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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2-04-14

그래픽 디자이너가 이태원에 만든 공유 오피스

배우고 싶은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공간, 썬트리하우스

일하기 좋은 공간이란 어떤 곳일까? 금종각 그래픽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이지현 디자이너는 독립적인 한편 타인과의 연결감을 간직하는 공간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골목에 자리한 썬트리하우스(Suntree house)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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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트리하우스 2층

 

썬트리하우스는 다가구주택을 개조해 만든 아담한 공유 오피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해와 나무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 이름에 담았다. 따로 일하되 싱그러운 에너지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자, 자연스럽게 환기되는 일터인 썬트리하우스에 다녀왔다. 이지현 디자이너는 디자이너가 공유 오피스를 오픈한 계기, 그래픽 디자인과 공간 오픈이 닮은 점, 이곳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워크숍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3층 한편에 놓인 식물

 

Interview with 이지현 디자이너
금종각 그래픽 스튜디오·썬트리하우스 대표

 

금종각이라는 그래픽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어요. 어떤 작업을 해 왔나요?

북 디자인을 주로 하고 가끔 브랜딩도 함께 진행해요. 금종각 이름은 ‘금융소득세, 종합 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을 디자인을 통해 많이 내는 스튜디오가 되겠다’라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얼마 전 창립 3주년 파티를 했고요. 글이나 사진을 다루는 작가부터 서울 도서관과 같은 관공서, LG와 GS 리테일 등 대기업까지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일했습니다.

 

올해 초 공유 오피스 썬트리하우스를 오픈했죠. 공유 오피스를 오픈한 계기가 있나요?

썬트리하우스는 ‘배우고 싶은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다’라는 저의 필요에서 출발했습니다. 2019년 금종각 스튜디오를 시작한 직후엔 집에서 일을 하다가 친구의 스튜디오를 함께 사용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정식 사무실이 점점 더 필요해지더군요.

 

썬트리하우스 건물 외관 ⓒ 금종각

 

공유 오피스로 생각이 나아간 데는 제가 네덜란드에서 스튜디오를 처음 시작할 때 이용했던 소규모 공유 오피스의 영향이 큽니다. 2019년에 네덜란드로 워킹홀리데이를 갔는데요, 취업이나 유학 목적으로 떠난 게 아니어서 사람을 만날 접점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그저 가만히 일만 한다면, 혼자 있는 것과 다르지 않잖아요. 사람을 만나려고 공유 오피스를 찾기 시작했어요.

 

당시 머물던 마을에 있는 공유 오피스를 거의 다 가봤는데, 규모가 큰 곳은 익명성이 강해서 누군가를 알아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찬찬히 둘러본 후 ‘로테르담 콜렉티프(Rotterdam Collectief)’라는 소규모 공유 오피스를 선택했어요. 그곳에선 사람들과 점심을 만들어 먹고, 비슷한 일을 하는 디자이너끼리 비자를 해결한 방법이나 클라이언트를 구하는 팁을 나누는 등 일상적인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어요. 사실 공유 오피스에 들어간다고 해서 서로 일을 준다거나 대단한 협업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나와 공통점이 있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말 커다란 심적 자극을 얻을 수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로테르담 콜렉티프 내부. 출처: 인스타그램 @rotterdamcollectief

 

썬트리하우스의 공간 구조가 궁금합니다. 오피스, 미팅룸, 주방 등으로 나뉜다고 들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요?

썬트리하우스는 총 일곱 석을 갖춘 작은 규모예요. 2층에는 개인 업무 공간 다섯 석과 전화방, 회의실, 화장실, 커피 4종을 만들 수 있는 탕비실이 있고요, 3층에는 개인 업무 공간 두 석과 6~8인이 미팅할 수 있는 회의실, 탕비실이 있습니다. 일하다가 바람을 쐬고 싶다면 잔디가 깔린 옥상에서 커피를 한잔할 수도 있어요. 가까이는 남산, 멀리로는 여의도까지 보인답니다.

 

설계도 일부 ⓒ 금종각
왼쪽부터 2층 평면도, 3층 평면도 ⓒ 금종각

 

디자이너가 만든 공유 오피스예요. 공간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단계를 거쳐나갔나요? 디자인 작업과 닮은 점이 있을까요?

