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가치를 품은 공간, 수많은 대중들이 방문하는 브랜드의 공간, 자연이 아름다운 공간, 예술을 누리는 공간…. 헤이팝은 올해에도 다양한 성격을 지닌 공간을 찾아 그 면면과 그곳을 꾸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연말을 맞아, 헤이팝 에디터들이 올해 취재한 공간 중에서 한 번 더 조명하고 싶은 공간을 골랐습니다. 그중에는 오픈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곳도, 긴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곳도 있습니다. 에디터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선정한 올해의 공간은 어디일까요? 그리고 그 공간이 인상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솔올미술관
2월, 프로젝트 캐비닛 취재를 위해 개관을 앞둔 솔올미술관을 찾았다. 한 공간을 다각도에서 조명하는 기획이므로 미술관 안팎을 퍽 꼼꼼히 살펴야 했다. 당시 들은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강릉에 생긴 이 미술관이 갖는 의미’에 대한 김석모 관장의 말이 인상 깊었다. 도시의 성격을 만드는 데 예술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 특히 관광도시에 미술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관한 얘기였다. 연초에 미술관을 취재한 후 강릉에 두어 번 더 갔다. 바다와 맥주가 있는 강릉은 언제 머물러도 즐거운 여행지니까. 매번 바다를 보고 매번 맥주를 마셨다. 다만 솔올미술관이 루트에 끼어들었다는 점이 달라졌다. 미술을 좋아하는 친구도, 여행하는 참에 소위 ‘핫플’에 들르고 싶은 친구도 솔올미술관에 가고 싶어 했다. 우리는 미술관 카페에 앉아 커피로 해장하고, 채 풀리지 않은 속을 감당하며 캔버스 앞을 서성였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김석모 관장의 말이 떠올랐다. 여행지에 좋은 예술 공간이 있으면 함께 하지 않던 걸 하게 되기도 하는구나, 하면서.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연계 프로그램이 늘 성황이었다고 하니, 강릉 시민에게 이 미술관은 더욱 각별했을 것임을 짐작한다.
솔올미술관은 8월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의 위탁 운영을 종료하고 건물 보수 중이다. 강릉시가 운영을 이어받아 내년 상반기 ‘강릉시립미술관 – 솔올’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한다는 계획이다. 솔올미술관에서 누렸던 ‘미술관의 시간’을 내년에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유영 기자
▶ 예술과 자연이 잇닿는 백색의 미술관, 솔올미술관 ①
📍 강원 강릉시 원대로 45
서점 커리큘럼
올해 11월에 문을 연 팝업 서점이다. 매달 이슈를 정해 발행하는 매거진처럼 비정기적으로 서점의 큐레이션을 변경한다.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서점 커리큘럼을 올해의 공간으로 꼽은 이유는 오선희 디렉터에 대한 신뢰와 공간이 품은 아우라덕이다. 패션지 에디터 출신인 오선희 디렉터는 브랜드 바이에딧과 독립 출판사 포엣츠앤펑크스의 대표이기도 하다. 주제에 부합하는 재료를 수집하는 작업은 그에게 놀이에 가깝다.
첫 번째로 선보인 테마는 〈The manner of girl〉. 소녀의 태도, 방식, 관점으로 고른 100여 종류의 책을 전시했다. 소공녀와 키키, 전혜린과 최승자, 윤여정과 뉴진스를 하나의 선반에 올리는 담대한 큐레이션은 서점 커리큘럼의 행보를 기대하게 하는 지점이다. 하나의 주제를 비교적 길게 가져가는 만큼 서점을 배경으로 다수의 서퍼 클럽이 열린다. 런던의 독특한 소셜 다이닝 문화인 서퍼 클럽을 서점으로 옮겨왔다. 소박한 정원과 키친은 앞으로 어떤 만남을 만들든 좋은 재료가 될 예정이다. 김기수 기자
▶ 삼청동 서점 커리큘럼, 첫 번째 팝업 〈The manner of girl〉
📍 서울 종로구 삼청로 135, 1F
온양민속박물관
지난 10월, 개관 46주년을 맞은 온양민속박물관에 방문했다. 가을 단풍 명소로도 유명한 온양민속박물관은 총 64,800m² 규모로 한국인의 생활 문화를 한눈에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공간은 먼저 박물관 본관을 살펴보자. 김석철 건축가가 설계한 본관에는 옛 선조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 약 10,0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온양민속박물관에는 상설 전시가 이루어지는 본관 외에도 기획전이 열리는 공간, 구정아트센터가 있다. 이타미 준 건축가의 손길이 닿아있는 이곳은 중앙홀과 두 개의 전시실이 양옆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예술 공연 문화행사 및 전시를 진행한다. 방문 당시에는 현대 작가 36팀이 각자의 방식으로 제작해 낸 전통 ‘소반’의 모습을 전시한 〈반반반_너르고 바른 반〉기획전을 관람할 수 있었다.
박물관의 전시만큼이나 카페도 중요한 법. 온양민속박물관의 사계절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카페온양은 박물관 텃밭에서 자란 건강한 식재료를 활용한 계절 메뉴를 선보인다. 마지막으로, 온양민속박물관에 왔다면 야외 전시장을 꼭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아름다운 수생식물과 사계절의 자연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이신영 콘텐츠 매니저
📍 충남 아산시 충무로 123 온양민속박물관
모스카펫(MOSS CARPET) 쇼룸
모스카펫은 가구 디자이너, 회화 작가를 비롯한 동시대의 크리에이터와 함께 가구를 만드는 플랫폼이다. 진입장벽이 높은 가구 시장의 진입을 도와 크리에이터가 안정적으로 개인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조인혁 작가의 리히르, 권현아 디자이너의 콜드포그, 김기석 작가의 팩토, 권의현 디자이너를 필두로 세 명의 디자이너가 함께하는 원투차차차, 박길종 작가의 길종상가까지 모두 모스카펫에 속해있다. 모스카펫 쇼룸에서는 이들의 제품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다.
서울 성수동에 냈던 첫 쇼룸을 올해 7월 신사동으로 이전해 새롭게 선보였다. 신사동 쇼룸에는 리빙 커뮤니티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하는 모스카펫의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겼다. 단순히 가구를 예쁘게 배치해 선보이는 쇼룸이 아닌 우리의 주거 생활이 이루어지는 ‘집’을 하나의 콘셉트로 잡아 이를 오프라인에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집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생활 소음이 쇼룸의 배경음으로 흐르는 이곳. 부엌과 거실 간의 실제 동선을 고려해 가구를 배치하는 것은 물론 공간 내 사소한 인테리어 요소도 놓치지 않아 디자인 영감을 얻기에도 좋다. 각기 다른 스토리를 전개하는 브랜드를 즐거운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한다는 모스카펫의 비전을 구심점으로 응집시켰다는 점에 큰 의의를 둔다. 김지민 기자
글 heyPOP 편집부
정리 김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