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셈(Tarsem) 감독의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에 쏟아지는 관심이 뜨겁다. 지난 2006년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던 영화는 당시에는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으나,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꾸준히 회자되어 왔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4K 리마스터링을 거쳐 〈더 폴: 디렉터스 컷〉(이하 〈더 폴〉)이라는 제목으로 재개봉한 영화는 8주간 장기 흥행을 이어가며 12만 관객을 돌파했다. (25.02.11 기준)
〈더 폴: 디렉터스 컷〉 포스터 중 하나. 포스터 속 장면은 인도 라다크 지역의 마그네틱 힐에서 촬영했다.
영화는 스턴트맨 ‘로이’(리 페이스)가 호기심 많은 소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에게 들려주는 다섯 무법자의 모험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야기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카메라는 환상적인 모험에 걸맞은 장면들을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타셈 감독은 이러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로케이션 헌팅에 19년, 촬영에 4년이라는 세월을 쏟는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전 세계 24개국을 돌며 촬영한 영화는 모든 장면이 환상적이다.
〈더 폴〉 스틸컷. 인도 라다크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특히 이 영화는 CG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놀라움을 자아내는데, 타셈 감독은 지난 6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CG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더 폴〉을 위해 찾은 로케이션이 모두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이 아름다운 공간 위로 CG를 입힌다면 마치 ‘모자 위에 모자를 또 쓰는 일’이 될 것 같았다”라고 설명한 것. 이처럼 마법 같은 공간이 등장하는 영화 〈더 폴〉을 보았다면 꼭 기억하게 될 장소 세 곳에 대해 더 알아봤다.
*사람에 따라 스포일러라고 느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찬드 바오리, 인도 아바네리
선 자를 압도하는 지하 우물
〈더 폴〉 스틸컷. 찬드 바오리에서 촬영한 장면
어디서 적이 나타날지 모르는 미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아득해지는 수천 개의 계단. 타셈 감독이 이러한 배경을 표현한 곳은 인도 라자스탄주 아바네리(Abhaneri) 마을에 있는 계단식 우물, 찬드 바오리(Chand Baori)다. 찬드는 로컬 왕조 ‘찬다(Chanda)’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바오리는 계단식 우물이라는 의미로, 직역하면 ‘찬다 왕조가 건설한 우물’이라는 뜻이 된다. 계단식 우물은 가용 가능한 물의 양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 인도에서 탄생한 건축 양식으로 서인도 지역에서 주로 발견된다.
영화에 등장한 찬드 바오리는 9세기경 완성되었으며 인도의 계단식 우물 중에서도 깊고 거대한 곳으로 손꼽힌다고. 거꾸로 된 피라미드 형태의 우물 깊이는 약 30m이고 그 내부는 3,500여 개의 계단으로 이뤄졌다. 서 있기만 해도 압도되는 공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서는 자의 용기와 결심을 드러내기에 알맞은 배경이 된다.
2. 구눙 카위, 인도네시아 탐팍시링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신비한 곳
〈더 폴〉 스틸컷. 구눙 카위에서 촬영한 장면
땅의 기운을 온몸에 묻힌 사람들이 춤을 추는 곳, 신비로운 일이 벌어지는 곳. 타셈 감독은 그러한 일이 일어날 장소를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 근처 탐팍시링(Tampaksiring) 지역에서 찾아낸다. 그 장소는 바로 11세기, 바위를 깎아 만든 사원이자 왕족의 묘 구눙 카위(Gunung Kawi). 강을 향해 난 300개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구눙 카위가 나타난다. 바위 절벽을 깎아 만든 사당에는 지금도 여전히 신에게 기도를 올리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바위 사원과 사원 가까이 흐르는 파케리산 강(Pakerisan River)의 정경, 신을 믿는 이들의 호흡이 깃든 이곳은 신기하고 묘한 장면을 그리기에 더할 나위 없다. 특히 이 장면에 등장하는 발리의 전통 무용 케착 댄스(Kecak Dance)가 압권이니 눈여겨보자.
3. 메랑가르 요새, 인도 조드푸르
단독자로서의 인간이 놓이는 배경
메랑가르 요새. 사진 출처: Freerange Stock
사암 언덕 위에 세워진 높다란 요새, 아래로는 황량한 돌산, 위로는 하늘만 보이는 곳. 누군가 비장한 결단을 내리기에 이보다 적절한 공간은 많지 않을 것이다. 타셈 감독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등장할 장소로 메랑가르 요새(Mehrangarh Fort)를 선택한 이유도 이와 닿아 있지 않을까. 인도 라자스탄주 조드푸르(Jodhpur)에 자리한 메랑가르 요새는 1459년 지어지기 시작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일곱 개의 문을 거쳐 요새 내부로 들어서면 진주 궁전, 꽃 궁전, 거울 궁전 등 아름다운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뿐 아니라 요새의 성벽 위에 오르면 외벽을 푸른색으로 칠한 집이 많아 ‘블루 시티’라 불린다는 조드푸르의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요새 안으로 들어서야만 알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알고 나면, 영화에서 요새가 등장하는 장면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더 폴〉 스틸컷. 메랑가르 요새 위에서 촬영한 장면. 내려다보이는 곳이 블루 시티. 영화 촬영 시 푸른색을 극대화하기 위해 타셈 감독은 마을 사람들에게 무료로 페인트를 지급했다는 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