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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8

어린 시절을 마주하는 문구 브랜드

1940-60년대 빈티지 서적에서 영감 받다.
누구나 학창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문구가 있을 것이다. 예쁜 디자인 공책, 잉크가 진한 볼펜,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필통, 좋아하는 가수 사진이 담긴 스티커를 친구들과 공유한 경험은 그 시절만의 소소한 행복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문구는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브랜드 ‘웬아이워즈영 wheniwasyoung’은 유년 시절을 되돌아보는 문구용품을 선보인다. 특히 교과서처럼 과목명이 쓰인 노트는 잊고 있던 유년 시절의 애착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어렸을 때부터 문구 ‘덕후’였고, 독일에서 지내며 본인의 디자인 철학을 확립한 웬아이워즈영의 1인 제작자 최현정 디자이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Interview 최현정

웬아이워즈영 대표 겸 디자이너

 

 

브랜드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내가 어렸을 때’라는 뜻처럼,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간결하면서도 활기찬 디자인을 선보이는 문구 브랜드예요. 교과서에서 영감을 받은 노트, 빈티지 우표 모양의 스티커, 영어 공책의 직선과 점선을 활용한 메시지 카드 등 다양한 제품을 제작했어요. 어릴 때 배우는 기초 도형과 원색을 바탕으로 문구를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웬아이워즈영을 시작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서 미술용품과 문구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디자인 문구’라는 개념이 자리 잡으면서 시장도 활발해졌죠. 이러한 제품을 쓰고 모으면서 언젠가 저만의 문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한편, 회사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재직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지만 마음 한편에서 갈증을 느꼈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 베를린으로 떠났죠. 좀 더 넓은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흡수한 후에 작업으로 풀어내고 싶었거든요. 독일어도 할 줄 몰랐지만 무작정 여행길에 올랐어요. 그런데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큼 뜻깊은 시간을 보냈죠. 그곳에서 받은 자극이 디자인 작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My Own Book’ 시리즈는 교과서를 테마로 디자인한 노트예요.

제가 살았던 동네 슈테글리츠Steglitz에는 40만 권 이상의 중고서적을 보유한 헌책방 ‘Antiquriat Hennawack’가 있었어요. 수많은 북 디자인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공부라고 생각해서 자주 갔죠. 꺼내 보지 않은 섹션이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살폈어요. 손이 닿지 않는 책장 위쪽까지 보려고 사다리를 오르기도 했죠. 방문할 때마다 몇 시간 동안 구경했어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표지와 내지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어요. 그러던 와중에 옛날 수학 교과서를 발견했어요. 교과서답지 않은 독특한 그래픽과 강렬한 서체 및 색감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죠. 멋진 그래픽이 삽입된 빈티지 페이퍼백 Paperback도 흥미로웠고요. 헌책방에서 접한 옛날 서적의 디자인이 My Own Book 시리즈의 초석이 되었어요.

 

오래된 수학 책과 빈티지 서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My Own Book - Textbook.ver

 

교과서와 안내서의 특징을 반영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우선, 페이퍼백처럼 가방에 부담 없이 넣고 다닐 수 있는 규격으로 제작했어요. 그리고 빈티지 책을 자세히 보면 표지에 특유의 재질감이 있어요. 그런 질감을 전할 수 있는 소재를 신중히 골랐죠. 내지도 빛바랜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재생지를 사용했어요. 작고 가벼운 느낌을 위해 매수와 두께, 무게까지 꼼꼼히 고려했고요. 그리고 펼침이 자유로운 반양장 제본을 선택했습니다. 1940-60년대 북 디자인을 참고하면서 두꺼운 서체와 조형적인 그래픽을 중심으로 작업했어요. 그리고 옛날 서적의 특징 중 하나가 표지 하단에 ‘Written by’ 문구와 함께 저자의 이름을 제목만큼 크게 표시해요. 이러한 요소를 살려 노트 하단에도 ‘Written by’를 넣고, 그 옆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공백을 두었어요. ‘나만의 책’이라는 My Own Book 시리즈의 취지에 맞춰 사용자가 책을 집필하는 듯한 재미를 전하고 싶었죠.

