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5

확장현실로 보는 당신의 휴일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기획 프로젝트.
확장현실(XR)이 매개하는 미술관은 어떤 모습일까. 9월 14일부터 11월 14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2021 텔레피크닉 프로젝트 <당신의 휴일>을 통해 이 물음의 답을 찾아보자.
당신의 휴일, 포스터 그래픽디자인 : 김정욱

 

텔레피크닉 프로젝트는 문화체육관광부 및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연구개발 지원 사업 <2020년 문화콘텐츠 R&D 전문 인력 양성(예술·과학 융합 프로젝트)>사업을 통해 서울시립미술관이 레벨나인, 서강대학교 산학협력단과 공동으로 수행한 확장현실(XR)기반의 연구·창작 프로젝트다. 2020년 7월부터 오는 12월까지 장장 1년 6개월간의 프로젝트로 차세대 문화예술 콘텐츠를 공유하는 전시 플랫폼 개발을 목표로 한다.

 

<당신의 휴일>은 이러한 텔레피크닉 프로젝트의 성과를 전시로 선보이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기획 전시다.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Nayounggim & Gregory Maass), 낸시 베이커 케이힐(Nancy Baker Cahill), 티무르 시친(Timur Si-Qin)을 초청해 확장 현실 기반의 현대미술 작업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휴일’은 ‘당신’이라는 주체를 위한 환대의 공간으로 등장한다.

 

 

 

로비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미스 새우>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미스 새우, 2021_사진촬영 오정은

 

2004년부터 함께 활동해온 아티스트 듀오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는 일상의 사물, 언어유희, 대중문화 요소를 작업의 소재로 삼아 낯설고 해학적인 방식으로 구현해왔다. <당신의 휴일>에서 볼 수 있는 이들의 작품은 서양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인상파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1863년에 그리고 <낙선전>에 출품한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차용한 것이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당시 파격적인 주제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림에서 옷을 잘 차려입은 두 신사들 사이에 나체로 등장해 화면 밖 관람객을 응시하는 여성은 마네가 같은 해 그린 <올랭피아> 등에서도 모델이 된 빅토린 뫼랑이라는 실존 인물이다. 작은 키와 붉은 머리카락으로 인해 ‘새우(La Crevette)’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것으로 알려진 뫼랑은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의 <미스 새우>(2021)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재해석되었다.

 

인스타그램 필터 'Dancing Shrimp'

 

대형 조각으로 미술관 출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미스 새우>는 전시의 가상공간인 <마이티 버스 VR>에서 바닷속에 우뚝 서있는 조각으로 재등장한다. 실재와 가상 공간 양측을 동시 점유하고 있는 <미스 새우>는 플랫폼 영역을 활발히 이동하고 그에 맞게 변주하는 중인 동시대 미술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의미를 발한다. 한편, <미스 새우>는 인스타그램 AR(증강현실) 필터 ‘Dancing Shrimp‘를 통해서 SNS 유저의 스토리로도 쉽게 이용·확장된다.

 

 

 

프로젝트 갤러리 1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마이티 마마>
레벨나인 <마이티 버스>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풀밭 위의 점심 식사(작품 일부), 2021,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2021(부분), 촬영 오정은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2021)는 대형 인물상 <마이티 마마>(2021)를 중심으로 건설용 비계와 다양한 오브제가 공간 곳곳에 배치된 혼합 설치작이다. 본래의 기능과 모양, 크기의 변형을 통해 낯설고 유희적인 모양을 내고 있는 이들 다종다양의 오브제는 각기 개별적이면서도 상호 관계적인 역할로 서로를 매개한다. 이번 전시에서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실현한 레디메이드 사물의 변형이 그래픽디자이너, UX/UI디자이너, 개발자 등으로 구성된 ‘레벨나인(Rabel9)’이 만든 확장 현실의 세계에서 관람객에 의해 다시금 변화된다는 것이다.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2021(설치전경), 촬영 오정은

