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시선으로 감각적인 비주얼을 만들어 내는 이들은 어디에서 그 즐거움을 누리고 있을까. 회화 작가부터 영상 PD까지,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시각 작업자 6인에게 청했다. “눈과 입 모두를 만족시키는 미식 공간을 추천해 주세요.” 매장 내에서도 특히 어떤 요소에 주목하는지, 맛과 비주얼 어느 하나 놓치지 않은 최애 메뉴는 무엇인지, 만약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슨 작업을 해보고 싶은지에 대해 물었다.
아날로그가든
유리 회화 작가
시선을 잡아끄는 공간
빈티지한 색감의 나무 프레임이 돋보이는 큰 창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서면 하얀 벽을 배경으로 짙은 우드 톤의 가구들이 놓여 있고, 앤티크한 시계와 스피커, 알록달록한 식료품이 진열된 러프한 철제 선반이 자리를 잡고 있다.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보다는 ‘아날로그가든’이라는 이름처럼 편안하고 내추럴한 분위기의 공간이다. 예전엔 가끔 놀러 오기도 했던 사장님의 반려견 사진이 멋스럽게 걸려 있는데, 그래서인지 아늑한 친구 집에 초대받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예쁜 공간이다 보니 편안하게 식사 혹은 티타임을 갖기에 좋은 곳. 특히 겨울철에 창밖으로 눈이 펑펑 내리는 장면은 장관이다.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창문 프레임 속 장면을 바라보는 걸 정말 좋아한다.
눈과 입 모두 즐거워지는 메뉴
파머스 플레이트는 견과류 빵 위에 훈제연어 ・ 수란 ・ 베이컨 ・ 아보카도 ・ 쿠스쿠스 ・ 바질페스토 ・ 토마토 등 여러 재료가 풍성하게 올라가는 브런치 메뉴다. 하나하나 특별한 재료는 아니지만, 전체적인 조화가 훌륭하고 무엇보다 플레이팅이 아름답다.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 비주얼을 감상하는 재미가 크다. 늘 같이 주문하는 건 더티 크림차이. 달달한 크림과 계피 향이 나는 차이 티를 함께 마시는 음료로, 짭조름하고 감칠맛이 좋은 브런치 메뉴에 달콤한 더티 크림차이를 곁들이면 음료와 후식이 한 번에 해결되는 느낌이다. 참고로 주문을 하면 알파벳이 써진 모서리가 둥근 나무 큐브를 테이블마다 하나씩 나눠주는데 그게 참 귀엽다.
협업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름다운 음식들을 조금 더 돋보이게 해줄 접시와 컵을 제작해 보고 싶다. 핸드빌딩 기법으로 만든 각기 다른 모양의 울퉁불퉁한 도자기 접시와 컵에 그림을 조금씩 그려 넣어서 아날로그가든의 편안하면서도 감각적인 느낌을 살릴 것이다. 손님들에게 음식과 음료를 제공받는 것 이상의 즐거운 경험을 선물해줄 식기구 제작 작업이 기대된다.
팔마
유현선 그래픽 디자이너 (워크룸 · 카우프만 · 파일드)
시선을 잡아끄는 공간
팔마가 처음 오픈한 날을 기억한다. 사무실에 위치한 서촌을 구석구석 자주 돌아다니는데, 어느 날 한적한 골목에 파란 네온사인 간판을 단 식당이 생겼다. 멕시칸 베이스로 다양한 종류의 타코와 와인을 맛볼 수 있는 곳. ‘모던 타코 바’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식당의 중심 구조는 바 테이블이다. 눈앞에서 그릴에 구운 고기를 토르티야에 올려 바로 내어주는 타코의 특성이 셰프와 손님의 거리가 가까운 바 구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눈과 입 모두 즐거워지는 메뉴
평소 스시 ・ 김밥 ・ 샌드위치처럼 간결하지만 다채로운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타코를 향한 애정도 그 연장선에 있다. 작은 토르티야에 정갈하게 올라간 재료들은 말 그대로 눈과 입 모두를 즐겁게 한다. 팔마의 모든 타코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독특한 매력까지 겸비하는데, 그중에서도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까르니따스’를 추천. 까르니따스는 모든 타코 전문점의 기본 메뉴이므로 팔마의 고유한 스타일을 파악하기에도 좋다. 기본 메뉴 외에도 데일리 메뉴를 제공하며 지난 봄과 여름의 가리비구이와 무화과 퀘사디아는 계절의 향과 팔마의 개성 모두 맛볼 수 있는 요리였다. 제철 재료로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도 빼놓을 수 없는 후식 메뉴다.
