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5

서울역에 등장한 우주정거장?

<서울은 미술관> 공공미술 프로젝트, 도킹서울
옛 서울역사 옥상 주차장을 연결하는 차량 통로(주차램프)가 2년간의 단장을 마쳤다. 과학자, 예술가의 연구와 손길이 더해져 이제 누구나 오가는 공공미술 플랫폼으로 돌아온 도킹서울이다. 이로써 서울로7017과 구서울역 옥상정원, 만리동 일대를 잇는 지붕 없는 미술관이 점차 모습을 갖췄다. 도킹서울은 10월 19일 공식 개장식을 마치고 시민에게 공개됐다.
도킹서울, 푸른 태양 무대 전경 | 사진 제공:
서울로7017에서 도보로 연결되는 도킹서울 | 사진: 디자인프레스
서울역 옥상정원과 도킹서울 주차램프 | 사진: 디자인프레스

서울의 잊힌 공간

매일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서울역. 지금은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는 구 서울역사에는 예전에 건물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통로가 있다. 빙글빙글 돌아 옥상 주차장까지 도달할 수 있는 주차램프다. 장소를 설비하면서 쓰지 않게 된 이 유휴 공간은 20년이나 잊혀 있었다. 서울시는 이 공간을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해 ‘도킹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공개했다. 서울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서울은 미술관’은 그동안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2017), <홍제유연>(2019), <달빛노들>(2020) 등 공공미술을 통해 서울 지역 곳곳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왔다. 이번 <도킹서울>은 네 번째 공공미술 플랫폼으로 과학자, 예술가들이 협업해 잊힌 서울의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밤이 되면 우주의 오로라같이 신비로운 조명들이 주차램프를 따라 불을 밝힌다. 태양의 소리를 주파수 별로 세 개의 음역대로 추출해 구성한 사운드가 공간 전체에 은은히 퍼져나간다. | 사진 제공:

새로운 우주와 만나는 도킹 스테이션

<도킹 서울>이라는 이름은 사람과 도시가 만나는 관문인 서울역의 특성에서 착안했다. ‘도킹’이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결합하여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순간을 의미한다. 일상에서 누군가를 만나 빠져들거나,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거나, 예술에 빠져드는 것 모두 ‘도킹’의 순간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지금 보는 우주는 모두 시공간 속에서 과거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죠.” 이태형 천문학자의 말이다. 도킹서울은 이제 다시 시민과 만나 ‘새로운 우주’로 연결된다.

도킹서울 과거의 모습. 2004년 이후 사용하지 않아 잊힌 채로 남아있던 공간이다. 도킹서울은 이 공간의 흔적을 일부러 없애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어울리는 방법을 고심했다. | 사진 제공:
사진: 디자인프레스

도킹서울을 기획한 퍼블릭퀘스천(Public Question)의 장석준 작가는 “20년이라는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이 공간은 과거도, 현재도 아닌 다른 시간성이 축적되었고 다른 시작점이 있다는 생각의 전제 하에 예술 작품의 여러 주제를 잡았습니다. 이곳은 구 서울역을 연결하고 이동을 이동하기 위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동과 연결’을 키워드로 했고, 결국 여기서 일어나는 공공예술이 무수히 많은 관계를 확장할 수 있도록 이 공간을 도킹이라는 이름을 명명하였습니다. 앞으로 이곳이 여러 관계들을 만들어나가는 관계의 시작점으로서 도킹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라며 공간을 소개했다.

어느 위치에서든 램프의 중앙 중정이 보인다. 나선형의 주차램프와 반대 방향으로 전개되는 형태의 설치작 정소영 작가의 '깊은 표면' | 사진: 디자인프레스

실제로 들어서면 이곳의 이름이 더 와닿는다. 오래전 만들어 낡은 램프를 걷다 보면 새로운 시공간으로 접속한 기분이 든다. 램프 중앙은 하늘을 향해 뻥 뚫려 있어 저절로 위를 쳐다보게 만든다. 파이프 구조물에 지지해 공중에 떠있는 구 형태의 설치작 ‘푸른별(팀코워크 작)’은 마치 우주로 진입하는 포탈이고, 땅에서부터 나선형으로 휘몰아치며 올라가는 ‘깊은 표면(정소영 작)’은 우주정거장의 통로 같다. 내부 공간은 타원형의 중정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만나지 않는 상향램프, 하향램프가 휘감는 독특한 구조다. 200미터 구간의 나선형 공간 곳곳에 작가들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자동차가 지나간 흔적까지 그대로 남은 이유는 시에서 이 공간을 최대한 보존하기로 한 결정이다.

