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과 중복, 말복으로 이어지는 삼복(三伏)은 일 년 중 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시기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고 입맛과 기운이 함께 떨어질 때. 사람들은 이 시기를 무사히 건너기 위해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챙겨 먹는 ‘복달임’을 해왔다. 뜨거운 국물로 땀을 내며 몸속 더위를 다스린다는 이열치열의 지혜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복날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역시 삼계탕이다. 푹 고아낸 닭에 인삼과 대추, 찹쌀을 더한 한 그릇은 오랫동안 여름 보양식의 대표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매년 복날이 되면 이름난 삼계탕집 앞에는 어김없이 긴 줄이 늘어선다. 뜨거운 햇볕 아래 한참을 기다려야 비로소 보양을 시작할 수 있다는 건 조금 얄궂은 일이다.
올해는 삼계탕 대신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운을 채워줄 음식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맑고 깊은 오리곰탕부터 레몬으로 산미를 더한 콩국수, 꽃게 육수와 전복을 담은 파스타, 페루식 치킨 수프, 민물장어를 올린 솥밥, 닭이라는 재료를 다채롭게 탐구하는 코스 요리까지. 익숙한 복날의 풍경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지만, 한 끼를 든든하게 채우고 지친 몸을 돌본다는 의미만큼은 그대로다. 삼계탕 없이도 충분히 복날다운, 요즘 보양식 여섯 가지를 모았다.
카모토
담백하고 맑은 오리곰탕
성수동의 작은 오리곰탕집 카모토는 일식당 와쇼쿠예인에서 경력을 쌓은 양종오 셰프가 문을 연 곳이다. 오리 나베를 만들던 중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직원 식사용으로 육수를 끓였고, 이를 여러 차례 다듬어 지금의 메뉴를 완성했다. 카모토의 오리곰탕은 가쓰오부시와 표고버섯, 대파, 무 등을 넣은 육수로 지은 백진주쌀 솥밥 위에 얇게 저민 오리 가슴살과 영양부추를 올리고 맑은 국물을 부어낸다. 한약재 향이 짙은 오리탕보다 담백하고, 일반적인 곰탕보다는 섬세한 감칠맛이 난다. 수비드한 오리 안심과 오이채를 고소하고 새콤한 소스에 버무린 오리안심 냉채나 녹파주 한 잔을 곁들여도 좋다. 매일 준비하는 오리곰탕은 단 60그릇. 늦지 않게 찾는 편이 좋겠다.
비지수프바
레몬 산미를 더한 콩국수
복날에 영양을 채우는 방법이 꼭 육류일 필요는 없다. 비지수프바의 주재료는 콩이다. 흔히 찌개나 반찬으로 소비되던 콩비지를 풍부한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갖춘 한 끼 식사로 제안했다. 들깨와 돼지고기, 트러플과 버섯, 토마토와 닭가슴살 등 여러 재료를 조합한 비지수프를 중심으로, 바게트 위에 비지 크림을 올린 핀초와 샌드위치까지 콩비지의 쓰임을 넓혀왔다. 음식과 운동을 연결하는 활동도 이어간다. 러닝 파티에 F&B로 참여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EOU와 함께 달린 뒤 직접 핑크 레몬 비지 파스타를 만들어 나눠 먹는 웰니스 프로그램을 열기도 했다.
올여름에는 콩비지의 매력을 차갑게 즐길 수 있는 콩국수 세 가지를 새롭게 선보였다. 콩비지와 두유, 참깨로 만든 걸쭉한 수프에 레몬의 산미를 더한 레몬 콩국수가 기본이다. 여기에 고수를 넉넉하게 올려 향긋한 풍미를 살린 고수 콩국수, 짭조름한 잠봉과 치즈를 더해 꾸덕꾸덕한 맛을 끌어올린 잠봉 치즈 콩국수도 마련했다. 콩국수라는 익숙한 여름 음식에 비지와 파스타를 결합해 전혀 다른 맛을 구현해 냈다.
