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5

순간적인 영감! 미래를 묻는 영화들

셀린박이 소개하는 국내 최초 디자인 영화 전시
“만약 ~라면?” 어린 시절 과학상상그리기 대회에 참가하면, 모든 공상의 시작은 바로 이 질문이었다. 바닷속에 돔으로 된 타운을 만들고, 가방에 고정된 스마트 우산을 그린 것도 ‘만약 물속에서도 살 수 있다면?’, ‘만약 손으로 우산을 들지 않고 다닐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많은 이들의 그러한 질문을 겹겹이 쌓아 올려 일궈낸 미래는,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재의 일상이 되었다. 그런 현재를 사는 당신, 마냥 꿈꿨던 대로 일상을 살고 있는가? 또는 어떤 미래를 꿈꾸거나, 우려하게 되었는가?
인스턴트 디텍션 전시 전경. 자료 제공 : 아이러브아트센터

 

여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에 똑같이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있다. 세계의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조망하는 근미래의 사회적 이슈에 ‘만약’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리서치와 연구를 거듭해 미래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 그러한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개념을 바탕으로, 기묘한 적막 속의 어렴풋한 위트, 감각적인 비주얼이 한데 어우러진 디자인 영화가 국내 최초로 셀린박 갤러리에서 소개된다.

 

뉴욕 MoMA, 영국 박물관, 런던과학박물관 등 세계적인 박물관이 주목하고, 해외 영화제들에서 다룬 총 6명의 디자이너의 11가지 단편 영화는 당신을 전율케 할 순간적인 ‘발견’을 선사한다. 이번 디자인 영화 전시 <인스턴트 디텍션(Instant Detection)>에서 소개되는 11가지 영화를 살펴 보고, 셀린박 갤러리의 관장이자 디자이너인 ‘셀린박’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Joseph Popper의 Elsewhere 상영 전경. 자료 제공 : 아이러브아트센터

 

전시에서 소개되는 11편의 영화

 

각 영화의 스토리를 ‘만약’이라는 질문으로 치환해 보았다.
당신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어떤 질문인가?

 

노암 토란(Noam Toran) – OBJECT FOR LONELY MEN(2001)

 

퇴근 후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 심취한 한 남자 앞에 다소 특이한 테이블이 놓여 있다. 그의 ‘과몰입’을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된 테이블에는 영화의 여주인공을 닮은 마네킹, 총, 모자, 전화, 헤럴드 트리뷴 신문, 선글라스, 재떨이, 핸들, 백미러 그리고 논필터 담배 한 갑이 놓여 있다. 그는  오브제들을 이용해 영화를 오마주하며, 자신의 1인 라이프를 즐긴다. 그가 정말 외로워 보이는가?

조셉 포퍼(Joseph Popper) – ELSEWHERE(2017)

 

한 남자가 시냇가를 가르며 걸어간다. 주변 풍경에 전혀 동화되지 않은 채 비틀비틀 걷는 이 남자가 보고 있는 광경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를 탐험하는 새로운 몸으로 거듭난 그는, 지금 그가 서 있는 이곳이 아닌 다른 어느 곳(ELSEWHERE)에 발을 디뎠다. 그런데 특별한 오큘러 렌즈도, VR 기기도 아닌 그가 쓴 것은 오직 평범한 선글라스 하나다.

히로키 요코야마(Hiroki Yokoyama) – SCENES FROM DAILY LIFE(2016)

 

휴머노이드 로봇이 일상에 스며든 시대, 그만큼 오작동도 평범해졌다. 그러한 미래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묘사한 영상에서는 독특한 행동을 하는 자들이 등장한다. 머리가 반복적으로 돌아가거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 등. 이러한 버퍼링을 당연하다시피 정상으로 여기게 되는 사회는 얼마나 디스토피아적일 것인가.

히로키 요코야마(Hiroki Yokoyama) – BOUNDARY(2016)

 

한 사람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운동을 한다. 언뜻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듯 보이지만, 2부에서 보니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10년 전만 해도 우리는 홀로 중얼거리는 걸 누군가를 보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통화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과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무엇이 결정하는가?

조이 하우(Zoe Hough) – THE MICROBIAL VERDICT – YOU LIVE UNTIL YOU DIE(2015)

 

65세를 맞이한 노인이 설렘과 긴장이 얼룩진 얼굴로 걸어 들어온다. 가상의 미래에는 65세 생일에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요소 10가지 리스트를 작성하고, 그 요소가 버무려진 알약을 삼킨다. 더이상 뇌가 그 요소에 반응하지 못하게 될 때, 저절로 독소가 뿜어져 나와 자연사하게 만드는 알약이다. 다들 꽃을 주며 축하하는 분위기 속에, 나답게 살다 갈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이 알약을 삼킬 것인가?

