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셋은 사물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현명한 소비를 제안하는 오브젝트가 2022년 6월 론칭한 오프라인 기반의 공간 브랜드다. ‘엽서 도서관’이란 콘셉트 아래 3,200장의 엽서를 한 자리에서 선보인다. 일상의 ‘조연’쯤으로 만만하게 여겨진 엽서를 ‘주연’으로 캐스팅했으니 눈길이 모이는 건 시간 문제다. 수많은 물건 중에서도 왜 하필 ‘엽서’ 하나만을 팔겠다고 나선 건지, 얇은 종이 한 장으로 어떻게 눈 높은 소비자를 만족시키려는지 궁금했다. 포셋을 만든 사람들에게 서면으로 물었더니 관계자 각자의 말을 모아 풍성한 답장을 보내주었다.
Interview with 포셋
오브젝트 시니어 에디터 지혜, 에디터 강수민, VMD 송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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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셋은 엽서(postcard) 와 종이(paper), 포스터(poster) 등
종이의 물성과 기록물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를 조합해 만든 조어입니다.
저희끼리는 “엽서 세트로 사세요”란 뜻이라고 농담처럼 말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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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셋을 기획한 오브젝트를 먼저 알고 싶습니다. 어떤 일을 하십니까?
2013년 시작한 오브젝트는 현재 300여 개의 소규모 브랜드와 3,000여 개의 사물이 함께하고 있는 유통 플랫폼 브랜드이며 생활잡화점입니다. 서울 3곳(서교/성수/삼청), 부산, 대구, 전주, 제주, 울산 8개의 오프라인 스토어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빛을 지닌 신진 디자이너와 소규모 생산자와 함께 ‘일상의 고찰’ 이 담긴 사물들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오브젝트는 물건을 산다는 것을 삶의 한 조각을 얻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뜻에서 현명한 소비 문화를 실천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령 오브젝트 매장을 거점으로 진행하는 1:1 물물교환 서비스를 비롯해 직접 접어 쓸 수 있도록 마련한 잡지봉투와 다시 한번 더 쓰는 쇼핑백과 택배박스 등이 예가 될 수 있겠네요.
— 포셋처럼 브랜드 하나를 론칭한 사례가 이전에 있었나요?
포셋이 처음입니다. 오브젝트를 운영하며 손님분들이 부담 없이 가장 즐겨 손을 뻗는 제품이 엽서라는 발견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가격이 저렴한 탓에 매장에서 엽서의 입지가 점점 줄어드는 모습이 아쉬웠고요. 많은 사람이 작가의 작품을 SNS를 통해 디지털 이미지로 접하지만, 프린트물로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지면서 느끼는 건 다른 차원의 경험이라고 생각하여 ‘종이’라는 매체에 주목하게 됐고요. 도서관에 책이 가득 꽂혀있는 것처럼 엽서가 서가를 채우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하며 포셋이라는 공간을 시작했습니다.
— 기획부터 개관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나요?
1년 정도 걸렸어요. 엽서라는 매체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소개하는 공간이 사실상 전무했기에 더욱 신중하게 오래 고민했던 것 같아요.
— 포셋 바로 옆에 우체국이 있던데 혹시 꿈에 그리던 입지였을까요?
‘우체국 옆에 포셋을 만들어야겠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포셋 가까이에 우체국이 있어서 좋습니다.(웃음) 동네 주민들이 오가는 정겨운 장소이니까요. 포셋이 산책을 하다가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길 바랐어요. 그래서 새 건물보다는 세월의 흔적이 있는 장소를 택했습니다. 지금 포셋의 자리를 처음 만났을 때 창가 너머로 푸른 가로수가 일렁이고 있었거든요. 포셋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창가 쪽 일인용 테이블에 앉아 엽서를 적는 손님을 보면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엽서 도서관의 한 장면이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 인테리어와 가구 또한 포셋의 공간 경험을 만드는 중요한 열쇠 같습니다.
‘엽서 도서관’이라는 콘셉트 아래 ‘엽서’가 주인공이 되는 인테리어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또한 도서관처럼 서가 사이사이를 거닐 수 있되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고요. 꼭 필요한 가구와 집기만을 들여 오롯이 엽서와 기록을 위한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선반과 가구 모두 자체 제작한 것들입니다.
