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부터 30일까지 열흘이 넘게 진행된 올해 더치 디자인 위크는 미리암 판 데르 뤼베(Miriam van der Lubbe) 크리에이티브 헤드가 총괄했다. 20년 전 더치 디자인 위크를 공동 창시한 주역이기도 한 미리암 판 데르 뤼베 크리에이티브 헤드는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의 강사, 네덜란드 디자인 협회 이사 등 더치 디자인계의 요직을 맡아왔다. 1998년에는 닐 판 에이크(Niels van Eijk)와 함께 반 에이크 & 반 데르 뤼베(Van Eijk & Van der Lubbe) 디자인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다. ‘겟 셋(Get set)’, 한국어로 직역하면 ‘준비’라는 테마로 전 세계 2천6백 명의 디자이너와 35만 명의 관람객을 연결할 포부를 가진 미리암 판 데르 뤼베 크리에이티브 헤드를 더치 디자인 위크 행사장에서 헤이팝 독자를 대신해 만나 봤다.
Interview with 미리암 판 데르 뤼베
더치 디자인 위크 2022 크리에이티브 헤드
— 20년 전 더치 디자인 위크를 만든 장본인 중 한 명이다. 올해부터 더치 디자인 위크 크리에이티브 헤드로 임명된 소감은 어떤가? 20년간 더치 디자인 위크를 지켜보면서 그 간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더치 디자인 위크의 시작과 과정을 지켜본 이중의 하나로 크리에이티브 헤드로 임명된 순간 너무 흥분되고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20년 전 처음 더치 디자인 위크를 구상했을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여줄 만한 기회가 많지 않았다. 때문에 많은 더치 디자이너들이 밀라노의 살로네 데 모빌레(Salone del Mobile)를 방문하기도 했다. 더치 디자인 위크 초창기부터 약 10년 동안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브제나 프로덕트 디자인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 후 10년 동안은 디자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집중해왔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이슈에 대하여 디자인이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다른 여러 디자인 이벤트와 더치 디자인 위크를 구별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아래에서 위로(Bottom-Up)’ 접근이다. 정책 결정자나 정부가 아니라 디자이너들 자체가 주축이 되어 디자인을 위한 행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수치 면에서도 지난 20년간 더치 디자인 위크는 매우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다고 자부한다. 매년 작품을 선보이는 디자이너 수 또한 2천7백 명에 이르고, 약 35만 명의 관람객이 더치 디자인 위크를 찾고 있다. 네덜란드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더치 디자인 위크라는 타이틀을 넘어 명실상부 글로벌 디자인 행사로 도약한 것이다.
— 올해는 특히 더치 디자인 위크가 스무 돌을 맞는 해다. 그만큼 테마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데 ‘Get Set’이라는 테마가 눈에 들어온다. 이번 디자인 위크와 테마에 대해 보다 더 자세한 설명을 해 달라.
더치 디자인 위크는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싶어 하는 디자이너뿐 아니라 회사 및 커뮤니티, 관람객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오픈 플랫폼이다. 우리는 정책 입안자, 기업, 원재료 생산자 등 디자인계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위한 개방적이고 접근 가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더치 디자인 위크 초창기에는 전시 등 ‘프레젠테이션’이 위주였다면, 이제는 각 주체가 협업을 통해 보다 더 총체적이고 효과적인 접근을 제시할 때가 되었다. 겟 셋은 바로 이렇게 ‘프레젠테이션’에서 ‘행동’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목표를 담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기후 변화, 에너지, 주택, 인권, 전쟁 등 여러 이슈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 또 피하고 싶은 이러한 주제들이 디자이너들에게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된다. 물론, 디자인이 사회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여러 도전적인 요소들을 분석하고 이를 바꿀 수 있는 의지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계, 회사, 정책결정자, 투자자, 다양한 기관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적절한 사고방식과 똑똑한 협업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겟 셋’ 마인드가 필요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테마 하에 올해 더치 디자인 위크는 미션 중심의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디자이너뿐 아니라 방문객들이 특정 주제와 관련,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완성된 형태의 작업이 아니어도 좋다. 콘셉트와 아이디어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해도 좋다. 아니 실수를 해야만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아이디어를 나누고 협업을 하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
— ‘디자인’은 현재 가장 트렌디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다른 국가와 도시 차원에서 디자인 위크와 같은 행사를 추진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DDW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헤드로 디자인 위크의 성공을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디자인=완성품’이라는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디자인은 생산이나 판매를 위한 것 만이 아니다. 의미 있는 콘셉트, 메시지, 새로운 아이디어, 이 모든 것이 디자인이다. 우리는 큐레이터가 아니다. 오히려 디자이너들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보여주고 콘셉트를 개발하고 또 우리 사회의 이슈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을 제시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력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차세대 디자이너에게 보다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필요도 있다. 이들의 작업의 경우 순수하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비현실적일 수도 있으나 그 뒤에 숨은 콘셉트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디자인 위크의 운영 면에서는 늘 개방된 자세와 대화, ‘탑 다운’이 아닌 ‘바텀 업’의 마인드 셋을 유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한국에서도 더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이번 더치 디자인 위크에 참여한 한국 디자이너들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작업에 대해 소개해 준다면?
이번 DDW에 참여한 한국 디자이너들 중 인상적인 프로젝트를 꼽자면, 첫 번째는 서울과 쾰른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는 김가온(Kaon Kim)의 작업인 ‘에이징 아틀라스(Ageing Atlas)’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젊음이나 늙음은 문화와 같은 사회에서도 시간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에이징 아틀라스는 이러한 나이 듦에 대한 소셜 디자인 프로젝트다. 서울과 쾰른이라는 서로 다른 문화의 두 도시 공간에서 노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 출신의 노봄(Bom Noh), 장동욱(Dongwook Jang), 박석(Seok Park) 3인의 한국 디자이너와 션 이첸(Yichen Shen)이 공동 결성한 뉴커머 소사이어티(Newcomer Society)를 관심 있게 보았다. 동아시아 디자이너들이 네덜란드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교차 문화적인 관점을 통해 제시하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글 김선영 객원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