일상부터 우주까지 예술로 도킹

<도킹 서울>은 ‘이동하는 일상’, ‘푸른 태양 무대’, ‘생명하는 우주’라는 세 가지 주제 아래 예술가, 과학자, 시민이 협력한 새로운 공공미술 작품 7점을 선보였다. 기획 단계부터 물리학자 김상욱과 천문학자 이태형이 과학자문을 맡아 우주와 생명의 원리와 개념들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이 중에는 시민 참여로 각자가 바라보는 하늘의 색상을 모아 색 기둥으로 표현한 설치 작품 ‘나의 우주색’과 김세진 작가와 서울예고 학생들이 협업해 만든 메타버스 가상 전시 공간도 있다.

도킹서울의 작품들

(위) ‘그는 둥글게 집을 돌아갔다.’, 양정욱 (아래 벽) 관측지점, 디폴트(차동훈) | 사진: 디자인프레스

‘그는 둥글게 집을 돌아갔다.’ 양정욱

탄화 목재, 전동모터, 흰색 끈
3.5m(W) x 0.1m(L) x 0.3m(H), 40개 (40m 구간)

 

‘도킹 서울’의 나선형 천장을 감싸고 있는 <그는 둥글게 집을 돌아갔다>는 공중에서 노를 저어가듯 끊임없이 움직이는 키네틱아트다. 양정욱 작가는 사람들의 동작을 섬세하게 관찰하며 걷거나, 서 있거나, 어깨를 오르내릴 때의 모습을 포착해 이를 움직이는 조각으로 표현한다. “일상은 언제나 미결된, 어떤 가능성의 상태로 삶의 과정과 모양들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삶에 담긴 변화와 무한한 가능성의 순간을 표현했다.

관측지점, 디폴트(차동훈) | 사진 제공:

관측지점, 디폴트(차동훈)

알루미늄3t 절곡케이스, 내부 조립PC
1.8m (W) x 1.8m(L) x 0.3m(H), 3개

 

‘관측지점’은 도킹서울 공간을 3D 영상으로 재현한 가상공간을 볼 수 있는 설치작품이다. 관람자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움직이며, 각각 다른 가상 세계를 관람할 수 있는 반응형 미디어로 구성되었다. “맨 먼저 이 공간에 왔을 때 충격이 있었어요. 처음 오시는 분들은 비슷한 느낌을 느끼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방향감의 상실 그리고 내가 어느 층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죠. 내가 있는 위치와 방향이 흐트러지는 상황에서 나라는 존재가 어디에 있는지 과연 그것이 어떻게 측정이 되는지에 대한 작품을 하고 싶었습니다.” 디폴트 차동훈 작가는 어떤 관람객이 오든 간에 관람자에 의해 공간이 결정되는 작품 ‘관측지점’을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동그란 화면을 바라보면 얼굴을 트래킹 해 움직이는 위치와 시야에 따라 풍경이 변한다. “이 공간에서 저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시는 분들이 있다면 작품을 통해 다른 공간으로 가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합니다.”

깊은 표면, 정소영 | 사진: 디자인프레스

깊은 표면, 정소영

아연도강팡 3T, 탄소강관기둥 4t~6t
6.1m(W) x 6.7m(L) x 5.2m(H)

 

정소영 작가는 우리 세계를 이루는 물질들이 각자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음에 주목한다. <깊은 표면>은 도시의 역사를 품은 지층, 땅을 가로지르는 국경, 출렁거리는 바다, 인식을 넘어서는 우주를 배경으로, 세상을 이루는 물질들의 시간을 포착하고 움직임을 관찰하여 ‘도킹 서울’의 세계를 확장한다. 램프와 반대 방향으로 소용돌이치는 나선형 구조는 먼 지구의 시간을 간직한 심해로부터 우주의 공간까지, 물질이 모여 탄생하고 소멸하는 생명의 질서를 보여준다.

