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는 추사 김정희와 겸재 정선, 오원 장승업 등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예술가들과 2000년대 이후 화단에 등장한 젊은 예술가를 나란히 놓는다. 겸재 정선과 1972년에 태어난 로랑 그라소를 함께 배치하는 식. 이로써 관람객은 이음새 없이 매끈하게 연결될 수 없는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커다란 흐름을 이루는지 느낄 수 있다. 옛 작품에서 현대 작품의 단서를, 현대 작품에서 옛 작품의 흔적을 찾는 일 역시 전시를 보는 큰 즐거움이다.
전시를 책임기획한 윤율리 일민미술관 책임큐레이터를 인터뷰했다. 지금 한국화 전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부터 작품을 독특하게 배치한 배경까지 두루 물었다.
Interview with 일민미술관
윤율리 책임큐레이터
— 이 전시 기획을 오래 품고 있었다고 들었어요. 한국화 전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작년 7월, 일민미술관에 입사해 한국화 전시와 커머셜 사진 전시에 대한 기획안을 작성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순서상 한국화 전시가 먼저였지만 실제로는 준비 과정의 어려움 때문에 커머셜 사진전을 상반기에 앞서 선보였습니다.(<언커머셜: 한국 상업사진, 1984년 이후> 展) 한국화 전시는 필연적으로 ‘한국성’을 대면해야 하는 흥미로운 기획입니다. 그런데도 한국화는 여러 측면에서 비주류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으며 화단에서 일군 나름의 성과, 세대교체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전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화’를 어떻게 정의했나요? 영어로는 ‘Korean Traditional Painting’이라 쓰고 있군요.
한국화의 번역어로 ‘Korean Oriental Painting’, ‘Traditional-style Korean Painting’ 등이 있습니다. ‘Korean Painting’을 병기해 ‘Hangukhwa’라고 쓰기도 합니다. 각각의 번역에는 한국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역자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Korean Traditional Painting’을 사용합니다. 전통 예술은 글자와 그림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통’과 ‘그림’이 결합한 이 말은 일종의 형용모순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근대의 체계에 속하면서, 서양화와도 다를 수밖에 없는 모순적인 한국화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 전시 이름이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이에요. 한국화에서 ‘다시 그리기’는 어떤 의미라고 생각해요?
전통 예술은 과거의 탁월한 것을 따라 쓰거나 그리는 배움과 수행의 과정을 중시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의 한국화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한국화는 어떤 세계를 끊임없이 연성해 가는 놀이, 혹은 그 규칙을 집약한 ‘룰 북(Rule Book)’ 같은 것입니다. 즉 한국화는 무언가를 다시 그림으로써 시작되고, 무언가로 다시 그려질 수 있는 상태가 되어 비로소 완결됩니다. 이미 만들어진 작품으로서뿐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실천이 한국화를 함께 구성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전시의 영문명에 ‘Alter-age’가 들어가지요. 프랑스 큐레이터이자 비평가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말한 ‘얼터-모더니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요. 한국화와 얼터-모더니티 개념이 어떻게 연결된다고 보나요.
‘얼터-모더니티’는 니콜라 부리오가 제시한 대안의 역사 개념입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동시대성을 다원주의나 상대주의로 환원하지 말자는 것이 이 주장의 요지입니다. 앞서 저는 ‘한국화’의 번역이 맞닥뜨리는 모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 모순을 현실에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역사 비틀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 모두 이 문제에 유용한 답을 주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내면화된 식민성을 고발하거나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화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입증하며 그로부터 생산된 차이를 정당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전시는 전통에 가상의 뿌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다른 시대(alter-age)’는 그러한 상상의 토대가 되는 역사적 가정입니다.
—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깊이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한국화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단절과 연속이 공존한다고 느껴요?
일반적으로 전통을 다루는 전시는 전통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데 주력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남겨진 ‘전통’이 사실 대단히 파편적인 잔해를 집합시킨 이상한 총체라는 인식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보다 전통의 실재에 가깝습니다. 전통이 비교적 잘 보존된 유럽이나 일본과 우리가 다른 점이 거기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조금 미묘한데, 사회주의 체제로의 전환기에 문화혁명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사건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1전시실 첫 번째 벽에 걸린 정선의 <숙몽정>은 이러한 상황을 암시합니다. 압구정 동쪽 근교에 세워졌던 이 정자는 언젠가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원형을 그리기 위해, 우리는 정선의 묘사와 역사적 텍스트를 번갈아 참조해야 합니다.
— 전시장 구성과 작품을 배치하며 특히 어떤 점에 신경 썼나요.
전통의 단절과 연속성을 고민하면서, 미술관 소장품은 계보적으로, 동시대 미술품은 감각의 유사성에 따라 배치했습니다. 미술관 소장품을 걸기 위한 벽에는 메탈 소재의 시트를 시공했는데, 이 벽을 8m씩 끊어 규칙적으로 배치한 점도 특징입니다. 우리가 굴절된 역사를 대면할 때와 비슷한 작용이 벽을 바라보며 일어나기를 기대했습니다. 또 이러한 장치는 전시장을 밝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보통 유물을 낮은 조도로 보여주는 방식과 다르다는 점에서 전시가 선택한 하나의 상황입니다.
