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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4

2021년 서울을 깨운 런웨이

패션하우스를 내다보는 서울 꾸뛰르 본봄.
단단히 붙들리다 어느 순간 쏟아져 내리는 플리츠, 내밀한 기억을 불러내는 레이스, 젠더의 경계를 지우는 착장들. 지난 3월 25일 서울에서 열린 ‘본봄'의 2021년 겨울 쇼엔 이런 것들이 있었다. 코로나로 거의 모든 종류의 무대를 잃은 메트로폴리탄에 찾아온 어떤 자극.

바이러스는 고난이자 축복이었고, 2주 만에 차려진 런웨이는 차라리 실험에 가까웠다. 채 서른이 되지 않은 디자이너의 세 번째 시즌이자 두 번째 컬렉션이며 첫 번째 런웨이. 여느 때라면 서울에 머무르지 않았을 에디터, 바이어, 스타일리스트들이 프론트 로우를 장식했다. 모처럼의 캣워크는 디자이너에게도, 게스트에게도 열띤 감회를 안겼다.

본봄은 디자이너 조본봄이 전개하는 동명의 브랜드다. 한양대 의류학과를 거쳐 LCF(London College of Fashion)를 멘즈웨어 전공으로 졸업한 그는 프랑스 파리로의 진학을 준비하던 중 돌연 브랜드를 론칭했다.

본봄이란 이름은 덴마크와 미국을 오갔던 어린 시절 누구든 부르기 좋은 발음을 생각하며 만든 것. 우연히도 프랑스어(BON)와 스페인어(BOM)로 좋다는 뜻을 거듭한 모양새였고 이에 우리말 ‘본보기’의 의미도 더했다.

막 발걸음을 뗀 브랜드지만 협업이 아닌 협찬은 마다하는 편이며 국내 입점처는 분더샵이 유일하다. 다만 뮤지션 ‘블랙핑크’가 그의 옷을 입은 일이 있었는데, 지난 컬렉션의 캐스케이드 스커트, 샹들리에 스커트, 랜턴 드레스를 디자이너가 직접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새로이 만든 것이다. 쇼를 마친 며칠 후 만난 디자이너는 어떤 질문에도 쉽게 답하는 법이 없었다.

본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플리츠’예요.

플리츠는 언제나, 어떤 브랜드에서나 있어 왔죠. 우선 제가 집중하는 건 스티치를 해서 어디까지는 잡아 주고 어디서부터는 풀어지게 해서 다양하게 변주한 형태예요. 첫 번째 시즌에서 집중했다가 두 번째 시즌에서는 또 아예 하지 않았죠. 스스로도 이걸 실제 리얼로드에서 많이 입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너무 ‘쇼’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세 번째 시즌을 준비하면서 첫 번째 시즌의 반응이 왔고, 생각보다 많이 좋아해 주셨어요. 자신감이 붙어서 더 꾸뛰르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싶었고, 플리츠로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그 범위를 확대했어요. 아우터에도 들어갔고, 스커트는 플리츠로만 10번까지 나왔고요. (웃음) 이렇게 발전시키다 보면 본봄을 상징하는 어떤 것이 될 수도 있겠죠.

 

이런 형태는 어떻게 나오나요. 본봄의 디자인 방법론이 되겠네요.

리서치를 기반으로 하는 편은 아니에요. 탐구하고 싶은 셰입을 먼저 만들고 이것과 어울리는 테마를 얹죠. 런던에서 배웠고 60, 70년대 하우스에서 즐겨 쓰이던 방법이에요.

 

첫 런웨이를 지배한 건 단연 플리츠와 레이스였어요. 뒤에 있는 테마는 뭐예요.

