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가 되면 서울 미술계가 유독 분주해진다. 국내외 갤러리와 컬렉터, 미술 관계자가 한데 모이는 대형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 때문이다. 둘은 자칫 하나의 행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출발도, 성격도 엄연히 다른 아트페어다.
먼저 키아프 서울(Kiaf SEOUL)은 한국화랑협회가 2002년 시작한 국제 아트페어다. 국내 갤러리를 중심으로 해외 갤러리를 꾸준히 불러들이며 한국 미술시장의 대표적인 장터로 자리 잡았고, 올해 어느덧 25주년을 맞았다. 반면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은 런던에서 출발한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가 2022년 서울에 새롭게 선보인 행사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프리즈 서울에는 30개국 125개 이상의 갤러리가 참여하며, 이 가운데 70% 이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
서로 다른 두 페어가 지금처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프리즈가 서울에 처음 진출한 2022년부터다. 프리즈 서울은 출범 당시부터 키아프와 파트너십을 맺고 같은 기간 코엑스에서 개최됐다. 덕분에 관람객은 한 건물 안에서 키아프의 국내외 갤러리와 프리즈가 불러온 세계 주요 갤러리를 차례로 둘러볼 수 있게 됐다. 두 페어를 중심으로 미술관과 갤러리, 브랜드까지 같은 시기에 전시와 행사를 집중시키면서 매년 9월 초 서울에서는 자연스럽게 거대한 ‘아트위크’가 형성됐다.
올해는 익숙해진 이 풍경을 한 번 더 눈여겨볼 이유가 있다. 코엑스 리뉴얼을 앞두고 프리즈 서울이 2027년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자리를 옮기기 때문이다. 키아프와의 파트너십과 공동 티켓은 이후에도 유지될 예정이지만, 두 페어를 한 건물 안에서 곧바로 오가며 관람하는 방식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5년 동안 나란히 성장해 온 프리즈와 키아프를 지금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해인 셈이다.
키아프 25주년, 변화와 확장
올해 25주년을 맞은 키아프 서울에는 18개국 175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하지만 숫자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페어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키아프는 올해 처음으로 외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체제를 도입하고 패션과 공연, 전시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해 온 정구호를 선임했다. 정구호는 브랜딩부터 공간 디자인, 특별전 기획까지 페어 전반을 맡았다. 작품이 빼곡하게 들어선 부스를 차례로 둘러보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관람객이 어떻게 이동하고 머물 것지까지 다시 설계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키아프 주제는 ‘공존(Coexistence)’이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일상으로 흡수되고 있는 지금,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감각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질문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선다. 주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정구호가 기획한 특별전이다. 인간(Human)과 동물(Animal)을 합친 〈휴멀(HUMAL)〉은 문명화된 인간의 이면에 남아 있는 본능과 신체 감각, 생명력을 살펴보고, 〈버추얼 바이털(VIRTUAL VITAL)〉은 이를 증강현실로 확장한다. 전시장 곳곳의 QR 코드를 통해 실제 작품이 3차원 디지털 공간으로 이어지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오간다.
수많은 갤러리 부스 사이에서 한 작가의 작업을 조금 더 천천히 볼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다. 2023년 시작한 ‘Kiaf HIGHLIGHTS’에서는 올해 주제인 ‘공존’을 키워드로 고사리, 이재삼, 조경재, 매튜 스톤, 유이 스즈키 등 국내외 작가 10명을 선정해 독립된 전시 공간을 할애했다. 신생 갤러리와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Kiaf PLUS에는 아줄레주 갤러리, 씨디에이, 조이만 갤러리 등 국내외 19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올해 키아프는 미술을 넘어 다른 장르와의 접점도 이어간다. 지난해 시작한 클래식 음악 공연 프로그램 ‘Kiaf Classic’에는 올해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참여한다. 9월 4일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리는 〈Kiaf Classic: 조성진과 함께하는 공존의 울림〉을 통해 올해 키아프의 주제를 음악으로 확장한다. 지난해 선우예권과 아레테 콰르텟이 ‘공진’을 주제로 첫 무대를 꾸민 데 이어, 아트페어 안에서 시각예술과 클래식 음악을 연결하는 시도를 계속하는 것이다.