—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등 역사적인 인물부터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국내외 작가들까지 두루 아우릅니다. 어떤 작가, 작품으로 구성하려 했는지 궁금합니다.
정선과 그의 진경산수는 한국화가 막다른 골목에서 끊임없이 재인용하는 ‘세이브 파일’입니다. 때문에 정선의 존재는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김정희와 장승업은 조선 말기에 서로 다른 방식을 통해 전통 예술의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전시가 소개하는 소장품의 계보가 이들로부터 그 제자로, 다시 그 제자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의미 있습니다. 동시대 작가의 경우 연속과 단절을 대조해야 하는 전시 특성상, 소장품과 충분한 시차를 가진, 2000년대 이후 데뷔한 비교적 젊은 작가들로 선정했습니다.
— 전시 작품 중에 진품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작품도 있어요. 소위 ‘진품/가품 논란’이 한국화의 흥미로운 특성이라 보기도 한다고요.
위작을 판명하려면 원작에 대해 충분히 축적된 정보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어떤 전통 서화를 위작 또는 원작으로 판명하는 일의 첫 번째 어려움을 쉽게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처럼 한국화 고유의 특성을 ‘다시 그린’ 세계의 재구성이라 본다면, 그 진위에 대한 판단보다 ‘작가가 무엇에 착안해 어떻게 다시 그렸는가?’가 중요해집니다. <다시 그린 세계>의 소장품 목록에는 위작과 원작, 그것을 판단하기 어려운 작품, 그 판단이 무의미한 작품이 혼재해 있습니다. 위작일 가능성이 있는 경우, 캡션을 ‘OO로 추정’이라 표기합니다. 이러한 점을 대입했을 때 동시대의 한국화 장르에서 발생하는 도전과 실험을 더 흥미롭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관람 팁을 귀띔해 주세요. 특히 추천하는 작품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네요.
2전시실에 작은 탑 모양의 구조물이 놓여 있습니다. 원형으로 회전할 수 있게 설계된 것이라 살짝 밀면 옆으로 돌아갑니다. 한국 역사의 소위 ‘신화적인’ 인물을 다루는 이 탑이 어떤 위계나 방향 없이 회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디자이너님께서 정말 그렇게 만들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순신, 이황, 이이, 신사임당은 화폐에 새겨진 인물들이니 진지하게 구국과 재물의 염원을 담아 돌려보시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장승업의 <군안도>를 좋아합니다.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을 연기한 배우 최민식의 연기는 꽤 기억에 남았습니다. 점점이 찍힌 기러기의 머리통들을 보고 있으면 배달 앱으로 막걸리를 주문하고 싶어집니다. 매일 입맛만 다시다가 이번 전시 굿즈로 전통주 양조장 ‘한강주조’와 막걸리 에디션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 전시 소개 글에서 “한국화의 전통을 갱신해 온 소장품과 현대 미술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동시대 미술관으로서 우리가 당면한 미학적 현실을 새롭게 모색하고자 한다”라는 부분이 이 전시의 의의와도 닿아 있을 것 같습니다. 전시를 기획하고 꾸리면서, 우리가 당면한 미학적 현실에 관해 어렴풋이 느껴진 바가 있다면요.
미술을 포함해 여러 가지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주류의 변방에서 한국/한국화 창작자들이 특정한 소수자성을 요구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때 한국성은 ‘무엇과 다른 것’으로 규정됩니다. 가령 한국화는 꽤 자주 서양화와 다른 것, 이질적인 차이를 가시화해야 하는 것으로 기대되거나 호명됩니다. 앞으로 논쟁적이고 대담한 주장이 제기되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현대성을 통찰하기 위해 민족적인, 그리고 이념적인 문제를 직시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 점이 가장 어려워 보입니다.
참여 작가 노한솔, 로랑 그라소, 문주혜, 박그림, 박소현, 박웅규, 박지은, 배재민, 손동현, 이은실, 정해나, 최해리, 황규민(총 13명)
소장품 겸재 정선, 원교 이광사, 추사 김정희, 호산 조희룡, 소치 허련, 석파 이하응, 오원 장승업, 심전 안중식, 관재 이도영, 춘곡 고희동, 이당 김은호, 심향 박승무, 청전 이상범, 정재 최우석, 심산 노수현, 소정 변관식, 묵로 이용우, 소전 손재형, 고암 이응노, 월전 장우성, 운보 김기창, 남정 박노수, 산정 서세옥, 소정 황창배(총 24명, 이상 일민미술관, 일민문화재단, 동아일보 소장품)
그래픽 디자인 페이퍼프레스
공간 디자인 맙소사
글 김유영 기자
자료 제공 일민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