옛날에 봤던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중에서 <로스트 하이웨이>란 작품을 다시 봤어요.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는 뫼비우스같은 구조의 이야기예요. 극과 극같은 부분이 많고요. 극중 패트리샤 아퀘트가 금발의 긴머리 뱅을 한 르네란 여자로 분해요. 레이스가 달린 실키한 로브를 입고 등장하기도 하고요. 이 안에서 단편적인 요소들을 큐레이팅했죠. 테일러드 디테일의 옷이 등장하다 갑자기 이브닝웨어로 전개되고, 칼라에 달려야 할 부분이 연장되어서 몸판으로 들어가는 뫼비우스의 띠 형태의 옷이 등장하기도 해요. 음악 역시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에서 <죽음의 무도>, 다시 메탈로 급변하죠.

 

첫 캠페인은 스페인의 포토그래퍼 키토 무노즈Kito Muñoz와 함께 만들었어요. 역시나 파격적이었고요. 모든 과정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졌죠?

사실 저한테는 파격적이진 않았어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테니까요. 피터 무노즈의 작업은 학교 다닐 때 처음 봤는데, 이번 캠페인보다 더 파격적인 암시가 있었어요. (웃음) 그게 너무 예뻤고요. 제가 원래 스페인을 좋아하거든요. 열정적이거나 원색적인 부분들 모두.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도 워낙 좋아하고요. 최근 하우스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원격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고 못할 게 뭐 있나 싶었어요. 그래서 DM 보냈고, 다행히 본봄의 디자인을 좋아해 줘서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됐어요. 모든 게 마드리드에서 이루어졌고요.

이번 컬렉션과 함께 새로운 로고, 그리고 ‘1302 1303’이란 문구를 공개했어요.

로고는 B를 닮은 이어링 펜던트를 우연히 보고 차용했어요. 숫자는 조금 재밌는 건데, 런던에 있을 때 누가 제가 직접 쓴 ‘BONBOM’이란 글씨를 보고 ‘1302 1303’ 같다고 하더라고요. 본봄을 꼭 알파벳이 아니라 다른 숫자, 모양, 색으로도 표현할 수 있길 바라요. 저 스스로도 변덕이 있기도 하고, 조금 더 큰 이유라면 브랜드가 두고두고 활용할 수 있는 헤리티지가 생기길 바라서죠.

처음부터 하우스를 목표로 하고 있네요.

저는 중학교 때 꿈이 지방시 디자이너가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꿈을 갖는 친구는 별로 없더라고요. ‘명품’이 좋다기보다는 수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시작이 된다는 게 좋았어요. 웃긴 말일 수 있지만 저는 종종 하우스에서 오퍼가 올 때를 상상해요. 그럼 이 브랜드에선 이걸 가지고 뭘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해두는 게 있죠. 어떤 하우스든 처음부터 하우스였던 곳은 없죠. 모든 게 쌓여서 만들어진 결과잖아요. 본봄에서도 그런 요소를 많이 만들어두고 싶어요. 제가 아닌 다른 디자이너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오더라도 아카이브가 있는 브랜드로 인식되었으면 하죠.

본봄은 이렇다, 라고 정의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글쎄요. 좀 어려워요. 스스로도 그런 건 정해두지 않고 했거든요. 그 흔한 타겟팅도 없어요. 2030, 남성이나 여성같은 것. 물론 제가 좋아하고 꾸준히 가져가고 싶은 건 있어요. 페티시, 그리고 남성복 전공에서 나오는 테일러드 디테일. 하지만 향후 2, 3년간은 많은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한계를 두거나 정리하고 싶지 않은 단계예요.

무엇을 이루고 싶으세요.

파리에서 일하겠다는 꿈은 여전히 있어요.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지금은 본봄이란 브랜드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고 싶어요. LVMH 프라이즈도 넣어 보고 싶고 센스SSENSE, 도버 스트릿 마켓Dover Street Market에도 입점해 보고 싶어요. 하나씩 뚫어가는 재미가 있거든요. 어디까지 가능한지 해 보고 싶다, 그 마음이 제일 크다는 게 맞겠네요.

 

 

유미진

자료 협조 본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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