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는 지하 1층과 2층 그리고 두 개의 층을 이어주는 보이드 공간까지 토비아스 카스파의 작품 무대로 활용한다. 확실하게 구별된 공간의 건축 구조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구획별로 선보이지 않는 점이 눈길을 끈다. 대신에 작가는 작품을 교차하여 선보였는데 이를 통해 관객은 ‘패션’이라는 키워드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 지를 포괄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먼저 지하 1층 전시장 중앙에는 세 개의 시리즈 중 하나인 〈Epicenter〉(2019) 설치 작품이 자리한다. 가운데에 카펫이 놓여 있고 그 위에 27벌의 스웨터가 곱게 개어져 있다. 카펫 주위로는 스웨터를 입은 일곱 개의 마네킹이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한 모습이다. 직사각형 모양의 카펫과 스웨터의 무늬는 동일하다. 이는 미국항공우주국의 위성이 촬영한 사진 ‘밤의 지구(Earth at Night)’를 가져온 것으로 인구, 국경, 지형과 무관하게 지구 상의 빛의 분포만을 기록한 것이다. 빛의 분포는 결국 도시화의 흔적이자 도시의 진원을 기록한 일종의 지도로 도시를 밝히는 인공 빛에 오염된 지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토비아스 카스파는 사진 ‘밤의 지구’가 보여주는 생소한 이미지를 자신의 이름을 내 건 브랜드 ‘Tobias Kaspar’ 아래 제작한 스웨터의 무늬로도 활용했다. 관객의 입장에서 해당 작업의 배경을 모르고 본다면 보이는 그대로 스웨터의 무늬로 인식할 수 밖에 없는데, 작가는 바로 이러한 지점을 통해서 관객의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유도하고, 반전이 있는 배경을 통해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편, 전시와 동명의 시리즈 <Personal Shopper>는 보다 직접적으로 패션과 사회의 관계를 조명한다. 해당 시리즈 작품은 팬데믹 기간에 시작한 것으로 급격한 사회 변화에 반응하는 패션 산업의 모습을 포착했다. 작가는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줄어드는 퍼스널 쇼퍼의 입지와 반면 급부상하게 된 온라인 패션 플랫폼의 약진 그리고 이러한 현상 속에서 변하는 소비자의 욕망을 한 화면 안에서 모두 보여준다.
특히 주제를 반영한 작업 방식이 흥미롭다. 먼저 작가는 패션 브랜드의 온라인 플랫폼 화면을 스크린샷 기법으로 기록하여 캔버스에 출력했다. 이때 작가는 온라인 쇼핑에서 상품을 담아 둔 장바구니, 옷을 착용한 모델의 전신 이미지 혹은 클로즈업 한 얼굴 등 소비자의 취향과 관심사를 보여주는 장면을 작품의 바탕 이미지로 선택했다. 하지만 곧바로 그 위로 오튀-쿠튀르 원단 생산에 사용한 패턴과 붓자국의 반복적 이미지를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찍어서 덮어 버린다. 개인의 취향을 패션 산업의 대량 생산 작업 메커니즘으로 가려버린 것이다. 토비아스 카스파는 이러한 작업 방식을 통해서 패션의 산업적 면모를 부각시키며, 산업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혹은 압도되곤 하는 개인의 취향을 하나의 현상으로 보여준다.
현재의 현상이 아닌 지난 역사적 현상과 그 기록에서 기원하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1960년대 유럽에서 일본으로 수출된 자수 패턴을 바탕으로 한 시리즈 <The Japan Collection>은 다른 문화 배경 속에서 추구된 패션에 대한 욕망과 갈망이 문화적 현상으로 확장된 순간을 주목한다. 작가는 럭셔리 패션 하우스에 납품하는 고급 원단을 주로 생산해 온 스위스 생 갈렌에서 흥미로운 자수 아카이브를 발견했다. 그가 발견한 아카이브 속 자수 패턴에는 보트를 타거나 사냥을 하는 사람들부터 당대 유행한 원피스를 입고 쇼핑을 즐기며 로코코 양식의 공간에서 티타임을 갖는 여성들, 그리고 이국적인 동물과 풍경의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당시 일본에는 ‘유럽적’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동경이 널리 퍼져 있었고, 작가는 국경을 초월해 패션이 문화적 현상이 되는 과정에 흥미를 느꼈다.
(왼쪽) 토비아스 카스파, Personal Shopper (Two Women with Pink Purses and Hats), 2022 © Tobias Kaspar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Peter Kilchmann, Zurich
(오른쪽) 토비아스 카스파, Three Women and a Chair (Blue), 2022 © Tobias Kaspar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Peter Kilchmann, Zurich
〈The Japan Collection〉에서 작가는 패션이 국경을 넘어 문화적 현상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 작업 방식이 역시나 독특하다. 그는 자수 원단을 초고해상도 사진으로 기록하여 각기 다른 크기로 출력하여 프레임에 담아 소개한다. 결국 해당 시리즈는 사진 작업인 셈인데, 작품을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지 않는 이상 관객은 작품을 사진이라고 인식하기 어렵다. 더욱이 작품과 관객 사이에는 늘 어느 정도의 거리가 유지되기 때문에 이들을 단번에 사진 작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작가는 관객의 시각적 혼란을 야기하는데 이를 통해 눈 앞에 보이는 이미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를 유도한다. 나아가 작가의 이러한 작업 방식은 패션 산업이 빚어내는 ‘유행’이라는 사라지는 현상을 저격하는 것이기도 하다.
토비아스 카스파에게 패션은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이다. 그는 패션에 얽힌 관계와 산업의 특징을 통해서 시대의 현상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작가의 태도는 직접적인 행동을 제안하기 보다 관조적 입장을 고수한다. 그의 작품 전반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다. 한편에서는 작가로서 그의 나이브한 태도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있지만, 동시에 오늘날 매체의 특징을 영리하게 잘 활용한다는 호평도 존재한다. 어느 순간 보면 사라진 유행이 즐비한 도시, 서울에서 만나는 그의 개인전 〈Personal Shopper〉은 유행을 경계하면서도 가장 유행을 잘 활용하는 전시이지 않을까.
글 이정훈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파운드리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