 연도를 선호하는 점이 독특한데요.

제가 자랐던 시대이기도 하고 당시의 여성상을 떠올리면 솔직하고 대담한 느낌이거든요. 그 모습이 멋스럽게 느껴졌어요. 80년대 촌스러운 컬러 조합과 특유의 분위기, 90년대 세기말 퓨처리즘이나 미니멀리즘 등 다양한 것들이 혼재되어 제 취향이 완성된 것 같아요.

특히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청계천, 대한극장, 피카디리 극장, 오락실과 같은 것들이 떠올라서 설레곤 합니다. 세기말 혼란 속에서도 그 공간만큼은 정돈된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컨셉 구상을 할 때도 자연스럽게 80~90년대 시대상을 먼저 연결하게 돼요. 저희 컬렉션에서 레트로한 무드가 묻어나는 이유라고 볼 수 있죠.

 

‘기준KIJUN’이란 브랜드명의 탄생 배경은요?

런칭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한 것이 브랜드명이었어요. 간결하면서도 동양적인 분위기가 묻어나는 이름을 원했거든요. 공동 대표인 명준과 함께 아이디어를 짜다가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권철화 형에게 작명을 부탁했어요. ‘기준’은 단어 의미 그대로 ‘기본이 되는 표준’을 뜻하면서도 관습적인 요소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준을 세우자는 의지를 담고 있어요. 간혹 디자이너의 이름이 기준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 데 아니랍니다.

브랜드를 운영하며 가장 인상적인 일화가 있다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저희 옷을 입은 켄달 제너Kendall Jenner의 모습을 SNS에서 봤을 때에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림이었거든요. 제가 만든 옷을 누군가 구매해서 착용한 것을 보는 것도 처음인데, 심지어 유명한 스타여서 더 놀라웠습니다.

 

디자이너 김현우가 ‘옷’에 매력을 느낀 계기는?

2005년 해외 리얼리티 쇼 <프로젝트 런웨이>라는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어요. 출연한 디자이너들이 미션을 받고 하루 이틀 만에 옷을 뚝딱 만들어내서 패션쇼를 진행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동경하게 되면서 저만의 패션 판타지를 키우게 됐죠. 이후 해외 컬렉션북을 모으고 국내외 쇼를 찾아보면서 마치 평론가가 된 기분으로 컬렉션을 리뷰하는 것이 청소년기의 주된 일과였어요.

영감의 가장 큰 원천을 꼽자면.

가장 큰 영감은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살아보지 못했던 시대나 공간을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매체이기 때문이죠. 간혹 정말 인상적인 영화를 찾았을 때는 어떻게 컬렉션에 재해석해서 풀어낼지 들뜨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일상적인 요소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는데요. 우연히 봤던 유니폼이 눈에 아른거려서 관련 영화나 서적, 레퍼런스를 찾으면서 힌트를 얻은 적도 있어요.

KIJUN 21 RESORT

배색이나 실루엣을 구성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복고풍 색상 조합을 선호해요. 촌스러운 무드를 살짝 가미하되 과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색상 조합은 피하는 편이에요. 아울러 적당한 볼륨감이 있는 볼드한 실루엣을 좋아합니다. 80~90년대의 레트로한 느낌이 물씬 나거든요.

 

기준의 패턴은 과감하고 독특한 면이 있어요.

저희는 인하우스에서 직접 오리지널 프린트를 개발합니다. 시즌 컨셉이 나오면 그에 맞는 키워드나 스토리를 설정하고 이를 토대로 다양한 드로잉과 패턴을 조합하는 식이죠. 제작된 프린트를 옷의 실루엣, 색상과 어울리도록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옷을 완성합니다.

옷장을 열면 디자이너의 옷도 컬러풀한 편인지? 선호하는 옷차림이 있다면.

컬러풀한 옷이 많은 편이에요. 블루나 옐로우 같은 원색을 선호해서 항상 옷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 같아요. 특정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귀여운 구석이 있는 옷들과 믹스매치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프린팅 티셔츠라던지, 품이 넉넉하고 둥근 핏의 옷을 즐겨 입어요.

KIJUN mini bag

그간 패션쇼 런웨이가 아닌 이태원 클럽, 카페와 같은 장소에서 컬렉션을 공개했던 이유는?

* 기준의 첫 컬렉션(2018 F/W)은 클럽에서 프레젠테이션했다.

컬렉션 스토리에 어울리는 공간을 구성하기 위해서였어요. 그 장소에서 옷을 보여주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공간에서 패션쇼를 진행해보고 싶어요.

 

기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우선 브랜드 컨셉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 서울 80~90년대 무드를 기반으로 그 시대의 솔직하고 대담한 여성상을 반영한 컬렉션을 전개하고자 해요. 뮤즈로 삼은 당대 여성들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것을 컨셉으로 잡고 있고요. 그래서 어떠한 방향으로 컬렉션을 구상해도 그 시대 여성들의 특징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더불어 지속 가능함. 패션 브랜드로서 윤리적인 부분은 필수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저희는 생산이 지연되더라도 너무 많은 재고를 만들어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데드스탁을 활용한 새 제품을 만든다거나, 패키지 면에서도 생분해 비닐과 같은 친환경적인 소재로 교체했어요. 아직 시작 단계라 미숙하지만, 앞으로 재생 플라스틱 섬유를 사용한 의상도 제작해보고자 합니다.

 

 

김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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