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플러스미술관에서는 여러 전시가 선보이고 있지만, 가장 인기 높은 전시는 쿠사마 야요이 회고전 〈1945 to Now〉일 것이다. 33곳의 컬렉션을 집대성한 이번 전시의 키워드는 ‘이노베이션’ ‘회귀’라고 할 수 있다. 쿠사마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기 위해 젊은 나이에 뉴욕에 갔고, 현대미술의 각축장 뉴욕에서 이미 1960년대부터 의미 있는 발자국을 찍은 바 있는 거장이다. 두 명의 죽음을 겪고, 흩어지는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 스스로 정신병원에 걸어 들어간 그녀야말로 진정한 정상인이 아닐까?
그간 쿠사마 야요이의 여러 회고전이 있었지만, 이번 전시가 특별한 것은 그간의 연대기적 전시 방식에서 벗어나 6개의 주제로 철학적 면도 함께 살펴보았다는 점이다. 〈Infinity〉 〈Accumulation〉 〈Radical Connectivity〉 〈Biocosmic> 〈Death〉 그리고 〈Force of Life〉라는 여섯 개 주제를 염두에 두고 전시를 본다면 그간 알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시의 시작은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그린 자화상이다. 쿠사마 야요이의 중요 소재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다. 결코 평범한 여성이 아닌 작가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쿠사마 야요이 70여 년 작품 세계를 6개 테마로 나누어 소개한 회고전 하이라이트를 정도련 부관장에게 직접 들어보자.
Interview with 정도련 부관장
—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발견할 수 있는 대형 신작 ‘신경들의 죽음’ 설치 작품부터 인상적이다. 입구의 호박 조각 2개도 신작이라고 들었다. 이 신작들은 관람객의 포토 스팟이다.
전시장 외부 공간에서는 신작 ‘신경들의 죽음’을 만날 수 있다. 1976년의 ‘신경의 죽음’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 작품이 설치된 그라운드 아래 두 개의 지하층은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과 같은 도전적 공간이다. 거대한 설치 작품을 보여주기 효과적이다. 1976년 가장 힘든 우울증을 앓았던 그때 만든 작업을 다시 이번 엠플러스미술관 전시를 위해 업데이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귀환’이라는 그녀의 작품 세계의 제스처와 맞아떨어진다.
— 엠플러스미술관 전시는 기존의 쿠사마 야요이 회고전과 어떻게 다른가?
그간의 서구와 일본에서의 회고전은 뉴욕 시대 이후 정체기는 조명하지 않은 경향이 있었다. 엠플러스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과도기와 침체기 또한 다루어, 그녀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했다. 한 시기의 돌파구에 집중하고 중년기 이후의 작품 위주로 보여준 기존 전시들과는 다르다. 다시 일본에 돌아온 1973년 그녀의 나이는 44세였다. 그 이후에도 계속 작업을 해온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최근까지, 그녀의 커리어 전체의 철학과 다양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세 번째 섹션과 연계해 그녀가 이미 1960년대 아트 상품과 웨어러블 아트를 선보였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뉴욕 버그도프굿맨 백화점에서 아트 상품을 판매했으나 반응이 좋지 못했고, 오히려 비난을 받았다. 다시 일본으로 귀국한 이유도 조셉 코넬과 아버지의 사망에 미술계의 비난이 겹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는 커리어 정체기였다. 일본 미술계는 쿠사마 야요이를 잘 몰랐고, 뉴욕에서 이상한 퍼포먼스를 하다 온 젊은 미술가로만 여겼다. 1970년대 일본 미술계에서 활동하기 어려워지자 그녀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자서전과 아방가르드 소설을 발간했다. 오히려 이 책들이 문학계의 찬사를 받고 상을 타기도 했다. 1980년대 다시 미술 작업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 여섯 개의 섹션 중 첫 테마는 <인피니티>이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A 1945년부터 작품 활동을 한 긴 커리어를 통해 그녀가 어떻게 매번 돌파구를 찾고 다시 이노베이션 할 수 있었는지 첫 번째 섹션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다. 작품 세계에 있어 최초의 돌파구는 1950년대 말 선보인 <인피니티 네트> 회화 연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1958년 이 연작을 처음 시작했는데, 1957년 미국 시애틀로 건너갔던 경험에서 유래되었다.