공간의 목적을 정의하고 그에 맞는 디자인을 수행한다는 측면에서 북 디자인 작업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계획하고 구현하기까지 더 많은 허가 절차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어 작업의 복잡도는 다소 높게 느껴졌지만요.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지 스스로 깊이 고민하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공간 성격에 대해 우선순위를 정했습니다. 이 과정이 없다면 종합 선물세트처럼 모든 것을 다 갖춘 공간을 만들고 싶어질 수 있어요. 색깔이 분명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면, 발주자가 이를 먼저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썬트리하우스 기획 단계의 무드 보드 일부

 

이후에는 함께 작업할 파트너를 선정했어요. 곤란한 장소를 가져온 후 공사로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지 않아서, 작업하기로 한 건축사님과 같이 건물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 후엔 건물을 실측하고, 공간 디자인을 하고, 공사를 하는 사이사이에 가구와 소품을 몇 달간 주문하고 찾아다니는 단계를 밟았습니다. 금종각은 색감이 강한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인데, 건물에도 동일한 아이덴티티를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생생한 아이템과 식물이 잘 어우러진다면 활력을 주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2층 미팅룸
2층 주방

 

여느 공유 오피스와 비교해 썬트리하우스가 가진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좋아하는 동료가 작업실을 찾는다면 유명 공유 오피스들과 비교해 본 후에도 자신 있게 썬트리하우스를 권하고 싶었어요. 그렇기에 저 스스로 이용하고 싶은 공간을 지향하며 만들었고요. 이용자가 마음 붙이고 편히 머물 만한 곳으로 오래 유지하는 것을 공간의 목표로 정했기 때문에, 수치로만 따졌을 때 수익성은 매우 낮습니다. 수익성을 높이려면 고정 데스크 시스템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한 자리를 공유하는 공유 좌석 시스템을 차용하는 편이 나아요.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내 사무실’이라고 여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자 전부 지정 좌석제로 운영하는 한편, 가격도 주위 대형 공유 오피스의 반값으로 설정했습니다. 의미 있는 수익이 남지 않는 시스템이라, 이곳과 비슷한 공간을 영리 목적으로 만들기란 구조적으로 쉽지 않을 거예요.

 

2층

 

널찍한 가구, 알록달록한 컬러, 다채로운 식물로 이뤄진 풍경이 좋더라고요. 공간 콘셉트가 궁금해져요.

공간 콘셉트는 썬트리하우스라는 이름의 의미와 맞닿아 있어요. 서로 해와 나무가 되어 함께 있기만 해도 힘을 얻는 공간, 오래도록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생명력 충만한 공간이라는 거죠. 그래서 햇살 잘 드는 곳으로 장소를 구했어요. 이곳에선 다양한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3층

 

조명, 의자, 컵과 도어 매트 등 공간을 채우는 물건 하나하나에 공을 많이 들인 느낌이에요. 어떤 기준을 갖고 물건을 골랐나요?

평소 공간 꾸미기를 좋아해서 인테리어 관련 자료를 부지런히 찾아보는 편인데요, 어느 날 문득 ‘비싸고 좋은 것’은 도리어 쉽게 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색깔을 정하고 이를 잘 나타낼 수 있는 물건을 어우르는 일에 힘써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근마켓에서 태양열로 충전하는 파라솔을, 해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조명을 구했고요.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위트와 생기 넘치는 소품을 찾을 때 중고거래 플랫폼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특별히 비싼 물건이 아니라 평소에 많이 보는 물건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물류센터에서 많이 사용하는 실버 랙(rack), 공사장이나 청과물 가게에서 쓰는 바구니를 비치한 이유예요.

 

흔히 볼 수 있는 실버 랙과 바구니를 적절히 활용했다.

 

썬트리하우스는 어떻게 일하는 이들에게 알맞을까요?

장기적으로 자기의 일을 하는 프리랜서에게 가장 잘 맞는 장소예요. 9개월을 등록하면 월 39만 원꼴인데, 주소 등록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 같아요. 1개월, 3개월, 6개월, 9개월과 같이 다양한 단위로 등록할 수 있고요. 24시간 지문으로 출입할 수 있는 도어록이 있어서 이용 시간에 제한은 없어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이 상주하기 좋은 곳입니다.

 

3층 미팅룸

 

트라이얼 패스(Trial Pass)가 있다는 점이 눈에 띄어요. 등록하기 전 썬트리하우스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서비스인가요?

사무실을 정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큰일이죠. 긴 시간 일과 휴식하며 보낼 곳으로 이 공간이 본인과 잘 맞는지 알아볼 수 있도록 트라이얼 패스를 만들었습니다. 15만 원인 트라이얼 패스로 썬트리하우스를 일주일간 체험할 수 있어요.

 

서울, 그중에서도 용산구 이태원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나요?