5년 차 프리즈, 올해도 새롭다!
올해로 5회를 맞은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에는 전 세계 13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페이스갤러리, 화이트큐브 등 세계 주요 갤러리를 비롯해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 가나아트, PKM갤러리 등 국내 갤러리도 한자리에 모인다. 매년 세계 미술시장의 주요 작품을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프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면, 올해는 갤러리 부스 사이에 작품을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큐레이티드 섹션을 강화한 점이 눈에 띈다.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머티리얼 프랙티스’ 섹션을 먼저 눈여겨봐도 좋겠다. 독립 큐레이터 조혜영이 기획한 이 섹션은 현대미술과 디자인, 공예 사이에서 ‘물성’과 ‘만드는 행위’에 주목한다. 도자와 섬유, 유리, 금속, 목재, 한지처럼 오랫동안 사용돼온 재료가 오늘날 작가와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어떻게 새로운 표현으로 이어지는지 살펴본다. 재단법인 아름지기는 한옥의 비례와 재료에서 착안해 한지로 사랑방을 구현했고, 솔루나 파인 아트에서는 말총 공예를 동시대적으로 풀어낸 정다혜와 도자 슬립을 입힌 종이를 반복해서 쌓아 조형물을 만드는 올해 로에베 재단 공예상 수상자 박종진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시선을 과거로 돌린다. 라인문화재단 고원석 디렉터가 기획을 맡아 기존 미술사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거나 오늘날 다시 살펴볼 만한 20세기 작가 15명을 각각 개인전 형태로 소개한다. 전후 서울의 일상을 기록한 사진가 한영수를 비롯해 한국 실험미술 작가 김정명, 추상회화를 이어온 석난희, 급격한 산업화 속 도시 풍경을 그렸던 손상기 등이 포함됐다. 미얀마의 포 포, 네팔의 라인 싱 방델, 일본 세키네 노부오 등 아시아와 유럽 작가들의 작업도 함께 볼 수 있다. 익숙한 거장의 이름을 따라가는 대신, 미술사의 빈틈에서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는 재미를 마련한 섹션이다.
젊은 갤러리를 소개해온 ‘포커스’도 올해 처음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범위를 넓혔다. 설립 12년 이하의 갤러리 16곳이 참여하며, 모두 한 작가에게 부스 전체를 내주는 솔로 프레젠테이션으로 구성된다. 작품을 걸어놓는 일반적인 형태보다 공간 자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도 많다. 휘슬은 dpgp78의 스펀지 블록 회화 약 500점을 선반과 가랜드에 배치해 부스 전체를 하나의 참여형 작품처럼 꾸미고, 파운드리 서울은 오묘초의 조각을 중심으로 미래 생명체가 자라난 듯한 몰입형 공간을 선보인다.
페어 한가운데에서 전형적인 아트페어 부스의 형태를 흔드는 작업도 있다. 올해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의 주인공인 시각예술 콜렉티브 야광(김태리, 전인)이다. 이들은 신작 〈Facade Zone〉을 위해 페어 부스를 이루는 가벽을 직접 해체하고 다시 조립한다. 한국 불화의 사천왕 도상에서 가져온 형태를 라텍스와 금속 조각으로 만들어 빛과 그림자에 따라 공간의 모습도 달라지게 했다. 작품을 걸기 위한 배경으로 여겨지는 ‘부스’ 자체를 재료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규격화된 공간을 나눠 쓰는 아트페어와도 흥미롭게 맞물린다.