나마 슐렌더(Maama Schendar) – YOUR BEAUTIFUL SELF(2015)

 

여기 각기 다른 인물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호소한다. 근데 가만 보니 화려한 치장과 목소리만 다를 뿐, 같은 사람이다. 이스라엘 출신으로서 전쟁의 트라우마를 견뎌왔던 작가는, 남들이 가진 트라우마에 주목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런 영상에서 으레 사용되는 목소리 변조, 모자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작가는 자신이 직접 각기 다른 사람으로 변장해 더빙했다.

조셉 포퍼(Joseph Popper) – THE ONE-WAY TICKET(2012)

 

편도행 티켓을 가지고 우주로 떠나는 한 남자가 있다. 다소 공허해 보이는 그는 처음 어떤 환상을 품고 달나라 여행을 떠난 걸까? 하드보드와 버려진 물병 뚜껑 따위로 만들어 진 저렴한 우주선은 우주의 돌발적인 위험을 완벽히 막아줄 것 같지도 않다. 당신은 다시는 지구를 볼 수 없다고 해도, 저 먼 우주로 떠날 것인가?

셀린 박(Celine Park) – PLACEBO FUNERAL(2016)

 

허름한 초가집 앞에서 기묘한 의식을 치루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지긋지긋한 인생을 끝내고 싶어하는 한 남자가 있다. 형형색색 모자와 의상을 입은 이들은 다시 태어나고 싶은 그를 위해 특별한 장례를 치룬다. 끝은 곧 시작이다. 플라시보 장례식을 통해 이 생을 마감하는 이여, 새로운 이름과 나이로 다시 태어나거라!

노암 토란(Noam Toran) – DESIRE MANAGEMENT(2005)

 

한 노인이 집에 진공청소기를 주문했다. 그러나 마루를 청소하는 대신 조금은 괴상한 행동을 한다. 이해가 갈 듯 말 듯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건 그 뿐이 아니다. 은퇴한 승무원은 립스틱을 짙게 바르더니, 진동 장치가 설정된 캐리지를 끌고 다니며 가상의 난기류와 교감한다. 이들의 사적인 집 안에선 도대체 무슨 비밀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걸까?

히로키 요코야마(Hiroki Yokoyama) – EXO(2017)

 

주변 곳곳 ‘EXO’들이 존재한다. 손목에 마이크로 칩을 심고, 어딘가 움츠러 든 모습으로 어슬렁거리는 이들. 바로 EX-Offender, 전과자들이다. 이들은 공원에서 몇 시간 이상 있을 수 없고, 자동차 표지판에도 EXO 표시를 부착해야 하며, 늘 드론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을 촬영 당해야 한다. 반면, 일반인인 당신이 만약 길거리에서 EXO 번호판을 부착한 차를 만난다면 어떨 것 같은가.

조이 허프(Zoe Hough) – SMILE, THE FICTION HAS ALREADY BEGUN(2014)

 

마을의 모든 사람이 기이할 정도로 행복하게 웃고 있다. 영국의 실제 도시 블랙 번을 옐로 번으로 치환해 만든 가상 도시에서는 모두 카메라를 향해 과장된 웃음을 지어 보인다. 행복한 모습이 많이 노출될수록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정색 물건을 가질 경우 벌금까지 물어야 한다.그들의 행복 뒤에는 누가 있는 걸까? 꽃밭 사이로 한 어린 아이만이 자전거를 타고 사라진다.

(좌) Zoe Hough의 The Microbial verdict You Lvie Until You Die (우) Noam Toran의 Desire Management. 사진 제공 : 아이러브아트센터

 

Interview with 셀린박

영국왕립예술대학원 출신의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이너로, 국내에 최초로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개념을 선보였다. 2018년, 셀린박 갤러리를 설립 후 디자이너들을 위한 새로운 영역의 디자인 개념을 교육하고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는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 다루는 디자인 영화예요. 예술 영화와는 다른,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영화 무엇인가요?

예술 영화에서는 아티스트가 자신이 느낀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했을 때 그것에 대해서 반기를 드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반면 디자인은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만 표현할 수는 없고, 타인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죠. 디자인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너무 광대한 범위의 사회적 이슈 중에서 어떤 것을 이야기할지 결정하는 건 디자이너이지만, 그 주제를 둘러싼 각 분야의 전문가들 (ex, 심리학자, 철학자, 과학자)과 소통하고 그들이 봐도 전혀 왜곡된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걸 확신한 뒤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해요. 그런 점이 예술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그들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디자이너나 예술가의 상상력을 함께 담아내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어요.

 

Joseph Popper의 Elsewhere. 사진 출처 : 셀린박 갤러리 인스타그램

 

사회적 리서치와 연구라는 언뜻 딱딱하게 느껴지는 바탕에서 어떻게 영감을 풀어내시나요?

저는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요. 그리고 실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가 아니라, 오지 않길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자살과 같은 디스토피아적이고 어두운 관점의 시나리오를 말하되, 그것을 굉장히 유토피아적으로 표현해요. ‘부정적인’ 것을 기피하는 다수의 청중과 소통하기 위해 미학적이고 예쁘게 보여주려고 해요. 그러나 깊게 들여다보면 사실은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끔 하는 요소를 사용합니다.

