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7

부산 로컬 작가들이 북적이는 살롱

미술관, 쇼룸, 팝업 스토어이자 카페인 이곳은?
외출 한 번에도 많은 결심이 필요한 요즘. 공간은 이전보다 강력한 힘이 필요해졌다. 사람들을 문밖으로 이끌고 자리에 앉게 만들기 위해선 단순 1차 목적만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온 것이다.

 

부산 카페 ‘딥슬립커피(DEEPSLEEPCOFFEE)는 마치 이러한 트렌드를 예견이라도 한 듯, 오픈 때부터 여러 변화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건 ‘전시’. 미술관 같은 카페 내부엔 매번 부산 로컬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이 걸린다. 누구나 자유롭게 쉬다 갈 수 있는 카페이자, 부산 신진 작가들의 디딤돌이기도 한 딥슬립커피. 배성호 대표에게 이 같은 공간을 기획한 까닭을 물었다.

 

 

Interview with 배성호 대표

 

© DEEPSLEEPCOFFEE

 

매장명을 딥슬립커피로 정한 이유가 있을까.

맨 처음 공간을 시작했을 때 2층에 호스텔을 운영했었다. 호스텔과 카페의 느낌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는 재미난 요소가 필요해 만든 이름이다. 현재 호스텔은 사라졌고 남은 빈방을 부산 젊은 친구들의 단기 사무실과 쇼룸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끔 빈티지 숍, 팝업 스토어 등과 같은 장소로 변모하기도 한다.

 

해외에 거주한 적 있다고 들었다. 인테리어와 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던데.

시애틀과 뉴욕에서 20대를 보냈다. 특히 5년 동안 머문 뉴욕에서의 생활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브루클린 부시윅(Bushwick) 지역의 팩토리형 아파트에 거주했다. 대부분 공장형 건물들이라 층고가 높은 개방형 인테리어에 자연스레 매력을 느꼈다. 이외에도 지역의 아트 행사, 갤러리, 카페 등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카페 인테리어의 디테일적 부분은 ‘ninth street espresso’, 지금은 없어진 ‘whynot coffee’를 참고했다.

 

해외 거주 당시 딥슬립커피 공간에 영감을 줬던 순간들 © DEEPSLEEPCOFFEE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엔 독특하게 붉은빛 조명을 사용했다.

1층과 별개로 새로운 공간이 펼쳐질 것 같은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이는 암스테르담 배낭여행을 통해 영감받은 부분이다. 배낭여행 특성 상 여러 곳에서 숙박하며 다양한 건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1층은 펍이나 클럽, 카페로 사용하고 2층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깔끔한 호스텔로 운영하는 곳이 많았다. 아무래도 ‘Red light district’가 암스테르담의 관광지여서 그런지, 실제로 붉은 복도가 있는 곳도 여럿 있었다. 지역 라디오 스테이션인 ‘red light radio’의 인테리어에서 직접적인 모티프를 얻었다.

 

해외 여행 중 촬영한 사진들 © DEEPSLEEPCOFFEE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 DEEPSLEEPCOFFEE

 

얼마 전 내부 인테리어를 새롭게 단장했다. 어떤 점이 바뀌었을까.

기존엔 큰 테이블을 다 같이 공유하며 사용했다.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란 슬로건의 영향으로 ‘공유’의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체 인테리어 콘셉트는 ‘미술 작업실’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서 함께 책도 보고 작업도 함으로써 삭막한 분위기를 허물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며 불가피하게 개인 테이블로 변경하게 됐다.

 

* 영화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에 나오는 글. 나눌 때 비로소 진짜가 되는 행복처럼, 카페 공간을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하고 부산 미술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는 슬로건.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항상 덧붙인다.

 

 

의자와 테이블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단골손님과 함께 제작한 가구라고.

초창기 때부터 카페를 찾아주셨던 가구 디자이너 손님이다. 공간에 대한 가치관이 비슷해 새 테이블 제작을 부탁드렸다. 의자 역시 이 분의 작품이다. 오랜 시간 앉아있어도 무리가 없는 편안한 디자인을 목표로 했다.

 

기존 테이블의 모습. 많은 사람이 셰어할 수 있는 대형 테이블로 구성했다. © DEEPSLEEPCOFFEE
딥슬립커피의 새로운 좌석 © DEEPSLEEPCOFFEE

 

전시와 접목한 카페는 많지만 딥슬립커피는 단순 일회성에서 끝나지 않아 더욱 특별하다. 전시 관람을 위해 카페를 찾는 이들도 적지 않은 편이고.

카페 기획 단계부터 공간의 중심은 ‘전시’였다. 그림을 걸기 위해 모든 채광을 포기하고 벽을 쳤을 정도니까. 전시를 이끌어간다는 건 딥슬립커피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지금도 분기마다 실력 있는 부산 작가의 작품을 계속해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카페의 기본인 커피에 관해서도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인다.

 

 

커피 바 뒤편엔 항상 대형 작품이 전시돼 있다. 매장 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공간일 것 같다. 전시가 바뀔 때마다 교체되는 작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린 시절부터 전시장이나 특급 호텔 카운터 뒤편에 걸린 대형 작품들을 보며 감동받곤 했다.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더불어 공간은 크고 작은 변화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시를 변경함으로써 공간 전체의 분위기도 새로워지는 효과를 의도했다.

매 전시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커피 바 뒤편 공간 © DEEPSLEEPCOFFEE

 

함께할 작가는 어떻게 선정하는 편인가.

친누나가 한국화 작가다. 주로 누나에게 소개받는 편이다. 그중 딥슬립커피의 공간과 시기별 상황에 들어맞는 작가를 섭외한 뒤, 함께 기획한다.

 

 

현재 안도경 작가의 전시, <내송리-1077>이 진행 중이다. 소개 부탁한다.

무분별한 재개발로 인해 황폐해진 옛 마을의 아름다움을 기록한 전시다. 기차를 타고 등교했던 작가는 오랜 시간 함께하며 추억을 쌓았던 장소가 점차 사라져가자 커다란 공허함을 느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언젠가는 상상으로만 존재하게 될 장소들의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길 바란다.

 

현재 안도경 작가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 DEEPSLEEPCOFFEE

 

“작은 마을 옆으로 흐르던 작은 냇가의 물길이 점점 작아지더니 어느새 절반 정도 덮인 흙으로 침사지가 지어져 있었다. 산을 깎아 땅을 고르는 동안 고여있던 물.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어느새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듯 두꺼운 비닐과 마구잡이로 다져진 차가운 땅 위로 풀과 꽃들이 자라난다.”

 

© DEEPSLEEPCOFFEE

 

디제잉부터 팝업스토어, 공연에 이르기까지. 딥슬립커피는 전시뿐 아니라 여러 예술 활동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딥슬립커피의 목적은 부산 로컬 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부산의 젊은 아티스트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오픈 때부터 줄곧 팝업 행사, 벼룩시장, 음악공연, 연극, 작은 영화제 등을 이어왔지만 코로나로 인해 많은 제약을 받고 있어 아쉽다.

 

 

앞으로 딥슬립커피가 어떤 공간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나.

‘여행 중 방문한 이국적인 전시 공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영업 시간 월요일-토요일 11시-21시, 일요일 11시-20시
현재 전시 안도경 작가, <내송리-1077>
* 딥슬립커피의 블로그에서 진행 중인 전시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지선영

자료 협조 딥슬립커피

장소
딥슬립커피 (부산 수영구 수영로 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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