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6

자연이 기술을 만나 예술로 태어난다면

전시 〈DRIFT: In Sync with the Earth〉
천장에서 내려오는 작품은 꽃봉오리처럼 활짝 펴졌다가 다시 오므라들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유리관은 커다란 새의 날갯짓처럼 공간을 가로지른다. 네덜란드 아티스트 듀오 ‘DRIFT(드리프트)’는 자연에서 발견한 규칙을 공학적으로 재해석하여 자연과 기계가 조화를 이루는 예술작품을 만든다.

로네케 홀다인(Lonneke Gordijn)과 랄프 나우타(Ralph Nauta)로 구성된 네덜란드 아티스트 듀오 드리프트(DRIFT)는 자연에서 얻은 모티프를 공학적 설계로 재해석한 예술작품을 선보인다. 드리프트는 자연의 형태만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게 들어가 자연미와 인공미 사이의 유사성에 집중한다.

 

2007년부터 조각, 설치, 퍼포먼스, 뉴미디어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선보였던 드리프트는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전시는 물론, 작품이 소장되며 그들의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에도 소개된 적이 있었지만, 단독 전시는 열린 적은 없었다.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리는 〈DRIFT : In Sync with the Earth〉는 아시아 최초로 개최하는 드리프트의 단독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드리프트의 대표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제일 먼저 마주하는 작품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사물을 물질의 개념으로 치환하여 새로운 의미로 전달하는 〈Meterialism〉이다. 이 시리즈는 공산품을 원재료의 상태로 되돌리는 작업으로, 드리프트는 스마트폰, 바비인형, 게임기, 손목시계 등을 해체하고 그를 구성한 물질을 블록 형태로 만든다. 액자 위에 붙은 작은 블록들을 보며 관람객은 매일 마주한 사물들이 사실은 아주 소량의 물질로 이뤄졌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물의 해체와 재탄생 과정은 인간의 신체로 연결된다. 〈The Artist she/her and The Artist he/him〉은 두 작가가 인간을 대표해 스스로를 물질적 관점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이들은 인간의 일생을 0세, 4세, 40세, 80세, 죽음으로 나누고 각 연령의 몸무게에 맞춰 신체를 구성하는 8가지 요소 – 물, 전해질,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핵산, 비타민, 헤모글로빈을 블록 형태로 치환했다. 마지막 죽음을 뜻하는 물질 블록에서는 삶에 관한 철학적 시선도 느껴진다.

한편, 드리프트는 한국 전시를 기념한 신작도 선보인다. 작가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오브제를 조사하고 하나를 선택했다. 그 오브제는 바로 우리가 자주 먹는 음식인 ‘라면’이다. 라면 면발과 스프가 압축되어 뭉쳐진 블록으로 표현된 모습은 이질적이면서도 신기하게 다가온다.

전시장 상층과 하층이 연결되는 공간에는 드리프트의 대표작품 〈Shylight〉가 전시되어 있다. 자연법칙을 공학적 설계를 통해 재현하는 드리프트의 작품세계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Shylight〉는 밤낮의 길이와 온·습도에 반응하여 스스로 잎과 봉우리를 움직이는 꽃의 수면운동에서 영감받아 그를 기계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것이다. 필립 글라스의 연주곡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하며 봉우리가 펴지는 모습은 현대 무용가의 우아한 몸짓을 떠오르게 한다.

자연의 움직임을 기계로 표현한 또 다른 작품 〈Amplitude〉는 20쌍의 유리관이 새가 날갯짓하듯 움직인다. 정교하게 설계된 프로그램은 유리관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움직임에 시차를 두어 정면에서 바라보면 파도가 치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드리프트의 작업은 고도의 정교함이 요구되는 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Fragile Future〉는 이들 작업에 노동집약적인 과정도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 작품은 암스테르담 전역에서 채취한 약 15,000여 송이의 민들레꽃을 건조한 후, 핀셋으로 씨앗 하나, 하나를 떼어 LED 전구에 붙여서 완성한 것이다. 덕분에 〈Fragile Future〉는 자연물이자 인공물인 존재가 되었다. 각 민들레 전구는 모듈 가구처럼 붙였다 떼어낼 수 있어 전시 공간에 맞춰 무한하게 확장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드리프트는 자연의 자가 증식 시스템을 시각적으로 재현한다.

 

기술과 자연이라는 반대의 속성을 가진 두 개념을 결합하면서 동시에 미학적인 아름다움도 잊지 않은 드리프트의 작품을 보면 작업 과정이 궁금해진다. 전시는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드리프트가 그동안 작업하며 기록하고 수집했던 자료들을 보여준다. 자연의 구조와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드리프트의 노력을 자세하게 볼 수 있다. 특히 작가가 생각해낸 메커니즘을 기술적으로 아름답게 구현하기 위해서 과학자, 공학자,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한다는 사실은 현대예술계에서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 많은 이의 도움이 필수라는 점을 알려준다.

드리프트는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자연환경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환경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느끼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그렇기에 드리프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몰랐던 자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는 작지만 꾸준히 움직이며 큰 결과를 이뤄내는 자연이 함께 하고 있다.

허영은 객원 필자

자료 제공 현대카드

프로젝트
〈DRIFT: In Sync with the Earth〉
장소
현대카드 스토리지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48
일자
2022.12.08 - 2023.04.16
허영은
다양성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내서 보고, 듣고,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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