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헬싱키 기반 갤러리 로칼(LOKAL)과 서울의 팩토리2가 함께 기획한 교류전 〈조응 Correspondences〉이 열렸다. 손을 중심으로 작업하며, 예술의 여러 영역에 걸쳐 있는 한국과 핀란드 작가 각 5인의 작품이 한 공간에서 편지를 주고받듯 조응한 전시다. 예술가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 결과물이 어떻게 관객과 조응하고 의미를 창출하는지, 그리고 작품 간의 상호작용이 어떤 형태로 이전에 없던 예술 경험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전시이기도 하다.
두 개의 갤러리, 조화로운 얼굴
헬싱키 중심부에 있는 디자인 디스트릭트를 걷다 보면 갤러리이자 아트숍인 로칼(LOKAL)이 있다. 로칼은 로컬 아티스트들에게 마땅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체감한 카티야 하겔스탐(Katja Hagelstam)이 2012년에 설립한 갤러리다. 헬싱키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예술가, 디자이너, 공예가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와 협력하며 그들의 장인정신을 널리 알리는 창작 허브 역할을 한다. 현지 아티스트들에게는 ‘Koti(집)’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다. 로칼은 특유의 예술적 미감과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핀란드 정부가 수여하는 디자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팩토리2는 홍보라 디렉터가 설립한 문화예술공간이다. 갤러리 공간을 기반으로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이들은 기예와 기술을 넘어서서, 시각예술 지형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조금은 ‘다른’ 공예적 태도를 가진 창작자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장으로서 역할하고 있다. 경계 없는 유연함과 사려 깊은 다정함을 보여주는 로칼의 궤적은 팩토리2에게도 북극성 같은 지향점이 됐다. 둘의 만남이 유독 조화로운 얼굴을 할 수 있는 이유다.
로칼과 팩토리2의 조우는 처음이 아니다. 2016년, 타이포그래피와 수공예를 결합한 〈타이포크라프트 헬싱키〉 서울 에디션을 시작으로 헬싱키와 교토에서 같은 시리즈의 기획전을 개최하며 교류의 범위를 넓혔다. 2021년에는 로칼의 대표 전시 〈Coming Home〉의 서울 버전을 선보였고, 2022년에는 팩토리2에서 열린 유리공예 작가 레나타 쉬름(Renata Schirm)의 개인전 〈MYRIAD〉를 공동 기획하며 꾸준한 접점을 만들어 왔다.
핀란드인의 시선으로 가꾼 전시
이번 전시 기획과 공간 연출에는 로칼의 두 중역이 함께했다. 설립자이자 큐레이터로서 로칼 고유의 미감을 관리하고, 사진가 역할을 겸하는 카티아 하겔스탐과 로칼의 인테리어 건축가이자 전시 디자이너인 한니 코로마(Hanni Koroma)다. 한니 코로마는 1997년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한 이후로 핀란드와 해외 곳곳에서 200개가 넘는 개인 주택, 사무실, 부티크, 레스토랑, 공공 공간 등을 설계했다. 아름다움과 조화를 중요시하는 그에게 디자인은 더욱 큰 개체의 일부이고, 변화에 맞춰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하는 과정이다. 공간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한 편의 시와 같다고 언급한 이유다. 그는 이번 전시의 연출을 맡아 작품이 지닌 독창적인 이야기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공간의 구석까지 손수 매만졌다.
편지를 나누듯 상호 작용하는 열 명의 작품
로칼, 팩토리2가 협업한 〈조응〉전은 핀란드와 한국의 작가 각 5인이 함께했다. 사용하는 재료도 작업 방식도 다르지만, 하나의 공간 안에서 긴밀히 상호 작용을 하며 연작처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백경원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도예가. 핸드빌딩 기법으로 만든 그의 작품은 유약 층 아래로 은은하게 드러나는 손자국과 반듯한 실루엣이 특징이다. 주제로부터 떠오르는 심상을 기하 도형의 조합이나 구상적인 형태의 추상화로 구현하고, 그를 작품에 담아낸다.
