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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0

디자이너가 디자이너에게, ‘디자이너’란 무엇인지 묻다

ORGD 〈굿 디자이너〉, 2개의 공간에서 3개의 전시가 진행되는 디자인 프로젝트

디자인이라는 ‘일’은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와 제작 기간, 예산, 과업 범위 등을 협의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작자임과 동시에 의뢰인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나만의 아이디어와 타인의 의견을 절충해 하나의 결과물에 다다르는 서비스업의 성질을 보인다. 이 두 가지 성질을 모두 지닌 직업을 ‘디자이너’라고 볼 수 있겠다. 외부에서 바라봤을 땐 자유롭게 일할 것 같지만 특정 가이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절제하고 작업물을 의뢰한 이들에게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선보이기 위해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하며 서비스 정신을 발휘한다. 순수 작가가 아니기에 창작의 영역과 이해관계의 경계선에서 직업적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직업적 의미를 거듭 재정립하면서 또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디자이너, 그중 그래픽 디자이너는 요즘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바라볼까? 12년 차 그래픽 디자이너가 ‘그래픽 디자이너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디자인 필드에서 활약 중인 9팀의 디자이너와 118명의 자발적 참여자와 함께. 

당신은 ‘굿 디자이너’인가요?

동시대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해 디자이너와 이야기하고 연구해, 해당 내용을 물리적・비물리적인 결과물로 기록하고자 만든 그래픽 디자인 플랫폼 ORGD(Open Recent Graphic Design). ORGD를 만든 양지은 총괄 기획자는 12년 차 그래픽 디자이너다. 과거 디자인 대학원을 다닐 당시 그는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품는지, 일을 하며 어떤 생각을 나누는지 궁금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끝마친 뒤 완성된 결과물에 관해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것도 좋지만 해당 작업물이 어떤 맥락에서 출발했는지, 디자인 작업 과정 속 이야기에 주목하고 싶었다. 비평적인 시선으로 이미지와 활자를 통해  디자인을 다루고 싶어 2018년 ORGD를 통해 그 의미를 짚어보기 시작했다. 그해 첫 전시를 시작으로 2024년 올해 다섯 번째 전시를 열며 ‘그래픽 디자이너의 정체성’에 관한 〈굿 디자이너〉라는 주제로 찾아왔다. 

아케이드 서울 외관

2개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3개의 전시

〈굿 디자이너: 의문〉 | 9팀의 디자이너가 정의한 디자이너의 정체성 

장소 : 아케이드 서울 | 기간 : 2024.10.11 – 2024.11.01 

전시는 〈굿 디자이너: 의문〉, 〈굿 디자이너: 대답〉 그리고 〈굿 디자이너: ORGD 시각 정체성 표준 2.0〉 두 개의 기획전과 하나의 참가전으로 구성되었고 아케이드 서울 전시장과 리얼레이션 스페이스 두 곳에서 진행된다. 〈굿 디자이너: 의문〉은 아홉 팀의 디자이너에게 각자 생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정체성에 관해 묻고 그들이 제시한 관점을 다양한 매체와 표현 방법으로 시각화한 전시이다. 북 디자인, 브랜드 에이전시, 웹 사이트 개발 등 활동하는 분야가 각기 다른 아홉 명의 디자이너가 공통된 질문을 받았을 때 뻗어나가는 생각의 가지는 무궁무진하고 표현하는 기법 또한 다양할 것. 양지은 기획자는 정체성에 관한 공통된 질문을 아홉 디자이너가 각기 다른 매체로 다양하게 풀어낸 모습을 통해 다시 한번 전시의 주제를 환기한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명확하게 한 문장으로 규정지을 수 없고 창작자와 노동자*의 입장이 함께 공존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창작자도 노동자에 포괄되지만, 본 인터뷰에서는 인터뷰이의 말을 빌려 디자이너가 수행해야 하는 서비스적인 측면의 업무를 ‘노동자’의 입장으로 바라봤다. 
〈굿 디자이너: 의문〉 전시 내부 전경

〈굿 디자이너: 대답〉 | 디자이너의 정체성에 관해 118명의 참가자에게 물었다. “디자인을 왜 하나요?”

장소 : 리얼레이션 스페이스 | 기간 : 2024.10.18 – 2024.11.08

〈굿 디자이너: 대답〉은 118명의 참가자가 함께한 참가전이다. 지난 2022년 네 번째 전시를 개최하면서부터 디자인 바운더리에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참가전을 열게 되었다. 현업에 종사하는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아직 실무에 진입하지 않았더라도 해당 주제에 참여하고 싶은 이들을 모집해 그들의 작품을 발표해 주는 구조를 만들었다. 참가전에서는 중복 참가자의 작품을 포함해 총 122개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ORGD가 선정한 ‘지금 이야기해 보면 좋을 법한 디자이너의 정체성’에 관한 다섯 가지 질문 중 하나를 참가자가 택해 작품으로 답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Q1.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무엇인가요?’ ‘Q2. 좋지 않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Q3. 디자이너로서 나만의 강점은?’ ‘Q4. 디자이너로서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Q5. 디자인을 왜 하나요?’  

