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4

[MDW 2024 ②] 시공간을 연결하는 물성의 힘

장외 전시 ‘푸오리살로네 Fuorisalone’에서 뽑은 키워드 3

디자인에 아름다움은 물론이겠지만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 MDW 2024에서 느낀 건 재료의 본질에 더 깊이 집중했다는 것. 유일무이한 물성의 멋을 공예적인 터치로 풀어낸 작품들을 놓치면 안 되는 주요 관전 포인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MDW 2024 장외 전시 푸오리살로네(Fuorisalone)의 주제는 ‘물질과 자연(Materia Natura)’. 이와 더불어 새로운 시대에 헤리티지를 자랑하는 브랜드가 어떤 방식으로 유연하게 어우러지는지, 어떻게 디자인을 진화해 나갈지 방향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전시가 대다수였다. 밀라노 도시 전체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전시인 만큼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전시를 전부 관람할 수 없었지만, 한 곳 한 곳 둘러보니 마치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드는 메타버스처럼 디자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감하는 현장이었다. 마지막 날까지 발걸음을 쉬이 떼지 못할 정도로 다채로웠던 올해의 푸오리살로네를 요약하는 키워드 세 가지를 뽑았다.

Point 1. 본질을 찾아서, 재료에 집중하는 시간

Hermes ⓒ Fuorisalone

매년 푸오리살로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로 꼽자면 패션 브랜드의 홈&리빙 전시가 아닐까 싶다. 올해도 로에베, 에르메스, 구찌, 보테가 베네타, 아르마니 까사 등 럭셔리 브랜드가 더욱 알찬 볼거리를 마련했다. 그 인기를 실감하듯 MDW 2024 기간 내내 각 전시장 입구에는 관람객의 줄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오랜 웨이팅을 감수해야만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브랜드의 명성도 있겠지만 전시를 통해 공개하는 뉴 컬렉션과 협업 작품, 특히나 크래프트맨십에 진심인 브랜드의 세계관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을 테다.

| 에르메스 <Topography of Material>
ⓒ Hermes

에르메스는 La Pelota Jai Alai에서 ‘지구의 대지(Ground, The Earth)’라는 테마로 홈 컬렉션을 선보였다. 천연 자연의 재료에 집중한 에르메스는 압축한 흙, 벽돌, 돌, 목재 등 자연의 소재로 하우스의 상징적인 기하학 패턴을 전시장 바닥에 장식했는데 입체적인 설치물이 아님에도 강렬한 인상을 전했다. 마치 유적지와 같은 분위기의 공간 연출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오랜 장인 정신과 타임리스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더불어 에르메스 홈을 10년째 이끌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샬롯 마커스 펠멘(Charlotte Macaux Perelman)과 알렉시스 파브리(Alexis Fabry)는 이번 전시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덕분에 기존의 클래식 제품과 새로운 컬렉션이 조화롭게 섞여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장면을 선사하던 전시였다.

| 로에베 <LOEWE’s Lamps>
ⓒ LOEWE

로에베는 24명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한 램프 컬렉션을 한데 모았다. 각 아티스트들이 자기만의 작업 방식으로 ‘빛’이라는 요소를 표현하였는데 가죽, 우드, 글라스, 메탈, 세라믹, 종이 등 다채로운 소재의 텍스처는 물론 작품 틈 사이로 퍼져 나가는 빛의 물결이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도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2019년 파이널리스트 이영순 작가와 2022년 파이널리스트 정다혜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 8번째 참가한 로에베는 창의적인 실험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디자인과 더 확장된 장인 정신을 보여주고자 했다.

