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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4

이 시대의 불구경에 대하여

아뜰리에 에르메스, <류성실: 불타는 사랑의 노래>
“공주야! 공주야!”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가 전시장에 울려 퍼지고, 이내 슬픈 노래가 흘러나온다. 헷갈린다. 이 상황은 슬픈 상황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 슬픔을 부추기는 듯한 몇몇 사람도 보이는데,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다.
류성실,

제19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받은 류성실 작가는 풍자의 방식을 통해 이 시대를 점유하는 자본주의의 단면을 예리하게 드러내 왔다. 보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눈살이 찌푸려지는 인위적인 화장과 주름 그리고 과장된 몸짓. 그는 실체와 진실이 없는 가짜 뉴스와 선정적인 정보로 넘쳐나는 미디어 세계에서 벌어지는 교환경제 체제를 BJ ‘체리 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매개했다. 또한 국적을 알 수 없는 외국인 가이드 ‘나타샤’로 분장해, 관광객을 일탈과 환상의 세계로 유도해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일면을 폭로했다. 이번에는 <불타는 사랑의 노래>, 반려동물 장례사업을 감행한 이대왕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류성실: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류성실: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장례식장을 연상시키는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강렬한 소리부터 들린다. 그 소리를 따라가면 장례절차가 거행되는 현장 앞에 도착한다. 화면 앞에 앉은 관람자들은 어느새 ‘공주’라는 애견의 죽음과 애도 예식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장례식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보인다. 이대왕이다. 전작에서 체리 장의 대왕 오빠 혹은 나타샤의 사장님으로 간주되던 이대왕의 존재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류성실, ​

누군가의 반려동물이었을 ‘공주’의 장례식은 약 15분간 압축적으로 진행되는데, 여기서 작품의 인물과 무관한 관람자는 제3자의 입장에서 이대왕의 수법을 속속들이 발견한다. 이대왕은 체리 장에게 기도, 봉사 등의 마케팅 콘셉트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 돈보다는 예술을 지향한다며 자신이 직접 작곡한 노래 ‘진짜배기 사랑’을 부른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들려왔던 슬픔을 조장하는 그 노래다. 한편, 장례식 영상에는 전작에서 등장했던 익숙한 얼굴도 보이는데, 전직 관광 가이드였던 나타샤다. 나타샤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로 직종을 바꿔 장례식장에 출현한다. 그는 자신이 죽은 강아지에 빙의하는 능력을 갖췄다며 ‘공주’에 빙의하는 필살기까지 뽐낸다.

《류성실: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죽음이라는 숭고한 주제와 결부돼 엄숙하고 숙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장례식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이대왕은 애도의 장소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주들을 내몰며 수완을 발휘한다. 관람자는 죽음마저도 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이대왕의 사업을 목도하며, 그야말로 넋이 나간다. 더욱 황당한 것은 애견 화장장에 등장한 이대왕의 영웅적인 이미지다. 소각로의 반대편에는 이대왕의 영웅서사가 펼쳐져 있다. 사업 성과와 더불어 앞으로의 기획까지 빼곡하게 채워져 거대 벽화가 됐다. 한정된 면을 빽빽하게 채운 이미지의 과잉 역시 한계 조건에서 최대한의 정보를 전달하려는 광고판의 속성을 답습한 것이다.

《류성실: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전시장 한편에는 화환들이 설치돼 있다. 한때 이생에서 인연을 함께했던 인물 혹은 유명 인사들의 이름이 적힌 화환은 장례가 모두 끝나면 폐기되는 대상이다. 오직 장례식만을 위해 존재하는 화환은 애도를 표하기 위한 단순한 소재인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타인에 대한 과시, 마음을 표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상징물로서 온갖 세속적 욕망이 뒤섞이며 복잡한 의미를 형성한다.

“화환은 제가 아는 한 가장 훌륭한 껍데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물이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화려하고 거추장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지저분하고 얄팍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연자약한 껍데기의 모습이랄까요?”

안소연-류성실 인터뷰, 전시 카탈로그 中

류성실,

우스꽝스러운 분장, 과장된 목소리와 몸짓, 구성과 연출. 이를 통해 작가가 드러내는 주제는 우리에게 불편함을 준다. 하지만 그 주제는 사실 어디에나 있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주하고 또 교묘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작품의 해학적 요소에만 집중해 웃고 말 일은 아니다. 류성실 작가는 근본적으로 이 시대의 불구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만히 앉아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는 일은 평화롭고 즐겁습니다. 특히 남의 집 불구경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몰락을 관조하고 파국적 로맨스를 곁눈질하고, TV 속 어린 연예인들의 열정을 소비하며 그들이 더 열심히 타오르기를 응원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이런 것도 요즘 유행하는 ‘불멍’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타오르는 불 근처에는 다양한 욕망을 지닌 구경꾼이 몰려들게 마련이지만, 사실 무엇보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그들 구경꾼들을 향해 입맛을 다시는 또 다른 구경꾼들의 모습입니다.”

안소연-류성실 인터뷰, 전시 카탈로그 中

《류성실: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작가의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모든 작업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으면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작에서 자신의 여행 회사 ‘대왕 트래블’을 운영한 이대왕이 이번에 ‘애견 장례’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작품과 작품 사이의 간격에 대한 추측의 과정을 이끌어낸다. 작가는 이에 대해 “개가 인간에 비해 작고 생애 주기가 짧으니 회전율이 좋고 투자 비용이 적어서 그런 것 아니었을까요?”라며 이대왕의 행보에 관조자 입장을 취할 뿐이다. 그렇게 작품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가는 과정은 관람자의 몫이 된다.

《류성실: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류성실 작가의 작품은 사업에 얽힌 이대왕의 면모만을 비추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빽빽한 이미지 정글의 일부 공간에는 QR 코드가 배치돼 있다. 코드를 타고 들어가면 이대왕이 사실은 당국의 수배를 받는 경제사범이고, 경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미천한 사람이라는 정보가 폭로된다. 하지만 그 정보는 이내 모습을 감추고 광활한 정보 속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질 수도 있을 일이다.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얻는 것. 기회 앞에 장사 없다고, 속물적인 인간 군상에게 사업 아이템은 단지 이윤으로만 직결된다는 사실. 죽음 앞에 애도를 찾아볼 수도 없는 것은 물론, 애도하는 이들에게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혈안이 돼 있는 모습.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수많은 서사들 모두가 어딘지 익숙하다.

 

하얗게 ‘분장’을 한 작가는 세상의 여러 ‘민낯’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감춰져 인간의 본성 그리고 그것이 현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와 만나 어떤 모습으로 발현되는지 숙고해 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10월 2일까지.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아뜰리에 에르메스

프로젝트
<류성실: 불타는 사랑의 노래>
장소
아뜰리에 에르메스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7
일자
2022.07.29 - 2022.10.02
하도경
수집가이자 산책자. “감각만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라는 페소아의 문장을 좋아하며, 눈에 들어온 빛나는 것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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