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04

글립스로 폰트 만들기, 글자체 디자이너 함민주 ①

글립스의 모든 것
지난해 볼드한 한글 서체 '둥켈산스'로 주목 받은 글자체 디자이너 함민주가 노은유 디자이너, 워크룸프레스와 함께 신간 <글립스 타입 디자인>을 발행했다. 글립스는 디자이너가 글자를 디자인해 폰트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폰트를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은 여럿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글립스'는 한글 폰트를 디자인할 수 있는 기능으로 가장 한글 친화적이다. 덕분에 근래 글자체 디자이너들이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으로도 손꼽힌다. 그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사용에 대한 문턱이 낮은 만큼 나만의 글자를 디자인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글립스 타입 디자인>은 폰트 디자인 초심자부터 필드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까지 '글립스'를 사용해 글자를 디자인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안내서이자 실습서이다. 실제로 글립스를 활용해 개성 있는 폰트를 디자인해 온 함민주 디자이너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글립스 타입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글립스의 모든 것을 담아낸 계기부터 네덜란드 유학을 거쳐 오늘날 베를린에서 글자체 디자이너로 활동하기까지. 서면으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베를린과 서울 사이에서 오고 간 말들을 지금 만나보자.

Interview with 글자체 디자이너 함민주

커버 이미지

— <글립스 타입 디자인>은 ‘글립스’라는 폰트 제작 프로그램을 위한 안내서이면서 동시에 폰트 디자인의 기초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는데요. 이번 책을 준비하신 계기나 배경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책은 노은유 글꼴 디자이너와 함께 썼어요. 노은유 디자이너가 먼저 워크룸과 함께 제안을 해서 같이 작업하게 됐는데요. 그녀와는 대학교 시절부터 ‘활자공간’에서 함께 일하며 같은 길을 걷고 있어요. 오늘날에도 가깝게 지내고 있고요. 그래서인지 배울 때의 답답함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고 함께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은 글자체 디자이너가 타 문화권보다 적은데, 저는 그 이유가 배울 기회와 정보를 찾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글자체 디자인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방법을 몰라 답답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 작업을 시작했어요. 물론 동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요.

내지

— 무엇보다 ‘글립스’라는 프로그램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더라고요. 글꼴 디자이너분들께 듣기로는 폰트 제작을 위한 프로그램이 여럿 있다고 하더라고요.

글립스는 사용자의 입장을 배려해서 끊임없이 개발하는 프로그램이에요. 대부분 프로그램이 라틴 문자 디자인에 집중한다면, 글립스는 전 세계 문자를 최대한 많이 이해하고, 디자인 작업에 도움이 되는 기능을 개발하려고 노력해요. 대표적으로 글립스에서는 한글 디자인을 위해 한글을 조합하는 기능을 개발했어요. 개발자가 마침 저와 같은 도시 베를린에 살아서 한글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제가 도움을 주기도 했어요.

— 글꼴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혹은 업계에서 때에 따라서 유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걸까요? 예컨대 어느 해에는 ‘글립스’를 유독 많이 쓰다가, 또 다른 해에는 다른 프로그램을 쓴다던가 하는 것처럼 말이죠.

제가 느끼기에는 점점 글립스 사용자가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아요. 국내에서도 2000년 초반에는 폰트랩을 많이 사용했는데 2010년대부터는 글립스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해외 콘퍼런스에서도 글립스, 폰 트랩, 로보폰트 세 가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글꼴 디자이너로 나뉘는데, 특히 라틴 외에 다국어를 다루는 디자이너들이 글립스를 선호하죠.

 

— 다른 폰트 프로그램도 <글립스 타입 디자인>처럼 프로그램 사용을 위해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책이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이번 책의 레퍼런스로서 어느 부분이 도움이 됐는지도 궁금했거든요.

신기하게도 아직 없어요. 타입 디자인 서적은 보통 ‘타입’ 위주로 설명한 책이 많더라고요. 이 책의 레퍼런스로는 글립스에서 만든 영문 매뉴얼인 글립스핸드북 PDF를 참고했어요. 하지만 이 파일은 분량도 많은 데다가 모든 기능을 설명하기 때문에 저희 책을 보시는 편이 시간 절약에는 도움이 될 거예요.