 

Celine Park의 Placebo Funeral. 사진 출처 : 셀린박 갤러리 인스타그램

 

<플라시보 장례식(PLACIBO FUNERAL)> 등장한 코스튬도 굉장히 꽃잎처럼 둥글고 연보라색을 띄고 있잖아요.

당시 죽음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어요. 셸리 케이건(Shelly Kagan)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원제 : DEATH)>라는 책에 “사람은 죽음과 다시 태어남의 연속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예를 들어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는 것도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거죠.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작하고 끝낼 때 내가 태어나고 죽었다고 생각하기보다 또 다른 날들의 연속이라고 바라봐요. 그 말에 많은 영감을 받아서 <플라시보 장례식>에서 여러 번 삶과 죽음을 경험할 수 있게 했어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이 뒤에 다시 삶이 있다는 관점을 주기 위해 제가 그렸던 것은 둥근(ROUND) 형태였어요. 코스튬을 입으면 풍선처럼 동그래지길 바랐고, 반복되는 패턴을 그리고 싶었어요. 볼륨을 주고, 구부렸을 때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지는 지점을 많이 연구했죠.

 

Celine Park의 Placebo Funeral 상영 전경. 사진 제공 : 아이러브아트센터
Zoe Hough의 The Microbial verdict You Lvie Until You Die 상영 전경. 사진 제공 : 아이러브아트센터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에서 조망한 근미래의 이슈들 외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미래의 모습 있다면요?

요즘 초등학생들이 얻는 정보량이 1970년대 미국 대통령이 얻던 정보량보다 많다고 하는 글을 읽었어요. 온라인에 떠도는 어마무시한 정보량을 무분별하게 얻다 보면 뭐가 옳고 그른지 알기 어려워요. 그런 바탕에서 판단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하다 생각해요. 얼마나 많은 오류들이 이런 정보로 인해 일어날지 생각하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새로 이름 붙여진 정신병명 중에 ‘쿼터리즘(Quarterism)’이 있어요. 말 그대로 15분 이상 집중할 수 없는 거예요. 많은 정보를 짧은 시간에 얻어서 창의력은 많지만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게 어려워진 사회라고 해요. 점차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미래를 생각하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요?

 

(좌) Hiroki Yokoyama의 The Boundary 상영 전경 (우) 디자이너들 인터뷰 상영 공간. 사진 제공 : 아이러브아트센터

 

노암 토란(Noam Toran)의 영화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하셨어요.

영국왕립예술대학원에서 석사를 할 때, 영화를 하시던 교수님이 노암 토란이었어요. 그는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에서 떼놓을 수 없는 존재예요. 이 분이 없었다면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을 어떻게 시나리오화 할 수 있을지 몰랐을 거예요. 저희 학교에서 ‘프로덕트 디자인’을 공부한 선배님이기도 한데, 2001년 작품(위 소개한 영화 중 첫 번째 영화)이 바로 그의 석사 졸업 작품이에요. 그의 영향으로 많은 선배들이 작품을 만들었고, 그와 선배들의 작품에서 제가 많은 영감을 받았죠.

 

(좌) Naama Schendar의 Your Beautiful Self (우) Hiroki Yokoyama의 Exo. 사진 출처 : 셀린박 갤러리 인스타그램

 

마지막으로, Instant Detection. 직역하면 즉각적인 발견인데, 어떤 뜻인가요?

워낙 짧은 영화들이기에 순간적으로 깨닫는 사회적인 이슈가 있어요. 그런 사회적 이슈를 감지했을 때 느낌과 어울리는 단어예요. 하지만 막상 관객 분들을 보면, 1시간에서 3시간씩 보시고 나오시더라고요. 순간적으로도 알 수 있는 사회적 메시지지만 그걸 굉장히 곱씹어서 이해하고 싶어하는 그분들의 열정들을 보며, 한국 관객분들의 높은 수준에 감동했어요.

 

 

<인스턴트 디텍션>에서 소개하는 11편의 영화의 일부는 셀린박 갤러리 유튜브 채널에서 프리뷰를 감상할 수 있으며, 전시 공간에서는 모든 영화를 만나볼 수 있다. 영화 상영 공간 사이에 특별한 장치도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해 볼 것. 한편, ‘파이브콤마 스튜디오’가 각 영화에 담긴 메시지를 풀어낸 위빙 작품이 상영되는 공간에 함께 놓여,  자유롭게 앉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1층에서는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 전시 ‘Design The Path from Where We Are Today’가 진행된다. 셀린 박(Celine Park)과 채우리 건축가가 지도하는 ‘Speculative Design Seoul 01 팀’의 일부 작업을 선보이는 자리로, 영화와는 또 다른 매체로 풀어낸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을 살펴볼 수 있다.

 

 

 

소원

자료 협조 아이러브아트센터, 셀린박 갤러리

장소
셀린박 갤러리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32길 30 아이러브아트센터 4층)
일자
2021.09.01 -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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