코엑스 밖에서도 이어집니다
프리즈와 키아프가 열리는 9월 초에는 코엑스뿐 아니라 서울 곳곳의 갤러리와 미술관도 분주해진다. 해외 컬렉터와 미술 관계자의 방문이 집중되는 시기인 만큼, 아트페어와 맞물려 굵직한 개인전과 기획전을 선보이는 곳이 많다. 올해도 국제갤러리의 박서보 회고전을 비롯해 페이스갤러리의 프리드리히 쿠나트, 리만머핀의 카데르 아티아, 화이트큐브 서울의 마리나 레인가츠 개인전 등이 같은 시기에 열린다. 낮에는 코엑스에서 수많은 갤러리를 한꺼번에 살펴보고, 전시장 밖에서는 각 갤러리가 준비한 전시를 조금 더 천천히 이어서 볼 수 있다.
밤이 되면 갤러리가 문을 연다
날이 어두워지면 서울 곳곳의 갤러리 밀집 지역으로 자리를 옮겨보자. 프리즈가 매년 진행하는 ‘네이버후드 나잇(Neighborhood Nights)’은 을지로와 한남, 청담, 삼청을 날짜별로 돌며 갤러리와 문화 공간의 문을 늦은 시간까지 여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8월 31일 을지로를 시작으로 9월 1일 한남, 2일 청담, 3일 삼청으로 이어지며, 전시뿐 아니라 오프닝과 공연, 아티스트 토크 등도 함께 열린다.
특히 9월 2일 청담과 압구정 일대에서는 강남구가 키아프·프리즈 주간에 맞춰 마련한 ‘강남아트 2026’도 함께 펼쳐진다. 이날 26개 갤러리가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청담나잇’에서는 야간 전시 관람과 도슨트 투어, 아티스트 토크, 리셉션 등이 이어지고, 도산공원에서는 밤 10시까지 ‘강남아트살롱’이 열린다. 디지털 아트와 라이브 공연, F&B 프로그램을 한데 모은 야외 행사로, 도산공원과 청담 일대 갤러리를 잇는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49개 갤러리와 미술관을 돌아보는 스탬프 투어까지 더해져, 페어가 끝난 뒤에도 강남 곳곳에서 미술을 이어서 즐길 수 있다.
서울 곳곳에 숨겨진 16,000개의 동전
올해 프리즈 위크에서 가장 독특한 도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는 영국 작가 라이언 갠더(Ryan Gander)의 〈더 파인드 서울(The Find Seoul)〉이다. 8월 31일부터 9월 10일까지 서울 곳곳에 작가가 제작한 1만 6000개의 동전을 숨겨두고 시민이 우연히 이를 발견하도록 만든다. 을지로와 한남, 청담, 삼청은 물론 코엑스의 공개된 공간에서도 동전을 찾을 수 있다.
각 동전에는 서로 다른 짧은 지혜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발견한 사람은 이를 간직해도 되고, 또 다른 누군가가 발견할 수 있도록 다시 놓아두어도 된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안에 작품을 놓는 대신 도시를 돌아다니는 행위와 뜻밖의 발견 자체를 작품의 일부로 만든 셈이다. 라이언 갠더가 여러 도시에서 이어온 〈The Find〉 프로젝트가 한국에서 실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비엔날레를 서울에서 만나요
올해 프리즈는 서울 바깥의 미술 행사와도 연결된다. ‘부산비엔날레 × 프리즈 필름 서울 2026’이 9월 3일부터 5일까지 송은에서 열리는 것. 지난 8월 29일 개막한 2026 부산비엔날레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의 전시감독 에블린 사이먼스와 아말 칼라프가 공동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부산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의 무빙이미지 작업을 서울에서 따로 선보인다. 앨리슨 응우옌, 우미 이시하라, 루이스 호키, 모 셋, 브라힘 탈, 벤지 라, 타낫 티라다콘, 나타샤 톤테이 등 8팀의 작업이 상영되며 영화와 사운드, 퍼포먼스, 의례, 안무, 클럽 문화 등 여러 형식을 오간다.
글 김기수 기자
자료 및 사진 출처 프리즈 서울, 키아프 서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