협업 기회가 주어진다면
타코는 손으로 들고 먹는 것이 정석이기 때문에 팔마에서는 테이블에 물티슈를 비치해 두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물티슈와 각 티슈는 아름답지 못한 디자인으로 악명 높지 않은가. 기회가 된다면 팔마를 위한 물티슈 상자를 디자인해 봐도 좋겠다.
볼피노
김정아 알트바우 공간 디렉터
시선을 잡아끄는 공간
어쩐지 소박하고 평범해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누구라도 눈이 동그래질 수밖에 없다. 고급스러운 버건디 컬러의 가죽 소파, 바니시를 가득 바른 부드러운 우드 가구, 벽면을 가득 채운 작품 같은 레이아웃의 거울들까지 ‘공간이 반짝인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마치 우디 앨런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기분. 공간 전체를 감싸는 따뜻한 조도 덕분에 존재감이 큰 컬러 믹스나 수많은 오브제가 어느 하나 과하지 않게 자연스러운 무드로 연결되는 것도 인상적이다. 평소 공간이나 음식을 충분히 느끼고 싶어 사진을 많이 찍지 않지만, 볼피노는 나 같은 사람마저도 연신 카메라를 켤 수밖에 없게 만든다.
눈과 입 모두 즐거워지는 메뉴
볼피노의 시그니처와 같은 ‘라구파스타’. 이 라구파스타의 포인트는 함께 나오는 ‘골수’다. 생경한 비주얼 조합이라 낯설 수 있지만 맛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라구소스 위로 진득하게 버무려진 골수는 넓은 탈리아텔레 생면을 더욱 부드럽고 크리미하게 변신시키며 한층 맛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주문 시 직접 테이블 위에서 소스를 버무려 주기 때문에 보는 재미도 챙겨가며 미슐랭 레스토랑의 서비스를 체험해 볼 수 있다. 가장 좋은 점은 플레이팅. 너무 고급스럽고 화려한 미슐랭의 플레이팅이 아니라 무심한 듯 정성스럽게 선보이는 가정식 형태의 플레이팅이 이 레스토랑을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협업 기회가 주어진다면
볼피노가 새로운 지점을 오픈한다면 내가 직접 공간 디렉팅을 진행해 보고 싶다. 볼피노의 기존 색깔을 지키면서도 더 다양한 사람들이 편하게 음식을 맛보고 공간을 즐길 수 있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캐주얼한 무드의 로컬 레스토랑 버전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TBD
김나윤 스튜디오 릴리즈 포토그래퍼
시선을 잡아끄는 공간
2019년, 일 때문에 성수동으로 오가며 매장 앞을 지나칠 일이 많아 늘 궁금증을 유발했던 곳이다. 간판은 딱히 없고 내부가 훤히 보이는 유리창 너머 네모난 블랙 테이블에 우드 빈티지 체어만 있는 간결하고도 자유로운 느낌이 매력적이었다. 성수동 매장은 날것의 쿨한 이미지였다면 이후에 옮긴 한남동 매장에서는 반듯하고 세련된 이미지가 강하다. 커다란 통유리창, 하얀 기둥, 반투명한 옥색 테이블에 우드 체어가 주는 분위기는 차분한 가운데 부드러운 힘이 느껴진다.
눈과 입 모두 즐거워지는 메뉴
숙성도미 세비체를 추천한다. 알록달록한 색감의 채소가 하얀 회를 덮고, 그 위로 핑크빛의 타이거밀크 소스가 부어질 때의 조합은 아름다움에 가까운 비주얼이다. 세비체의 화려한 등장은 보는 재미와 동시에 맛에 대한 기대를 단번에 불러일으켰다. 오른손에는 카메라, 왼손에는 포크가 들려 있을 만큼! 신선한 생선 살과 향긋한 허브, 타이거밀크가 어우러져 입안을 상큼하게 채우고, 자연스럽게 와인 한 잔이 마시고 싶어진다.
