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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2023-01-12

은박지에 새긴 사랑, 화공 이중섭의 삶과 예술

전시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기간 2022.08.12 - 2023.04.23
장소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

한국 미술은 시장의 성장과 함께 역대급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나날이 높아지는 미술의 인기 속 불현듯 떠오르는 질문 하나. ‘과연 우리는 한국 미술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헤이팝은 지난 세기 한국 미술에 굵직한 궤적을 남긴 채 별이 된 이들을 돌이켜 본다. 유영국, 김환기, 백남준, 권진규, 문신 등 오늘날 한국 미술 인기에 바탕이 된 20세기 근현대미술가들의 행보를 소개하며 이들이 남긴 미술의 가치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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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리와 남덕의 사랑

부인에게 보낸 편지, 1954, 종이에 잉크, 색연필, 26.5×2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당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 이 아고리는

머리가 점점 맑아지고 눈은 더욱더 밝아져서,

너무도 자신감이 넘치고 또 흘러 넘쳐

번득이는 머리와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리고 또 그리고 표현하고 또 표현하고 있어요.

 

끝없이 훌륭하고…

끝없이 다정하고…

나만의 아름다고 상냥한 천사여…

더욱더 힘을 내서 더욱더 건강하게 지내줘요.

 

화공 이중섭은 반드시 가장 사랑하는 현처 남덕 씨를

행복한 천사로 하여 드높고 아름다고 끝없이 넓게

이 세상에 돋을새김해 보이겠어요.

 

자신만만 자신만만.

 

나는 우리 가족과 선량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진실로 새로운 표현을, 위대한 표현을 계속할 것이라오.

내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만세.

-이중섭이 부인 이남덕에게 보낸 편지 내용

 

국민 화가 이중섭(1916-1956)에게는 ‘아고리’라는 별명이 있다. 도쿄 문화학원 유학 시절, 그의 지도 교수와 반 친구들이 턱(あご, *일본어로 아고 라고 부른다.)이 긴 이중섭을 두고 그의 성 씨 이()를 붙여서 아고리라고 불렀다. 오늘날까지도 이중섭의 옛 동료들은 그의 이름 대신 아고리라는 별명이 더 익숙하다고 한다. 아고리는 같은 학교 후배이자 훗날 그의 부인이 된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며 별명이 아니라 애칭으로 불렸다.

이중섭과 이남덕의 결혼식

1945년 5월, 이중섭과 야마모토 마사코는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중섭은 자신을 위해 일본에서 건너 온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남쪽에서 온 덕이 있는 여인’이라는 뜻의 한국 이름 ‘이남덕(李南德)’을 지어줬다. 그렇게 이남덕은 이중섭의 뮤즈가 되었다. 40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간 화가 이중섭에게 그녀는 영감의 원천이었고,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이라는 시대의 파고 속에서도 붓을 꺾지 않는 유일한 이유였다.

사랑의 메신저, 엽서화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 1940, 종이에 먹지그림, 채색, 9×14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남덕을 향한 아고리의 사랑은 연애 시절부터 특별했다. 이중섭은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자신의 마음을 엽서에 그려 표현했다. 그는 일제가 발행한 관제 엽서에 그림을 그려 보냈다. 9x14cm 규격의 엽서 앞면에는 그림을 그렸고, 뒷면에는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남겼다. 마사코에게 보낸 그의 엽서화는 1940년부터 1943년까지 오고 간 기록이 남아있다. 한국 전쟁 중에 제작한 그의 다른 작품이 불분명한 시기와 출처로 오늘날 위작 시비에 휘말리곤 하는 걸 고려하면, 이중섭의 러브레터 ‘엽서화’는 작가의 초기 화풍을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어 미술사적 가치가 남다르다.

 

그가 남긴 엽서화는 총 88여 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제작된 엽서화는 1940년 12월 25일에 마사코에게 보낸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1940). 방학 중 원산에서 지내며 보낸 것으로 먹지 위에 선을 베껴 낸 뒤 채색하여 완성했다. 사람과 동식물이 한데 섞여 즐겁게 노니는 풍경은 서정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이다. 이는 이중섭의 초기 화풍이 일본 유학 시절 접한 서양 미술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중섭은 엽서화를 통해 사랑하는 연인에게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를 한껏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여인, 1942, 종이에 연필, 41.2×25.6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 세 사람, 1942-1945, 종이에 연필, 18.3×27.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한편, 서양 미술의 영향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초기 작품이 있다. 바로 1942년 연필로 그린 ‘여인'(1942)이다. 이중섭은 자신의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상의를 탈의한 채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은 관능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중섭은 상의를 벗고 허리춤까지 치마를 올려 입은 마사코의 모습을 그렸는데, 19세기 프랑스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이 그린 ‘타히티의 여인들Femmes de Tahiti‘(1891) 속 인물이 입은 의상과도 닮았다.

 

1945년 완성한 ‘세 사람'(1942-1945)은 부드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여인'(1942)과 다르게 선을 거칠게 표현했다. 그림 속 인물은 손으로 두 눈을 가리거나 얼굴을 무릎에 파묻은 채 눈을 감고 있다. 눈앞의 현실을 애써 부정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중섭이 해당 작품을 제작한 시기에 일본에서는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다. 공포와 무력감, 어수선해진 시대 분위기를 그림에 담았다.

