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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3

비극의 땅에 세운 치유의 장소

제주 중문성당의 포스리하우스
제주 중문성당의 서쪽에 자리한 포스리하우스(Four Three House)는 새하얀 외관으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곳은 성당의 사무실, 성물방, 화장실을 제공하는 동시에, 제주 4·3사건을 기리고자 계획되었다.
ⓒDoyeon Kwon

언덕에 자리한 제주 중문성당은 아픈 역사를 간직한 채 조용히 가톨릭 신자들을 반긴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신사가 있던 자리이자, 제주 4·3사건* 때 무고한 주민들이 참혹하게 학살당했던 장소 중 하나이다. 비극을 기억하고 마주하도록 천주교 제주교구는 2018년에 중문성당을 제주 4·3 기념성당으로 지정하였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이곳을 클릭해 보세요.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신다’

시편 147장 3편

ⓒDoyeon Kwon

제주 4·3사건을 기념하고자 지어진 중문성당의 언덕 서쪽에 자리한 포스리하우스는 성당의 사무실이자 성물방, 화장실로 사용되고 있다. 외관의 새하얀 시멘트 타일 사이로 김무열 작가가 제주4·3사건을 기리는 뜻을 담아 제작한 동백꽃 빛깔의 타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장실 내부로 들어서자, 건물 천장으로 은은하게 스며드는 햇빛이 따뜻하게 반긴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순간, 창밖으로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천주교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진 손과 발을 씻는 치유의 의례와 일맥상통한다.

ⓒDoyeon Kwon

서측의 개구부로 나가게 되면 숨겨진 정원과 마주하게 된다. 제주석과 같은 지역 재료로 쌓아 올린 제주 돌담과 온전히 보존된 소나무 사이로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경이 아름답다. 중문성당을 방문하는 순례자라면 포스리하우스에서 제주 고유의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면서 이 장소의 의미와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자.

ⓒDoyeon Kwon

Interview with 스튜디오 히치 박희찬 대표

ⓒHeechan Park, 박희찬

ㅡ 제주 4∙3사건을 기리는 의미가 담긴 포스리하우스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유튜브 구독자 40만 명이 넘는 성필립보 생태마을의 황창연 신부님과의 인연으로 제주 중문성당을 알게 되었어요. 신부님은 본인 활동의 수익금을 자선 사업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나누고 계시는데, 그 프로젝트 중 하나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이 제주 중문성당에 강연하러 방문하셨다가 본당의 주임 신부님과 같은 사제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목격하신 거죠.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신부님이 사제관을 짓고 싶다고 의뢰하셨고, 거기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ㅡ 사제관으로 시작한 의뢰가 화장실 및 사무실, 성물방의 용도로 사용되는 포스리하우스로 확장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제주 중문성당의 주임 신부님과 이야기하다 보니, 이곳에서 4∙3사건 때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또, 직접 방문해 보니 사제관뿐만 아니라 야외 화장실과 성물방도 시설이 매우 열악하더라고요. 사제관과 함께 화장실 및 성물방, 사무실로 사용되는 포스리하우스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아픔이 깃든 땅을 기억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기념비나 동상을 세우는 것보다는 공간을 통해 치유를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황창연 신부님의 뜻을 담아서.

 

ㅡ 천주교에서 성수로 손과 발을 씻는 치유의 의례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한 포스리하우스의 화장실이 인상적입니다.

건축가로서, 디자이너로서 리추얼에 관심이 많아요. 손을 씻고 자연을 바라보며 나가는 단순한 일과도 하나의 의례로 경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일어났다가 앉기도 하고, 성체를 모시기도 하는 과정처럼요. 가장 독특한 점은 화장실에 일회용 핸드타올을 비치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성당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을 포함해 순례자들도 지위를 막론하고 방문하는 곳일 텐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존귀함을 느끼길 바란다는 황창연 신부님의 제안으로 새하얀 수건을 비치했습니다. 작은 부분일 수 있지만 수건으로 손을 닦는 행위를 통해 리추얼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디자이너로서 수건을 올려놓는 스테인레스 받침과 다 쓴 수건을 담는 통을 제작했고요. 리추얼의 중심이 되는 오브제인 세면대는 서울의 금속 공장에 의뢰해 직접 제작했습니다. 스테인리스라는 소재가 몇천 년 전의 구약 성서로부터 성수를 담는 그릇 등으로 사용되던 재료여서 더욱 뜻깊었어요.

 

ⓒDoyeon Kwon

ㅡ 김무열 작가가 제작한 타일은 동백꽃 빛깔을 띱니다. 이 색깔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동백꽃은 제주도에서 흐드러지는 꽃이자, 4∙3사건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김무열 작가가 제작한 타일을 주차장 쪽 입구 벽면에 일부 사용해 시선이 입구와 연결되도록 의도했습니다. 포스리하우스의 입구에 놓인 성수대 또한 김무열 작가와 함께 제작한 작품입니다. 보통 성수대는 석재를 사용해 만들지만, 이 경우는 특별히 세라믹으로 제작했습니다. 벽면의 타일은 모두 450mm로 제작되었는데, 현장에서 절단할 필요가 없게끔 시공자의 입장을 고려해 제작했어요. 문을 시공할 때도 “문 높이가 어떻게 되나요?”라고 작업자가 물어본다면, “타일 세 칸 떨어지는 부분이 끝이 되면 됩니다”라고 소통이 가능하도록 말이죠.

 

ㅡ 제주의 돌담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정원 또한 수수한 건물과 잘 어우러집니다.

조경은 초기 단계부터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영민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올봄에 조경과 관련된 부분을 구체화할 계획인데요. 풍경을 감상하며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며, 치밀하게 계획된 조경이 아닌 제주의 자연스러운 식재들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실제로 공사를 진행하면서도 기존 자리에 있던 소나무를 한 그루도 훼손하지 않고 보존했습니다.

 

ㅡ 방문객들이 포스리하우스를 어떻게 경험하길 바라나요?

제주 4∙3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방문하더라도, 매일 반복하는 손을 씻는 행위를 단 1초만이라도 특별하게 경험하는 장소이기를 바랍니다. 자연 채광을 만끽하고, 중문의 바다 풍경과 정원을 감상하며 말이죠.

ⓒStudio Heech

성채은 기자

자료 제공 스튜디오 히치

프로젝트
포스리하우스(4.3House)
장소
중문성당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천제연로 149
크리에이터
설계 | 박희찬(스튜디오 히치), 오제호(오제호 건축사사무소)
디자인 | 박희찬, 오제호, 임재훈
조경 설계 | 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구조 설계 | 인터이엔지
기계/전기 | 풍낭이엔지
시공 | 영도건설
타일 및 치유의 물 제작 | 김무열 작가
세면대 제작 | 김성운(대흥금속)
링크
홈페이지
성채은
희망과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 낙천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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