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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2022-07-14

토끼가 늑대에게 마크 로스코 그림을 가져다 준 까닭은?

배윤환 개인전 <​​What? In My Back Yard?!>

기간 2022.06.29 - 07.30
장소갤러리 바톤 (서울시 용산구 독서당로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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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환 Bae Yoon Hwan, 송곳니들을 위한 자장가 (Lullaby for Fangs) 2022, acrylic on canvas 97x162.2 cm

매혹적인 서사적 회화, 배윤환 작가의 새로운 챕터

 

나른한 늑대가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세 마리의 늑대 무리 사이로 토끼들이 분주하다. 모빌을 흔드는가 하면, 불면증에 좋은 차와 향을 준비하고 화면 오른편에는 잠이 잘 오도록(?)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여주기도 한다. <송곳니들을 위한 자장가>2022 는 언뜻 보면 이솝우화의 한 장면 같다. 이야기의 이면에는 미국과 호주에 도입된 ‘동물 개체수 조절 프로젝트’가 숨겨져 있다. 미국에서는 멸종위기종이었던 늑대의 수가 급작스럽게 증가하자, 퇴치 작전을 펼쳤다. 이에 앞서 호주에서는 백여 년 전, 사냥놀이를 위해 들여온 토끼가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자 갖은 수를 써서 잡으려 애썼다. 덫도 놓고, 토끼에게만 작동하는 바이러스까지 퍼뜨리며 죽이려 했지만 결국은 인간의 패배. 이야기는 이런 상상의 세계로 보는 이들을 끌고 간다. 인간에게 보호받던 늑대들이 졸지에 위험에 처하자 생존 선배인 토끼에게 찾아갔고, 만성 불면증이 생긴 늑대들이 불쌍한 토끼들이 이를 돕는다는 상황이다. 원래 토끼와 늑대는 서로 천적 관계 아닌가? 화면에서 펼쳐지는 풍부하고 다이내믹한 내러티브는 보는 사람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그건 배윤환 작가가 타고난 스토리텔러이기 때문이다.

갤러리바톤 <​​What? In My Back Yard?!> 전시 전경

배윤환 작가는 지난 2009년부터 서사적 구조를 중심으로 한 실험적인 회화, 매체 작업을 선보여 왔다. 작가 자신을 둘러싼 외부의 세계와 예술가로서의 자아가 부딪히며 내는 고민의 흔적들은 치열했고 날카로웠다. 이번 전시 <​​What? In My Back Yard?!>는 지역 이기주의를 의미하는 영어의 약자인 ‘님비 현상’을 떠오르게 하는 제목으로 작가가 새롭게 관심을 두고 있는 환경을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자기 자신과의 지독한 성찰을 끝낸 배윤환 작가의 시선은 이제 밖을 향해 있었다. 올해 신작 18점이 걸린 갤러리바톤에서 배윤환 작가를 만났다.

 

 

Interview with

배윤환 작가

2020년 <랍스터 쿼드릴Lobster Quadrille> 이후 2년 만에 개인전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고 작업했는지.

중요한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이전 작업에서는 내 삶을 이야기했다. 십 년 정도 하다보니 압박감이 오더라. 즐거움보다는 분노와 스트레스가 컸다. 내 모습을 투영시키는게 나한테는 의미가 있지만 ‘언제까지 이 이야기를 할 것인가?…’

이 무렵 <랍스터 쿼드릴> 전시를 했다. 그건 ‘예술가의 혀’에 대한 이야기였다. 말과 예술 사이의 간극이자 나 자신에 대한 비판이었다.

<랍스터 쿼드릴>, 챕터투 전시 전경, 2020
배윤환, 스튜디오 B로 가는 길 Road to Studio B, 스틸컷, 2018 갤러리바톤

2년 전쯤에 개인적인 일로 이사를 했다. 쓰레기가 어마어마했다. 망연했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그림, 마감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사이에 다시 보니 마음에 안들어서 파쇄한 그림, 부산물인데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이사할 때마다 낑낑거리면서 가지고 다녔던 그림. 누군가의 집에 걸려서 끝까지 살아남은 그림과 나의 작업실에서 애매한 상태로 존재하는 그림 사이에 낀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삐딱선’을 탄거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고, 환경 이슈들이 매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기후 변화 문제는 앞으로가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좀비, 세기말의 이미지들, 재난 영화들이 많이 나왔고 한동안 거기에 심취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끼고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광경은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같지 않나. 이제 나의 서사를 끝내고 세상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환경이라는 거대한 주제야 말로 나의 사적인 이야기를 덮어버릴 수 있는 담론일 거라는 생각과 함께.

