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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0

더 나은 삶을 제안하는 시대정신의 산물

프렌치 모던 가구의 선구자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클래식한 디자인 양식 ‘미드 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은 클래식을 넘어 트렌드가 됐다. 시대를 뛰어넘는 타임리스 디자인. 세월이 흘러도 어디에나 어우러지는 간결한 멋이 자랑인 미드 센추리 모던 양식에 휩쓸리며 한스 웨그너(Hans Wegner), 찰스 & 레이 임스(Charles & Ray Eames)같은 디자이너들의 이름도 몇 외웠을 테다. 혹 이에 머무르지 않고 더 다양한 사조, 특히 '프렌치 모던' 가구의 정수를 만나고 싶다면 이곳을 꼭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프랑스 리옹 출신의 가구 디자이너 앙드레 소르네(André Sornay)가 디자인한 'Rectangular Coffee Table set' | 이미지 제공: 르모듈러

 

‘미드 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40~1960년대에 걸쳐 새로운 생활양식의 디자인 운동이 꽃피었던 가구 디자인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오래 전의 디자인 양식이 현시대의 트렌드가 된 연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갈수록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기 보다, 시간을 뛰어넘어 언제고 통용될 아름다움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르모듈러(LeModulor) 권희숙 대표는 이처럼 지나간 시대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오랜 시간 지속된 가치를 품은 디자인을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특히,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미드 센추리 모던 양식에서 느껴지는 실용성과 기능성에 섬세한 아름다움을 더한 ‘프렌치 모던’ 가구도 주목받기를 바라면서 지난 1월 분더샵 청담에서 진행한 팝업 <봉주르, 무슈 디드로(Bonjour, Monsieur DISDEROT)>에 이어 이번 팝업 <실용을 넘어 아름다움으로: 프렌치 모던 가구의 선구자들>을 마련했다.

 

르네 갸브리엘의 'Stackable Chair'는 겹쳐쌓을 수 있도록 고안된 기능적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 이미지 제공: 르모듈러

 

전시 공간에 발을 들이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나란히 정렬된 의자 세 개. 다른 가구들을 살피기 전 가장 좌측에 놓인 의자, 르네 갸브리엘(René Gabriel)의 ‘Stackable Chair’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Stackable Chair’는 재난민들을 위한 가구를 제작해달라는 국가도시 재건부(ministère de la Reconstruction et de l’Urbanisme)의 의뢰로 르네 갸브리엘이 디자인한 것이다.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 당대 식사 한 끼 값에 판매되었다고 하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르네 갸브리엘은 장식예술가이기도 하고, 벽지 디자이너이기도 했으며 가구 디자이너로도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비록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인더스트리얼 가구가 그 시기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한 업적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딴 ‘르네 갸브리엘 상’이 생겼다. 이번 팝업에서 소개하고 있는 대다수의 가구는 바로 이 상을 수상한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것들로, 아래에서 일부를 소개한다.

 

Les Lauzières Arc 내 소나무를 활용해 바(Bar)를 제작했다. | 이미지 제공: 르모듈러
실제 1970년대 Les Lauzières Arc에서 사용되었던 바(Bar) | 이미지 제공: DANKE 갤러리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은 스키를 즐겨 스키장을 찾는 일이 잦았다. 이 때문일까? 스키 리조트 레 로지에르 쟈크(Les Lauzières Arc) 프로젝트를 맡은 그는 인테리어 디자인부터 작은 가구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 전체를 세심하게 이끌었다. 대부분의 가구는 리조트 부지 내 나무들을 재료로 한 것으로, 환경 조건을 건축에 적극 활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실제 리조트 내에서 사용됐던 바의 뒤로는 키친이, 앞으로는 다이닝이 위치해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데 꼭 맞는 가구였다.

 

패널이 사용됐던 중학교 건물(Collège les Vans Ardèche, France) | 이미지 제공: 르모듈러
이미지 제공: 르모듈러

 

얼핏 거울처럼 보이기도 하는 가구의 정체는 장 프루베(Jean Prouvé)가 디자인한 패널(Panel)이다. 아버지에게 배운 금속 세공 기술을 바탕으로 가구에 강판과 알루미늄 사용을 도입한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군대를 위해 조립과 해체가 가능하고 이동이 편한 조립식 막사 시스템을 설계하게 된다. 즉, 건축과 가구에 있어 끝없는 가변성을 품은 디자인적 확장을 이룬 것이다. 패널 또한 그 성질이 반영된 건축 요소로, 중·고등학교 건물에 사용되기도 했다.

 

하드보드로 제작한 장-루이 아브릴의 'Children Desk and Chair' | 이미지 제공: 르모듈러

 

종이로 만든 가구도 만나볼 수 있다. 장-루이 아브릴(Jean-Louis Avril)은 하드보드 공장(Carton)을 이끌던 이의 딸과 결혼하며 공장에 자주 드나들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하드보드 가구 디자인의 선구자가 된다. 그는 주로 아이들을 위한 디자인을 내놓았는데, 이번 팝업에서 소개하는 ‘Children Desk and Chair’ 역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이들을 위해 디자인된 책상과 의자 세트이다. 모서리와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종이 특유의 세월의 흔적이 느껴져 더욱 매력적이다.

 

장-루이 아브릴의 'Soleil(Sun) Lamp' | 이미지 제공: 르모듈러
장-루이 아브릴의 'Lune(Moon) Lamp' | 이미지 제공: 르모듈러

 

장-루이 아브릴의 대표작은 하드보드 컬렉션 외에도 ‘Soleil’ ‘Lune’ 램프가 있다. 하드보드뿐만 아니라 스틸과 알루미늄 활용에도 능했던 그는, 동그란 두 눈에 수줍은 미소를 띠운 듯한 형상의 램프를 통해 특유의 위트 있는 디자인을 드러냈다.

 

이미지 제공: 르모듈러

 

이번 팝업에서는 앞서 소개한 가구들을 비롯, 피에르 디드로(Pierre Diderot)의 대표적인 모던 조명 ‘Table Lamp’부터 올리비에 무르그(Olivier Mourgue)의 ‘Florwer Lamp’ 시리즈, 세 가지 높이로 사용할 수 있는 마르셀 갸스꾸앙(Marcel Gascoin)의 ‘Three Position Stool’ 등 시대정신을 반영한 여러 가구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된 가구들에 궁금증이 인다면 권희숙 대표에게 물음을 던져보자. 아마 가구의 탄생 배경을 전해주는 그와 함께 하며, 오래 전 프랑스에서 숨쉬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세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밝히고자 했던 프랑스 가구 디자이너들의 산물은 현재를 살고있는 우리에게도 뜻깊은 의미로 다가올 테다.

 

 

김가인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르모듈러(LeModulor)

장소
코리아나미술관 space*c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827, 지하 2층)
주소
서울 강남구 언주로 827
일자
2022.02.11 - 2022.02.26
김가인
사소한 일에서 얻는 평온을 위안 삼아 오늘도 감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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