— 엽서 컬렉션은 어떻게 구성되나요?
오브젝트에서 10년간 인연을 쌓아 온 창작자분들의 추천과 소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출발했고 새로운 창작자분들과 관계를 만들어가며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포셋의 서가는 어느 한 사람의 취향이 녹아든 공간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이 모여 있어요. 그만큼 다양한 창작자의 엽서를 만나보실 수 있고요.
— 벌써 몇 차례 전시도 선보였어요. 자체적으로 기획하시나요?
포셋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해당 주제를 잘 다룰 수 있는 창작자들과 협업해 비정기적으로 진행합니다. 특히 엽서의 역할을 더 넓히는 데 관심이 커요. 여행지 기념물, 특별한 날의 메시지, 작은 그림으로써의 역할 말고도 엽서는 우리의 현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기록물이 될 수 있거든요. 예컨대 지금은 그래픽 디자이너 5명과 포셋이 함께 협업하는 ‘무한의 연상’ 시리즈 첫 번째 <hey, siri>전이 열리고 있어요. 애플의 인공지능 응용 프로그램 ‘시리’를 아이템으로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Siri에게 대신 전해달라고 해보세요.’ ‘Siri에게 어떤 명령을 하시겠어요?’란 이야기를 전개하죠. 이러한 기획으로 우리의 일상을 다른 차원으로 해석하고 떠올리고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보관함을 대여하는 서비스 ‘기록보관소’는 어떤 의도로 준비했나요?
간직하고 싶은 기록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것이 나만의 아늑한 아지트로, ‘나’로서 돌아오는 자리로 느끼게끔 한다고 보았습니다. 때로는 친구와 함께 사용하며 교환일기, 교환 편지를 쓰며 ‘우리’의 기록을 담을 수도 있고요.
— 그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포셋의 매니저님이 들려준 일화인데요. 비가 많이 내리던 8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에 옷이 많이 젖은 손님이 오셨답니다. 그분은 나가기 전에 매니저님에게 쪽지 하나를 건넸다고 해요. 공간에 대한 칭찬과 함께 항상 행복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죠. 이제 그 쪽지는 매니저님의 다이어리 앞장을 장식하고 있어요. 일에 지칠 때마다 힘을 주는 연료랍니다. 포셋의 특별함이 있다면 이렇듯 직접 수기로 적은 마음을 전달하고, 또 그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 한 편에 오래도록 보관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더 빨리, 더 간단하게 나아가 일정 시간이 되면 휘발되는 디지털 기능이 인기입니다. 이런 시대에 굳이 이곳에 와 조용함을 지키며 무언가를 ‘적는다’는 행위를 왜 제안하고 싶으셨어요?
아날로그의 자리가 점점 좁아짐을 느낍니다. 친구, 가족의 연락처를 외우는 일은 줄고 선물도 SNS 메시지 창으로 건네죠. 그런데도 우리는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적는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생에 큰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는 이 시대에서 생각하며 적고, 기록을 남기는 일을 통해 온전히 나의 주변과 나의 삶에 집중하는 시간이 생기길 바랐어요. 분명 저희의 그러한 마음이 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 마음을 이어서 현재 부산에 포셋 2호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포셋 내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꼈어요. “아, 당신도 이런 거 좋아하는군요” 하는 마음이랄까요?
포셋에 들어서면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각자의 시간에 집중하고 있는 개개인의 모습을 보실 수 있어요. 선반 사이사이를 거닐면서 엽서를 고르는 분들, 창가의 일인용 테이블에 앉아 엽서를 적는 분들, 기록 보관함에서 자신의 일기장을 꺼내서 본인의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죠. 이 모든 장면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주고 친밀감과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포셋 이렇게 한번 즐겨보세요!’ 권한다면?
3,200장의 엽서 중 마음을 움직인 엽서를 고릅니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고른다면 더 좋습니다. 그런 다음 1인용 테이블에 앉아 고른 엽서 위에 마음을 적어봅니다. 창밖에 흔들리는 나무들을 잠시 동안 바라봐도 좋습니다. 엽서는 기록 보관함에 넣어 편지를 받는 사람이 찾아가게 하거나, 내가 꺼낼 수 있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엽서 외에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품들을 보관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글 윤솔희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포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