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 평온 (CHAOS : CALM)
BAB 2022의 주제는 ‘혼돈 : 평온’이다. 팬데믹이 초래한 사회 불안과 그와 반대로 평온해진 자연의 모습을 포함해, 국제 정서의 각종 혼란과 민족적 트라우마, 인간에게 닥친 위협을 전시 요소로 내세운다. 명상과 사유의 철학은 종교적인 장소뿐 아니라 메타버스나 VR 같은 디지털 시공간 안에서 새롭게 재편되고, 정치, 인종, 성에 관한 가치 충돌이 드러나 보인다. 이번 BAB는 이렇게 변화하는 동시대의 충돌과 암을 드러내면서도 거기에 희망과 유머의 긍정적 코드를 섞어내고자 했다.
방콕 전역을 잇는 BAB의 관람과 관광
BAB가 흥미로운 것은 아시아권에 새로 창설된 국제 미술행사가 과연 어떤 기획력으로 기존의 글로벌 미술계에 자기 존재감을 내뿜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BAB는 자국의 관광산업을 적극 활용한 모습이다. 방콕예술문화센터(BACC), 뮤지엄 시암, JWD 아트 스페이스를 포함해 왓 아룬, 왓 포 등 사원에도 작품을 설치했고, 센트럴 월드와 같은 쇼핑센터, 그리고 대형 박람회장으로서 복합시설이 갖춰진 퀸 시리킷 컨벤션센터QSNCC까지 전시의 관람 동선을 연결했다. 1회 BAB와 마찬가지로 서로 떨어져 있는 다른 장소에 작품을 놓아 비엔날레 관람객은 태국의 MRT와 BTS, 버스나 택시, 툭툭이 등을 타고 다니며 도시 관광과 작품 감상을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방콕 시내의 면면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지표가 되기도 하는데, 마치 글로벌 표준을 지향한 듯 건립된 아트센터와 여전히 종교 의식이 거행되는 한편 관광지로 기능하는 종교 성지, 명품 매장으로 채워진 쇼핑센터와 바로 인근의 재래시장 같은 것 말이다. 이 독특한 문화 도시 속에서 미술은 어떤 역할로 작동하고 기능하는지, 그것을 살펴보는 것이 BAB의 관람 포인트다.
비엔날레 가이드북에 따르면, 차오 프라야 강을 따라 이동하는 ‘강 코스’와 시가지를 이동하는 ‘시티 코스’로 관람 동선을 제안하고 있다. 모두 열두 곳 장소에 해당하는 이들 코스를 모두 둘러보는 데는 대략 2~3일 정도가 걸린다. 익히 알려진 대로 방콕 시내의 교통 혼잡은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하 도시 철도인 MRT와 BTS를 이용한 이동을 추천한다.
전시 하이라이트
이번 비엔날레의 하이라이트를 몇 가지 짚자면, 그중 하나는 퀸 시리킷 컨벤션센터(QSNCC) 건물이다. 1986년 태국 최초의 전시장으로 설립된 이곳은 2019년부터 3년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2022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 개최를 앞두고 리뉴얼 오픈한 바 있다. MRT 쑨 씨리낏(QSNCC)역과 도보 연결되어 있으며, 태국이 자랑할 만한 규모와 식당가 등 여러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는 카민 릇차이프라슨, 피나레 산피탁,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시오타 치하루, 제이크 & 디노스 채프만, 로버트 메이플소스 등 작가의 비엔날레 작품 50여 점이 전시 중이다.
민간 네트워크가 운영하고 있는 방콕예술문화센터(BACC)의 전시도 빼놓을 수 없다. 나선형 건축으로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이 연상되는 이곳에는 95점 이상의 비엔날레 작품이 전시 중인데, 그중 김수자 작가의 관객 참여 작업도 있다. 그 밖에 마리 카타야마, AES+F, 벤 퀼티, 와산 시티껫, 그리고 호주 원주민 작가 콜렉티브인 APY Art Centre Collective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이곳 건물에는 상업 갤러리와 소품 숍도 입점해있고, 공연이나 세미나를 위한 대관도 받는다. 1층 중앙 부스에서 비엔날레 도록과 에코백, 티셔츠 등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씨암(Siam)역과 가까운 이곳 건물 앞에서는 종종 피켓 시위가 벌어지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씨암역은 교통 환승 구간에 여러 시설이 밀집해 있어 붐비지만, 그만큼 볼거리도 많은 장소다. 비엔날레 베뉴 중인 JWD 아트 스페이스와 센트럴월드와도 그리 멀지 않다.
BAB는 비엔날레 규모에 걸맞게 국제적 명성의 작가 다수가 참여하고 있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작가의 작품보다는 태국의 미술 현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자국의 젊은 작가 작업 또한 관심 갖고 볼 만하다. BACC 8층, 왓 아룬에서 볼 수 있는 나윈 누통, JWD 아트센터에 전시 중인 자라스폰 춤스리, BACC와 The PARQ 카페 등에서 상영되는 Uninspired by Current Event 등이 그렇다. 이들 작가의 작업은 각각 VR, 구글 어스,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것으로 미술 언어의 세대교체를 증명한다.
방콕 여행 계획이 있다면 BAB 홈페이지를 참고해 여행 동선을 세우는 것도 좋겠다. 전시는 2월 23일까지 열리며, 대부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태국의 국민작가로 손꼽히는 몬티엔 붐마, 그리고 안토니 곰리 작품이 있는 왓 포 및 나윈 누통 작품이 있는 왓 아룬은 외국인에게 입장료를 받는다. 자세한 사항은 BAB 홈페이지 참고.
글 오정은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방콕 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