배윤환, 연중무휴 북극마트 곧 문 닫아요! 24/7 Arctic Mart is Closing Soon! 2022 oil, acrylic on canvas 80 x 117 cm
배윤환, 요리호 Spaceship Cook 2022 acrylic on canvas 41 x 53 cm

동물들을 의인화하는 특징이 있다. 이번 전시에는 위태로운 ‘북극 마트’나 우주선에서 홀로 팬케이크를 만드는 곰이 등장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환경운동가는 아니라는 거다. 나는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경고할 뿐이다. 이건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고.

배윤환 작가의 작업에는 다층적인 이야기가 표류한다. 작업할 때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하나?

작업할 때 케이스마다 다 다른데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쓴다. ‘광부, 팬케이크, 곰…’ 머릿속에 착상이 되는 걸 동그라미 치고 그리기 시작한다. 오디오북을 듣는다고 가정해 보자. 소설에서 인물의 얼굴이나 차림새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는 법이다. 모자만 묘사한다든가, 피부만 묘사한다든가. 나 역시 어딘가에 떠오르는 잔상을 쫓으며 그린 것 같다. <송곳니를 위한 자장가> 같은 경우에는 치밀하게 그린 편이다. 예를 들어, 향초를 피우는 토끼가 있는데 향이 피어오르는 모양을 어떻게 그릴 건지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에 애드리브를 종종 쓴다. 그리다가 여기에 이런게 있으면 재밌겠는걸? 하면 구석에 벌도 그리고, 방귀 뀌는 스컹크를 그리기도 한다.

배윤환, 나의 호밀밭에 라임오렌지나무 Lime Orange Tree in My Rye Field 2022 acrylic on canvas 72.7 x 145.4 cm overall, 72.7 x 72.7 cm each, 2 pieces

그림에 애드리브라, 재밌는 표현이다.

애드리브, 좋아한다. 어떻게 하면 웃길까 고민하고. 허나 많이 하면 그림을 망치기도 하니 조심해야 한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화면과 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논리와 즉흥이 치열하게 오간다.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루고 싶다고 했다. 환경 문제, 제도와 시스템의 역설, 자본주의 등 여러 이슈가 있지만 이번 작업에서는 유독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각자의 입장에서 대치하고 충돌한다.

<나의 호밀밭에 라임오렌지나무Lime Orange Tree in My Rye Field>를 보면 토끼들이 땅속에서 당근을 나눠 먹고 있고, 당근 농장 주인은 화가 나 있다. 토끼들은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에 나오는 고단한 노동자들처럼 살기 위해 당근을 서리하는데 미안한 마음에 하트 모양으로 잘라 먹는다. 대척 관계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흑석동 시절이 생각난다. 작업실 앞에 고양이들이 매일 문 앞에 와서 똥을 싸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터트려 놨다. 무섭고 힘들었는데, 동작구청에 전화해 보니 고양이를 잡아두면 중성화 수술을 해준다고 하더라. 한 두 마리도 아니고… 고통받는 나와 아랑곳하지 않고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옆집 아주머니, 인간이 덮어버린 시멘트 바닥에서 화장실을 해결해야 하는 고양이들과의 갈등이 모순인 거다.

