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지금 ‘분재 열풍’이 불고 있다. 작은 화분에 나무와 풍경을 축소해 기르는 분재는 오랫동안 노년층이나 부유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전시와 팝업 공간에서 브랜드 오브제로 등장하는 것은 물론, 젊은 세대가 분재를 패션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는 일본의 분재 브랜드 트래드맨즈 본사이(TRADMAN’S BONSAI)가 있다. 일본 대표 편집숍 빔즈(BEAMS)는 2018년부터 트래드맨즈 본사이를 꾸준히 소개해 왔다. 팝업스토어만 네 차례 열었고, 매장 곳곳에 분재를 상시 배치했으며, 티셔츠 같은 협업 굿즈도 선보였다.
2025년 2월에는 반스(Vans)와의 협업이 화제가 됐다. 분재의 상징인 소나무 패턴이 올드스쿨과 슬립온, 어센틱 등 반스의 아이코닉 모델 전체를 뒤덮었다. 분재가 패션과 만나 하나의 새로운 시각적 언어로 재해석된 순간이었다. 이후 디올, 나이키, 리모와 등 럭셔리와 스트리트 브랜드까지 협업이 이어지며, 분재는 글로벌 패션계가 주목하는 오브제로 자리 잡았다.

분재, 패션과 경계를 허물다
트래드맨즈 본사이를 만든 이는 ‘분재계의 이단아’라 불리는 코지마 텟페이(小島 鉄平)다. 원래 패션 업계에서 활동하던 그는 해외에서 분재에 대한 관심을 체감하고 2015년 브랜드를 세웠고, 일본의 전통문화인 분재를 패셔너블하게 재해석한 최초의 브랜드가 됐다.
코지마의 전략은 단순했지만 파격적이었다. 교외 원예원에서만 팔리던 분재를 도심 한복판 길거리에 옷처럼 진열해 판매한 것이다. 도쿄 마루노우치에 연 쇼룸 역시 전통 원예원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었다. 화이트톤의 공간 중앙에 오래된 분재를 배치하고 벽면에는 의류와 액세서리를 가득 채웠다. 마치 갤러리에 온 듯한 이 공간은 분재를 더 이상 ‘흙냄새 나는 취미’로 보지 않게 만들었다.

고급 문화와 서브컬쳐의 만남
트래드맨즈 본사이는 오래되고 보수적이라고 느껴졌던 분재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꿨다. 분재는 더 이상 ‘전통’에 머무르지 않는다. 젊고, 트렌디하고, 패셔너블한 문화가 되고 있다. 단순히 브랜딩만 다른 게 아니다. 분재 작품 그 자체에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트래드맨즈 본사이의 분재는 ‘문화 실험’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2023년 5월 열렸던 전시 <SUPER TRAD>가 대표적이다. 트래드맨즈 본사이는 일본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스니커울프(SNEAKERWOLF)와 협업해 전에 없던 형식의 분재를 전시했다. 분재 화분을 그래피티로 페인팅하거나, 화분에 나무 대신 크래피티 전시물을 심는 식이었다.
오래도록 고급 문화의 정수라고 여겨졌던 분재가, 서브컬쳐 중에서도 매니악한 그래피티와 만난 것은 색다른 시도였다. 트래드맨즈 본사이는 2024년에도 스니커울프와의 콜라보레이션 티셔츠를 출시하며 ‘분재X서브컬쳐X스트리트 문화’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분재의 쓸모를 극대화한 구독제 운영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운영’이다. 트래드맨즈 본사이는 공간, 행사 등에 맞춰 분재 리스(렌탈)를 제안한다. 분재 렌탈이 아예 없던 개념은 아니다. 행사나 전시가 있을 때 원예 센터 등에서 분재를 렌탈해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는 일은 흔했다.
다만 트래드맨즈 본사이는 이를 ‘구독 문화’로 재포장했다. 월정액은 12만엔(약 113만원)으로 시작하며, 트래드맨즈 본사이가 셀렉트한 분재를 일주일에 한 번씩 교환해주는 서비스다. 연간 약 100개 기업이 월간 구독을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트랜드맨즈 본사이가 제작한 분재만 3,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분재의 인기는 일본을 넘어서고 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분재 수출액은 2023년 9억엔(약 84억 원) 이상으로, 2019년(약 4억7900만엔, 약 45억원) 대비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한국에도 트래드맨즈 분사이의 영향을 받아, 분재와 스트리트 문화를 결합한 브랜드가 하나 둘 탄생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 분재 브랜드 중 하나인 더루트클럽(The Root Club)의 유충현 대표와 유선으로 만났다.
Interview 유충현 더루트클럽 대표
― 더루트클럽을 설립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뉴질랜드에서 자랐습니다. 음향학을 전공하며 예술 세계에 관심을 키웠고, 한국인으로서 동양 예술에 대한 동경도 늘 있었어요. 한국에 들어온 건 2018년입니다.
분재를 처음 만난 건 2022년, 일본 여행에서였습니다. 빔즈 시부야 매장에서 트래드맨즈 본사이의 분재를 봤죠. 꼭 그림 같은데, 실제로 살아있는 나무라니 압도감이 들었어요. 분재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됐죠.
분재를 공부하면서 한국에 어떤 분재 문화가 필요한지 감이 왔어요. 일본에서 젊은 층을 타깃한 분재 브랜드가 통한다면, 한국에서도 분명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 구체적으로 어떤 브랜드를 구상하셨나요?
트래드맨즈 본사이의 핵심은 고급 문화와 스트리트 문화를 섞어 진입장벽을 낮춘 거예요. 그 철학을 이어 받아 2024년 더루트클럽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클리셰를 깨는 겁니다. ‘여기에 분재가 있다고?’ 싶은 공간에서 전시하는 거죠.
실제로 하이드앤드라이드(hide and ride) 팝업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하이드앤라이드는 모터사이클 문화를 기반으로 한 가죽 편집숍이에요. 그 곳에서 아프리카 희귀 괴근식물을 다루는 브랜드 콘(con)과 함께 전시했죠.
가죽, 괴근식물, 분재. 전혀 다른 분야지만 공통점은 있었습니다. 진입장벽이 높고,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죠. 이 세 카테고리를 한 공간에 모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전시를 하며 ‘고급문화가 반드시 고풍스러워야 할 필요는 없다’라는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었어요.