푸른별, 팀코워크 | 사진 제공:

푸른별, 팀코워크

스테인리스 플레이트 2t, 각재파이프, LED3구, PC광학산
위 10m(W) x 10m(L) x 0.2m(H) / 아래 7m(W) x 7m(L) x 0.2m(H)

 

하늘이 보이는 중정의 하늘은 자연의 빛과 흐름이 안과 밖으로 교류하는 원형의 포탈이다. “메인 무대라고 생각하는 공간이 있다면 이 원형의 중정이 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의 시야가 이곳에서 하늘을 넘어 우주로 향하기 때문인데요. 지구에서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을 여기서 드러내 보였습니다.” 팀코워크의 작업 ‘푸른별’은 지구와 외부의 시공간을 연결하는 ‘도킹 서울’의 축이자 시선의 네비게이터이다. 푸른별 내부에 구현된 빛의 움직임은 회전하며 탄생한 별의 생성과 죽음의 순환 과정을 담았다. 공간 전체를 감싸는 사운드는 태양 소리의 각 주파수를 대역별로 추출해 각기 다른 3개의 스펙트럼으로 구성한 것으로 빛과 소리를 통해 우주가 전달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생명의 그물-아치, 김주현 | 사진 제공:

생명의 그물-아치, 김주현

스틸 파이프 작
4m(W) x 10m(L) x 3m(H)

 

‘생명의 그물’은 어두운 주차램프에 밝은 동굴처럼 빛난다. “20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공간이 새롭게 발굴된다고 하니 이곳에 조금이나마 밝은 기운을 주고 싶었어요. 저는 지하주차장을 무서워하거든요. 기왕이면 밝고 따듯한 유기체, 예쁜 종유석이 가득한 동굴 탐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개의 쇠막대를 쌓아 만든 이 작품은 옆에서 보았을 때는 수평의 연속으로 보이나, 위에서 보았을 때는 점들을 연결하는 선으로 보인다. 파이프가 맞물리며 유기적인 전체를 이루는 모습이다.

나의 우주색, 시민참여작 (72명 참여)

미러파이프1.5t,PC판 제작 후 투명 홀로그램 시트 부착
3m(W) x 57m (L) x 3m(H) (57m)

 

“하늘과 우주는 색이 없다. 우주의 색이란, 지구에서 인간의 눈을 통해 바라본 대기에 부딪힌 태양빛의 순간이다.” 김상욱 물리학자가 말한 대로 우리가 바라보는 색은 지금 지구에서 바라보는 시점의 색이다. 미러 파이프가 쭉 나열된 ‘나의 우주색’은 시민들이 각자 일상에서 바라본 우주의 색을 표현한 것이다. 시민들이 SNS에 올린 하늘 사진에서 72개의 색을 추출하여 조명색으로 구현해 ‘우주색 팔레트’를 만들었다.

서울 램프 시간, 김세진 (메타버스 이미지)

서울 램프 시간 박물관, 김세진

 

다른 시공간으로 연결될 것 같은 이 공간은 메타버스로도 연결된다. 김세진 작가는 공간이 지니는 ‘연결성’에 주목해 메타버스에 가상 박물관을 설립하여 현실과 가상 공간 사이의 시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3개의 갤러리를 구성했다. ‘서울 램프 시간 박물관’은 가까운 미래의 어딘가로 시간대를 설정하고 현실과 가상 공간 사이의 다층적 시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후 도킹서울의 공간도 메타버스로 구현할 예정이다.

이소진 수석 기자·콘텐츠 리드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서울은 미술관(서울시 디자인정책관 디자인정책담당관)

프로젝트
<도킹서울(Docking Seoul)>
장소
서울역 폐쇄램프
주최
서울특별시 디자인정책관 디자인정책담당관
주관
서울특별시 디자인정책관 디자인정책담당관
기획자/디렉터
퍼블릭퀘스천
크리에이터
협력 | 서울특별시 균형발전본부, 한화(주)서울역북부역세권개발, 서울예술고등학교, 과학 자문 | 김상욱, 이태형, 시행사 | 디올림(주)
참여작가
김세진, 김주현, 디폴트, 양정욱, 정소영, 팀코워크, 서울예고학생 20명
링크
홈페이지
이소진
헤이팝 콘텐츠&브랜딩팀 리드. 현대미술을 전공하고 라이프스타일, 미술, 디자인 분야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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