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5

넘치지 않게 오래오래, 하이브로우

하이브로우의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순간
‘희 형제(Hi Brothers)’에서 따온 이름에서 드러나듯, 하이브로우(Hibrow)는 이천희와 이세희 형제가 2013년 시작한 브랜드다. 창립 1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는 셈. 10년 동안 한 브랜드를 지속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고, 그 성취가 단 한 번의 성공으로 가능한 것은 더더욱 아닐 테다. 하이브로우는 아웃도어 가구에서 시작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영역을 넓혀왔다. 다양해지는 동시에 심지를 지키며 성장한 하이브로우, 이들의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순간에 대하여.
© designpress

집 안으로 들이는 가구를 넘어 어디든 휴식처로 바꿔주는 가구. 하이브로우의 ‘밀크 박스’는 가구를 다르게 정의하면서 만들어졌다. 우유를 운반하는 플라스틱 상자에서 영감을 받은 이 제품은 의자나 테이블로 사용할 수 있는 데다 부피가 작고 가벼워 이동성이 좋다. 처음엔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졌다. 밀크 박스가 있다면 산과 들, 강과 바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안락해진다는 거였다. 시간이 흐르며 밀크 박스의 다른 쓰임새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자동차 트렁크나 실내 자투리 공간을 알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수납 박스로서도 훌륭했기 때문. 이 제품은 많은 이에게 두루 사랑받으며 지금까지 대략 20만 개가 판매됐다. 성공은 달콤했다. 그러나 형제는 밀크 박스의 히트에만 머무를 수 없었다. 가구 만들기를 좋아해 브랜드를 시작했지만, 생산량이 늘고 직원이 생기며 좋아하는 마음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책임감이 따라붙었다.

이세희 · 이천희 대표 © designpress

배우와 건축가, 사업가 되다 

형 이천희는 배우이자 가구 공방 ‘천희공작소’를 운영했다. 건축가로 일하던 동생 이세희에게 가구 일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한 사람은 형이었다. 이직을 앞두고 있던 동생은 마지막 순간 입사를 고사하고 형과 함께하기로 한다. 여차하면 하던 일로 되돌아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금세 지났고, 그는 문득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알아챈다. 사업가로 살며 형제의 삶은 한 해 한 해 틈 없이 흘렀다. 모든 결정을 직접 해야 했고 그에 따르는 결과는 오롯이 책임져야 했다.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내부에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잖아요. 선택에는 어떤 결과든 뒤따르기 마련이고, 피드백은 바로바로 쏟아지죠.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오류나 실수가 줄어들어요. 사업도 결국 선택과 결정의 반복인 듯해요. 반복하다 보니 나아지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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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걸 만들겠다는 다짐이죠.

필요하지 않은데 구색을 갖추려는 뭔가를 하지 말기, 이 생각은 여전해요.

함께 키우는 기쁨 

실수를 줄이는 일 말고도 세월은 여러 변화를 불러왔다. 초반엔 기획부터 디자인, 제작, 판매 과정을 형제 두 사람이 전부 해내야 했다. 팀이 커지면서 업무를 전문적으로 분리하는 한편, 여러 멤버의 색깔을 어우르게 됐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어요. 캠핑, 바이크 등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친구들이 절반이고, 야외 활동은 안 해도 하이브로우 제품 스타일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또 있어요. 회사 분위기가 유쾌해 보여서 합류했다는 친구, 그저 일터로 이곳을 대하는 친구도 있고요. 신기하게도 다들 선해요. 혼자 욕심부리는 사람도 없죠. 마음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브랜드를 키워나가고 있다고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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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양평으로 

오프라인 공간 역시 장소를 옮겨왔다. 2014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쇼룸, 2015년 용산구 이태원 H 라운지가 시작이었다. 2017년 강원도 원주에 오픈한 하이브로우 타운은 쇼룸과 식음료 매장, 작업장과 창고를 한데 모은 곳이었다.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하는 한편, 업무 동선을 단축하려는 결정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하이브로우는 경기도 양평 590평 부지에 새로운 기반을 일구고 있다. “오프라인 공간을 옮길 때마다 에너지가 과하게 소모됐어요. 거점을 확실히 잡아야겠다고 결심했죠. 원주에서 의미 있는 추억을 쌓았지만, 접근성이 다소 아쉬웠어요. 앞으로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방 프로그램이나 일일 클래스처럼 다양한 일을 도모하고 싶어요. 양평은 천희 형이 사는 곳이라 이미 익숙하기도 하고, 자연과 도시가 모두 가까워 더할 나위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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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오류나 실수가 줄어들어요. 사업도 결국 선택과 결정의 반복인 듯해요.

반복하다 보니 나아지는 거겠죠.

형제는 양평 신사옥을 기꺼이 찾아오고 싶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만드는 일에 여념이 없다. 사무실, 작업실, 물류 창고 등 업무 관련 공간을 갖추는 건 물론이고, 쇼룸, 카페와 레스토랑, 푸르른 자연이 조화로운 곳으로 준비해 6월 말 대중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브랜드가 나아갈 방향과 색깔을 확실히 보여주기에 오프라인 공간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드물 거예요. 우리가 지금껏 장소를 찾아 헤맨 이유가 거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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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을 적당히 

시간은 뭔가를 바꾸기도 하지만, 결코 달라지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하이브로우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걸 만들겠다는 다짐이죠. 필요하지 않은데 구색을 갖추려는 뭔가를 하지 말기, 이 생각은 여전해요.” 이는 하이브로우 제품 디자인에서도 나타난다. 디자인 철학은 명료하다. 기본적인 쓰임에 충실하게,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예컨대 캠핑용 가방을 만든다면 의자에 거는 용도로 고리는 달 수 있지만, 전자기기를 충전하는 기능까지는 고려하지 않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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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을 기억하기 

변하지 않은 건 또 있다. 언제나 하이브로우 물건을 잘 써줄 사람들 사이에 있겠다는 다짐. 무주 산골 영화제와 양양 서핑 축제, 뮤직 페스티벌 등에 매년 제품을 지원하거나 부스로 참가하는 이유는 그들과 함께하고 싶어서다. 하이브로우가 표방하는 라이프스타일에 공감하는 이들이 모인 곳, 그 신(scene)에서 함께 움직이는 브랜드가 되고자 하는 것. “사실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매출과 직결되지는 않아요. 다만 하이브로우는 캠핑, 서핑 등 아웃도어 신에 뿌리를 두고 성장했잖아요. 우리의 바탕을 잊지 않고, 그 속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픈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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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프 이즈 이너프(Enough is enough). 적당한 것으로 충분하다는 의미로 붙인 하이브로우의 슬로건이다. 슬로건을 정한 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이 생각은 다만 확고해질 뿐이라고 형제는 말한다. “캠핑이든 서핑이든 낯선 일에 뛰어들고 싶을 때, 떠오르는 적당한 선택지로 존재하고 싶어요. 무언가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가뿐하게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에 우리가 있기를 바라요.”

김유영 기자

사진 강현욱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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