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를 돋보이게 만드는, 교토 마치야 플래그십스토어 3

작년 ‘워크위드’ 시리즈 인터뷰이로 만났던 봄별 사진작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본에 여러 번 갔지만 교토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느낌은 완전히 새로웠다고. 그 말을 듣고 아직 가보지 않은 교토가 무척이나 궁금했어요. 6일 동안 교토에만 머물며 느낀 이 도시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습니다. 무엇보다 역사를 보존하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눈길이 갔죠. 100년 넘은 일본 전통가옥이자 일본 전통 공법을 사용한 목조 건물 마치야(Machiya)* 를 보존해 브랜드 플래그십스토어를 조성하는 것처럼요. 거리를 활보하다 보면 마치야 식당을 비롯해 다양한 브랜드의 마치야 플래그십스토어를 만나게 됩니다. 역사가 깃든 도시를 보존하며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브랜드에서도 마치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나 짐작해 봅니다. 그중 마치야와 잘 어우러져 브랜드가 더 인상 깊게 다가온 플래그십스토어 세 곳을 소개합니다.

*교토의 마치야는 교마치야로도 불리지만 대부분 마치야로 상응한다.

르 라보 교토 마치야

LE LABO KYOTO MACHIYA

2024년 3월 오픈

교토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가와라마치역과 가모강 인근에 있는 르 라보(LE LABO) 교토 마치야 플래그십스토어. 교토 내 르 라보의 두 번째 단독 매장으로 지난해 3월 문을 열었습니다. 르 라보는 2006년 뉴욕에서 시작된 브랜드로 향수를 기반으로 한 제품을 선보입니다. 르 라보 교토 마치야 매장 앞을 지나가면 오픈 시간 전부터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 선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타 매장과 다르게 큰 간판을 부착하지 않고 문 앞에 걸어둔 휘장과 양각으로 새겨둔 로고로 공간을 나타내고 있죠. 그냥 지나치기 쉬우니 근처에 도착한다면 잠시 멈춰 서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거예요.

플래그십스토어는 2층 규모로 조성되었습니다. 외부에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라 공간이 더 신비롭게 느껴져요. 매장에 들어서면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한 듯 옛 골조를 그대로 남겨둔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기존 르 라보가 지향하는 무드와 목조 건물이 조화를 이루지요. 플래그십스토어는 크게 세 개로 분리해 살펴볼 수 있어요. 시향과 구매가 이루어지는 곳, 중정을 품은 카페 그리고 2층 아틀리에 공간까지 밖에서 가늠해 보는 것보다 더 넓은 공간을 만나게 됩니다. 입구에서 바로 이어지는 곳은 시향과 구매가 가능한 공간입니다. 르 라보 향수뿐 아니라 바디워시, 핸드솝 등 전 제품을 만날 수 있어요. 교토에서만 판매되는 한정 향수 ‘오스만투스 19’를 사려는 사람들로 매장이 붐비기도 했는데요. 패키징까지 마친 완제품을 바로 내어주는 것이 아닌 주문을 받은 후 향수를 만드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하루에 판매되는 제품 수가 정해져 있어 한정품은 쉽게 동이 난다고 합니다. 이곳과 교토 신푸칸(신풍관) 르 라보 매장 단 두 곳에서만 만나볼 수 있으니 구입하기 위해 줄 선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되었죠.

이곳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르 라보 카페가 있기 때문입니다. 르 라보 카페는 미국, 중국, 일본 전 세계 딱 세 나라에만 있어요. 그중 한 곳이 교토 마치야 플래그십스토어입니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이라 카페만 이용하고자 한다면 매장 줄을 서지 않고 르 라보의 음료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어요. 카페 앞에 마련된 중정은 마치야 건축물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지어진 시기에 따라 내부 구성이 달라져 중정이 없는 마치야도 있죠. 저마다의 특징을 짚어보며 마치야 플래그십스토어를 살펴봐도 좋겠습니다. 2층 아틀리에는 전시 공간으로 일본의 장인정신을 표현한 장인의 방과 조향사의 일터를 표현한 조향 공간으로 꾸며졌어요. 2층은 이벤트가 진행되는 등 때에 따라 둘러볼 수 있다고 하니 방문 시 참고하세요.