 

My Own Book - Original ver.
My Own Book - New ver.

 

그리고 과목이나 안내서 제목을 정하기 전에 표지를 디자인했어요. 셀 수 없이 많은 그래픽을 제작하고 제목에 맞게 후보를 골랐죠. 제목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면 디자인이 밋밋해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무엇보다도 헌책방, 도서관, 벼룩시장 등 빈티지 서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녔어요. 이베이나 독일 현지 중고서점 사이트처럼 인터넷에서도 많이 살펴봤고요.

 

 

제품을 제작하실 때 특별히 신경 쓰시는 부분, 또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나요?

기획과 디자인, 제작 등 모든 과정이 어느 하나 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해요, 이렇게 기본적인 제작 단계를 꾸준히 공부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인지, 곁에 두고 싶은 디자인인지를 특별히 신경 쓰고 있어요.

 

'Creative Drawing Exercise'라는 주제로 풀어낸 드로잉북 'C.D.E Drawing book'

 

혼자서 제작하실 경우 많은 작업을 거쳐야 할 텐데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기획부터 자료 조사, 디자인, 자체 검수, 제작, 감리, 촬영, 홍보, 유통까지 3개월 정도 소요돼요. 디자인을 빠르게 끝내도 출시를 몇 주 동안 고민할 때도 있어요. 그리고 소재나 두께, 매수, 제작 방식의 조합을 제본 상의 문제로 변경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한 번에 몇천 권을 인쇄하기 때문에 실수가 있으면 안 돼요. 그리고 제품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재촬영을 하는 등 다양한 변수가 발생해요. 혼자서 모든 걸 선택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확신이 없으면 멈추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시행착오를 겪는 시간까지 고려해서 작업을 일찍 시작해요. 스스로 정한 일정에 맞추려고 최선을 다하고요.

 

 

다양한 팝업스토어도 진행하셨다고요.

첫 번째로, ‘STAMP TO STAMP’ 팝업스토어에 참여했어요. 연희동 편지가게 ‘글월’과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콩과하’와 함께 매년 한 번씩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해에는 제가 수집한 초일 봉투(새로운 우표를 발행하는 날에 출시하는 봉투)를 전시했고요, 두 번째 해에는 독일, 네덜란드, 영국, 캐나다, 미국 등에서 제작한 80-90년대 우표 1,000여 장을 선보였어요. ‘STAMP TO STAMP’ 팝업스토어는 제가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영감을 받았던 물건을 소개하고 공유하는 데 의의가 있어요. 다가오는 가을에도 한 번 진행할 예정입니다. 최근에는 My Own Book 교과서 버전 출시와 함께 을지로 독립 책방 ‘노말에이’에서 팝업스토어를 진행했어요. 소장 중인 옛날 교과서 40여 권을 전시하는 동시에 그간 출시된 My Own Book 시리즈를 판매하는 자리였죠.

 

노말에이에서 진행한 My Own Book 팝업스토어

 

앞으로는 어떤 제품을 만들 예정인가요?

조금 이르지만 이번 달부터 2022년 다이어리와 달력을 제작할 계획이에요. 1년 내내 사용하는 시즌 제품이기 때문에 만들기 전부터 고민을 많이 하고 심혈을 기울여서 작업하죠. 사용자분들께서 지루해하시지 않을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어요.

 

지난해에 판매했던 포스터용 달력 '2021 Poster calendar'

 

웬아이워즈영이 어떤 의미로 남았으면 하나요?

오랫동안 꾸준히 작업하는 브랜드가 되면 좋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 역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신제품을 출시해요. 대단하면서도 긍정적인 자극을 받죠. 웬아이워즈영도 제품 종류를 차근차근 늘려서 ‘웬아이워즈영에서 이런 물건도 만드나? 만약 있으면 한 번 사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쉽고 편안한 브랜드로 자리 잡고 싶어요.

 

 

장영주

자료 협조 웬아이워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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