은지화에 사무친 그리움

가족과 첫눈, 1950년대 전반, 종이에 유채, 32×49.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이중섭은 1944년 함경남도 원산으로 귀국했다. 이듬해 그는 일본에서 지내던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와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슬하에 두 자녀를 뒀고,(첫째 아들은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네 식구가 부족함 없이 살았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했고, 이중섭은 가족을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 평생을 이북과 일본에서 살아온 그는 남쪽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막노동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배를 굶기 일쑤였고, 추위를 견디며 잠드는 것도 고단했다. 결국 이듬해 보다 따뜻한 제주도 서귀포로 떠났다. 비록 서귀포에서의 삶이 더 나아진 것은 없었지만, 네 식구가 굶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1950년대, 종이에 유채, 25.8×19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서귀포에서의 1년은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한 마지막 시간이다. 1952년 6월, 그는 전쟁을 피해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냈다. 이후 이중섭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으로 그리며 마음을 달랬다. 1950년대 전반에 제작한 ‘가족과 첫눈’,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그리고 ‘가족을 그리는 화가’가 대표적이다. 눈 내리는 겨울 서귀포의 추억을 그린 그림 ‘가족과 첫눈'(1950년대)에서 이중섭은 새와 물고기 그리고 인간이 함께 눈을 맞으며 노니는 장면을 그렸다. 1940년대 엽서화에서 이어진 초현실적 화풍을 엿볼 수 있으며, 가족과 단란했던 제주도 생활에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1950년대) 그림도 마찬가지. 그 제목처럼 물고기와 게를 잡으며 놀고 있는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인 제주도에서의 행복한 추억을 그림 속에서나마 회상했다.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1950년대 전반, 종이에 펜, 유채, 32.8×20.3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 가족을 그리는 화가, 1950년대 전반, 은지에 새김, 유채, 15.2×8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가족을 일본으로 보낸 이중섭은 부산에서 고된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림 재료를 사는 것은 사치였다. 돈이 없어서 그는 길거리에서 담뱃갑을 주워 그 속의 은박지 위에 그림을 그렸다. 광택의 알루미늄 속지에 뾰족한 못을 사용해 윤곽선을 그리고, 그 위에 먹물을 문질러 그림을 완성했다.

 

오늘날 그를 대표하는 작품 은지화는 독특한 기법으로 1956년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되기도 했지만, 정작 이중섭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953년 일본 선원증을 구해 일본에서 가족과 일주일 간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네 가족이 함께 모여 살고자 했던 그의 꿈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만나는 이중섭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전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지난 8월 12일부터 오는 2023년 4월 23일까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21년 4월 고(故) 이건희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1,448점 중 이중섭 작가의 작품 80여 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 중이던 작품 10점을 합쳐 총 90여 점의 이중섭 작품을 소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이중섭 작가의 작품 ‘닭과 병아리'(1950년대 전반)와 ‘물놀이 하는 아이들'(1950년대 전반)은 이건희컬렉션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다. 아울러, 1980년대 전시된 이후 오랜만에 공개한 ‘춤추는 가족'(1950년대 전반)과 ‘손과 새들'(1950년대 전반)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닭과 병아리, 1950년대 전반, 종이에 유채, 30.5x51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전은 화가 이중섭의 작품 세계를 1940년대와 1950년대 두 개의 시기로 구분했다. 1940년대는 일본 제국미술학교를 거쳐 도쿄 문화학원에서 수학 한 일본 유학 시기부터 귀국하여 원산에 머무르며 작업한 이중섭의 연필화와 엽서화를, 1950년대는 제주도, 통영, 서울, 대구를 옮겨 다니며 작업한 은지화와 편지화를 조명한다. 연인에서 부인이 된 이남덕을 향한 애정과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시기별로 살펴볼 수 있다.

(왼쪽) 새, 1950년대 전반, 종이에 유채, 22.5×19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 (오른쪽) 꿈에 본 병사, 1950년대 전반, 종이에 펜, 유채, 29.5×19.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또한, 잡지 표지와 삽화 등 이중섭이 제작한 출판미술 작품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피 묻은 새가 능선을 넘는 모습의 ‘새’와 반인반수의 칼을 든 전사 그림 ‘꿈에 본 병사’는 각각 1957년 <자유문학> 9월호 표지화와 문중섭 대령의 전투수기 <저격능선>(1954)의 표지화로 활용되었다.

정릉 풍경, 1956, 종이에 연필, 유채, 크레용, 43.5×29.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중섭의 대표작 은지화, 엽서화, 편지화에 비해서 비교적 덜 알려진 말년의 작품도 이번 전시의 말미에서 만날 수 있다. 1956년에 그린 ‘정릉 풍경'(1956)이 대표적이다. 고된 생활고와 가족을 만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진 이중섭이 생의 말년에 그린 그림이다. 거식증과 간염을 앓으며 심신이 쇠약해진 상황 속에서도 이중섭은 유채와 함께 크레용을 사용하며 실험적인 화법을 멈추지 않았다. 연필 드로잉 위에 크레용으로 색을 쌓아 올린 뒤 유채로 살짝 덧칠하여 완성했다. 말년에 자신이 머물던 정릉의 서정적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으로 만난 이중섭은 국민 화가이기 이전의 인간 이중섭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도 인상 깊다. 연인에 대한 사랑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시대의 로맨티시스트이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가장으로서의 이중섭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정훈 에디터

자료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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