― 작품 자체의 현대적 해석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특히 더루트클럽의 분재는 모던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유가 뭔가요?
저는 분재를 제작할 때 검은빛이 나는 화산석과 검은색 화분을 주로 사용합니다. 검은색은 원래 분재에서 기피하는 색상이에요. 나무를 가린다고 생각해서요. 화분 흙으로는 적토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죠. 그럼에도 모던함을 고집하는 이유는 나무를 가린다고 걱정하다가 공간을 가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에요. 분재가 현대화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도시 공간에 어울리는 겁니다. 내 집, 내 방 인테리어에 잘 어울려야 분재의 역할을 할 수 있죠.
올해 초 진행한 편집숍 에잇디비젼(8DIVISION)의 PB 브랜드 2025 S/S 프레젠테이션 행사도 기억나네요. 당시 ‘코지 룸(Cozy Room)’이라는 콘셉트로 공간을 꾸몄죠. 분재가 패션과 어우러져 단순한 전시품을 넘어 일상 속 장면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 직접 카페도 운영하셨죠.
지금은 작품 활동에 전념하느라 공간 운영은 접었지만, 2024년 4월부터 12월까지 8개월 동안 직접 카페를 운영했습니다. 공간을 운영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지금까지 사람들에겐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단 거예요. 쉽게 분재를 접하고, 분재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죠.
보통 분재를 보려면 교외에 있는 원예원에 예약해야 합니다. 그것부터 진입장벽이 높아요. 예약하고 시간 내서 가면 괜히 꼭 구매해야 할 것 같고요. 저는 그냥 문을 열어두고 아무나 들어와서 볼 수 있는 원예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걸 카페라는 형식으로 구현했죠. 손님들 테이블에 그 날 무드에 맞는 분재를 깔아드리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사진도 찍고, 가격도 물어보면서 자연스레 분재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언젠간 이런 공간을 다시 오픈할 계획이에요.

― 한국의 분재 시장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1년 전만 해도 불모지에 가까웠습니다. 지금은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어요. 더루트클럽만 해도 올해 매출이 작년 대비 200% 성장할 걸로 기대합니다. 지금은 분재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 층이 많아지고 있다는 게 실감해요.
이유는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트래드맨즈 본사이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분재 브랜드를 꼽으라고 하면 트래드맨즈 본사이이니까요. 둘째로 팬데믹 이후 가드닝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어요. 동시에 골프나 웰니스 같은 고급 문화 역시 점점 일상에 스며들다 보니 분재까지 관심이 미친 것이죠. 셋째, 미디어의 영향입니다. 곧 개봉할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도 분재가 메인 오브제로 등장하거든요. 조용해 보이지만, 분재에 대한 수요는 이미 늘고 있습니다. 곧 트렌드가 될 겁니다.
― 마지막으로 대표님이 생각하는 분재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분재는 시간과 자연을 응축해 담아내는 행위예요. 작은 나무 한 그루에 수십 년의 시간과 자연의 에너지가 담기죠. 그 속에 사람의 손길과 철학이 더해져 분재는 완성됩니다. 사람들이 분재를 키우는 이유는 단순히 취미가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기 위해서예요. 도시가 더 복잡해질수록 분재를 찾는 사람들은 분명 많아질 거예요. 분재는 도시와 자연, 삶의 균형을 알려주는 동양 예술이니까요.
글 김은빈 객원기자
자료제공 및 취재협조 더루트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