 

관람객은 전시실에 구비된 태블릿 PC를 통해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연동된 <마이티 버스 AR>의 세계에 접속하고 가상의 사물을 만들어 증강현실 속 미술관에 작품을 위치시키고, 폐기할 수 있다. 이렇게 변경된 작품의 이미지는 새로운 온라인 가상공간 <마이티 버스 VR>과 <마이티 버스 web>에 실시간 네트워크로 전달된다. 미술관 현장에 있지 않은 관람객도 <마이티 버스 web>웹사이트 접속을 통해 시각적으로 상황을 공유 받게 되는 것이다. <마이티 버스 VR>과 <마이티 버스 web>의 장소 배경이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기성의 갤러리와는 다른 초현실적이며 혼합 경계적인 무한한 공간에 소개되고 아카이브되는 미술에 관한 호기심과 질문의 추동체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트탱크

티무르 시친 <뉴 프로토콜 VR>

 

티무르 시친, 뉴 프로토콜VR, 2021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하트탱크 전시 전경, 촬영 오정은

 

‘하트탱크’는 그동안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1층의 유휴공간을 전환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VR 기기를 착용하고 티무르 시친의 <뉴 프로토콜 VR>(2018)을 감상할 수 있다. <뉴 프로토콜 VR>은 작가가 만든 가상의 신념 체계를 들려주는 목소리가 광활한 사막 위를 부유하는 약 11분 길이의 VR 영상과 함께 재생되는 작품이다. 인류세를 사유하며 존재의 인과관계와 연결에 관한 신념을 밝히고 명상하게 하는 이것은 본 전시의 주제인 ‘타자와의 관계’ 및 피상적인 현실 이면 영역에 관한 광범위한 고찰을 통해 스스로를 환대하고 진정한 ‘쉼’의 의미를 주체적으로 찾아가려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등나무근린공원

낸시 베이커 케이힐 <레거시>(2021)

 

낸시 베이커 케이힐, 레거시, 2021,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시는 미술관 외부에서도 24시간 진행된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앞 야외 공간에 위치한 별 광장 위에 설치된 낸시 베이커 케이힐의 <래거시>를 통해서 가능하다. 이 작품은 맨눈으로는 실견할 수 없는 AR 작품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작가가 개발한 앱 ‘4th Wall’를 설치하고 카메라를 통해 별 광장을 비추면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나무의 유기적 형태를 감상할 수 있다

 

이 형태는 차츰 인공적인 유리와 거울 조각 같은 무기물의 형태로 전환된다. 작가는 역사에 개입한 인간의 영향으로 생겨난 현상의 연결이자 엔트로피적 힘의 파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실제 공간의 장소 한정과 특정성을 넘어서 확장되어가는 미술의 시공간에 겹쳐지는 AR 드로잉과 디지털 애니메이션 기술은 미술의 수행 가능한 범위를 넓히고 참여와 공공성을 새롭게 재점화한다.

티무르 시친, 뉴 프포토콜 VR, 2018,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1 텔레피크닉 프로젝트 <당신의 휴일>은 자본주의 체제에 예속된 쉼, 효율을 위한 수단이자 더 일을 잘 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행하는 축소된 자유가 아니라, 그저 빈 공간으로 존재하는 주체적인 휴식을 ‘보이지 않는 미술관’ 속 환대의 공간으로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전시가 소개하는 예술과 기술의 최신 동향과 더불어 예술가가 제시하는 진일보된 공동체 담론을 주시하는 동시에, 기술의 진보가 새로운 플랫폼 자본주의 노동자와 계층 또한 양산하고 있음을 상기하며 ‘나의 휴일’로 가능한 환대의 공간을 찾는 노선을 스스로 그려갈 필요가 있다. 그 시도를 위한 출발로써 <당신의 휴일>의 경험을 추천한다.

 

오정은

자료 협조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장소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 1238)
일자
2021.09.14 - 2021.11.14
링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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