Point 2.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ALCOVA Shop ⓒ Piergiorgio Sorgetti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면? 어떠한 실체라도 시대의 경계를 허물며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경이로울 것이다.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적인 세련미를 가미하는 일은 어렵다. 역사를 기억하는 장소에서 지금의 디자인이 찰떡같이 어울리는 것도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시대의 공존이라는 환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냈을 때 그 현장이 또 다른 예술을 창조하는 듯하다. 그것이 과거, 현재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래까지 이어진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 알코바(Alcova)
ALCOVA ⓒ Piergiorgio Sorgetti
ALCOVA _ Object of common interest ⓒ Piergiorgio Sorgetti

밀라노 도심보다 훨씬 외곽에 떨어져 있어도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전시가 있다. 바로 알코바(Alcova)가 그 주인공.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왔다면 꼭 들르길 추천하는 전시이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방문하기 어려운 위치임에도 매년 9만 명 이상이 이 전시를 찾는다. 올해 7회를 맞은 알코바는 폐병원, 도축장 등 오랜 시간 잊힌 건물을 오늘날의 디자인으로 생기를 불어넣는 특별한 전시를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오르발도 보르사니(Osvaldo Borsani)가 지은 보르사니 빌라(Villa Borsani)와 밀라노 귀족의 여름 휴양지로 사용했던 바가티 발세치 빌라(Villa Bagatti Valsecchi)에서 전시가 열렸다.

(좌) ALCOVA _ Maniera + Junya Isigami (우) ALCOVA Shop ⓒ Piergiorgio Sorgetti
(좌) ALCOVA _ Studio Tooj (우) The New Raw ⓒ Piergiorgio Sorgetti

이곳에 씨씨 타피스 CC-Tapis, 칼리코 월페이퍼(Calico Wallpaper), 뉴욕 디자인 스튜디오 오브젝트 오브 커먼 인터레스트(Objects of Common Interest)의 최신 컬렉션과 협업 작품들이 두 개의 빌라 곳곳에 놓였고 지하 가든에는 건축가 이시가미 준야(Junya Isigami)의 그물망 가구를 두어 이색적인 풍경을 완성했다. 여기에 80여 개의 디자이너, 브랜드, 학생들이 ‘살고 만드는 일’의 미래 디자인을 제시했다. 푸른 정원과 고풍스러운 건축물을 배경 삼아 현대적인 디자인이 멋진 하모니를 이루며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대가 연결된 듯한 기분이었다.

| 브레라 디스트릭트(Brera District)
ⓒ Fuorisalone

푸오리살로네에서 가장 주목할 스폿은 브레라 디스트릭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구역에 참여하는 브랜드와 이벤트가 총 260여 개에 달하니 양으로만 따져도 기대할 만하다. 이곳이 푸오리살로네를 위해 지정한 디자인 특화 구역으로 행사를 함께 준비한 건 올해로 15번째. ‘브레라 디자인 위크’라는 별개의 이름으로 전 구역이 볼거리로 가득하다. 올해는 디자인 스튜디오 Studiolabo가 디렉팅과 큐레이팅을 맡으면서 관람객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툴과 서비스에 집중했다. 가구뿐 아니라 자동차, 테크, 패션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가 대거 참가했고 이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시각적으로 제안하며 볼거리를 더했다.

| 로로피아나 인테리어(Loropiana Interior)

로로피아나는 브레라 디스트릭트에 있는 브랜드 스토어의 내부 마당에서 전시를 열었다.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시니 보에리(Cini Voeri)의 탄생 100주년과 브랜드 100주년을 기념해 <시니 보에리에게 바치는 헌정(A Tribute To Cini Boeri)>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기획했다. 시니 보에리의 대표작이기도 한 모듈식 스트립(Strips) 시스템과 페코렐(Pecorelle) 소파와 암체어, 보보(Bobo)와 보보릴렉스(Boborelax) 암체어, 보톨로(Botolo)에 로로피에나 인테리어의 패브릭을 입힌 체어들로 디스플레이했다. 로로피아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오랜 역사를 지닌 인물과 상징적인 디자인이 오늘날 새로운 컬렉션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특히 시에 보에리가 주장했던 ‘가구는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을 기리며 관람객이 가구를 직접 만지고 경험할 수 있게 전시 공간을 꾸몄다.