일이 바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디자이너로서 요즘 일어나는 일에 대한 업데이트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용산구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용산구 안에서 괜찮다 싶은 지역이라면 다 가 봤는데, 이태원과 해방촌이 유일하게 동네 분위기와 가격이 모두 맞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거주지는 해방촌, 업무 장소는 이태원으로 선택했습니다.

 

공사 과정

 

디자이너로 오래 일해 오면서, 일하기 좋은 공간과 환경에 대해 자주 떠올렸을 것 같아요. 그 생각을 들려준다면요.

공간의 관점에서는 분리와 통합이 잘된 공간이 일하기 좋은 장소라고 생각해요. 완전히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일을 하면 긴장이 떨어지기 쉬운데요, 다른 사람과 적절히 섞인 공간에서 일하면 긴장 상태를 알맞게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카페에 가서 일하는 이유와 같은 이치랄까요? 외부인을 만나는 미팅이 있을 때는 아주 조용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이 드는 독립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았습니다.

 

환경의 관점에서는 개인 영역을 갖추는 한편 원할 땐 어렵지 않게 동료와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이 좋습니다. 혼자 지내며 겪는 경험과 타인과 종종 대화를 나누며 겪는 경험은 그 범위가 달라요. 업무 환경으로서는 적절한 장비가 준비된 상태여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겠죠.

 

썬트리하우스에서 발견한 1980년대~1990년 발행 <월간 디자인>. 또 다른 책꽂이에는 창간호도 꽂혀 있었다. ⓒ designpress

 

지현 님의 그러한 생각이 썬트리하우스에 반영되었겠군요.

일할 때는 자신의 자리에서 몰입하되 밥을 먹을 땐 스몰 토크를 할 수 있고, 미팅이 있을 때는 완전히 차단된 공간에서 조용히 대화에 집중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현재 이곳을 찾는 분 중에는 유독 시각 디자이너가 많아요. 이들이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나누거나 회사 운영에 관한 소소한 팁을 주고받고, 세무사를 소개받는 등 수평적으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썬트리하우스의 묘미인 동시에 이상적인 오피스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각 디자이너가 유독 많이 찾아 주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또 어떤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나요?

편집 디자인을 주로 하는 저 이외에 브랜드 디자이너 두 명, 출판사 운영자, 영상 디자이너, 자신의 사업을 준비하는 분이 있습니다. 단기로 이용한 분들까지 고려하면, UI/UX 디자이너, 건축 디자이너, 콘텐츠 마케터 등 원격으로 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디자이너가 특별히 많아질 줄은 몰랐는데 주위에 디자이너가 많이 생기니 좋은 점이 많아요. 다양한 클라이언트에 대해 듣거나 고민을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게 됐죠. 견적은 어떻게 내는지, 프로젝트 기간은 얼마나 잡는지, 지금의 회사 운영 방식에 각자 문제점은 없는지, 요즘은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확실히 혼자 일할 때보다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다 보면 걱정되는 일에도 용기와 자신감을 얻어 한 번 더 도전하게 되기도 합니다. 혼자 일할 때보다 훨씬 행복해져요.

 

 

썬트리하우스가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나요?

자신의 내일이 조금 더 나을 것이라고 소망하며 노력하는 사람들이 회사에서처럼 일상적으로 얼굴을 마주치면서, 수평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썬트리하우스는 사실 하나의 장소일 뿐이지만, ‘이곳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 내가 성장할 수 있겠다’라고 기대하게 만드는 좋은 토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 역시도 이곳에서 한 해 한 해 더 성장하고 싶고요.

 

취미 삼아 자동차 내부를 디자인하고 있다. ⓒ 금종각

 

자기 계발이나 높은 생산성도 좋지만, 때로는 의도적으로라도 비생산적인 즐거움을 추구해야 삶이 더 즐거워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미래에 해외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그때 이용할 자동차의 내부를 취미 삼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벤츠 스프린터, 램 프로마스터 등 많은 자동차를 거쳐 요즘은 현대 솔라티를 이용해 레이아웃을 짜고 있는데요, ‘대도시’를 ‘파트너와 둘이서’, ‘각자의 직업을 유지한 채로 일을 하며’ 장기로 여행 다닌다는 전제하에 자동차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썬트리하우스를 만들던 과정과 많이 닮았습니다. 상상할 때마다 아주 행복해서 브레인스토밍만 하고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어나가는 단계에서 커다란 행복이 피어나는 것 같아요. 썬트리하우스도 많은 이의 계획이 현실이 되어가는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김유영

사진 제공 금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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