쿠사마는 1958년 뉴욕으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15년간 작품 활동을 했다. 당시 뉴욕은 현대미술의 중심지였다. 미니멀리즘과 팝 아트, 추상표현주의가 득세했다. 1960년대에는 아방가르드를 선보였다. 백인 남성 미술가와 마초가 좌지우지했던 뉴욕 미술계에서 작은 일본인 여성이 목소리를 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인피니티 네트 연작은 뉴욕 미술계의 관심을 받게 한 작품이었다. 회화의 테크닉은 어렵지 않다. 이 작품의 기원은 그녀가 1957년 태평양을 건너갈 때 비행기에서 보았던 구름과 파도에서 비롯되었다. 10세 정도에서부터 환각에 시달린 그녀는 이를 컨트롤하기 위해 추상적 제스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피니티 네트 연작은 1960년대에는 화이트, 레드, 블랙 등 모노크롬의 성격을 보인다.
그녀는 오랜 작업에서 항상 이노베이션 하며 귀환해왔는데, 현재에도 계속 인피니티 연작을 작업하고 있다. 인피니티 연작은 추후 물방울 폴카닷의 시작이기도 하다. 1990년대는 레드 컬러 작품도 선보였으며, 물방울 패턴을 연상시킨다.
— 각 섹션이 시작하기 전 만날 수 있는 작품들도 의미가 깊다고 들었다.
두 번째 섹션이 시작되기 전에는 ‘자기 소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6개의 마네킹 조각이 디너파티를 하고 있는 대형 작품이다. 마네킹의 표면에는 모두 인티피니 네트 패턴이 그려져 있으며, 회화의 조각의 중간적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 자기 소멸을 무섭게 생각하기 보다 불교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어떨까? 자아를 비우거나 자아가 사라지면서 개인들이 연결되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 작품은 1966년부터 1974년까지 오랫동안 만들어졌다. 뉴욕에서 시작되었지만 일본에서 완성되었다. 쿠사마가 1973년 다시 일본에 돌아오면서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이 작품을 가지고 왔던 것이 놀랍다.
— 두 번째 섹션 <축적>에서 만날 수 있는 소프트 조각들이 인상적이다. 오랜만에 선보이는 작품들도 있다고.
<축적>은 <집합>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첫 섹션에서 회화적 돌파구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섹션에서는 조각의 돌파구를 파악할 수 있을 것. 남근의 형태를 천이나 솜으로 만든 소프트 조각이 돋보인다. 쿠사마의 조각은 전통적 소재인 단단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자수와 바느질을 이용한 여성 노동이 만든 조각이다. 물론 여러 작가들이 소프트 조각을 선보였으나, 1960년대 쿠사마 야요이가 첫 시작을 했다고 본다. 강박적 반복이 조각적 표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파운드 오브젝트는 20세기 초에 시작되었고, 1960년대는 팝 아트가 생겼다. 쿠사마도 의자, 하이힐, 스툴 등을 이용한 바 있다. 이 섹션에서 84개의 박스로 만들어진 길이 8미터, 높이 3미터가 넘는 ‘슈팅 스타스(Shooting Stars)’는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전시 이후 이번에 처음 선보인 것이라서 주목하면 좋겠다. 니가타현립미술관 소장 작품이다.
