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4

아버지와 딸의 가구, 언커먼하우스

느리고 고집스럽게 '대물림'한 가구.
몇년 전, 해외 인테리어 사진을 찾다 무심코 누른 사진이 시작이었다. 짙은 색 수종으로 얼핏 봐도 단단한 마감새로 만들어진 시스템 선반. 분명 유럽 어느 곳의 감도인데 사진을 클릭하고 마주한 사이트는 네이버 블로그였다. 브랜드의 이름은 언커먼하우스, 가구의 이름은 대물림 시스템. 40년간 나무를 만져온 아버지와 딸이 함께 만드는 가구라는 명징한 설명이 붙었다. 긴 말을 듣지 않고도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딸에게 대물림한, 이 가구를 만나는 다른 누군가 역시 그 다음 세대에게 대물림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깃든 가구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버지와 딸이 느리고 고집스럽게 세상에 내놓은 가구는 대물림 시스템 선반, 테이블, 사이드 보드, 키즈 테이블, 기와 선반, 트롤리 등 단번에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었다. 한 달 전에는 딸의 집과 아버지의 공장 사이 한중간에 첫 쇼룸 ‘문봉 리조트’도 열었다. 밀물 때의 바닷물처럼 느끼지 못하는 새에 한국 라이프스타일 씬에 차오른 언커먼하우스를 이끄는 두 사람, 정영은 대표와 강희철 실장을 만났다.

 

 

‘언커먼하우스’란 이름에 담은 뜻은.

처음부터 브랜드를 시작하려고 만든 이름은 아니다. 사실 언커먼하우스는 우리 집의 이름이었다. 새롭게 이사를 가면서 예상할 수 있는 한국 아파트의 구조 말고 마음 속에 그리던 집의 모습을 갖추려고 했다. ‘언커먼’하게. 하지만 인테리어 업체에선 안된다는 말만 반복했고, 생각해 보니 아버지께서 오랫동안 가구 일을 하신 거다. 내가 만들고 싶은 가구를 아버지께 말씀드려보자, 했다. 아버지와 함께 가구를 만들어 채운 우리 집 언커먼하우스를 블로그에 올렸고, 포털사이트 메인에 실리면서 비슷한 취향을 가지신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그렇게 브랜드가 시작됐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서 우리말을 찾기는 힘든 일이다. ‘대물림’이라는 이름이 대담하다고 생각했다.

평소 외국어보다 우리말을 쓰는 걸 좋아한다. ‘오프닝 아워’보다 ‘영업 시간’이라고 말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이름을 지어준 건 남편(강희철 실장)인데, 원래 작명 센스가 좀 있다. (웃음) 아버지와 내 모습을 보면서 ‘대물림’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주었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대물림한 가구라는 뜻과 유럽의 빈티지 가구처럼 사용해주시는 고객들도 대물림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실제로 가구 배송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대물림하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쁘다.

 

 

대물림 시스템 선반부터 테이블, 트롤리, 기와 선반, 인도에서 가져오는 러그까지 모양새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지닌 느낌이 있다. 디자인 철학이 궁금하다.

가구를 직접 만드시는 아버지의 말을 빌리고 싶다. 사람 손맛이 나는 가구다. 기본적으로 공예적인 요소가 있는 디자인을 지향한다. 기계가 아닌 사람 손으로 지어내는 물건들은 어딘가 조금 더 따뜻하고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으니까. 우리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는 모두 국내에서 아버지가 손수 만드신 후 일정 기간 우리의 생활 공간에서 사용하는 과정을 거친다. 가족들의 손을 타며 보완할 점을 찾아내고 수정하기를 반복한 후 공개한다. 러그 역시 인도에서 사람이 직접 베틀로 짜내는 것을 공수한다.

 

그 아이디어를 물성으로 바꾸어 주시는 아버님(정명희 선생)이 무척 궁금하다.

우선 나의 아버지이시기 전에 40년간 가구를 만들어오신 장인이시다. 우리 가구의 디테일은 아버지에게서 나온다. 본래 가구라는 제품이 하자 발생율이 정말 높다. 그런데 아버지의 오랜 경험과 지도 덕에 시제품을 열 번은 만들어야 할 제품을 두 세번이면 완성해낸다. 수종에 따라서도 변수가 많지만 역시 아버지의 혜안으로 각 디자인에 맞는 나무를 처음부터 찾아 제작할 수 있고. 사실 최근 10년간은 공장을 정리하시고 원래 하시던 공예, 조각에 집중하셨는데 지금은 한창 때보다도 더 바빠지셨다고 말씀하신다. (웃음)

 

대물림 시스템 선반과 테이블이 기존 국내 가구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미감을 지녔다면, 새로 내놓은 기와 선반은 최근 본 어떤 가구보다도 한국적이었다. 기획 의도가 궁금하다.

몇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앞서 말했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중 하나일 텐데, 우리의 대표 가구인 대물림 시스템을 벽에 설치하기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고객들이 많았다. 주거 문화가 변화하면서 여러가지 제약으로 벽을 뚫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바닥에 세워두는 선반을 디자인했다. 또 하나라면 언커먼하우스가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의 경계를 두지 않는 가구를 지향하는데, 이 맥락에서 선반은 정말 중요한 제품군이다. 공간을 나누어 주는 파티션의 역할을 하면서 집 안에도 카페 등의 상업공간처럼 멋진 디스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가구니까. 디자인에 있어선 우리 기와의 디자인을 모티프로 양쪽 끝이 오목하게 올라간 공예적 디테일을 살렸다. 오랜 시간 우리 멋을 살린 나무 공예를 해오신 아버지의 손맛을 마음껏 드러나게 했다. 중간 칸에 철제 바를 넣어 책을 세워도 무리가 없도록 해 실용성도 높였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언커먼’한 선반을 목표로 했다.

 

 

글, 사진 유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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