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좋은 트렌드 소식을 엄선하여 받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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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4

창경궁 옆 아라리오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관 재개관, <낭만적 아이러니> 전
삼청동에 있던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관이 이전해 2023년 2월 1일 새롭게 문을 열었다. 장소는 원서동의 옛 공간 사옥 부지이자 현 아라리오 뮤지엄 바로 옆이다. 먼저, 옛 공간 사옥이 어떻게 아라리오 뮤지엄이 되었는지 알아보자.
권오상 작품 설치 컷,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023

아라리오 그룹 김창일 회장(아티스트 씨킴)이 150억 원에 유찰된 구 공간 사옥을 150억 원에 매입, 건축물의 원형을 살려 아라리오 뮤지엄으로 만든 게 2017년이다. 미술관과 외식 공간(공간 사옥 신관)이 있던 자리에 아라리오 갤러리까지 합세하면서 풍경이 더욱 다채로워졌다. 그야말로 ‘창경궁 옆 아트 밸리’가 완성된 느낌이 든다.

아라리오갤러리 외관

건축물 설계는 일본 스키마타 건축(Schemata Architects)의 대표인 조 나가사카(Jo Nagasaka)가 진행했다. 1974년생 조 나가사카는 안도 다다오, 쿠마 켄고에 이어 일본 건축의 계보를 잇는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블루보틀 교토를 비롯해 일본과 한국 내 거의 모든 블루보틀 매장을 설계했다. 2017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글로벌 세미나에 참석하며 한국을 방문한 그는 자신의 건축 행위를 일컬어 ‘뺄셈의 건축’과 ‘덧셈의 건축’을 오간다고 설명한 바 있다.

 

스키마타 건축은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까지 기존 건물을 개조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존 건물의 구조와 외벽의 벽돌 외관을 유지하여 바로 옆에 위치한 김수근 건축가의 옛 공간 사옥과 잘 어우러진다. 매끈한 마감재를 사용하지 않아 얼핏 미완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는 디테일 장인이기도 하다. 합판이나 레진 같은 값싼 재료를 마감재로 사용하지만,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어 세련미가 느껴진다. 회색 벽돌 외관과 밝은 화이트큐브의 내부가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것 또한 매력적이다.

안지산 작품 설치 컷

아라리오갤러리의 2023년 첫 전시는 <낭만적 아이러니(Romantic Irony)>로 아라리오 갤러리와 함께 성장해온 작가 5인이 함께 한다. 권오상, 이동욱, 김인배, 안지산, 노상호가 주인공으로 5인이 각각 한 층씩 맡아 전시 공간을 꾸몄다.

창경궁과 원서 공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갤러리

권오상, 네 조각으로 구성된 비스듬히 기댄 형태 Four-Piece Composition Reclining Figure, 2022-2023, Archival pigment print, mixed media180x90x110(h) cm
권오상, 비스듬히 기댄 형태-행성들 Reclining Figure-Planets, 2022-2023, Archival pigment print, mixed media, 177 x 51 x 79(h) cm

‘낭만적 아이러니’는 18세기 독일의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프리드리히 슐레겔(F. Schlegel)이 정립한 이론에서 따온 주제다. 아라리오 큐레이터는 말한다. “양극에 위치한 사유를 오가면서 변화하는 과정 그 자체를 긍정하고 주목하는 사유의 한 방법론이다. 대부분의 미술가들은 이런 식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정답과 결과가 없는 무한한 사유의 시간을 지나 결국 작품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5인의 작품 속에서 낭만적인 아이러니라는 태도를 포착해 보려 한다.”

 

갤러리 5층에 서니, 시원하게 펼쳐진 통창 뒤로 창경궁과 원서 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5층에서는 권오상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는 과거에 구상 조각을 만들었지만, 근래 들어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헨리 무어(Henry Moore) 조각을 오마주한 7점의 조각은 추상적 형태와 유기적인 구성에 기반한 인체 조각이다. 특히 헨리 무어의 시그니처인 ‘기대 누운 형상(Reclining Figure)’을 연상시키는 조각 위에 그가 채집한 이미지를 더해 유희적인 콜라주를 완성했다.

이동욱 작품 설치 컷
이동욱, 절벽 Cliff, 2023, mixed media, 22 x 17 x 48(h) cm
이동욱, 미끄럼틀 Slide, 2023, mixed media, 가변설치

이동욱 작가는 5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이동욱의 조각은 15센티 내외의 작은, 그리고 벌거벗은 인물상이다. 사람들은 가까이 들여다보고 놀라고 웃음을 터트린다. 작은 조각이지만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고 인물이 놓인 상황이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그는 스컬피(sculpey)라는 점토 재질의 소재로 분홍색에 가까운 인간 모형의 전신 혹은 신체 일부를 만든다. 여기에 그는 건축 자재 허니콤 패널을 즐겨 사용한다. 꿀이 흐르는 벌집을 연상시키는 패널에 갇힌 인물상은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매달려 있거나 간신히 제 몸을 지탱하고 있다. 전시장 중앙에는 미끄럼틀을 연상시키는 거친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차갑고 반짝이는 알루미늄 조각과 분홍색 조각이 묘하게 공존한다.