협업 기회가 주어진다면
일을 할 때는 특정한 콘셉트가 있는 사진을 주로 찍다 보니 평소에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포착을 좋아한다. 와인 바를 즐기는 사람들, 요리하는 주방의 풍경, 메뉴를 설명하는 직원,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서버, 식사를 마친 손님이 떠난 뒤의 테이블 등 매장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고 싶다.
플랫오
김희진 비주얼 디렉터
시선을 잡아끄는 공간
푸르른 녹음이 펼쳐지는 양재천 카페거리에 위치한 플랫오. 개방감 있는 유리창으로 맑은 날이나 비 오는 날이나 운치 있는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뷰 맛집’이다. 콘크리트와 벽돌이 자연스럽게 노출된 익스테리어의 무드는 내부까지 일관성 있게 이어진다. 공간에 머무는 내내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건 우드와 스틸 소재가 주를 이루는 캐주얼한 분위기의 가구와 소품 덕분이다.
눈과 입 모두 즐거워지는 메뉴
*락토-오보부터 비건까지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채식 기반의 다양한 메뉴를 제공한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반달 모양의 ‘오: 판제로띠’. 판제로띠는 이탈리아 남부 지방의 전통 음식으로 밀가루 반죽 속에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 등을 넣고 튀긴 피자빵이다. 플랫오의 오: 판제로띠는 볶은 가지와 양파의 다채로운 맛이 훌륭하다. 비건 맛집답게 마카다미아 밀크가 들어간 오: 라떼나 락토프리 밀크 라떼 등 음료 옵션도 다양하며, 브루잉 커피의 향미도 뛰어나다.
*락토-오보는 동물의 고기는 먹지 않으나 우유 제품과 달걀은 먹는 채식주의자를 뜻한다. (출처 : 식품과학사전)
협업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달의 스페셜 메뉴를 기획해 보면 좋겠다. 각종 채소를 활용한 다양한 애피타이저를 비롯해 플랫오만의 톤 앤 매너에 어울리는 재밌는 메뉴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 더불어 키즈 & 펫 프렌들리 레스토랑이라는 특성을 살려 함께 방문하는 아이들과 반려동물들을 위한 채소 베이스의 전용 간식 등을 기획해 보고 싶다.
플라스티카
말고 하입비스트 영상 PD
시선을 잡아끄는 공간
이곳은 음악과 술과 음식이 어우러지는 뮤직 라운지다. 묵직한 은색 철문과 강렬한 붉은 조명 등 입장하는 순간부터 옛날 영화에서 상상했던 미래도시의 풍경과 닮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디에 앉더라도 DJ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음악과 디제잉을 단순히 배경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 같아 좋았다. 중앙에 있는 반원형 테이블도 재밌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플로어에 서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경계 없이 연결되는 형태라서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 같다.
눈과 입 모두 즐거워지는 메뉴
처음엔 가오픈, 두 번째는 파티가 있는 날에 방문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정식 메뉴를 맛보지는 못했다. 다만 당시에 나온 케이터링 푸드가 비주얼도 맛도 워낙 훌륭해서 ‘여기 음식 진짜 괜찮겠구나’ 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매장 푸드 담당자와 얘기를 나눠 보니 한식을 베이스로 술과 어울리는 다양한 퓨전 요리를 제공한다고 한다. 한국 전통주 중 하나인 담금주로 만드는 시그니처 칵테일도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감각적인 비주얼만 봐도 기대가 된다.
협업 기회가 주어진다면
플라스티카를 배경으로 한 플레이리스트 영상 작업을 해보고 싶다. 일전에 에스프레소 바와 내추럴 와인 바 등을 테마로 만들었던 적이 있는데, 공간의 무드를 담은 영상과 음악이 어우러지니 꽤 매력적인 결과물이 나왔다. 이번에는 내가 아닌 디렉터에게 직접 매장 정체성에 어울리는 음악을 골라달라고 요청해 진행하고 싶다. 직접 플레이하고 있는 모습을 메인 컷으로 쓰고, 공간 구석구석을 담은 인서트로 찍어서 1시간 내외의 분량으로 담아보는 거다.
글 김정현 객원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