주소 | 일본 〒604-8016 Kyoto, Nakagyo Ward, Shimokorikicho, 2丁目206番地

아포테케프라그란스 교토

APFR KYOTO

2023년 11월 오픈

아포테케프라그란스(APFR)는 2011년 스가사와 케이타가 설립한 일본의 향 브랜드입니다. 독특하게 이 브랜드에서는 일반적인 향수 제품은 만나볼 수 없습니다. 룸 스프레이, 향초, 인센스. 디퓨저, 핸드 워시 등 아포테케프라그란스의 향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도록 향수를 제외한 여러 라인으로 제품을 출시하고 있어요. 향마다 즐길 수 있는 제품군도 달라 직접 시향을 해보며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일본에서도 아직 도쿄와 교토, 요코하마 세 군데에만 단독 플래그십스토어가 있어서 세 도시에 간다면 단독 매장에 들러보길 추천합니다. 그중 교토 아포테케프라그란스 플래그십스토어는 간사이 지역 첫 직영 매장으로, 골동품 상점과 오래된 주택이 즐비한 데라마치 거리에 있는 120년 된 마치야를 개조해 만들어졌어요. 과거와 현재가 적절히 어우러져 거리에 잘 녹아들죠.

매장에 은은하게 번지는 향과 낮게 설정된 조도는 공간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아포테케프라그란스 교토 플래그십스토어는 매장에 들어선 고객을 2층으로 바로 안내합니다. 1층이 아닌 2층에서 모든 향을 하나하나 맡아볼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기 때문이죠. 다락방 같은 공간에서 나에게 맞는 향을 맡으며 찬찬히 브랜드를 음미할 수 있어요. 마음에 드는 향을 발견하면 그 향으로 만나볼 수 있는 제품군을 확인하고 직원에게 원하는 제품을 말하면 1층으로 내려와 준비된 상품을 수령하는 시스템입니다.

2층 벽면에 세로로 난 작은 창문이 이 공간에서 유독 매력적이었어요. 창 앞에 놓인 인센스와 피어오르는 연기 그리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시간의 흐름을 짐작해 볼 수 있어 시선이 가곤 했습니다. 매장 경험으로 브랜드에 대한 인상이 바뀔 수 있어 브랜드 플래그십스토어는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정체성이 뚜렷한 브랜드에 마치야라는 교토의 고유성이 더해지니 아포테케프라그란스 브랜드가 더 의미 있게 다가왔어요. 교토의 다른 곳보다 한적한 데라마치 거리에 온다면 이곳에 들러 여유롭게 둘러보길 바라요.

주소 | 일본 〒604-0933 Kyoto, Nakagyo Ward, 二条通御幸町東入山本町439-1

이세이 미야케 교토

ISSEY MIYAKE KYOTO

2018년 3월 오픈

일본 못지않게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가 2018년 교토에 마치야 플래그십스토어를 선보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보니 미니멀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이세이 미야케와 소박함과 절제미를 담은 일본 전통 미학 ‘와비사비’를 기반으로 설계된 마치야는 서로 닮아 있었죠. 기존 마치야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외부와 내부 색감을 모두 짙은 회색으로 통일해 세련된 느낌을 더해줍니다. 이세이 미야케 제품의 특징은 평소 활용하기 쉽지 않은 단색을 이들만의 디자인 공법으로 조화롭게 풀어낸다는 점인데요. 단순하면서도 정교한 마치야 매장 안에 있으니 제품 하나하나가 더 돋보였습니다.

이곳은 일본 산업 디자이너의 거장이라 불리는 후카사와 나오토가 공간 디자인을 맡아 일본 내에서도 이세이 미야케의 상징적인 매장으로 통하죠. 그만큼 온전히 공간에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세이 미야케 교토 플래그십스토어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불가해요. 고요한 공간에 몰입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브랜드의 감성이 사진을 통해 소비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직접 경험하는 것이 더 짙은 잔상을 남기는 법이니까요. 이세이 미야케의 여러 라인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데 특히 바오바오(BAOBAO) 제품이 많으니 구입할 계획이 있다면 이 매장을 방문해 봐도 좋겠습니다. 인근에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 에이포크 에이블 이세이 미야케(A-POK ABLE ISSEY MIYAKE) 단독 스토어도 있으니 함께 둘러보세요.

이세이 미야케

주소 | 일본 〒604-8112 Kyoto, Nakagyo Ward, Tsuchiyacho, 89−89

에이포크 에이블 이세이 미야케

주소 | 일본 〒604-8084 Kyoto, Nakagyo Ward, Fukunagacho, 106

글·사진 김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