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02

타이포로 음악을 그리는 아르헨티나 디자이너

레터링 디자이너, 마르티나 갈라르사 인터뷰
아르헨티나어로 ‘화성’은 마르떼(Marte)라 칭한다. 2015년 아르헨티나에서 활동을 시작한 마르떼는 음악을 문자로 도안하는 레터링(lettering)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음악 관련 디자인이나 레터링 디자인하면 즉시 ‘마르떼’가 생각날 정도로 유명세를 얻었고 그 작품을 좋아하는 팬도 수천 명이 넘는다. 그만큼 리듬감 넘치고 사이키델릭(psychidellic)한 디자인은 아르헨티나 음악계 뿐만 아니라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코트니 바넷(Courtney Barnett), 푸시 라이(Pussy Riot)과 같은 세계 각국의 유명 밴드나 광고, 아이덴티티 디자인에도 뻗어있다.
마르티나 갈라르사 ©Marte

마르떼의 레터링 수업은 예술계의 유명 창작가들이 가르치는 도메스티카(Domestika) 인터넷 사이트에서 인기 강의로 선정될 만큼 젊고 인기 있는 디자이너로 손꼽히고 있다.‘마르떼’의 명예와 작품성 뒤에는 과학을 좋아하는 음악가, 일러스트와 레터링을 독학한 감성적인 디자이너 마르티나 갈라르사(Martina Galarza)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사실 마르떼는 마르티나 갈라르사가 작업 초기부터 사용해온 필명이다. 마르떼의 디자인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호기심 많고 다재다능한 마르티나 갈라르사를 인터뷰했다.

Interview with 마르티나 갈라르사

아르헨티나 팝 밴드 아인다(Ainda) 음반 디자인, 2021 ©Marte
아르헨티나 록 가수 바르비 레카나티(Barbi Recanati) 포스터 디자인, 2020 ©Marte

— 태양계의 수많은 행성 중 ‘화성’을 택한 이유는 뭔가요?

‘마르떼’는 2015년 제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쓴 필명입니다. 당시 매우 내성적이었던 제가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을 무렵이었지요. 그 과정에서 제 이름 마르띠나에 담긴 ‘화성에서 오다’라는 뜻을 따서, 본명은 아니지만 저와 가까운 필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점성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화성’은 ‘먼저 시작하고 또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행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어요. 전문 디자이너로서 항상 추구하고 세상에 내보여야 하는 자세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해서 ‘마르떼’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제 클라이언트 뿐 아니라 친한 친구들도 저를 ‘마르떼’라고 부르게 되었고, 어느순간부터 제 본명보다 ‘마르떼’가 더 익숙해졌어요.

아르헨티나 레이디오 비트박스(Bitbox) 로고 디자인, 2022 ©Marte
바르셀로나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전시된 피메일 파워(Female Power) 포스터 시리즈, 2018 ©Marte
바르셀로나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전시된 피메일 파워(Female Power) 포스터 시리즈, 2018 ©Marte

— 제가 알기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에 디자인 전공으로 진학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퇴하고, 켄 바버(Ken Barber)나 짐 파킨슨(Jim Parkinson)과 같은 대가들에게 레터링을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픽 디자인에서 레터링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취미로 음악을 하면서 디스크와 공연 포스터를 직접 그렸고, 그때만해도 매우 초보적인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 실력으로 이미지를 손보곤 했어요. 문제는 텍스트였어요. 포스터의 그림을 완성하고 문장을 삽입하기 위해 그림과 잘 어울리는 글꼴을 찾는데, 손놀림이 드러나는 일러스트와 컴퓨터 벡터로 표현되는 타이포그래피 간에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이질감이 늘 눈에 거슬렸어요. 그러던 와중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그래픽 디자인 기초 과정을 다니면서 레터링도 따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레터링에 큰 매력을 느꼈던 한편 대학교의 매우 독단적이고 획일화된 교육 과정은 점점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다행히도 그 시기에 기제 비사리(Guille Vizzari)를 만나 과외를 받게 됐습니다. 비사리 선생님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 레터링 대가입니다. 그는 단 하나의 글자도 매우 커다란 소통의 잠재력을 품고 있으며, 글자의 모양이나 디테일을 조금만 바꿔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레터링’은 글자 쓰기 차제에서 완성되는 ‘캘리그래피(calligraphy)’와는 달리, 문자를 뼈대부터 구성하고 거기에 살을 겹겹이 덧붙여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만큼 긴 과정이지요. 저는 그 과정에서 비사리 선생님의 너그럽고 지혜로운 교수법에 반했고 그의 가르침 또한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레터링에 입문한 이후 저는 쿠퍼 유니온(Cooper Union) 장학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켄 바버와 짐 파킨슨 선생님께 레터링 지도를 받았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저는 디자인과 비학술적인 방식으로 접하게 된 셈이지요.

