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6

좋은 녹차를 찾아 나선 산노루의 여정

작은 녹차 브랜드가 만드는 취향의 세계
제주도 지형은 한라산 하나로 설명 가능하다. 섬 가운데 우뚝 솟은 한라산을 기점으로 가운데는 중산간 지형이고, 가장자리는 해안가다. 산노루(Sannolu)는 중산간에 위치해 있어 해안가에서 20분 이상 운전하며 올라가야 한다. 그 수고로움을 감내하고도 남을 만큼 대단한 경험을 보여주겠다는 이상준 대표의 자신감과 배짱이 엿보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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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산노루 제주점은 SNS 상에서 ‘인생 말차’, ‘말차테린느 성지’, ‘제주도민 추천 카페’ 등의 태그로 기록되고 있다. 2019년에 태어난 제주도 F&B 브랜드 산노루는, 청정 제주에서 생산된 말차와 녹차를 주재료로 음료와 디저트를 판매하며, 카페 운영뿐 아니라 제품 기획부터 디자인, 마케팅, 유통까지 진행한다. 작은 녹차 브랜드가 만들어가는 은밀하고도 세밀한 취향의 세계로 초대한다.

 

Enjoy our nature and It’s endless shade of green.

우리의 자연과 끝없는 초록빛을 즐기라’는 문장은 그 자체로도 싱그럽지만,

실제로 실내외 곳곳에서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체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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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예부터 물이 귀했다. 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화산 지형이라 진흙땅에 물을 저장하는 봉천수, 낙류하는 물을 항아리에 저장하는 첨수 등의 저장법을 사용했다. 반면, 차나무는 무럭무럭 자랐다. 미세한 틈이 있는 토양은 차나무 뿌리가 받는 압력을 덜어주고 물이 잘 빠져 신선한 공기를 받아들였다. 내륙 지방과 달리 한겨울에도 영하 5 ~6˚C 이상이었으니 차나무 재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제주도에서 녹차 농사를 시작한 것은 1979년이다. 한라산 중턱, 돌송이밭을 개간해 만든 제주 차밭은 현재 100 만 평이 넘는 여러 개의 다원으로 발전했고 중국 황산, 일본 후지산과 더불어 세계 3대 녹차 생산지로 불린다. 그런데 어떤 연유일까. 차밭을 갈아엎고 한라봉 농사를 하는 게 낫다는 다원이 하나 둘, 등장했다. 세계적인 커피 기업인 스타벅스도 사용할 정도로 품질이 좋은 제주 녹차인데, 버려지는 차밭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궁금하게 여긴 이상준 대표는 소규모 농가를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들었다.

Interview with 산노루

이상준 대표
사진 제공: 산노루

“노부부가 운영하는 1000평, 2000평 규모의 작은 다원을 찾아다녔어요. 대형 다원이 아닌 중소 다원은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품질 좋은 제주 녹차를 소비재로 만들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인력과 자본이 필요한데, 제품 개발 능력을 갖추지 못한 다원들이 결국 녹차 재배를 포기하는 것이죠. 녹차는 가공식품이라 농협 같은 기관의 지원도 닿지 않는 영역에 있었어요. 또 다른 이유는 소비자가 선호하는 제품만 다원이 중복 생산하며 제주 녹차만의 다양성을 잃게 된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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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파악하고 각각 다른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사업이라 하지 않았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 제주도에 내려온 이상준 대표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하나 해갔다. 우선, 산노루라는 녹차 브랜드를 만들고 한경면 조수리 땅 한켠에 산노루 제주점을 오픈했다. “산노루를 설립하고 찻잎 저장고, 식품 제조 공장, 연구실을 제주도에서 운영하며 작은 다원들과 협업해 녹차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유통 과정을 전문화하고 고품질의 찻잎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습니다.” 산노루는 제품 개발이 힘든 소규모 다원에서 찻잎을 공수해 새로운 차 제품으로 개발하고 그 고품질의 찻잎을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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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를 거칠게 분류하면 크게 세 가지(녹차, 말차, 홍차)인데 산노루에서는 녹차와 홍차 사이에 존재하는 청차, 황차 등도 만날 수 있다. ‘고소한 제주 호지차’, ‘부드러운 제주 옥로차’, ‘청초한 제주 청차’ 등이다. ‘청초한 제주 청차’는 녹차와 홍차 중간 정도의 반 발효차로 다 자란 찻잎을 채취해 햇볕에 시들게 둔 뒤 실내로 들여와 수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찻잎 가장자리 세포막을 파괴하는 요청 과정을 거친다. 미세하게 발효시킨 후 솥에서 볶아 잎의 효소 작용을 멈추게 한 후 잎을 유념하면 청차가 만들어진다. “산노루는 현재 5개의 중소형 다원과 협업하고 있어요. 녹차 역시 와인처럼 산지마다 각기 고유한 맛이 존재합니다. 또 모든 다원이 같은 품질의 녹차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 제품에 특화된 다원을 선정해 다양한 차를 선보이고 있어요. 제품 기획부터 디자인, 유통까지 올인원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 전반적인 재배 환경을 개선하는 것, 나아가 국내외에서 제주 녹차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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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들과 제품 개발을 위한 협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곳이 산노루 제주점이다. 외관부터 카페라기보다 단정한 연구소나 박물관 느낌이다. 농가들이 원료를 보관할 장소가 없어 품질 유지에 어려움을 겪은 데서 착안, 세심하게 재배된 최상급의 차를 가져와 녹차와 말차를 생산하는 모든 과정을 이곳에서 해낸다. “차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자면 녹차의 품질 유지입니다. 설비 투자에 가장 공을 많이 들였어요. 녹차 잎이 공기와 만나면 산화될 수 있어 공기와 최대한 만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저장고도 중요해요. 녹차 잎의 품질이 가장 좋은 시기에 다 소비하지 못하더라도 최상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저장하는 공간이죠.”