 

〈굿 디자이너: 대답〉 참가전 형식이 흥미로운 이유는 어떤 질문에 가장 많은 작품이 응모되었는지 전시장에서 눈으로 식별이 가능하도록 구성했다는 것이다. 해당 결과를 통해 요즘 디자인씬은 어떤 질문에 관심이 많은지, 피하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지점이 이 전시에서 파생된 또 다른 시사점이라는 생각도 든다. 

〈굿 디자이너: 대답〉 전시 내부 전경

〈굿 디자이너: ORGD 시각 정체성 표준 2.0〉 | 로고로 살펴보는 ORGD의 정체성

장소 : 리얼레이션 스페이스 | 기간 : 2024.10.18 – 2024.11.08

마지막, 〈굿 디자이너: ORGD 시각 정체성 표준 2.0〉 는 이번 주제를 통해 ORGD의 정체성을 가다듬어 본다. 단 한 가지의 의미를 담는 단일 그래픽 방식보다는 ORGD를 통해 실현하고 싶은 여러 가치를 표현하고자 처음 2018년에 만들었던 로고 타입을 올해 갱신하면서 그 과정을 나열해 로고에 담긴 가치를 하나씩 살펴본다. 현재 상황에 맞게 재정립한 ORGD의 가치와 함께 로고에 변화를 주면서 발생한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ORGD는 더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가능성을 물리적인 형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게끔 최근 ‘ORGD ARCADE’라는 상표를 등록하기도 했다. 새롭게 리뉴얼된 로고에서 파생된 굿즈가 바로 ORGD ARCADE 상표로 실현되었고 〈굿 디자이너: ORGD 시각 정체성 표준 2.0〉이 열리고 있는 전시 공간 옆에서 진행 중인 ORGD ARCADE 팝업스토어에서 만나볼 수 있다. 

ORGD 로고

〈굿 디자이너〉 기획 배경을 살펴보며,

총괄 디렉터 양지은 Mini Interview

— ORGD가 지은 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들었어요. 조금 더 구체적인 동기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미술이나 문학에는 비평가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어요. 그런데 ‘디자인’ 분야는 조금 결이 달라요. 서비스업을 기반으로 하는 창작자이다 보니 완벽히 예술 작품으로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어 주어진 주제나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시각적인 결정을 내렸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비평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논의하기 위해서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한데 그 언어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최근 그래픽 디자인 열기’라는 뜻의 ORGD를 만들어 ORGD가 주제를 만들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를 섭외해 그들이 해당 주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시각화된 결과물로 전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작품을 만들면 그 작품을 만든 의도와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기술을 도록에 잘 담아내며 우리만의 언어를 형성하는 실천을 해나가고 있죠. 

 

— 4회 때부터는 참가전을 개최해 전시 주제에 대한 답의 준거를 넓혀가고 있어요. 

섭외한 디자이너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참가해 주신 디자이너분들을 통해 넓고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더라고요. 어떤 분들에게는 이 전시가 어떤 발판이 되어주기도 할 테죠. 해당 주제에 의견이 있어 참여하고 싶은 분들에게 소정의 전시 참가비를 받지만, 참가자분들에게 모두 한 권씩 전시 도록을 증정해 드리고 있어요. 디자인, 시각예술 분야 안에서 한 명이라도 더 ORGD가 실천하는 가치에 관심을 두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도록은 제가 운영하는 디자인 겸 출판사 ‘프레스룸’에서 제작하는데, 소량으로 제작하는 책이고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마이너한 전시이지만 최대한 많은 분이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리얼레이션 스페이스 내부

— 이번 전시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정체성에 관해서 펼쳐졌어요.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정한 이유가 있다면요?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지겨운 주제일 수 있어요. 12년 동안 현업에서 활동하며 디자이너란 창작자와 노동자의 정체성이 혼재된 직업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외부에서 디자이너를 조명할 때면 시각적으로 해당 결과물이 어떻게 훌륭한지 겉모습을 비추기 마련인 경우가 많았죠. 매끈하게 보고 싶은 면을 잘 포장해 디자인의 ‘정체성’을 다뤄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디자이너는 직업 특성상 의뢰인으로부터 개인의 창의성과 서비스를 동시에 요구받을 수밖에 없는데,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치중되는 관행을 요구받기도 하거든요. 모순된 두 가지를 함께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결국 괴리에 부딪히게 돼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그 혼란은 보통 노동자적 측면에서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받을 때 자주 찾아오죠.. 그래서 본 기획전에서는 아홉 팀의 디자이너들이 노동자적 정체성으로서 디자이너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굿 디자이너: 의문〉을 구상하기도 했습니다. 단, 디자이너분들에게는 정체성에 대한 주제를 통해 창작자적 측면과 노동자적 측면 중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하거나 포괄하여 편하게 다루어 주시기를 제안했어요. 자유롭게 발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 올해 전시와 함께 ORGD 로고를 갱신하면서 이 전시를 주최하는 집단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다시 짚어봤어요. 

