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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8

단정한 절제가 깃든 한국 조명

한국을 대표하는 조명 브랜드 AGO
한국을 대표하는 조명 브랜드가 있는가?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스웨덴에 루이스 폴센, 영국에 톰 딕슨이 있다면 한국에는 ‘아고(AGO)’가 있다. 아고는 30년간 을지로에서 조명 유통업에 종사한 이우복 대표가 3년 전 시작한 브랜드다. ‘한국에 이 정도 조명 브랜드는 하나 있어야지’ 싶은 생각으로 나섰는데, 솔직히 이 정도로 시간과 돈이 들 줄 몰랐다. ‘밤잠 이루지 못한다’는 표현을 실감할 정도로 깜깜한 시간이 이어졌지만 이젠 긴 터널을 어느 정도 벗어난 느낌이다.

창간호 기념 ‘find IN LIVE’ 첫 방송 ‘아고’ 편 다시 보기

서커스 by 바이마스 U 자형 모듈을 다양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 designpress

 

지난해 5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등장한 아고 부스를 두고 ‘찐팬’의 행렬이 이어졌고, 유럽 도시 곳곳에서도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과 제조, 유통과 AS까지 하나의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일은 기존에 경험한 유통업과 차원이 달랐어요. 아무도 등 떠밀지 않았으니 끝까지 제가 책임을 져야죠. 아고가 해냈으니 나도 한번 해볼까? 라는 생각으로 ‘디자인 바이 코리아’ 조명 시장에 경쟁자가 많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한국 조명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이우복 대표와 아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유화성을 소개한다.

 

이우복 대표 © designpress
유화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designpress

 

아고의 첫 시작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디자인재단과 중구청이 디자이너와 상인을 연결하는 ‘바이 을지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역 상인과 디자이너를 연결해 새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와 산업을 활성화시키자는 뜻깊은 프로젝트. 당시 한국조명 유통협동조합 대표를 맡고 있던 이우복 대표와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유화성이 만났다. 프로젝트가 끝나갈 무렵, 이렇게 끝내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유화성이 조명 브랜드 개발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했고 이우복 대표가 이에 화답했다. 두 사람은 복제품이 즐비한 현 조명 시장의 위기, 디자인 오리지널리티 브랜드 부재에 대한 아쉬움, 잠재 수요로 인한 시장의 가능성에 공감했다. 이우복 대표는 일생 동안 쌓아온 자본을, 유화성은 그간 쌓아온 경험을 올인하는 결정이었다.

 

서커스 by 바이마스, 외벽, 거실 어느 곳에나 설치할 수 있는 조명. © designpress

 

사람들이 생활하는 주거 공간, 사무 공간을 보면 그 시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 환경에서 사용되는 사물을 만든다는 것은 곧 오늘날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고는 조명 하나일 뿐이지만 시대를 대변하는 물건을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했다.

– 아고 이우복 대표

 

 

아고는 2019년 9 월, 파리 메종오브제에서 공식 론칭했다. 2020년 초에는 메종오브제와 스톡홀름 가구박람회에 등장해 본격적인 승부수를 던졌고, 좋은 브랜드를 보유한 해외 에이전트들로부터 흥미로운 제안을 여럿 받았다. 또한, 아고 컬렉션 중 유화성이 디자인한 서커스(Cirkus) 라인은 ‘월페이퍼 디자인 어워드 2020’에 선정되며 한국 리빙 디자인사에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

 

서커스 벽등, 서커스 트랙 모듈러

 
서커스 by 바이마스, 스폿라이트 또는 무드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 designpress

 

Interview with

유화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고는 건축 조명과 장식 조명의 경계를 아우르는 조명을 추구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둘을 거론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장식 조명과 건축 조명 사이에서 고민하는 건축가, 디자이너에게 좋은 선택지를 제시하고 싶었어요. 매립 등이나 스폿 조명처럼 정확하게 조도를 계산하고 설치의 효율성에 중점을 둔 것이 건축 조명이라면, 장식 조명은 하나의 오브제와 같죠. 장식 조명처럼 오브제 역할을 하면서도 건축 조명의 요구를 반영하는 지점을 찾아 조형성과 기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아고 조명은 슈트와 캐주얼에 두루 어울리는 스니커즈, 혹은 축구에서 공격과 수비를 아우르는 윙백과 같은 존재입니다.

 

프로브 by 빅게임 원하는 자리에 빛을 비추는 스폿 조명, 은은한 빛을 내는 무드등 중 최상의 조명을 선택할 수 있다. © designpress

 

“단순히 소비되어 없어지는 디자인이 아니라 100년 이상 지속되는 디자인을 추구한다”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콘셉트가 아니라 실제 경험에 근거한 것입니다. 스웨덴에서 한 지인의 집에 갔었는데 ‘스웨디시 디자인 앤티크’로 꽤 유명한 조명이 걸려 있었어요. 평소에 탐냈지만 고가라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조명이었기에 물어봤습니다. 혹시 합리적인 가격에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사심도 있었어요.(웃음) 답변이 의외였는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 했어요. 엄밀히 말하자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집에 있던 것을 가져왔다고 했어요. 조명과 가구가 대물림되어 사용된다는 것을 이야기로만 듣다 실제로 본 것이죠. 좋은 디자인은 그와 같은 것이라 느꼈어요. 한 시대를 풍미한 이후에도 그 가치가 후대에도 이어지는 디자인. 그것이 가능한 것은 기본을 지키기 때문일 것이고요.

