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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7

문구를 디깅하는 당신에게 추천하는 문구 브랜드5

인벤타리오 2026에서 만난 종이·크레용·테이프 브랜드

지난 6월 14일, 5일간 열린 문구 페어 ‘인벤타리오 2026’이 막을 내렸다. 티켓이 조기 매진돼 취소 표를 구해야 할 정도로 인파가 몰린 이번 페어는 ‘작은 도구’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한때 사양산업처럼 여겨졌던 문구는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필사, 다이어리 꾸미기, 독서 기록처럼 손으로 쓰고 꾸미는 취미가 확산하면서 문구를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29CM의 2025년 문구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년 대비 54% 이상 증가했고,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거래액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이상 늘었다. 문구 트렌드는 대형 브랜드의 움직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올리브영은 문구 편집숍 포인트오브뷰와 협업해 2026년 다이어리북과 스티커, 캘린더 등 문구 세트를 선보였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걷는 문구 브랜드도 있다. 트렌드에 맞춰 카테고리를 넓히기보다, 하나의 아이템을 깊게 파고드는 브랜드들이다. 선물 포장지를 만드는 가위(kawi)부터 크레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구버(Goober)까지. ‘인벤타리오 2026’에 참여한 110개 브랜드 중 오로지 하나의 아이템에 집중하는 5개 브랜드를 소개한다.

가위(Kawi)

선물의 시간을 담아낸, 종이
출처: 가위

가위는 2021년 시작된 패턴지 중심의 브랜드다. 패턴지를 활용한 편지지, 돈 봉투, 선물 상자, 선물 태그 등 ‘선물’에 관한 제품들을 만들어오고 있다. 특히 일러스트레이터 느효(@neuhyo), 최연주(@chocolateye) 작가 등 국내 다양한 작가들과 협업한 제품들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브랜드가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 역할을 하는 듯하다.

 

가위의 출발점은 영국의 흐린 날씨였다. 가위를 운영하고 있는 이진현 디자이너는 영국에 머물던 시절, 눅눅한 날씨와 타지 생활의 외로움 속에서 햇빛을 찾아 돌아다녔다. 산책을 하며 만난 서점과 문구점, 아트숍에는 늘 카드와 포장지가 있었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포장지를 고르는 사람들에게서 햇볕보다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고 한다.

출처: 가위

이 디자이너는 가위가 패턴지 이전에 ‘누군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만드는 브랜드라고 설명한다.

“종이는 저희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치를 담아내는 소재라고 생각해요. 종이의 질감과 두께는 무궁무진하죠. 손끝에 닿는 첫 감각부터 다른 물성이 줄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특별함이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정성껏 포장지와 카드를 고르는 시간을 더 각별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가위는 종이를 넘어 그 시간을 판매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진현 가위 디자이너

인스타그램 @kawi_seoul 

구버(Goober)

동심을 기억하는 도구, 크레용
출처: 구버

구버는 크레용을 전문으로 하는 브랜드다. 2016년 황세희 디렉터가 ‘땅콩프레스’를 설립해 크레용을 수작업으로 제작하기 시작했고, 2018년부터 ‘구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구버는 다양한 형태의 크레용을 제작한다. 블록처럼 여러 개의 크레용을 결합해 사용할 수 있는 블록크레용, 책상이나 냉장고에 붙여뒀다가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크레용 마그넷.  최근 ‘인벤타리오 2026’에서는 ‘왜 연필에는 지우개만 달려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크레용 연필’을 선보였다. 블록크레용과 당근, 딸기 등의 농산물 모양을 딴 팜크레용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디자인 스토어에도 입점해 있다.

출처: 구버

구버는 크레용의 범위를 ‘유아’가 아닌 ‘전 연령’으로 확대한다. 크레용은 어린 시절 처음 만나는 그림 도구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사용할 기회가 줄어든다. 황 디렉터는 이 ‘유년 시절의 감각’에 주목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크레용을 사용했던 동심과 그리움은 누구나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구버의 제품들은 대부분 ‘상상’에서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가졌던 상상은 어른이 되어서도 삶 속 작은 즐거움이 돼요. 살아가며 마주하는 굴곡 속에 작은 위로이기도 하죠. 구버의 크레용이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노년에도, 상상의 즐거움을 전해주리라고 믿습니다.”

― 황세희 구버 디렉터 

인스타그램 @goober.kr

롤드페인트

실패해도 다시 붙일 수 있는 물감, 마스킹테이프
출처: 롤드페인트

마스킹테이프에만 집중하는 브랜드도 있다. 2019년 대구에 처음 문을 연 롤드페인트다. 마스킹테이프는 원래 도색이나 페인팅 작업을 할 때 칠하지 않을 부분을 가리기 위해 쓰인다. 하지만 롤드페인트에서 마스킹테이프의 쓸모는 무궁무진하다. 가령 365일 하루에 한 조각씩 사용하는 ‘일력(Day Calendar) 마스킹테이프’는 달력의 역할을 한다. 1년이 지나면 마스킹테이프 한 통을 남은 부분 없이 다 사용하게 된다.

 

어쩌다 마스킹테이프의 쓸모를 생각했을까? 롤드페인트를 운영하는 채민지 대표는 브랜드 설립 전부터 마스킹테이프 작가로 활동했다. 마스킹테이프를 활용해 그림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그러던 중 재료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운영하기 시작한 마스킹테이프 숍이 지금의 롤드페인트다. 