— 아카이브를 통해 쿠사마 야요이의 젊은 시절 모습도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세 번째 섹션 주제는 <전면 연결>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쿠사마는 1980년대 귀국에서 일본에서도 퍼포먼스를 가졌다. 아카이브 자료를 보면 1960년대 뉴욕 미술계의 호평 속에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당시 히피 운동과 반전운동에 영감을 받아 퍼포먼스에 참여한 여성 작가였으나, 섹스(Sex)를 두려워한 일종의 섹스포비아로 알려져 있다. 여러 히피들과 바디 페스티벌과 같은 해프닝도 벌였으나, 실제로는 섹스를 두려워했다니 아이러니하다. 조각 공원에 갑자기 나타나서 폴카닷을 칠하려고 했으나 쫓겨난 적도 여러 번이라고 한다. 네 번째 섹션이 시작되기 전에는 설치 작품 ‘구름’이 펼쳐진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캐스팅한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자연광 아래 놓여 있다. 1957년 태평양을 건너갈 때 보았던 그 무한대의 구름일 것 같다.
— <생물 우주>와 <죽음> 섹션을 통해 그녀의 어린 시절과 정신적 트라우마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네 번째 섹션은 <생물 우주>다. 생물학적이고 우주적인 존재가 쿠사마에게는 하나다. 그녀는 1929년에 나가노에서 태어났는데, 가족이 종자 사업을 했다. 1930-40년대에 일본 전쟁이 있었지만 누구나 종자는 필요했기 때문에 부유한 집안이었다. 항상 자연과 가까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952년 초기작 중에 ‘씨’라는 작품도 있다. 세포 분화 같기도 하고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 보는 것이 일체 된 듯한 그림이다. 이 작품에서 미시적인 것은 거시적의 반대가 아니라 하나다.
소프트 조각은 1980년대의 에일리언 플라워 같기도 하고, 나비, 새, 물고기 등 동식물이 모티프가 되었다. 호박에 집착하게 된 것도 집안 배경과 고향 나가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나가노현은 일본 중부 산맥에 위치하고 있어서 자연에 둘러싸여 자랐으며, 그녀에게 호박은 귀엽고 친근한 존재였다. 호박들은 닮았지만 상이한 마치 가족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섯 번째 섹션은 <죽음>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정신과 신체의 분리를 경험했고, 그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보수적 사회에서 정신적 문제를 언급한 자체가 대단하다. 지금은 정신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지만, 1950년대 이러한 문제를 거론했다는 것은 대단한 선구자이자 예술가답다. 예를 들어, 1976년작 ‘신경의 죽음’은 폴카 닷이 그려져있는 100미터가량의 소프트 조각 큐브이다. 1976년 귀국 당시 지인 두 명의 비극적 죽음으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아버지 그리고 정신적 사랑을 나눴던 미국 미술가 조셉 코넬의 죽음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1977년 제 발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아직까지도 병원에 있다. 그녀에게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예술 작업뿐이다.
— 마지막 섹션 <생명의 힘>은 여태까지의 작업과 다른 새로운 형태다. 부유하는 머리들은 아마추어 같은 느낌마저 선사한다.
2009년 팔순이 넘은 나이에 시작한 연작 <내 영원한 영혼> 등 그녀의 끝없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 이제는 몸이 불편하지만 여전히 매일 작업하고 있다. 조각 아이디어는 팀원들과 의논하고,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물리적 보호를 받았다. 평소 병원에서 스튜디오를 출퇴근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스튜디오에 가기 어려워 팬데믹 기간의 작품은 병원에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크기가 작다. <생명의 힘>이라는 이 섹션의 제목은 자기 소멸과 반대가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
엠플러스 미술관이 2021년 11월에 개관했는데, 이 전시 준비에는 3년 이상 걸렸다. 코로나19 때문에 불투명한 상황이었고 개관 1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중요한 전시였다. 6개월 전시 연장을 하면서 이번 3월 아트바젤 홍콩 기간과 맞물려 세계의 많은 이들도 전시를 볼 수 있게 되어 반갑다. 엠플러스미술관에서는 쿠사마 야요이 전시와 더불어 〈M+ 울리 지그 컬렉션〉 〈비플: 휴먼 원〉 〈홍콩: 히어 앤 비욘드〉 등 8개의 전시를 만날 수 있다.
글 이소영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M+ museum, 정도련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