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플리츠’예요.
플리츠는 언제나, 어떤 브랜드에서나 있어 왔죠. 우선 제가 집중하는 건 스티치를 해서 어디까지는 잡아 주고 어디서부터는 풀어지게 해서 다양하게 변주한 형태예요. 첫 번째 시즌에서 집중했다가 두 번째 시즌에서는 또 아예 하지 않았죠. 스스로도 이걸 실제 리얼로드에서 많이 입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너무 ‘쇼’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세 번째 시즌을 준비하면서 첫 번째 시즌의 반응이 왔고, 생각보다 많이 좋아해 주셨어요. 자신감이 붙어서 더 꾸뛰르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싶었고, 플리츠로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그 범위를 확대했어요. 아우터에도 들어갔고, 스커트는 플리츠로만 10번까지 나왔고요. (웃음) 이렇게 발전시키다 보면 본봄을 상징하는 어떤 것이 될 수도 있겠죠.
이런 형태는 어떻게 나오나요. 본봄의 디자인 방법론이 되겠네요.
리서치를 기반으로 하는 편은 아니에요. 탐구하고 싶은 셰입을 먼저 만들고 이것과 어울리는 테마를 얹죠. 런던에서 배웠고 60, 70년대 하우스에서 즐겨 쓰이던 방법이에요.
첫 런웨이를 지배한 건 단연 플리츠와 레이스였어요. 뒤에 있는 테마는 뭐예요.
옛날에 봤던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중에서 <로스트 하이웨이>란 작품을 다시 봤어요.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는 뫼비우스같은 구조의 이야기예요. 극과 극같은 부분이 많고요. 극중 패트리샤 아퀘트가 금발의 긴머리 뱅을 한 르네란 여자로 분해요. 레이스가 달린 실키한 로브를 입고 등장하기도 하고요. 이 안에서 단편적인 요소들을 큐레이팅했죠. 테일러드 디테일의 옷이 등장하다 갑자기 이브닝웨어로 전개되고, 칼라에 달려야 할 부분이 연장되어서 몸판으로 들어가는 뫼비우스의 띠 형태의 옷이 등장하기도 해요. 음악 역시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에서 <죽음의 무도>, 다시 메탈로 급변하죠.
첫 캠페인은 스페인의 포토그래퍼 키토 무노즈Kito Muñoz와 함께 만들었어요. 역시나 파격적이었고요. 모든 과정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졌죠?
사실 저한테는 파격적이진 않았어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테니까요. 피터 무노즈의 작업은 학교 다닐 때 처음 봤는데, 이번 캠페인보다 더 파격적인 암시가 있었어요. (웃음) 그게 너무 예뻤고요. 제가 원래 스페인을 좋아하거든요. 열정적이거나 원색적인 부분들 모두.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도 워낙 좋아하고요. 최근 하우스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원격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고 못할 게 뭐 있나 싶었어요. 그래서 DM 보냈고, 다행히 본봄의 디자인을 좋아해 줘서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됐어요. 모든 게 마드리드에서 이루어졌고요.
이번 컬렉션과 함께 새로운 로고, 그리고 ‘1302 1303’이란 문구를 공개했어요.
로고는 B를 닮은 이어링 펜던트를 우연히 보고 차용했어요. 숫자는 조금 재밌는 건데, 런던에 있을 때 누가 제가 직접 쓴 ‘BONBOM’이란 글씨를 보고 ‘1302 1303’ 같다고 하더라고요. 본봄을 꼭 알파벳이 아니라 다른 숫자, 모양, 색으로도 표현할 수 있길 바라요. 저 스스로도 변덕이 있기도 하고, 조금 더 큰 이유라면 브랜드가 두고두고 활용할 수 있는 헤리티지가 생기길 바라서죠.
처음부터 하우스를 목표로 하고 있네요.
저는 중학교 때 꿈이 지방시 디자이너가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꿈을 갖는 친구는 별로 없더라고요. ‘명품’이 좋다기보다는 수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시작이 된다는 게 좋았어요. 웃긴 말일 수 있지만 저는 종종 하우스에서 오퍼가 올 때를 상상해요. 그럼 이 브랜드에선 이걸 가지고 뭘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해두는 게 있죠. 어떤 하우스든 처음부터 하우스였던 곳은 없죠. 모든 게 쌓여서 만들어진 결과잖아요. 본봄에서도 그런 요소를 많이 만들어두고 싶어요. 제가 아닌 다른 디자이너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오더라도 아카이브가 있는 브랜드로 인식되었으면 하죠.
본봄은 이렇다, 라고 정의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글쎄요. 좀 어려워요. 스스로도 그런 건 정해두지 않고 했거든요. 그 흔한 타겟팅도 없어요. 2030, 남성이나 여성같은 것. 물론 제가 좋아하고 꾸준히 가져가고 싶은 건 있어요. 페티시, 그리고 남성복 전공에서 나오는 테일러드 디테일. 하지만 향후 2, 3년간은 많은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한계를 두거나 정리하고 싶지 않은 단계예요.
무엇을 이루고 싶으세요.
파리에서 일하겠다는 꿈은 여전히 있어요.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지금은 본봄이란 브랜드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고 싶어요. LVMH 프라이즈도 넣어 보고 싶고 센스SSENSE, 도버 스트릿 마켓Dover Street Market에도 입점해 보고 싶어요. 하나씩 뚫어가는 재미가 있거든요. 어디까지 가능한지 해 보고 싶다, 그 마음이 제일 크다는 게 맞겠네요.
글 유미진
자료 협조 본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