 

아고의 첫 컬렉션에 빅게임, 요나스 바겔, 존 아스트버리 & 토베 탐베르트, 김진식, 스튜디오 워드 등의 디자이너가 이름을 올렸어요.

브랜드의 방향성을 정립한 후 협력 디자이너들을 찾았어요. 제가 전체 디렉팅을 맡고 각 컬렉션별로 고유한 디자인 감수성을 드러낼 수 있는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는 방식이었죠. 유럽은 제조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협업하는 일이 많은데 저는 그 꼼꼼하고 단호한 협업 과정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라 생각해요.

 

프로브 펜던트 레일 글라스 조명

 

프로브 by 빅게임 기하학적 모양이 세련된 현대적인 조명. ©designpress

 

꼼꼼하고 단호한 협력 과정 때문에 파트너 찾기에 꽤 애를 먹었다고 들었어요.

을지로에서 제 별명이 일미리였어요. 매번 1mm, 0.1mm를 입에 달고 다녀서 그랬다고요. 재미있는 것은 이제 이우복 대표 역시 0.1mm의 중요함을 느끼고 함께 집착한다는 것이에요. 협력업체를 방문할 때마다 그들의 한숨과 긴장을 느꼈지만, 이제는 그들 모두 우리 뜻을 이해하고 동참했기에 현재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어요.

제작 과정 중 에피소드를 말해준다면요?

스피닝 과정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10번 넘게 금형을 수정했어요. 중도에 작업을 포기한 제작 업체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곳을 찾았어요. 이런 과정을 몇 차례 겪고 나니 우리는 타협이 아닌 모색하는 쪽에 더 익숙해졌고요. 프레스와 압출 과정에서도 버려진 금형의 수를 헤아리기 힘들었죠. 물론 다른 분야의 제품들 역시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개발되기에 이 과정들이 특별하다 말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남들이 겪었다고 해서 이 과정이 당연해지지는 않아요.

 

프로브 펜던트 레일 스팟

 

모찌 by 바이마스 부드러운 떡을 가볍게 찌른 듯한 형상의 조명. © designpress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로벌 수준의 디자인이라 말할 수도 있을 텐데, 조명이라 하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글로벌 스탠더드를 기술의 수준으로 평가할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모바일폰 하나만 보더라도 기술이 평준화되었고 더 이상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이 나오기 힘들죠. 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이 즐기느냐의 문제입니다.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나름의 풍토와 문화를 갖고 있듯 세계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어요. 그럼에도, 자국민이 아니고 자신의 문화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글로벌 스탠더드라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아이폰과 같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어가는 나라는 몇 안 되는데, 한국도 이제 그 대열에 합류한 것 같고요. 아쉽게도 조명이나 가구는 아니죠.

아고 라이팅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겨냥한 제품이었군요.

저뿐 아니라 모든 디자이너가 그럴 거예요. 목표한 것은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이었고 평가가 냉정할 거라 예상했어요. 그래서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디테일에 집중했습니다. 과정 중에는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어김없이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타협을 지양했기 때문에 ‘아고와 일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어요.

 

모찌 펜던트 조명

 

앨리 by 요나스 바겔 겨우내 빛이 부족한 스웨덴에서는 아늑함을 연출하기 위해 테이블 위에 조명을 올려둔다. © designpress
을지로 대림상가 내 위치한 아고 쇼룸. 섬처럼 동떨어진 느낌이지만 누구라도 반기는 섬이다. © designpress

 

루이스 폴센이나 프리츠 한센 등 북유럽에는 세계적인 조명 브랜드가 많아요. 그들이 조명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와 좀 다른 거 같기도 해요.

조명은 물론 가구의 일부지만 어떤 용도의 공간을 정의해주기도 해요. 조명이 뿜어내는 빛을 통해 사물의 실루엣과 색상, 나아가 공간 전체를 인지할 수 있으니까요. 공간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서 조명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아고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조명은 공간이 요구하는 바를 충족하고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조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앨리 펜던트 조명

 

 

SME가 발견한 ‘창작 법칙’

아고라이팅

‘글로벌 스탠더드’에 도달하기 위해 제품이 갖춰야 할 점

 

 

1. 글로벌이 아닌 로컬에 집중할 것

자신의 문화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글로벌 스탠더드라 칭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물건을 즐길 수 있느냐, 시작은 제품의 목적 자체를 글로벌이 아닌 로컬에 두었을 때 가능하다.

2. 엄격한 퀄리티 기준에 부합할 것

아고 라이팅은 조명 분야에서 자부할 만한 퀄리티를 이뤄냈다. 을지로 일대의 조명에서 1mm의 오차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아고는 다르다. 아고 제품에서 0.01mm는 0.01mm다.

3.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지킬 것

이우복 대표는 유화성 크리에이티브에게 브랜드 전반의 기획과 디자인을 일임했고, 본인은 제작과 유통을 책임졌다. 제조 과정별 장인에 속하는 기술자를 찾아 견고한 협력 관계를 맺는 것도 필수적인 일이다. 협력자간 서로의 선을 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사 전문은 〈find〉창간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제목 Ι find / 화인드 2022년 봄호

지은이 Ι 디자인프레스

발행일 Ι 2022년 3월 31일

판형 Ι 205mm x 265mm

ISSN Ι 2799-9963

 

에디터 Ι 김만나

포토그래퍼 Ι 김잔듸, 스튜디오 도시, 김동규

김만나
15년간 피처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네이버 디자인판 편집장으로 온라인 미디어를 경험하고 있다. 유머 감각 있고 일하는 80세 할머니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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