글립스 프로그램 사용을 위한 안내서이자 실습서로 활용할 수 있는

— 한편, 노은유 글꼴 디자이너와 함께 책을 준비하신 과정도 궁금했어요. 서로 다른 도시에 살면서 책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듯싶은데, 과정 중에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노은유 디자이너가 <글립스 타입 디자인> 책 작업을 먼저 제안했고 모든 과정을 함께 작업했어요. 각자 나눠서 집필한 부분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수정하고 목차도 여러 번 바꿨어요. 3년 동안 일주일에 한두 번씩 줌으로 만나서 회의를 하면서 진행했는데요. 아무래도 책을 집필하는 것이기에 서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피드백을 나누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렇게 마무리가 되어가는 듯싶었는데 갑자기 글립스 3가 업데이트된다는 뉴스가 나오더라고요.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새로운 기능을 다시 익혀서 추가해야 했고, 이미지로 사용할 스크린샷도 전부 다시 만들었습니다. 집필 기간이 길어지면서 주변 지인들이 책은 언제 나오냐고 물어볼 때마다 꼭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서 불편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책을 출판하는 게 처음에는 비현실적으로도 느껴지더라고요. 그래도 책이 나왔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어요.

 

— <글립스 타입 디자인>을 준비하면서 특정했던 독자층도 있었을까요? 어떤 분들이 꼭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타입 디자인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노은유 디자이너가 대학에서 강의한 경험이 많아서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집중해서 만들 수 있었어요.

은 권두 부록, 한글과 라틴 타입 디자인, 글립스 메뉴얼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 독특하게 책을 세 권으로 구성하셨어요. 제본도 스프링 형식이고요. 각 권마다 다루는 내용이 다른데 책을 활용하는 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먼저 가볍게 책을 들고 다니면서 작업할 수 있도록 세 권으로 나눠서 제본했어요. 워크룸에서 낸 아이디어였던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제일 먼저 이론 편을 천천히 읽어 보면서 한글과 라틴 디자인에 대한 기본 지식을 습득하고, 그 이후에 글립스 메뉴얼을 보면서 글립스를 실습하기를 추천합니다. 그러다가 쉬는 시간에 부록을 보면서 다른 타입 디자이너들이 글립스로 만든 글꼴을 감상하면 자신만의 서체 디자인에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함민주 글자체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글자체 '뉴트로닉'
함민주 글자체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글자체 '뉴트로닉'

— 저도 말씀하신 1권 권두 부록에 나온 글립스를 사용해 디자인한 서체를 재밌게 봤어요. 디자이너님께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서체가 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하더라고요. 물론, 직접 디자인하신 뉴트로닉을 추천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웃음)

뉴트로닉을 추천해도 된다고 하시니… 뉴트로닉을 추천하고 싶네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보통 글자체 디자이너가 슈퍼 패밀리 스타일을 구성하기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게 가능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글립스 덕분인 것 같아요. 뉴트로닉은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민부리, 고딕 스타일의 글꼴 가족이지만, 일반적인 고딕과 차별화된 생김새를 지녀서 디자인에 신선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어요. 특히, 가장 가는 굵기부터 정말 두꺼운 굵기까지 스타일이 다양하죠. 최근에는 폭이 좁은 컨덴스드 스타일도 작업 중에 있습니다.

 

— 이번에는 내가 만든 글꼴 말고요. 디자이너님이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신 글꼴이 있다면요? 한글, 라틴 혹은 외국어 전부 포함해서.

퓨처 폰트를 비롯해서 새로 출시되는 서체들은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한글 폰트가 점점 다이내믹해져서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글립스로 폰트 만들기 A to Z, 글자체 디자이너 함민주 ②
▼ 2편에서 계속됩니다.

이정훈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함민주 글자체 디자이너

이정훈
독일 베를린에서 20대를 보냈다. 낯선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쉽게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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