(시계 방향으로) 김인배 작품 설치 컷 / 김인배, 변신 Metamorphosis, 2023, Resin, fiberglass, PLA filament, aluminum, stainless steel, 148 x 165 x 258(h) cm / 김인배, 안개 Fog, 2023, Birch plywood, stainless steel, rubber, 40 x 30 x 560(h) cm

갤러리 1층에 위치한 김인배 작가의 공간은 전시장 한 벽에 작가가 꽤 작게 적어 둔 ‘3개의 안개’라는 제시어와 함께 시작한다. 3개의 안개지만, 전시에 나온 작품 수는 총 4개다. 셀 수 없는 명사 ‘안개’에 지정된 3이라는 숫자, 눈앞에 있지만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 안개라는 존재까지,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알 듯 모를 듯한 느낌이다.

 

작가에 따르면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은 공통적으로 ‘접촉’을 말한다고 했다.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접촉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합판으로 만든 얇은 파주 지도가 켜켜이 쌓여 5.6미터에 이르는 작품 “안개”, 하나의 평면을 중심으로 앞면과 뒷면, 바깥과 안이 마주하는 구조를 만들어낸 작품 “거울”, 각각 정형과 비정형적으로 만들어진 2개의 프로펠러가 등장하는 작품 “변신”, 그리고 분필의 재료로 칠판을, 칠판의 재료로 분필을 만든 작품 “칠판과 분필”. 감상자의 인지 체계를 교란시키는 데 능한 김인배는 이번 전시에서도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안지산, 고라니 사냥 3, 2023, Oil on canvas, 194 x 130 cm

안지산 작가는 그가 최근까지 집중해온 비 폭풍 속 돌산의 풍경에서 조금 더 나아가 눈 폭풍이라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의 사냥과 채집을 다룬다. 인간의 불안을 시각화하는 그가 그려낸 눈 폭풍 속 풍경은 적막감이 감돌고 또 극적이다. 사냥과 채집은 자연 속에서 행해지는 가장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순환인 동시에 최고의 긴장과 공포가 축약된 순간이다.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그림에서 읽히는 풍경처럼 내 눈앞에 존재하는 풍경 묘사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그 너머의 불안과 불길함, 경외감을 표출하고 있기도 하다.

노상호 작품 설치 컷

노상호 작가의 신작도 흥미롭다. 그는 이번에 디지털과 현실 세계에서 생산하는 이미지에 관해 화두를 던지는 신작 시리즈 “Holy”를 소개한다. 전작과 달리 작가는 현실과 디지털 세계에서의 가상 이미지들 간 혼종 교배와 그로 인한 결과물을 노출시켰다. 예를 들어 그는 현시점에서 가장 진일보한 디지털 이미지 기술인 AI 기술을 가장 고전적인 방식의 회화에 접목시켰다. 작가는 우선 3D 이미지 중 무료로 사용 가능한 이미지로 화면을 구성한 후, AI 생성 이미지 도구를 통해 특정 이미지를 탄생시킨다. 이렇게 생성된 가상 이미지를 작가가 회화 형태로 표현하는 것인데, 이번엔 또 에어브러시를 주도적으로 사용했다. 한없이 얇고 평평하게 표현되는 에어브러시를 사용하면서 특수 안료 혹은 석고 등으로 두께감을 더해 극도로 아날로그적인 캔버스와 디지털 이미지의 특수성을 한자리에 뒤섞이게 했다.

 

아라리오갤러리 대표 김창일 회장은 작가를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작가의 영혼이 담겨 있는가. 이름 모를 작가라도 작가의 열정과 에너지, 철학이 고스란히 느껴지면 컬렉션합니다. 이동욱의 조각을 처음 본게 2004년 브레인팩토리 전시였어요. 당시 감동해서 모든 작품을 컬렉션하겠다고 이야기했었죠.” 아라리오갤러리 대표 작가 5인의 전시를 놓치지 말 것.

김만나 편집장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프로젝트
<낭만적 아이러니>
장소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율곡로 85
일자
2023.02.01 - 2023.03.18
참여작가
권오상, 이동욱, 김인배, 안지산, 노상호
김만나
15년간 피처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네이버 디자인판 편집장으로 온라인 미디어를 경험하고 있다. 유머 감각 있고 일하는 80세 할머니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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