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킨스는 스스로 ‘이미지 디렉터’를 자처하면서 매장 디자인부터 카탈로그 레이아웃까지 회사 이미지의 모든 활동에 관여했으며, 이후 패션 산업이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을 우려해 에스프리의 경영권을 매각하고 남은 재산의 대부분을 토지 보존과 환경 보호에 쏟았다. 이러한 창업자의 진보적인 태도는 에스프리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에스프리는 로고타이프를 전면에 내세운 컬러풀한 의류, 삶과 젊음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비주얼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특히 80년대 중반부터 에이즈 인식 개선이나 책임감 있는 소비 장려 캠페인을 내놓을 만큼 진취적이고 포용력 있는 브랜드였다. “인종 차별과 내 친구들을 죽이는 것을 멈춰라”, “지구를 청소하세요, 내 방은 말고요” 같은 캠페인 문구는 지금 들어도 어색하지 않다. 1989년 재생지에 콩기름으로 인쇄한 카탈로그를 출시하기도 했다. 에스프리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산층이 즐겨 입는 하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로 오랫동안 군림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내리막이 있는 법. 2010년대는 유니클로, 자라, H&M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패권을 쥐는 시대였다. 초기에 심플하고 캐주얼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었던 에스프리는 변화 없는 디자인으로 브랜드가 노후화되었고, 경쟁사에 비해 상품 업데이트 주기도 느렸다. 젊은 세대의 취향을 따라가지 못한 브랜드가 쇠락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에스프리는 북미 시장에서 전면 철수했고 아시아 시장에서도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