아르헨티나 록 밴드 인디오스(Indios) 음반 디자인, 2019 ©Marte
페루 리마 위워크(WeWork) 빌딩 벽화, 2018 ©Marte

— 디자이너님의 세계관을 보면 1950-70년대 미국 뉴욕 학파(New York School)의 스타일이 생각납니다. 지향하는 디자인 스타일이나 본인이 존경하는 디자이너, 혹은 멘토가 있는지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가장 먼저 레터링 세계의 길을 열어준 기제 비사리 선생님의 영향력을 언급하고 싶고, 간접적인 영향으로는 아르헨티나 음반 디자이너 산티 포시(Santi Pozi)가 있습니다. 포시는 제가 음반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된 디자이너인데, 저는 그의 포스터를 보고 음악을 듣기도 전에 콘서트 티켓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디자인에 매료되었습니다. 이후 디자인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1960-70년대 미국에서 활동 중이던 빅터 모스코소(Victor Moscoso)나 밀턴 글레이저(Milton Glaser)의 사이키델릭 이미지라든지, 레터링의 대가 허브 루발린(Herbert Lubalin)과 같은 인물들은 저의 히어로가 되어 지금까지도 제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미국 마이애미, 래퍼 리조(Lizzo) 콘서트 레터링 디자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와 컬래버레이션, 2021 ©Marte
마릴리나 베르톨디(Marilina Bertoldi) 신규 앨범 출시 포스터 디자인, 2018 ©Marte

— 디자이너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밴드의 그래픽 디자인을 직접 했던 시기와 그래픽 디자인과 레터링을 공부하던 시기 사이에 언급하지 않은 공백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디자이너님은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폴 매카트니, 코트니 바넷(Courtney Barnett), 그리고 푸시 라이엇(Pussy Riot)과 같은 글로벌 뮤지션들의 작품도 디자인하셨어요. 음악산업에서 ‘마르떼’라는 이름이 알려지기까지 걸어온 길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지요,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기 전부터 디자인을 했습니다. 저는 저에게 사람들이 디자이너로서 성공의 비결을 알려 달라고 할 때, “디자이너는 제 인생에 있어 유일하게 가벼이 여긴 의무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어떤 일이든 압박을 받기 시작하는 순간 그 일을 그만뒀으니까요. 그래서 음악이 제 첫사랑이었다면, 디자인과 레터링은 제 두 번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과학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음악과 제 앨범을 디자인하곤 했는데 이런 과정에서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 밴드들과 음악가들을 알게 되었어요. 동시에 그들의 음악은 매우 훌륭했지만 음반 그래픽은 정말 볼품없다고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동정심 반 오지랖 반의 마음으로 그들의 음반과 콘서트 포스터 등을 디자인해 주겠다고 제안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제 작품이 마음에 든다며 돈을 주고 디자인을 의뢰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인디밴드의 음반 디자인을 하다 보니 2014년 즈음에는 점점 더 유명한 밴드의 음반과 굿즈 디자인을 맡게 되었어요. 여기서 다시 한번, 2015년 제가 과학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을 때를 기회 삼아 디자인 전공으로 전과를 감행했어요.

미국 폴 매카트니 갓 백(Paul McCartney Got Back) 투어 포스터 디자인, 2022 ©Marte

— 가장 기억에 남는 밴드 디자인의 일화를 이야기해 주세요.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고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폴 매카트니 소속사가 저에게 연락을 줬을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0년 3월 뉴욕 여행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하루는 지하철을 타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서 메일을 받았습니다. 메일 제목을 보니 “폴 매카트니 굿즈”라고 적혀 있었고, 본문을 더 자세히 읽어보니 매카트니가 미국 투어 콘서트를 하는데 포스터 디자인을 맡기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 메일을 읽고 또 읽고, 사기나 스팸 메일이 아닌지 또 읽어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내려야 할 곳을 여섯 정거장이나 지났더라고요.(웃음) 일단 거기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내려서 와이파이 신호를 빌릴 수 있는 매장에 무작정 들어가서 두말할 것 없이 디자인을 맡겨 달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들도 뉴욕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며칠 후 그 메일이 사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기획사 사람들과 미팅을 가졌고 꿈같은 일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물론, 아쉽게도 전 세계적인 COVID-19 팬데믹이 터지면서 디자인한 작품들이 사용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2022년 중순에 미국에서 콘서트가 열리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현장에서 콘서트를 관람했던 그날에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위워크(WeWork) 빌딩 포스터 제작하는 중 ©Marte

그런 적이 누구나 있잖아요… 뜨거운 반응을 기대하며 나의 한계를 넘어서 밤낮을 새워 최선을 다해 이룬 작품인데 사람들의 반응은 그저 그렇고, 오히려 노트 구석에 별 의미를 담지 않고 그린 삽화인데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좋은…. 정말 놀랍게도 마음과 마음은 통하는 것 같습니다. 음악도 마찬가지니까요. 대단한 연주를 들었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가도, 아주 짧은 곡의 일부만 듣고도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디자인을 하는데,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의학이나 의약품 관련 디자인을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해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본인이 하는 일 중에서도 진심으로 하고 싶은 분야가 무엇인지 찾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곳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찾아가야 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엘리나 해외 통신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마르떼비주얼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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