| MCM 웨어러블 까사(MCM Wearable CASA)
ⓒ Fuorisalone
ⓒ MCM Wearable CASA

이번 MDW 2024에서 처음으로 리빙 컬렉션을 선보인 브랜드도 있었다. 독일 명품 브랜드 MCM은 전시를 통해 ‘MCM 웨어러블 까사(MCM Wearable CASA)’ 컬렉션의 첫선을 보인 것. 7개의 오브제로 구성한 컬렉션은 각기 다른 분위기의 전시 공간을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의 여정을 안내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아틀리에 비아게티(Atelier Biagetti)가 기획하고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데로(Maria Cristina Didero)가 큐레이션한 전시는 행성에서 영감을 얻은 컬러와 소리, 빛을 활용해 강렬하면서 몽환적인 무드를 그려내어 관람객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특히 ‘집을 입는다’는 메시지를 담은 컬렉션답게 어느 공간에도 조화롭게 어울리는 가구 디자인을 강조하는 한편, 휴대가 용이한 포터블 퍼니처를 보여주며 유연한 디자인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Point 3. 한국 디자인의 강력한 존재감

ⓒ KCDF

세계적인 디자인 위크 현장에서 한국 디자인 반갑지 않을 리 만무하다. 동양의 디자인, 그중에도 한국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진 요즘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작가들의 위상은 대단했다. 이번 MDW 2024에서 만난 한국의 디자인은 전통적인 재료와 패턴에 국한하지 않고 작품을 완성하는 기법에 집중했다. 더구나 간결한 디자인일수록 섬세함은 제곱배가 되는 법. 담백한 자태에 존재감을 발하는 듯 현장에서 외국 관람객의 호응 역시 남달랐다.

| 밀라노 한국공예전 <사유의 두께(Thoughts on Thickness)>
ⓒ KCDF
ⓒ KCDF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한국 디자인을 찾는다면 빼놓을 수 없는 전시가 바로 ‘밀라노 한국공예전’이다. 올해로 12번째인 이 전시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개최하는 공예전으로,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로산나 올란디 갤러리에서 ‘사유의 두께(Thoughts on Thickness)’라는 주제로 열렸다. 무형문화제 제13호 박강용 공예가의 옻칠장과 함께 옻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유남권, 허명욱 작가의 작품은 물론 한국 공예가와 브랜드 25팀이 참가해 630여 점의 공예품을 선보였다. 주제에서도 눈치챘듯이 이번 전시는 작가들의 예술적 사유를 공예를 통해 무덤덤하게 보여준다. 쓰임을 위한 생존 수단에서 사유하는 존재의 사물을 담아내고자 ‘변덕스러운 두께’, ‘소박’, ‘공존의 마당’으로 파트를 나누어 전시를 기획한 점이 돋보였다. 결국 한국의 정서를 대표하는 소박함을 밀라노에서도 유난스럽지 않게 묵묵히 자리하고 있음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 2024 DBEW <옻칠(Ottchil)>
ⓒ Designpress
ⓒ Designpress

한편, 한국과 이탈리아의 수교 140주년을 맞이해 양국 디자이너들이 협업한 가구 전시 ‘2024 DBEW(Design Beyond East and West)’가 밀라노 ADI디자인뮤지엄에서 열렸다. ADI디자인뮤지엄과 국민대학교 동양문화디자인연구소(OCDC)가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는 ‘옻칠’에 집중했다. 전시를 총괄 기획한 OCDC 최경란 소장은 전통에서 찾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과거 작은 사물에만 사용하던 옻칠이 부피가 큰 가구까지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특히 장인과 디자이너의 협업으로 옻칠의 전통 가공과 현대 공법의 융합으로 미래 디자인의 방향성을 제시했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통의 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채로운 컬러로 증명해냈다.

디자인프레스 김소현 수석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Fuorisalone, Hermes, LOEWE, ALCOVA, Loropiana, MCM Wearable CASA, KCDF, OCDC

Art
김소현
호기심이 많아 궁금한 게 생기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ENFP. 그저 잡지가 좋아 에디터가 되었고 글 쓰기가 좋아 몇 년 째 기자를 하고 있다. 즐겁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

콘텐츠가 유용하셨나요?

0.0

Discover More
[MDW 2024 ②] 시공간을 연결하는 물성의 힘

SHARE

공유 창 닫기
주소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