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위크로 분주하던 뉴욕의 가을, 맨해튼 한복판에 자리한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이하 MoMA)이 폐관 시간이 지났음에도 낯선 활기로 붐볐다. 지난 9월 15일,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UNIQLO의 글로벌 이벤트 ‘라이프웨어 데이(LifeWear Day)’가 열린 날의 이야기다. 이날 행사는 신규 컬렉션을 공개하는 패션쇼가 아닌 더 나은 일상을 만들기 위한 유니클로의 브랜드 철학을 전시 형태로 풀어낸 자리였다.
전시라는 형식과 맞물리자 MoMA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왜 유니클로는 브랜드 철학을 소개하는 글로벌 행사의 무대를 뉴욕, 그중에서도 MoMA로 정했을까. 그 답은 지난 10여 년간 유니클로가 예술계와 맺어 온 긴밀한 협력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벤트 현장에서 마주한 유니클로의 비전과 브랜드가 쌓아온 라이프웨어 철학의 궤적을 함께 되짚어 본다.
모두를 위한 예술, 유니클로 X MoMA

유니클로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인연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브랜드는 ‘모두를 위한 예술(Art For All)’이라는 공통 철학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더 많은 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예술가 듀오 길버트&조지(Gilbert&George)의 모토에서 영감을 받은 ‘아트 포 올(Art For All)’은 누구나 예술을 쉽게 감상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유니클로의 장기적 비전을 담고 있다. 이는 브랜드의 중심 철학인 ‘라이프웨어(LifeWear)’와도 맞닿아 있다. 우수한 품질의 의복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해 일상을 풍요롭게 하듯, 예술 역시 사람들의 삶을 넓히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니클로는 MoMA를 비롯해 테이트, 루브르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협력하며 무료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 등을 이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MoMA와 함께하는 ‘UNIQLO Friday Nights Admission Program’, 일명 ‘유니클로 금요일 밤 이벤트’다. 매주 금요일 저녁, 뉴욕 시민을 대상으로 미술 감상, 드로잉 체험 등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무료로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협업의 범위는 오프라인을 넘어 디지털 콘텐츠로도 확장됐다. ‘유니클로 아트 스피크(UNIQLO ArtSpeaks)’는 MoMA 큐레이터, 사진가 등 게스트가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에 얽힌 내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이 작품을 보다 친근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드로운 투 모마(Drawn to MoMA)’는 예술가들이 MoMA에서 받은 영감을 만화 형태로 재해석한 시리즈로, 올해 6월에는 그간 발표된 작품들을 모아 양장본을 제작하기도 했다. 두 프로그램 모두 디지털의 확장성을 기반으로 대중의 예술 접점을 넓히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에 시작된 유니클로 티셔츠 라인 ‘UT’ 역시 예술과 대중을 잇는 중요한 매개다. 카우스(KAWS),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 등 세계적 아티스트와 협업해 누구나 일상 속에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MoMA의 대표 소장품 또한 UT 컬렉션을 통해 ‘입는 예술’로 확장됐다. 올해 초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과 클로드 모네의 〈아가판서스Agapanthus〉과 같은 명작들을 그래픽 티셔츠로 출시했다. 유니클로와 MoMA의 파트너십은 패션 브랜드가 예술을 통해 어떻게 브랜드 철학을 실현하는지 설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유니클로의 발자취를 담은 전시

행사 당일, MoMA는 유니클로 기술력과 브랜드 철학을 소개하는 체험형 전시 공간으로 꾸며졌다. 로비 중앙에 놓인 붉은 유니클로 로고 구조물을 지나자, 2025 F/W 컬렉션을 착용한 토르소들이 군집을 이루듯 서 있었다. 바닥에 설치된 하얀 조명이 옷의 실루엣을 뚜렷하게 비췄고, 관람객들은 그 사이를 천천히 오가며 컬렉션의 디테일을 살폈다.