정수경 러시아에서 디자인을 배우고 영국 왕립예술대학(RCA)에서 유리 조형을 연구했다. 기하학적 건축 구조와 자연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추상 조각에 가까운 형태를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고체와 액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규칙과 우연성’, ‘정형과 비정형’을 동시에 담는다. 유리의 두께와 투명성이 빛의 굴절을 만들어 수면 아래를 바라보는 듯한 시각적 경험을 준다.
현명아 다양한 혼합 매체를 사용해 ‘연결’이라는 개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일상 속의 불완전하고 부분적인 요소를 결합해 관객이 작품과 직접 연결되어 상호 작용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현재 시카고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학생들의 작품으로 매년 아티스트북 전시를 기획하며, 다양한 아티스트북에 관한 워크숍과 강의를 하고 있다.
한니 코로마 Hanni Koroma 로칼의 전시 디자이너인 한니 코로마는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가구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지속 가능하고 유쾌한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기능과 미학을 결합한 작품을 선보인다.
밀라 바흐테라 Milla Vaahtrea 굵은 유리 덩어리와 섬세한 황동을 결합한 독특한 작품으로 알려진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신체 이미지와 섹슈얼리티에서부터 창작 과정에서의 직관과 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양정모 공예와 산업디자인을 기반으로 가구와 조명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2016년부터 한지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한지 소재를 연구하고, 이를 활용한 조명을 제작한다. 반복적으로 한지를 붙이는 과정을 시각화하는 건 쉽게 만들어지고 소멸하는 시대에 대응하는 작가의 태도다.
차승언 언뜻 평면 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손으로 직조한 직물로 구성한 작품이다. 홍익대학교와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각각 섬유미술과 회화를 전공한 그는 베틀을 이용해서 짠 캔버스를 통해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며, 동시대 미술과 공예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 나가고 있다.
안트레이 하르티카이넨 Antrei Hartikainen 핀란드의 가구 브랜드 피스카스(Fiskars)에서 목재 가구 작업을 선보이는 장인이자 디자이너다. 그의 작품은 기능성 사물과 시각 예술 사이의 전통적인 분류에 도전하며 경계를 흐리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헬리 투오리-루토넨 Heli Tuori-Luutonen 1980년대부터 텍스타일 작품, 교회를 위한 직물, 일상용 직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섬유 예술가다. 수공예에 대한 독특하고 미니멀한 접근 방식을 취하며, 핀란드 국립 미술관, 핀란드 국립 극장 등 저명한 컬렉션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나탈리 로텐바허 Nathalie Lautenbacher 프랑스계 핀란드 도예가이자 디자이너인 그는 1999년부터 섬세한 색상과 독특한 개성이 돋보이는 테이블웨어를 제작해 왔다. 매년 새로운 컬렉션을 추가하고 있으며, 각 제품은 석고 틀에 유색 포르셀린을 붓는 방식으로 정성스레 제작된다.
기획 | LOKAL (카티야 하겔스탐Katja Hagelstam)
기획 보조 | 김다인
진행 | 김다은, 김보경
참여 작가 | 백경원, 양정모, 정수경, 차승언, 현명아, 안트레이 하르티카이넨Antrei Hartikainen, 한니 코로마Hanni Koroma, 헬리 투오리-루토넨Heli Tuori-Luutonen, 밀라 바흐테라Milla Vaahtera, 나탈리 로텐바허Nathalie Lautenbacher
그래픽 디자인 | Remote Studio
공간 연출 | 한니 코로마Hanni Koroma
설치 도움 | 손정민
주최·주관 | 팩토리2
후원 | 서울문화재단, 서울메세나지원사업, 헤이그(Haag)
글 김기수
자료 제공 팩토리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