2018년 처음 로고를 만들 때부터 단순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학교에서는 최소한의 시각적 제스처로 메시지를 담는 형태의 미니멀한 로고 만들기를 주로 배우는데, 그 당시에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좋은 디자인이란 것에 대해서 의심을 품기도 했어요. 왜 꼭 명조체를 사용할 때 영어 병기는 반드시 비슷하게 생긴 세리프체(serif)를 사용해야 하는지와 같은 것들 말이죠.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하던 때 ORGD 로고를 만들게 되면서 단일 그래픽 방식보다는 블랙맘바, 꽃, 야자수 나무 등을 집어넣으며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를 다 담아내고자 했던 것 같아요. 〈굿 디자이너〉라는 전시 주제에 대한 가닥을 잡으면서 기존 로고에서 확장된 ORGD의 시각 아이덴티티를 어떤 가이드를 지키면서 사용하고 있는지 그 매뉴얼을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기획전 〈굿 디자이너: ORGD 시각 정체성 표준 2.0〉을 열게 되었어요. 전시에서 보여주는 로고가 2.0 버전이고 갱신된 버전의 매뉴얼에는 의미와 대상을 독립적으로 파생시켜 스토리텔링을 담은 그래픽을 제작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어요. 이 부분은 로고의 시각화에 있어 문장(Coat of arms)의 개념을 차용했지만 헤럴드리(heraldry)가 정립한 규율을 따르진 않는다는 의도를 강조하기 위한 시도였어요.

— 기획전과 참가전 전시 제목이 ‘의문’과 ‘대답’이에요. 하나의 주제가 관통하기는 하지만 이어지는 전시는 아니죠. 상응하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ORGD 전시 1회 때도 ‘태스크(Task)’ 와 ‘테스트(Test)’라는 상응하는 콘셉트로 기획전을 진행하긴 했는데 매회 이런 흐름으로 가는 건 아니라 콘셉트를 의도하고 만든 건 아니었어요. 아예 안 나뉘어져 있던 때도 있죠. ‘의문’과 ‘대답’이라는 게 자칫하면 한쪽에서 질문을 하고 한쪽에서 대답하는 큐앤에이 형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디자이너의 정체성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것들을 질의(Quarry)로 풀 수 있을 것 같아서 한글로 바꿀 때 ‘의문’이라는 단어를 택하게 되었어요.

 

— 이번에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과정이 있다면 들어보고 싶어요. 

준비를 작년 12월부터 했는데 기획전을 위해 아홉 디자이너분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또 하나의 메타 작업처럼 느껴져 흥미로웠어요. 비교적 실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디자이너분도 있지만 이미 오랫동안 디자인씬에 몸담가 오셨던 분들도 포함되어 있다 보니 이분들이 전시를 준비하는 모습이 나뉘더라고요. 자유롭게 원하는 방향으로 전시를 진행하고자 했지만 다수의 작업을 진행하셨던 디자이너분들은 어쩔 수 없이 클라이언트를 마주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나타났어요.(웃음) 서비스를 제시하는 일을 하시다 보니 그 화법에 익숙해져서 그러셨던 것 같아요. 덕분에 다시 한번 디자이너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 현재 지은 님이 정립한 ‘그래픽 디자이너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궁금하네요. 

창작자와 노동자의 마인드는 양립할 수밖에 없지만 노동자의 파이가 조금 더 큰 것. 노동자로서의 비율이 조금 더 높지만 창작의 영역도 함께 가져가야 하죠. 같은 과제를 받더라도 디자이너마다 모두 다르게 접근하고 표현하듯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은 고유하다고 봐요. 그런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은 처한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이너의 본질성은 서비스업에 더 가까이 있어서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하고 재밌는 시각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더라도 서비스를 더 우선에 두고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는 작가가 아니고 어찌 되었든 우리가 창작할 기회는 클라이언트에게서 오는 것이니 말이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 자문하고 타진하면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지민 인턴 기자 

자료 제공 ORGD

프로젝트
〈굿 디자이너: 의문〉, 〈굿 디자이너: 대답〉, 〈굿 디자이너: ORGD 시각 정체성 표준 2.0〉
장소
아케이드 서울, 리얼레이션 스페이스
주소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114길 46
일자
2024.10.11 - 2024.11.08
시간
아케이드 서울(10/11 - 11/1) 월요일 - 일요일 11:00 - 19:00
리얼레이션 스페이스(10/18 - 11/8) 월요일 - 일요일 11:00 - 19:00
주최
ORGD
주관
프레스룸
클라이언트
공간 후원 | 아케이드서울, 리얼레이션 스페이스
기획자/디렉터
총괄 기획 | 양지은, 기획 | 김도현, 박고은, 디자인 | 프레스룸
참여작가
박부미 @boo_mee , 보이어 @bowyer_kr , 석창희(42mxm) @42mxm , 스튜디오 바톤 @studio.baton , 엄후영 @hooyounghoo , 이민규 @img.i.mg , 이지선 @withtext_ , 정사록 @sa.rok.sarok , 황현범(42mxm) @42mxm 외 참가자 118명
김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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