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조명 브랜드 루이스폴센이 9월 11일 서울 방배동에 서울스토어를 열었다. 성수 쇼룸 운영 종료 후 약 3년 만이다. 이번 서울스토어는 제품뿐 아니라 루이스폴센의 역사와 여러 디자이너의 제품을 함께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오픈을 앞두고 열린 토크 세션에는 루이스폴센의 CDO(Chief Design Officer)인 모니크 페이버(Monique Faber) 가 참석했다. 이날 이야기는 한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100년 전 만들어진 조명이 지금까지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루이스폴센의 시작
루이스폴센은 1874년 루드비크 R. 폴센이 세운 회사다. 출발은 와인 수입업이었지만, 20세기 초 전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전기 관련 사업으로 방향을 바꿨다. 새로운 시장에 일찍 진입해 품질과 기능에 집중한 것이 지금의 루이스폴센으로 이어졌다.
조명 브랜드로서 방향이 분명해진 것은 1920년대 폴 헤닝센과 협업하면서부터다. 폴 헤닝센은 덴마크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당시 막 가정에 들어오기 시작한 전기 조명을 연구했다. 초기 전기 조명은 전구가 그대로 노출돼 빛이 강하고 눈부신 경우가 많았다. 반면 외형은 프린지 장식, 동물의 다리 같은 모티프로 화려하게 꾸몄다.
하지만 헤닝센은 장식보다 실제 빛을 경험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조명을 통해 일상을 더 편안하게 만들고자 했다. 루이스폴센이 말하는 ‘빛을 빚어내는 디자인’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눈부심을 줄이기 위해 만든 시스템 PH
시스템 PH는 폴 헤닝센이 개발한 조명 설계 체계다.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셰이드로 빛을 반사하고 확산해 전구의 강한 빛이 눈에 직접 들어오지 않도록 한다. 이후 PH 테이블 램프와 펜던트, 샹들리에 등 다양한 제품에 이 원리가 적용됐다.
출발점은 1925년 파리에서 열린 현대 장식미술·산업미술 국제박람회였다. 폴 헤닝센은 루이스폴센과 함께 여러 겹의 셰이드로 구성된 ‘파리 램프’를 선보여 금메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셰이드 안쪽에서 반사되는 빛이 여전히 밝고 눈부시다고 판단했다. 그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일출과 일몰 무렵의 부드럽고 따뜻한 빛이었다.
헤닝센은 셰이드의 소재와 표면, 빛이 닿는 위치를 다시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1926년 세 개의 셰이드를 기본으로 하는 시스템 PH가 만들어졌다. 빛을 필요한 방향으로 보내면서도 전구의 강한 빛은 직접 보이지 않게 하는 로그 나선의 원리를 적용했다. 셰이드의 크기와 조합을 달리해 공간에 맞는 여러 형태의 조명을 만들 수 있었다.
루이스폴센을 대표하는 조명 PH 5
루이스폴센의 가장 널리 알려진 제품 중 하나는 PH 5다. 여러 장의 셰이드가 겹쳐진 형태와 다양한 색상으로 잘 알려진 펜던트 조명으로, 1958년 출시된 뒤 60년 넘게 꾸준히 사용됐다.
폴 헤닝센은 어떤 전구를 사용하더라도 눈이 편안한 빛을 내는 조명을 만들고자 했다. 전구의 강한 빛이 눈에 직접 들어오지 않도록 여러 장의 셰이드를 겹치고, 빛이 아래를 향하면서 주변에도 부드럽게 퍼지도록 설계했다. 제품명에 붙은 숫자 5는 지름 50cm인 메인 셰이드에서 가져왔다. 시스템 PH의 원리를 가정의 식탁 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펜던트 조명으로 풀어낸 제품이다.
PH 5와 같은 해에 나온 PH 아티초크도 루이스폴센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폴 헤닝센이 코펜하겐의 랑겔리니 파빌리온 레스토랑을 위해 디자인했으며, 지금도 같은 장소에 설치돼 있다.
아티초크를 닮은 외형은 장식만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72개의 금속 잎을 겹쳐 배치해 어느 방향에서 바라봐도 안쪽의 전구가 직접 보이지 않는다. 각각의 잎이 빛을 반사하면서 조명 전체가 은은하게 밝아진다. PH 5와 크기와 형태는 다르지만, 필요한 곳에 편안한 빛을 전달한다는 원칙은 같다.
AJ 램프와 판텔라로 넓어진 루이스폴센의 디자인
루이스폴센은 여러 디자이너 및 건축가와 협업으로 제품을 만들었다.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AJ 램프는 1957년 코펜하겐의 SAS 로열 호텔을 위해 개발됐다. 야콥센은 호텔 건물부터 가구와 조명, 작은 집기까지 직접 설계했다. 기울어진 형태의 셰이드는 각도를 조절해 필요한 곳에 빛을 보내며, 호텔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직선과 곡선도 램프의 형태에 반영됐다.
베르너 팬톤이 1971년 선보인 판텔라는 PH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반구형 셰이드가 빛을 아래로 보내고, 트럼펫 형태의 받침대가 이를 다시 주변으로 반사한다. 유기적인 곡선과 색채가 두드러지지만 눈부심을 줄이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든다는 원칙은 같다. 2026년 베르너 팬톤 탄생 100주년을 맞아 판텔라의 오리지널 색상을 적용한 포터블 제품도 새롭게 나왔다.
올해는 시스템 PH 탄생 100주년이다. 루이스폴센은 이를 기념해 PH 1/1 샹들리에를 다시 선보이는 등 PH 센테너리 컬렉션을 출시했다. 서울스토어에서는 1931년 피아노 램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PH 1/1 피아노 테이블 램프 리미티드 에디션 2026’과 3중 셰이드 구조를 충전식 조명으로 확장한 PH 2/1 포터블도 만날 수 있다. 피아노 램프는 곡선형 암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어 책상이나 독서 공간에서도 활용할 수 있고, 포터블은 전원선 없이 원하는 곳에 둘 수 있다.
덴마크 생활방식에서 출발한 조명
덴마크에서는 밝은 천장등으로 방 전체를 비추기보다 식탁과 소파, 책상처럼 사람이 머무는 곳마다 작은 조명을 둔다. 이렇게 공간 곳곳에 만들어진 빛의 영역을 ‘빛의 섬’이라고 부른다. 겨울이 길고 촛불과 오일 램프를 사용해온 덴마크의 생활 문화에서 비롯된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조명이 비추는 밝은 부분만이 아니다. 어둠과 그림자도 공간에 깊이와 분위기를 더한다. 방 전체를 같은 밝기로 채우는 대신 필요한 자리에 빛을 두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머무는 공간을 만든다.
루이스폴센의 조명이 지금도 사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이 머무는 자리와 그곳에 필요한 빛을 먼저 생각하는 원칙이 오늘의 생활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서울스토어에서는 이 철학이 시대와 제품에 따라 어떻게 달라져왔는지 살펴볼 수 있다.
글 김지오 기자
취재협조 및 자료제공 루이스폴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