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금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굿즈는 누가 만드는 걸까? 주인공은 2018년 설립된 ‘씨네핀하우스’다. 씨네핀하우스는 2018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와 협업하며 소장 욕구 자극하는 굿즈를 만들고 있다. 벌써 네 번째 협업이다.
부산국제영화제뿐 아니다. 씨네핀하우스는 다수의 영화 및 콘텐츠, 행사의 기념 굿즈를 만들어왔다. 주력 품목은 핀 배지다. 그 결실을 모아 이번 영화제에 맞춰 9월 17일부터 21일까지 수영구의 딥슬립커피에서 가라지 세일 및 전시 ‘영화와 수집들’을 진행했다.
전시 현장에서 씨네핀하우스를 공동 창업한 최지은 실장을 만나, 씨네핀하우스가 어떻게 영화를 굿즈로 만들내는지 그 기획법을 들었다.
영화는 공감으로 기억된다
Interview with 최지은 씨네핀하우스 공동 창업자·실장
― 씨네핀하우스를 설립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주영 대표님과 저는 영화 관련 기관에서 일하다 처음 만났어요. 함께 영화 이야기를 꽃피우다 급속도로 가까워졌죠. 그때 어주영 대표님이 제게 ‘배지의 세계’를 알려줬습니다. 어느 날은 제 손을 끌고 영화제에 데려갔어요. “지금 오픈런을 해서 배지를 사야 한다. 내일은 다 팔려 없을 거다.”라면서요. ‘설마 그럴까’ 싶었는데 정말 다음 날 가 보니 없더라고요. 아,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제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죠.
그로부터 1년 뒤 2018년, 어주영 대표님과 함께 씨네핀하우스를 시작했습니다. 둘 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사회 초년생이었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어요. 어 대표님은 독학으로 디자인을 공부하며 실력을 키웠고, 둘이 함께 공장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 방방곡곡을 뛰어다니기도 했죠.

― 업계 반응은 어땠나요?
운이 좋게 창업한 지 얼마 안 돼서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2018년 6월 개봉한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의 CGV 굿즈 패키지가 첫 작업이었죠. SNS에 저희가 소소하게 만들어 올린 샘플 제품들을 보고 연락을 주신 거였어요.

타이밍이 좋았어요. 영화 업계에 막 굿즈 바람이 불기 시작했을 때였죠. 지류 티겟은 모바일화되고, 팸플릿을 모으는 문화도 점차 사라지면서 관객이 영화를 간직할 방법이 줄어들었거든요. 어주영 대표님이 시장 분위기를 간파하고 노련하게 시장에 진입한 거죠. 첫 작업을 시작으로 점점 더 많은 의뢰가 꾸준히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 특히 씨네핀하우스의 시네마 배지는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데요. 〈러브레터〉, 〈기생충〉같은 흥행 영화와 협업하면 공개 직후 매진되기도 하고요. 씨네핀하우스만의 배지 기획법이 있다면요?
첫 번째로 관객의 공감 포인트를 알아야 해요. 이 작품에서 관객이 울림을 느낀 장면은 무엇일지 상상하고, 그 울림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디자인하죠. 가령,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프로모션용 배지는 작품 속 중요한 상징물인 ‘눈알’로 만들었어요.

두 번째로 영화를 본 관객이 피식 웃을 수 있을 만한 위트도 중요해요. 특히 배경지로 그 위트를 표현할 수 있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경우 등장인물 스틸컷을 배경지로 활용했어요. 인물 얼굴 위에 배지를 배치해, 배지가 실제 영화 장면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도록 했어요.
마지막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줘야 해요. 작품 속에서 아무리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해도,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면 디자인에 활용하지 않아요. 굿즈로써 영화를 간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감동을 되새기고 싶어서니까요.
나만의 영화제를 간직하도록
―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MD는 어떻게 기획했는지 궁금해요.
‘나만의 시네마를 표현한다’라는 느낌에 집중했어요. 영화제에서 굿즈를 구매하는 이유는 이 경험을, 내가 영화제에서 발견한 나만의 영화를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서겠죠. 영화제에서 만든 좋은 기억을 저장하라는 의미에서 ‘메모리 키링’을 만들었어요. 부산국제영화제 로고를 칩 디자인으로 재해석해 실제 메모리 칩 패키지 안에 넣었죠.

‘영화제 가방’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전통을 간직한다는 마음으로 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부산국제영화제는 기념 백팩을 제작해 게스트들에게 제공해 왔죠. 다른 사람들의 백팩엔 뭐가 들었을까 괜히 상상해 보곤 했어요. 마침 올해는 백팩을 만들지 않는다길래,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마음으로 작은 미니 가방 키링을 만들었어요. 작지만 소중한 귀중품을 담을 수 있어요.
― 영화제 기간에 맞춰 가라지(garage sale) 세일과 전시를 진행하시죠.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오프라인 행사는 처음이라고요.
씨네핀하우스만의 굿즈를 만들고, 저희만의 행사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저희가 평소에 작업하는 굿즈들은 씨네핀하우스의 IP가 아니잖아요. 결국 온전히 우리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우리는 수많은 영화의 굿즈를 만드니까,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 자체를 우리의 IP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이 아이디어를 토대로 영화 수집과 관련된 아이템을 만들어 출시했어요. 영화 대사를 기록할 수 있는 메모 세트, 배지를 예쁘게 보관할 수 있는 핀 보드 등. 모두 ‘영화 덕질’에 활용할 수 있는 물건들이에요.

― 전시 공간도 독특합니다.
영화제가 진행되는 영화의 전당과 가깝고, 문화 예술에 친근한 장소에서 진행하고 싶었어요. 그때 떠오른 게 수영구의 딥슬립커피였죠. 딥슬립커피는 상징적인 장소예요. 주기적으로 부산 작가들의 전시를 열고, 2층에선 작은 브랜드들의 팝업이 열려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아닌, 로컬의 예술인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공간이죠.
전시 공간은 ‘가라지 세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마치 시네필의 창고처럼 꾸몄어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엔 유명 영화 대사들이 붙어 있고, 오래된 영화 잡지와 누군가가 평생을 모은 시네마 배지 등을 전시했죠.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은 창고 깊숙한 곳에서 먼지가 쌓일 정도로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는 걸 알리고 싶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좋은 굿즈’란 무엇인지에 대한 씨네핀하우스의 철학이 궁금합니다.
사실 지금 ‘굿즈’라는 형태가 됐을 뿐이지,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소장하고 간직했어요. 비디오테이프와 DVD를 사 모았던 것이 지금은 굿즈로 바뀐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작품을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은 바뀌지 않죠. 그런 의미에서 굿즈는 한 철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문화라고 생각해요. 이에 맞춰 씨네핀하우스도 앞으로 굿즈 제작을 넘어 문화 행사, 브랜드 등 다양한 분야를 기획하는 회사로 발전하고 싶어요.
글 김은빈 객원기자
취재협조 및 자료 제공 씨네핀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