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사일 스타디움
황금처럼 빛나는 포스터 앤 파트너스의 디자인
먼저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위치한 황금빛의 경기장은 포스터 앤 파트너스(Foster + Partners)가 디자인했다. 총 8만 개의 좌석이 완비된 이 경기장은 이번 월드컵에서 10개의 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황금관을 연상시키는 스타디움은 이슬람의 그릇을 상징한다. 전체 형태를 이루는 삼각형 패널들은 구조 역할과 동시에 뚫려있는 구멍을 통해 빛이 안팎으로 퍼져나가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패널을 통해 내려오는 자연광이 비치는 바닥은 황금색의 볼을 더욱 빛나게 하고, 경기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황금빛 패널 아래에 있는 입구를 통해 들어가서 커다란 볼 밑을 지나며 경이로움을 느낀다.
커다란 규모뿐 아니라 중동 지역의 날씨를 고려해서 카타르 경기장들은 모두 에너지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각자의 방식을 적용했다. 포스터 앤 파트너스의 루사일 스타디움의 경우에는 외부 에어컨이 냉각팬 역할도 할 수 있도록 해서 GSAS(Global Sustainability Assessment System)에서 5등급을 받았다. 사진에서 느껴지지 않지만 반지름이 307m나 되는 구조가 전체 경기장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경기장이고, 수용인원이 다른 7개의 경기장의 2배 가까이 많다. 이 거대한 경기장 내부를 덮는 루프는 기둥 없이 하나로 만들기 위해 매우 복잡한 시스템으로 설계됐다. 카타르 월드컵이 끝나도 루사일 스타디움은 이 자리에 남아 오랫동안 그날을 기억하고 또 다른 추억들을 만들어갈 것이다.
알 자누브 스타디움
유기적인 형태가 특징인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
2016년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부드러운 곡선을 잘 다루는 여성 건축가로 전 세계에 이름을 날렸다. 한국에서는 동대문 역사 문화공원 DDP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자하 하디드는 이라크 출신의 건축가로 정상에 우뚝 서 중동에서도 자랑스러운 인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자하 하디드는 자연스럽게 카타르 월드컵의 경기장 디자인을 맡았고, 다행스럽게도(?) 2016년 자하 하디드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이미 월드컵 경기장의 초기 디자인이 진행된 상태였다. 그 이후로 건축가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디자인이 그대로 진행됐고,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을 고향인 중동에서 다시 한번 만날 수 있게 됐다.
역시나 유기적인 모양과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은 아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기잡이배에서 영감을 받았다. 다우 배의 삼각형의 큰 돛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그대로 스타디움에 반영됐다. 다우 배의 모습을 보고 나면 이 스타디움의 형상화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총 4만 개의 좌석이 마련됐고, 월드컵 이후에는 수용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들 예정이다.
알 자누브 스타디움은 아랍의 친환경 등급 시스템 GSAS 4등급을 받았고, 그 외에도 LEED 인증을 받았다. 이 경기장은 내부로 나오는 에어컨 바람이 내부 열기를 식히고 다시 좌석 밑에 설치된 설비로 들어가 가공돼 외부로 나오는 시스템을 통해 적은 에어컨 사용으로 큰 효율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자하 하디드의 측근들에 따르면 자하 하디드가 매우 만족하는 디자인이었으며 이 프로젝트가 완공된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라는 뜻깊은 인사를 전했다.
알 투마마 스타디움
아랍의 전통 모자를 형상화한 아이브라함 자이다의 디자인
아랍인들이 자주 쓰는 모자 가피야(Gahfiya)는 중동 지역의 남자들이 주로 쓰는 모자로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어릴 적부터 써오던 모자의 문양에 영감을 받은 아랍 건축가 아이브라함 자이다(Ibrahim M Jaidah)는 월드컵 경기장 디자인을 위해 수많은 가피야 문양을 직접 손으로 그려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전통 문양들의 심오함에 빠져들었고, 반복되는 패턴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문득 잠에서 깨 문양을 그렸는데, 그게 지금 알 투마마 스타디움의 문양이 됐다. 그 누구보다 중동의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지역 건축가가 만들어낸 디자인이라는 데 깊은 의의를 둔다.
글 정유화 객원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