배윤환 Bae Yoon Hwan 광부들과 황금 분수대 Rumble & Crumble 2022 acrylic, acrylic spray on canvas 162 x 390 cm overall 162 x 130 cm each, 3 pieces ​ 한 동굴 안에서 광부들이 계속해서 솟아나는 황금 분수대 앞에서 우르르(Rumble)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소리를 낼수록 황금이 더욱 많 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 동굴은 무너지고(Crumble) 있다. 광부들 사이에는 곰, 카나리아, 두더지, 여우 등 동물들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무너지고 있는 동굴 천정을 바라보지만 광부들은 오로지 황금만을 바라보고 있다. 인간과 동물은 항상 공존하여 살아 가고 있으나,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분명한 사실을 해학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갤러리바톤 <​​What? In My Back Yard?!> 전시 전경

대작도 워낙 많이 그린다. 이야기를 가득 넣어 둔 모습은 브뢰헬Pieter Bruegel을 떠올리게도 하고… 다양한 군상들이 등장하는데 이번 신작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작을 그리는 이유는 하나다.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작업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래로 예를 들면, 큰 그림은 내가 소리칠 수 있는 무대다. 큰 그림이 있기에 작은 그림도 그릴 수 있다. 큰 작업을 할 땐 두렵지 않다. 이야기를 펼칠 공간도 많고 숨을 곳도 많으니까. 예전에는 수십 개의 이야기를 욱여넣기도 하고 말대로 브뢰헬 얘기도 들었는데, 요즘은 화면에서 중심이 되는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한다.

 

 

여러 매체를 활용한다. 특히 애니메이션 작업은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헛발질>, 2020)과 <제17회 인디애니페스트>(<파쇄기>, 2019) 에도 출품했다.

내 작업의 뿌리는 이야기다. 그걸 표현하는 과정에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기에 애니메이션이 적합할 때가 있다. 작업을 본 한 교수님의 추천으로 우연히 영화제에 출품하게 됐는데, 그렇다고 갑자기 뭐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려는 건 아니다. 앞으로도 애니메이션은 계속 만들 생각이 있다. 재료 역시 늘 아크릴만 쓰면 지루하니, 이것저것 호기심을 부려보는 거다. 다른 재료를 쓸 때 처음은 힘들지만 익숙해져서 손에 잘 익게 되면 또 하나의 무기가 생기는 기분이다. 마치 포토샵에 툴 박스가 하나 더 생긴 것처럼.

배윤환, 마마 우 MAMA WOOOO 2022 acrylic on canvas 112.2 x 162.2 cm 작가는 상상 속 합창단이 영국 락그룹 퀸(Queen)의 유명 노래 ‘Bohemian Rhapsody’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그려냈다. 합창단은 저음으 로 “우~” 소리를 내며 화음을 모으고 있고 지휘자인 눈사람은 이들의 뜨거운 입김에 의해 녹아 내리고 있다. 화면 뒤로 자리한 무대 배경 장 치는 이솝우화의 해와 바람을 연상 시키는데, 사회집단으로서의 인간 활동에 따른 모든 생산과 배출 활동이 지구 환경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암시한다.

요즘 자주 접하는 것은?

오디오북과 유튜브 그리고 고전미술. 현대미술을 하는 사람이지만 고전미술이 좋다. 오디오북도 세계문학전집을 듣는데 노스탤지어처럼 마음의 안정감을 느낀다. 예전엔 못느꼈는데 요즘은 앙리 마티스의 작품이 무척 좋다. 이번 작업 중 <긴장감은 사라졌지 The Thrill is Gone>에 그의 <피아노 레슨>이 일부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배윤환 작가는 어두운 터널을 방지턱도 없이 훅 지나온 것 같다고 했다. 가슴이 쿵쾅거리도록 힘겨운 침체기를 빠져나온 작가는 새로운 챕터를 맞았다. 그가 화면에 펼쳐내는 이야기는 다채롭고 위트있으며 그 뿌리는 더 단단해졌다. 7월 말에는 목동 현대백화점에서 갤러리바톤이 주최하는 작은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다.

배윤환은 서원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경원대학교 회화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제36회 중앙미술대전의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었으며, 두산갤러리 뉴욕(2018), 스페이스몸 미술관(2014), 인사미술공간(2014)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서울시립미술관(2022, 2018), 금천문화재단(2021), 경기도미술관(2019), 제주도립미술관(2019) 등의 비중있는 그룹전에 참여해왔다.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 두산갤러리 뉴욕 레지던시, 서울시립 난지창작 스튜디오 등에서 입주작가로 활동했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소진 수석 에디터

도움 갤러리바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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