출처: 롤드페인트

7년의 시간 동안 롤드페인트는 대구에서 합정으로 이전했고, 작은 테이프 숍에서 ‘창작 브랜드’로 확장했다. 단순한 문구 소비자가 아닌 창작가들이 주로 롤드페인트를 찾는다고 한다. 채 대표는 그 이유로 마스킹테이프의 ‘재첨삭성’에 주목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마스킹테이프를 만나면서 ‘계속 다듬고 다시 시도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마스킹테이프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떼어 내고, 언제든 다듬을 수 있습니다. 특별한 기교보다 계속 수정해하고,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과정이 더 중요하죠. 그건 창작가에게 필요한 마음입니다. 마스킹테이프는 주로 문구로 분류되지만, 저희는 마스킹테이프를 창작의 도구로 확장하고 싶어요.”

― 채민지 롤드페인트 대표

인스타그램 @rolled_paint

플래그(flagg)

꾸밈의 조각이 되는, 라벨 스티커
출처: 플래그

롤드페인트가 마스킹테이프에 집중한다면, 플래그는 라벨 스티커다. 플래그는 어린 시절부터 라벨 모으기가 취미였던 장소희 대표가 2019년 문을 열었다. 라벨 스티커는 일반 씰 스티커와 달리 실용성에 집중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이 실용적인 스티커도 작고 귀여운 문구들과 나란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플래그는 7년째 라벨 스티커를 만들고 있다.

 

대표 제품은 ‘롤 라벨’ 시리즈다. 패턴이 약 24번 반복되는 넉넉한 양의 라벨 스티커로, 재생 종이로 개발된 패키지 박스는 디스펜서로 쓰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실용적인 제품이다. 이번 ‘인벤타리오 2026’에서 선보인 ‘인덱스 인벤토리’ 역시 주목할 만하다. 9종류의 인덱스용 종이 라벨이 들어 있어, 필요할 때마다 쉽게 꺼내 사용할 수 있다. 인덱스는 나의 기록에 이정표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깃발을 뜻하는 플래그(flagg)의 브랜드명과도 잘 어울린다.

출처: 플래그

플래그는 따뜻하고 귀여운 스티커 브랜드들과 결이 다르다. 소위 산업시대의 ‘쇠맛’이 난다. 하지만 장소희 대표는 누군가는 그 ‘쇠맛’을 분명 찾았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슈퍼에서 파는 물건에 붙은 라벨 스티커, 심지어 가격표까지 떼서 모았어요. 어떻게 보면 라벨 스티커는 물건 입장에서 이방인이잖아요. 굳이 없어도 되는. 그 점이 마음을 끌었어요. 오로지 정보 전달이라는 기능만을 위해 존재하는 스티커라는 점이 특별해 보였죠. 분명 저처럼 ‘도식화된 아름다움’을 원하는 소비자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장소희 플래그 대표

인스타그램 @flagg.kr 

모퉁이우표점

취향을 여는 대화, 우표
출처: 모퉁이우표점

작디작은 우표 한 장을 작품으로 만드는 브랜드도 있다. 2023년 문을 연 모퉁이우표점이다. 모퉁이우표점은 시아버지가 50년 가까이 지켜 온 우표 가게를 배상희 대표가 브랜드화시킨 것이다. 시아버지가 수집가들을 위한 우표 가게를 운영해 왔다면, 배 대표는 우표의 의미를 ‘감상’으로 확장했다. 수집가뿐 아니라 문구를 좋아하는 젊은 소비자까지 포용하고자 한 것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제품은 ‘우표 액자’ 시리즈다. 나무 프레임, 아크릴 액자, 빈티지 액자 등 다양한 소재에 우표를 담아 소개한다. 제품을 기획할 때 배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표라는 작은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기’다. 가령, 빈티지 우표를 전시할 땐 비슷한 시기에 생산된 빈티지 액자를 구하기도 한다. 

출처: 모통이우표점

배 대표는 우표를 “나의 취향에서 시작해 타인의 마음으로 닿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우표 안에는 작은 세계가 있습니다. 그 안에는 누군가가 좋아하는 새, 고양이, 기차, 크리스마스의 설렘이 들어 있죠. 오로지 나의 취향을 들여다 보고,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른 우표를 매개로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다 보면 어느덧 작은 세계가 풍성한 대화로 이어지죠. 나의 삶이 들어 있는 우표를 통해 누군가에게 편지를 붙일 땐, 나의 인생을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 배상희 모퉁이우표점 대표 

 

모퉁이우표점이라는 이름에서 ‘모퉁이’는 ‘전환’을 뜻한다. 길의 끝이라 생각한 자리에서 새로운 장면으로 방향이 바뀌듯, 배 대표는 오늘날 우표가 ‘쓸모’라는 가치에 가려졌지만 모퉁이를 돌아 ‘취향과 인생’으로 보여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인스타그램 @motungi.stamp

다섯 브랜드가 파고든 아이템은 모두 작다. 종이 한 장, 크레용 한 자루, 테이프 한 조각, 우표 한 장. 하지만 이들은 작은 도구를 넓은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 문구 시장이 커질수록 많은 브랜드가 더 다양한 제품, 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처럼 처음 선택한 아이템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브랜드도 있다. 많이 만드는 대신 깊게 들여다 보는 것이 어쩌면 오래 사랑받는 하나의 비결일지도 모른다.

김은빈 객원기자

김은빈
서울과 로컬의 브랜드를 인터뷰하고, 글을 씁니다. 규모와 상관 없이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는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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