산노루의 분위기를 사랑해

산노루 제주점은 청정하고 고요한 곳에 위치해 있다. 정말 ‘산노루’가 뛰어놀 법한 곳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산노루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짧은 광고를 찍어도 좋겠다. 평범하지만 다채로운 제주의 풍경이 순간순간 스쳐 지나간다. 오른편으로 제주도 해안이 펼쳐졌다가 숲이 나타나고, 평원이 이어지더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지막한 산길이 등장한다. 이런 곳에 카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쯤 갈색 벽돌 건물이 슬그머니 머리를 내비친다. 입구 외벽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다. “Enjoy our nature and It ’s endless shade of green.” ‘우리의 자연과 끝없는 초록빛을 즐기라’는 문장은 그 자체로도 싱그럽지만, 실제로 실내외 곳곳에서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체감할 수 있다.

사진 제공: 산노루

주변의 제주 돌담, 푸른 나무들과 대비되는 갈색 벽돌의 이국적인 건물은 세 개 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가’동에는 오픈형 쇼룸이 있고, ‘나’동은 제주 다원의 찻잎을 제품으로 생산하는 생산 제조 시설과 저장고, 그리고 ‘다’동은 차와 소비자의 접점인 카페가 위치해 있다. 생산 제조 시설을 제외하고,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카페와 쇼룸이다. 두 공간에 공통적으로 사용한 색은 녹색과 흰색인데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카페는 소란스럽지 않으면서도 생기가 있고, 쇼룸은 긴장감을 자아내는 고요한 느낌이다. 카페에 들어서면 거대하고도 아늑한 다실이 연상될 것이다. 커다란 창을 통해 충분히 유입되는 빛과 색, 외부의 풍경이 편안한 마음으로 내 앞에 놓인 차 한 잔에 집중하게 한다.

산노루 삼성점 | 사진 제공: 산노루

“좋은 품질의 제품과 브랜드를 소비자와 연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산노루의 연결이란 ‘공간과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그리고 좋은 제품을 더 돋보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디자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제주의 자연을 만끽하며 편안한 분위기가 담긴 우드브릭 소재의 건물과 공간을 설계했고, 서울에서는 분주하고 때로는 차갑기도 한 도시에서 차 한 잔의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스테인리스 자재의 건물 내부에 광장, 그리고 수(水)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좋은 품질의 제품을 더 잘 알릴 수 있도록 제품을 담는 공병부터 패키지, 스티커와 같은 작은 부자재까지 디테일한 제품 디자인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고, 구매자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서비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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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차에 진심인 사람들

“우와, 말차가 이렇게 맛있었어? ”, “교토에서 맛본 말차의 감동을 다시 느꼈다”, “산노루에서 경험한 말차 라테 이후 직장에서 다도 생활을 시작했다”까지, 산노루 제주점을 다녀온 이들이 남긴 리뷰다. 산노루는 질 좋은 녹차와 홍차도 소개하지만, 국내에 말차를 재조명한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말차(抹茶)의 ‘抹’은 ‘지우다’라는 뜻으로 가루로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어로는 ‘Matcha ’, 한글로 표기해 ‘맛차’라 부르기도 한다. 어린 녹차 잎을 증기로 찐 후 건조시키고 곱게 갈아주면 말차가 된다. 찻잎을 물에 우려내는 녹차와 달리 찻잎 가루 그대로 섭취하기 때문에 영양소가 더 풍부하고 맛이 진하다. 이상준 대표는 말차에 주목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산노루가 말차에 주목한 건 아주 명확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도 녹차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다채롭게 소비할 수 있는 키워드가 말차에 있었어요. 가루로 된 말차는 잎차보다 훨씬 더 활용도가 높아요. 밀가루 반죽과 섞으면 만두피가 되고, 과자나 빵과 만나면 활용도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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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노루는 스킨케어 영역에서도 이색 협업을 시도했다. 영양은 풍부하나 식품으로 만들기엔 적합하지 않아 대개 버려지는 차나무의 아랫잎을 아낌없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수제 비누 브랜드 ‘한아조’와 협업해 ‘산노루 for skin’을 출시했다. 특히 ‘수딩 바디오일’과 ‘하이드레이팅 토너’는 제주 찻잎을 우려낸 투명한 빛깔과 순한 성분, 모던한 패키지 디자인으로 입소문이 이어지고 있다. “녹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부분에 주목했어요. 차 나무 아랫부분의 잎은 떫은맛이 나서 식재료로 쓰지 않고 폐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찻잎에서 화장수를 추출하는 작업을 진행했죠. 찻잎에서 추출한 성분을 섞는다 해도 그 원료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기 어렵지만,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알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이 있습니다.”

기사 전문은 〈find〉 가을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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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 대표
이상준 대표는 20대 초반 미국에 갔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Academy of art university’에서 광고 기획과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미국에서 10년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IDUO 디자인 회사와 매티스 디자인(Matics design)에서 일했다.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제주도에 머물렀고, 2019 년 청정 제주에서 생산된 말차와 녹차 제품을 소개하는 ‘산노루’를 창업했다.

제목 find / 화인드 2022년 가을호

지은이 디자인프레스㈜

발행일 2022년 9월 22일

판형 205mm x 265mm

ISSN 2799-9963

김만나 편집장

사진 안웅철, 이기태(인물)

김만나
15년간 피처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네이버 디자인판 편집장으로 온라인 미디어를 경험하고 있다. 유머 감각 있고 일하는 80세 할머니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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