추수
짚불 민물장어 솥밥
한국인에게 밥은 늘 한끼의 중심이지만, 정작 쌀의 품종과 맛을 따져가며 먹는 일은 드물다. 연남동의 한식 다이닝 추수는 매일같이 먹어온 한 공기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한다. 갓 도정한 수향미와 진상미, 참드림을 각각 가마솥에 지어 차례대로 내며, 품종에 따라 달라지는 향과 찰기, 씹는 맛을 천천히 경험하도록 한다. 복날에는 짚불에 구운 민물장어를 곁들인 반상이 좋겠다. 은은한 불향을 입힌 장어와 함께 제철 재료로 만든 반찬과 국이 코스를 채운다. 물론 기름진 장어의 풍미도 훌륭하지만, 끝내 기억에 남는 건 윤기 흐르는 밥알과 솥을 열 때 번지는 쌀의 고소한 향이다. 적어도 복날만큼은 밥도 제대로 챙겨 보자.
이스토
꽃게와 전복 파스타
서촌 누하동에 자리한 이스토는 뉴욕 CIA 요리학교 출신으로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10년간 경력을 쌓은 셰프가 운영하는 퓨전 양식 다이닝 바다. 참치회를 올린 카펠리니 비빔면과 닭고기 라비올리로 만든 떡볶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맛과 양식 조리법을 자유롭게 오가며 이곳만의 메뉴를 만든다. 대표 메뉴인 ‘꽃게와 전복 파스타’도 이스토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꽃게를 약 5시간 동안 정성껏 우려낸 육수에 면을 익히고, 버터에 구운 전복을 넉넉하게 곁들인다. 꽃게의 깊은 감칠맛이 면 사이에 배어들고, 도톰한 전복은 쫄깃한 식감을 더한다. 여기에 바질과 미나리의 향을 포개 묵직한 해산물 풍미를 산뜻하게 정리했다. 익숙한 보양식과는 거리가 있지만, 영양분이 풍부한 꽃게와 전복 덕에 마음속까지 든든하다.
칩멍크
페루식 닭 수프 소파 데 뽀요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북카페 칩멍크는 브런치 메뉴와 커피를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느긋한 공간이다. 계절마다 새로운 수프나 샌드위치를 선보이는 이곳에서 복날을 맞아 준비한 음식은 페루식 닭 수프 ‘소파 데 뽀요(Sopa de pollo)’다. 칩멍크의 김 사장이 남미를 여행하던 중 쿠스코에서 맛본 음식으로, 맑고 따뜻한 국물과 닭고기가 어우러져 한국의 닭곰탕과도 어딘가 닮았다.
지난해에 이어 다시 선보이는 올해의 소파 데 뽀요는 닭고기를 푹 삶아 먹기 좋게 살을 바르고, 숟가락에 담기 편한 짧은 파스타면과 춘천에서 직접 기른 작은 감자를 넣어 완성했다. 메뉴와 함께 쿠스코에서의 짧은 여행담과 레시피를 담은 작은 진(zine)도 건넨다. 음식을 마주한 여행의 한 장면까지 함께 나누는 셈이다. 칩멍크의 소파 데 뽀요는 말복이 있는 8월 중순까지만 맛볼 수 있다.
탉
닭으로만 채운 코스 요리
도산공원 인근에 있는 탉은 복날 대표 식재료인 닭을 가장 낯설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한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를 통해 이름을 알린 오준탁 셰프는 홍콩 야드버드와 로닌에서 경력을 쌓은 뒤 남영탉과 남영린 등을 거치며 오랫동안 닭과 불을 탐구해 왔다. 탉에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닭의 여러 부위를 서로 다른 조리법과 장르로 풀어낸다.
재료를 고르는 기준도 남다르다. 전국에 단 다섯 곳뿐인 토종 가축 인정 원종계 농가에서 기른 토종닭을 당일 도계해 사용하고, 달걀 역시 산란 후 24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만 고른다. 신선한 닭고기의 탄력과 촉촉함, 달걀의 선명한 풍미를 온전히 살리기 위해서다. 통닭 껍질로 말아낸 김밥부터 숯불구이와 꼬치, 면 요리까지 코스는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진다. 닭강정이나 핫도그처럼 친숙한 음식도 캐비어와 트러플을 더해 새로운 인상으로 완성한다. 현재는 단품 없이 코스 다이닝으로만 운영되니 참고하자.
글·사진 김기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