컬렉션 뒤로는 라이프웨어 철학을 예술(Art), 하트(Heart), 기술(Technology) 세 가지 관점으로 풀어낸 전시가 이어졌다. ‘모두를 위한 예술(Art For All)’은 유니클로와 MoMA의 파트너십을 기념하기 위해 구성됐다. 유니클로 UT를 착용한 마네킹 뒤로 지난 10여 년간 MoMA와 함께한 프로그램이 정리됐다. 예술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진행된 다양한 실험들은 패션을 넘어 예술과 일상이 교차하는 라이프웨어 철학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옆으로 이어진 ‘모두를 위한 하트(Heart For All)’는 유니클로가 진행해 온 다양한 기부 활동을 소개했다. 유니클로는 2006년부터 유엔난민기구(UNHCR)와 협력해 히트텍 등 의류 기부와 직업 훈련을 지원해 왔다. 옷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든다는 라이프웨어 철학은 예술을 넘어 사회적 실천으로도 확장되고 있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모두를 위한 기술(Technology For All)’ 공간이었다. 섬유 기업 도레이(Toray)와 협업 개발한 퍼프테크(PUFFTECH), 히트텍(HEATTECH) 등의 소재를 인터랙티브한 방식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퍼프테크 존에서는 초경량·보온 소재의 구조를 시각화한 대형 조형물이 설치됐다. 관람객들은 특별 제작된 소재를 직접 손으로 만져보며 삶의 편리를 만드는 라이프웨어의 기술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시는 히트텍 소재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인터랙티브 존으로 이어졌다. 인체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를 흡수해 열에너지로 바꾸는 히트텍 기술을 빛과 색으로 표현했다. 인터랙티브 장치 앞에서는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손을 뻗었다. 과학 기술이 예술적 체험으로 변모하는 순간, 라이프웨어가 말하는 예술과 과학의 접점이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났다.

라이프웨어 데이 행사 스케치

행사는 유니클로 임원진의 프레젠테이션과 패널 디스커션으로 이어졌다. MoMA 1층 오른편에 마련된 무대 위로 유니클로 창업자 야나이 타다시(Tadashi Yanai)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유니클로 설립 이래 우리의 미션은 옷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며 라이프웨어 철학의 핵심을 다시금 강조했다. 이어 “옷을 바꿈으로써 사람들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는 선언과 함께 국적·성별· 나이의 경계를 초월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일상복을 만들겠다는 유니클로만의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옷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이것이 유니클로의 미션 선언문입니다. 과거의 관습을 넘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옷을 만드는 것. 그를 통해 사람들이 삶을 더욱 즐기고, 생활을 더 편안하고 편리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우리 회사의 존재 목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여러분이 라이프웨어 철학과 우리의 의류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려는 유니클로의 헌신을 더욱 깊이 이해하시게 되었다면 기쁘겠습니다.”
ㅡ 야나이 타다시Tadasi Yanai, 유니클로 회장


뒤이어 열린 패널 디스커션에서는 배우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그리고 유니클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인 클레어 웨이트 켈러(Clare Waight Keller)가 함께했다. 세 사람은 스타일과 파트너십, 그리고 브랜드의 미래에 대한 각자의 시선을 공유하며 라이프웨어 철학을 현실의 언어로 풀어냈다. 특히 케이트 블란쳇은 유니클로 브랜드 앰버서더로 임명된 이후 첫 번째 공식 석상으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잘 만들어진 높은 품질의 옷을 소수만 누릴 수 있게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점이 유니클로의 브랜드 DNA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며 유니클로가 지향하는 라이프웨어의 메시지를 명확히 전했다.


행사의 클라이맥스는 유니클로가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rtist in Residence)’ 프로그램을 발표한 순간이었다. 프로그램의 첫 주인공은 현대 미술의 아이콘, 카우스(KAWS). 2016년부터 일곱 차례 UT 컬렉션을 함께한 유니클로와 카우스의 파트너십은 이번 발표로 한 단계 확장됐다. 단순 협업을 넘어, 아티스트와 브랜드가 장기간 호흡하며 새로운 창작을 시도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 것이다. 연단에 오른 카우스는 전 세계 유니클로 매장과 다양한 미술관 파트너와 함께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모두를 위한 예술(Art for All)’ 이니셔티브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차세대 라이프웨어 제품 개발에도 직접 참여할 계획이며, 그 결과물은 올 가을·겨울 시즌에 첫 컬렉션으로 공개된다.
한편, 카우스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활동의 일환으로 오는 10월 13일, 서울을 방문한다. 유니클로 브랜드 앰버서더인 로저 페더러가 국내 유소년 선수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예술, 문화, 테니스 축제 ‘READY, SET, SEOUL’행사에서 카우스는 한국인 그래픽 디자이너 용세라와 함께 테니스 코트를 디자인해 그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
글·사진 김기수 기자
자료 및 사진 제공 유니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